# 721
둘에겐 공금 횡령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다시는 동종 업계에 발붙일 수 없게 조치한 것이다.
물론 제퍼슨이 수를 써서 붙여준 꼬리표이다.
“그 친구와 난…….”
잠시 윌슨의 넋두리가 이어졌다.
큰돈을 보너스로 받게 되거나 승진할 기회였던 그 일은 교묘하게 꾸며진 사기였다. 그때 날린 돈은 아마도 제퍼슨과 그 일당의 주머니로 들어갔을 거라며 이를 간다.
그러면서 복수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했다.
말이 이어지는 동안 제퍼슨이란 자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프린스턴 대학교 졍제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자이다.
미국 경제학과 대학원 순위를 보면 하버드 대학과 같이 공동 1위에 랭크되어 있는 명문이다.
참고로, 텍사스 주립대학 경제학과는 26위이다.
제퍼슨은 슐츠 가문 사람이다.
우리나라 된장녀들의 아지트인 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의 조카이다. 그리고 하워드는 유태인이다.
그래서인지 스타벅스는 이스라엘 군부에 무기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행위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사살하는 총알 값을 대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2009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전투 당시 어린이들을 무참하게 폭격하여 400여 명을 죽였다. 이때 사용된 열화 우라늄탄의 자금 지원을 스타벅스가 지원했다는 설이 있다.
어쨌거나 윌슨은 재기를 꿈꾸고 있다.
그래서 노숙 생활을 하면서도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 매일 신문을 읽고, 정치, 경제 동향을 살핀다.
에머슨과는 사흘에 한 번 꼴로 만나는데 그때마다 서로를 격려하며 언젠가는 꼭 일어서자고 다짐했다.
맨해튼 인근엔 윌슨과 에머슨 이외에도 월가에서 떨려 나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의 목표는 월가 재입성이다.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매달 첫 번째 일요일에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로 집결한다. 근처에 자그마한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은퇴 선배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수효는 약 200명이다.
윌슨과 에머슨처럼 노숙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전에 비하면 보수가 낮은 일에 종사한다.
청소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레스토랑 웨이터도 있다. 호텔 벨보이도 있으며 아파트 경비원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월가에서 밀려났다는 것 이외에 하나가 더 있다. 단 한 명도 유태인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현수는 윌슨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모처럼 호의를 베푼 사람을 만나 기분이 좋았는지 묻지 않았음에도 이런저런 이야길 많이 한 것이다.
“윌슨, 내가 당신에게 연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기 Pill & Son이란 식당 보이십니까? 저곳으로 전화 주시면 저와 통화할 수 있습니다.”
윌슨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어떤 기회가 온다 생각했는지 적극적인 눈빛이다.
“식당이요?”
“네, 하루에 한 번 주변 청소를 해줍니다. 그 대가로 손님들이 먹다 남긴 샌드위치가 있으면 주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제론 아예 손대지 않은 것만 골라서 준다.
“한 달에 한 번 모인다는 그 사람들은 믿을 만합니까?”
“그 모임은 벌써 30년째 지속됩니다. 아무런 대가도 없는 모임이기에 사기꾼들은 다 떨어져 나갔지요.”
믿을 만하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증권 거래를 할 사무실을 얻으려면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요?”
“9.11 테러 이후 월스트리트의 사무실 임대료가 많이 늘었습니다. 하여 사무원 1인당 연간 12,300달러 정도 듭니다. 참, 비서 포함한 겁니다.”
이건 준비된 대답이다.
매달 모이는 사람들이 돈을 갹출하여 증권사 하나를 창업하는 것에 대한 논의에서 들은 것이다.
어쨌거나 월가에서 사무실을 열려면 직원 수 열 명인 경우 매달 1,230만 원의 임대료가 소요된다는 뜻이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을 때 윌슨의 말이 이어진다.
“사무실이 꼭 월가에 있으란 법은 없습니다. 뒷골목 쪽을 찾아보면 훨씬 저렴한 곳도 많지요.”
어쩌면 현수는 투자를 하려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처음부터 많은 돈이 든다고 하면 발을 뺄 수 있다 생각했기에 한 말이다.
“맞아요. 겉보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미스터 윌슨, 제안 하나 하지요.”
“네, 말씀하십시오.”
윌슨은 벌써부터 아랫사람 노릇을 자청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는 재기하고픈 간절한 소망 때문만은 아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지만 현수로부터 뿜어지는 카리스마가 자연스럽게 굴복하게 만든 것이다.
“증권 거래를 하고 싶은데 나를 대신하여 작업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믿을 만해야 합니다. 둘째, 빚이 많은 사람은 안 됩니다. 셋째, 유태인도 안 됩니다.”
“……!”
윌슨은 머릿속으로 마땅한 인물을 꼽는지 말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우선은 20명 정도가 근무할 사무실이 필요합니다. 조금 전에 말한 대로 겉보기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그런 건물이라면 여기에 있습니다.”
윌슨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킨다. 큰길에서 약간 들어온 곳에 위치한 5층짜리 건물이다.
“흐으음!”
“1층은 미장원과 식당이 있고, 2층은 사무실로 쓰입니다. 3층부터는 아파트로 임대되고 있지요. 지하는 창고입니다.”
“가격은 얼마나 합니까?”
“주인은 400만 달러 정도 요구합니다만 낡아서 360만이면 거래될 겁니다.”
이곳은 뒷골목이기는 하지만 뉴욕이다. 360만 달러라면 한국 돈으로 43억 2천만 원이다.
이 가격에 5층짜리 건물을 살 수 있다면 괜찮은 듯싶다. 하여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습을 본 윌슨이 눈빛을 빛낸다. 360만 달러를 쉽게 결정할 수 있다면 상당한 재력가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가격은 괜찮은데 많이 낡아 보이는군요.”
“아무래도 지어진 지 오래되었으니까요. 40년 가까이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보수할 곳도 많습니다. 주인도 여기저기 고쳐야 한다는 말에 진절머리 나서 팔려고 하는 겁니다.”
“흐음! 입주자들은 많은가요?”
“웬걸요. 1층은 절반쯤 비었고 2층과 3층은 전부, 그리고 4층과 5층은 겨우 두 가구씩 거주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이 비어 있죠?”
“방수가 안 돼서 물이 샙니다. 하지만 고치면 그만이죠.”
보수 공사를 마치면 다시 임대를 놓을 수 있다. 그러면 적절한 수익이 발생될 것이다.
주인이 건물을 내놓은 이유는 보수를 해야 하는데 임대료 수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사할 돈이 없어 맥 놓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건물 말고는 없어요?”
“다른 것도 많이 있지만 이만한 가격엔 못 구할 겁니다.”
윌슨의 눈을 보니 거짓은 아닌 듯싶다. 잠시 머뭇거리던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앱솔루트 피데러티(Absolute Fidelity)!”
황금빛 마나가 윌슨의 전신으로 스며든다. 절대 충성 마법이 구현된 것이다.
“……!”
“미스터 윌슨, 이 건물 매입을 추진하세요.”
“네, 보스!”
눈빛과 말투가 확연히 달라졌다.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해야 할듯하니 입주자들은 모두 내보세요. 아울러 전문 보수 업체를 물색하세요.”
“네, 보스!”
“건물은 뼈대만 남기고 모두 손봅니다. 1층은 현재 입주자들이 다시 입주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대꾸가 없기에 바라보니 낡은 수첩을 꺼내 메모하는 중이다. 윌슨에게 있어 현수가 하는 말은 지상명령이다.
절대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이니 아주 꼼꼼하게 일 처리를 해야 한다 생각한 것이다.
“2층은 주식 매매를 위한 사무실로 쓸 겁니다. 그에 필요한 사무용 가구 등을 매입하십시오.”
“알겠습니다.”
“3, 4, 5층은 전처럼 아파트로 만드세요. 현재 각 층마다 몇 가구로 조성되어 있지요?”
“3층은 여덟 가구, 4층은 열두 가구, 5층은 열여섯 가구입니다.”
“규모는 얼마만 한가요?”
“이 건물의 바닥 면적이 12,960입니다. 그러니 3층은 가구당 1,620 정도 될 겁니다. 4층은…….”
윌슨의 설명은 중간에 끊겨야 했다.
“흐음, 내가 쓰는 단위랑 달라 헷갈리는군요. 잠시만요.”
현수는 머릿속으로 면적을 환산해 보았다.
1,620는 약 45평이다. 이런 집이 여덟 채가 있으니 전체 면적은 360평이다.
그렇다면 4층은 30평이고 5층은 22.5평이다.
미국에서는 50평짜리도 큰 집이 아니다. 따라서 이 건물에 입주해 있는 사람들은 서민 내지는 빈민에 해당된다.
“얼마나 입주해 있다고 했죠?”
“4층 두 가구, 5층 두 가구입니다.”
“그럼 각 층을 여덟 가구로 조성하세요.”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현재 입주자들에게 원하면 입주할 수 있음을 알리세요. 임대료는 전과 동일합니다.”
“네? 그게 무슨……?”
미국적 가치 기준에 맞지 않는지 눈을 크게 뜬다.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치면 새로 지은 것과 맞먹게 된다. 게다가 전용 면적까지 확장된다.
당연히 임대료 및 관리비가 인상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눈을 크게 뜬 것이다.
“기존 입주자는 관리비와 임대료가 전과 동일합니다.”
현수의 표정을 보고 기존 세입자들을 내쫓지 않으려는 인간적인 배려라 생각했는지 윌슨의 표정이 풀어진다.
“알겠습니다. 모두들 기뻐할 겁니다, 보스!”
낡아서 물이 새는 건물이 곧 새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임대료와 관리비가 그대로라고 하면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미스터 윌슨, 나머지는 동료가 될 사람 중에서 주거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네?”
또 눈이 커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설명이 이어진다.
“이 건물의 명칭은 이실리프 빌딩입니다. 나는 이 건물의 주인이고 미스터 윌슨은 관리 책임자입니다.”
“……!”
“기존 세입자 이외에 이실리프 트레이딩의 직원들에겐 임대료 및 관리비를 징수하지 마십시오.”
“그럼 전부 공짜로…….”
“공짜가 아닙니다. 향후 발족될 이실리프 트레이딩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뜻입니다.”
“아! 이실리프 트레이딩!”
아직 보지도 못한 직원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45평짜리 거주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한다.
윌슨은 현수가 생각보다 큰 부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더욱 깍듯하다.
“참, 지층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창고로 쓰면 될 듯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직원들 보수는 어느 정도입니까?”
“얼마가 적당하겠습니까?”
“고정급보다는 인센티브로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래야 더 힘내서 일할 듯싶습니다.”
피고용인 입장에선 불리한 조건이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절대 충성 마법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을 비롯하여 이실리프 트레이딩에 입사할 사람들은 주거가 불안정하다. 모두 노숙자라는 뜻은 아니다.
모두들 직업이 변변치 못하다. 따라서 매달 내야 하는 집세가 부담인 사람들이다.
맨해튼의 경우 1BD 아파트의 월세가 2,500∼5,000달러이다. 2BD짜리 아파트는 2,800∼6,000달러 정도 된다.
다시 말해 침실이 하나 있는 아파트의 월 임대료가 300∼600만 원이다. 당연히 집세가 큰 부담이다.
그런데 무상으로 거주지를 제공한다고 한다. 1인당 1,620이니 침실 4∼5개가 가능하다.
얼마나 큰 혜택인가!
“그렇다 하여 급여가 아주 없으면 안 되지요. 펀드 매니저들의 평균 연봉은 얼마나 되죠?”
“약 7만 달러입니다.”
“흐음, 그래요?”
생각보다 액수가 많다는 느낌이다. 이를 읽었는지 윌슨이 말을 잇는다.
“보스께서 거주지를 제공해 주시니 평균 연봉 정도면 적당할 겁니다.”
“그건 얼마나 되죠?”
“약 4만 달러입니다.”
윌슨이 이런 이야길 하는 까닭 역시 절대 충성 마법 때문이다. 본인보다 현수를 더 중히 여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