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5
에머슨은 대뜸 코리아타운에 있는 ‘스파디움’에 가야겠다며 돈을 달라고 한다. 입장료가 33달러나 하는 이곳은 몰락하기 직전까지 에머슨이 자주 찾던 곳이다.
씻고 수면실에서 잠까지 자려면 40∼50달러가 소요된다.
윌슨으로부터 1,000달러를 받은 에머슨은 곧장 스파디움으로 향했다. 누가 훔쳐 갈까 싶어 애지중지하던 카트는 그걸 탐내던 노숙자에게 주어졌다.
윌슨과 에머슨은 보수공사와 인테리어가 끝날 때까지 매일 그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모텔보다 더 편하다 생각한 것이다.
조그만 식료품점에서 점원 노릇을 하던 죠셉은 환히 웃으며 앞치마를 벗어던졌다. 50이 넘은 나이에 맥도날드에서 감자를 튀기고 있던 알란도 합류를 약속했다.
이들과 만날 때마다 다음은 누구일지를 정했다.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건져내는 기분이었기에 무척 즐거웠다.
“보스, 브로커로부터 괜찮은 건축가를 소개 받았습니다. 곧 공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입주민들은 뭐라 합니까?”
“노숙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다리겠답니다, 보스!”
“공사 끝나려면 멀었고 아직 날씨가 추운데… 차라리 스파디움에 같이 있지 그래요?”
“권해 보겠습니다. 참, 보스, 건의 드릴 게 있습니다.”
“뭐죠?”
“4층에 살면서 건물 1층에서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는 리사라는 아주머니가 있습니…….”
잠시 윌슨의 설명이 이어졌다.
리사는 50대 초반 여성이다.
스물세 살 때 남편과 이혼하고 두 아이를 길렀다.
30대 초반에 사기꾼을 만나기 전까지는 제법 많은 돈을 모았다. 그러다 몽땅 잃고 웨이트리스로 일을 했다.
현재는 망해가는 식당을 운영 중이다.
리사의 두 딸은 모두 중증근무력증 환자이다. 그렇기에 수시로 4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며 일하고 있다.
몹시 힘들 텐데도 너그러운 마음씨를 가져 윌슨에게 종종 남은 음식이라면서 식사를 제공했다.
오늘 윌슨은 리사에게 건물이 팔릴 것이며,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해야 하므로 집과 가게를 비워줘야 한다고 했다.
집도 집이지만 유일한 호구지책이 사라진다니 당연히 망연자실해한다.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지만 그것마저 없어지면 굶어야 한다며 탄식했다.
평소 신세를 졌던 윌슨인지라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참으로 난감했다.
하여 대강 얼버무리고 동료들을 규합하러 다녔다.
오후엔 습관처럼 노숙하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중 묘안이 떠올랐다.
이실리프 트레이딩의 직원이 될 스무 명 중 열두 명이 독신이다. 당연히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하는 게 귀찮다. 그렇다 하여 굶거나 날마다 패스트푸드를 먹을 순 없다.
가족이 있는 직원이라도 삼시 세 끼 모두 집에서 먹진 않는다. 업무 때문이라도 점심 식사는 사서 먹는다.
그렇다면 리사 아주머니가 식사를 제공해 주는 건 어떨까 싶다. 물론 음식 값은 제대로 지불한다.
아침 열두 명, 점심 스무 명, 저녁 열두 명이면 총 44명분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최근엔 날씨가 추워지면서 하루에 10인분도 팔지 못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모텔에 묵으면서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고 임시 식당을 운영하면 최하가 44인분이다.
윌슨은 이걸 현수에게 허락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이권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분 음식 맛은 어때요?”
“끝내주죠. 다들 불만 없을 겁니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참, 새로 입주할 때엔 주방기구 등을 새 것으로 바꾸도록 하세요. 우리 빌딩에 오갈 사람들이 많아질 수도 있으니까요.”
“…네? 우리만 있는 거 아닙니까?”
주식 거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다. 앉아서 컴퓨터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 이름은 이실리프 트레이딩입니다. 트레이딩이 무슨 뜻인지는 알죠?”
“Trading은 상거래, 영업, 무역 등의 뜻이 있는…….”
윌슨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이실리프 트레이딩은 주식 거래뿐만 아니라 한국으로부터 보내올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거점이 될 겁니다.”
현수의 이 말은 태을제약에서 론칭한 태을 코스메틱의 듀 닥터를 염두에 둔 말이다.
“네? 화장품이요? 그걸 우리가 팔아요?”
윌슨은 황당하다는 어투이다. 펀드매니저에게 화장품을 팔라는 뜻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자세한 건 이메일로 보내줄 겁니다. 휴대폰으로 메일 주소를 보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리사 말입니다. 리사는…….”
윌슨이 잠시 머뭇거린 이유는 리사에게 주방기구를 모두 바꿀 여력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상당히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러니 그걸 모두 교체하라고 요구하면 또 탄식할 것이다.
낡고 허름한 가게 대신 반듯하고 깨끗한 새 가게가 생기고 전보다 훨씬 넓은 집에서 살게 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주머니에 돈이 없다.
은행에서 융자 받는 것은 어렵다. 아무런 담보도 없고 그간 은행 거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왜 말이 없어요?”
“네? 아, 아닙니다. 이상입니다.”
윌슨이 말을 얼버무리자 반문해 보았다.
“주방기구 바꿀 돈이 없나보죠?”
“네? 아, 네. 사실은 사정이 많이 딱합니다.”
“그래요? 그럼 일단 우리 돈으로 바꿔주세요. 그리고 천천히 갚으라 하세요.”
“아……!”
윌슨은 현수가 또 한 번 호의를 베푼다는 것을 깨닫고 나지막한 탄성을 낸다.
“입주자들 재입주할 때 가구도 다 바꿔주세요. 새 건물이니 낡은 가구보단 그게 낫지 않겠어요?”
“보, 보스!”
일면식도 없는 가난한 입주자들까지 헤아리는 마음에 윌슨은 격동했다.
“이실리프 빌딩에 거주한다 함은 나와 관련이 있는 겁니다. 직업이 없다면 고용할 수도 있습니다.”
“보스,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윌슨은 진심으로 감복하여 저도 모르게 충성 맹세를 했다.
“내일 잠시 둘러볼 곳을 둘러본 후 한국으로 갑니다. 새 휴대폰이 생기면 문자로 번호 알려주십시오.”
“네, 보스. 조심해 돌아가십시오.”
* * *
“이제 메릴랜드주 베데스다로 갈 차례인가?”
현수가 언급한 곳은 록히드 마틴의 본사가 소재한 곳이다.
이 회사는 군용기, 미사일, 인공위성, 우주선 발사 장치, 정보 및 기술 용역, 전자제품 등을 생산하는 미국의 대표적 항공우주산업체이다.
F―16 파이팅 팰콘, F―35 라이트닝, F―22 랩터, C―130 허큘리스, P3C 대잠정찰기 등이 이 회사에서 나온다.
미국은 자국이 보유한 최첨단 무기는 판매하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바로 F―22 랩터이다.
한국과 일본 등이 팔라고 애원했지만 결코 승인되지 않았다. 이는 당연한 조치이다. 오늘의 우방이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미국은 한국을 봉으로 여긴다.
주둔 비용을 받는 건 그렇다 치자.
무기 도입 이야기만 나오면 미제 무기를 구매하라고 압력을 넣는다. 이때마다 호환성이란 말을 한다. 그래서 미제를 사기로 하면 우방국이라면서 온갖 바가지를 다 씌운다.
FA―50을 만들 때에는 결코 F―16 이상의 성능이 나와선 안 된다는 조건을 걸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뛰어난 기술을 가졌는지 궁금해서라도 록히드 마틴의 컴퓨터를 뒤져볼 생각이다.
“일단 좌표를 확인하고.”
노트북을 꺼내 상세 지도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이 부근은 지도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 방위산업체니까 이해해.”
나직이 투덜거리며 주변을 검색했다.
메리어트호텔이 있다. 주변에 너른 풀밭이 있어 텔레포트하기 딱 좋다. 문제는 시선이다.
사람들이 있을 경우 문제될 수 있다.
“흐음! 또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를 써야 하나?”
체내 마나를 확인해 보았다. 많이 소모했음에도 완충된 상태이다.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전히 켈레모라니의 비늘이 어떤 효능을 가졌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가자.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르릉―!
또 한 번 현수의 신형이 흩어졌다.
“흐음, 여긴가?”
록히드 마틴 본사 앞 풀밭에 당도한 현수는 출입구로 다가갔다.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는 중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예상대로 보안이 탄탄하다. 허락되지 않은 자는 들어갈 수 없다. 신분증은 기본이고 지문 인식, 홍채 인식, 안면 인식까지 통과해야 한다.
“그건 현관으로 들어가는 사람 이야기고. 플라이!”
몸이 둥실 떠오른다. 훨훨 날아 옥상에 내려섰다.
“언락!”
철커덕!
왜에에에에엥!
“이런 빌어먹을! 옥상까지 보안장치를 설치했어?”
웬만하면 이쯤해서 물러난다. 옥상이 이럴진대 다른 곳은 어떠하겠는가!
하지만 현수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구동되는 CCTV가 옥상 출입구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찍히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라이트닝! 라이트닝! 라이트닝!”
복도를 따라 걸어가며 전격 마법으로 CCTV들을 무력화시켰다. 좌우로 문들이 있지만 열지는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엘리베이터가 열림과 동시에 좌우 문으로부터 무장 경비원들이 쏟아져 나온다.
“플라이!”
입술을 달싹이자 현수의 신형이 천장 가까이 올라갔다. 이때 누군가 소리친다.
“옥상이다! 아직 실내로는 못 들어왔어! 서둘러!”
“고! 고! 고! 고!”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경비원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현수는 열린 문으로 들어가 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중역 사무실이다.
“흐음, 사장실은 어디에 있지?”
두리번거리며 President라 쓰인 팻말을 찾았다.
대개의 경우 시야가 탁 트인 최상층에 CEO의 집무실이 있기 때문이다.
모퉁이를 도니 유리 출입구 위에 President라 쓰여 있다.
“흐음, 찾았군. 이 문엔 어떤 보안장치가 달려 있을까?”
문 옆에 지문 인식기가 있다.
“헐! 지문을 어떻게 만들지?”
10서클 대마법사라 할지라도 모르는 사람의 지문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후우∼!”
지문 인식기에 바람을 불어보니 흔적이 보인다.
“가만, 이런 땐 어떤 마법을 써야 하지?”
퍼펙트 카피 마법을 쓰려면 비슷한 재질의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마땅한 것이 없다.
“끄응! 어떻게 해야 하지? 아! 혹시… 언락!”
철컥―!
역시 마법이다. 문이 열린다. 하여 밀고 들어서려는데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웨에에에에엥―!
그와 더불어 천장으로부터 뭔가가 떨어져 내린다.
촤르르르르륵! 쿠와앙―!
“헐! 대단하군.”
위에서 떨어져 입구를 폐쇄한 것은 총알도 뚫을 수 없는 티타늄 강판이다.
“뭐 대단한 게 있다고……. 근데 이건 뭐로 뚫지?”
잠시 고심하는 사이 일단의 무리가 다가온다.
중무장한 경비원들이다. 아까 지나쳐 간 자들은 소총이 무기였는데 지금은 유탄발사기까지 달려 있다.
침입자를 피떡 내지는 가루로 만들 생각인 것이다. 이런 생각에 피식 실소를 머금는데 누군가 소리친다.
“발사! 모두 발사! 발사하라!”
쒜에엑! 슈아앙! 쒜에엑!
콰앙! 콰아앙! 콰아아앙!
타탕, 타타타탕! 타타타탕! 타타타타탕!
“헐! 이런 미친……!”
현수는 황당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텐데 유탄과 총알을 마구 갈겨댄 때문이다.
“배리어! 배리어! 앱솔루트 배리어!”
티팅! 티티티팅! 티티티팅!
총알이 튕겨 나가자 화망이 오히려 집중된다.
“저기다! 저기 뭐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외계인일지도 몰라! 모두 갈겨!”
누군가 소리쳤고, 엄청난 총알세례가 쏟아졌다.
타탕, 타타타탕! 타타타탕! 타타타타탕!
좁은 공간으로 총알이 빗발친다.
『전능의 팔찌』 30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