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29화 (728/1,307)

# 729

Als alle Knospen sprangen,

Da ist in meinem Herzen

Die Liebe aufgegangen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Im wunderschonen Monat Mai,

Als alle Vogel sprangen,

Da hab icn ihr gestanden

Mein Sehnen und Verlangen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들이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현수는 이 곡의 가사 내용을 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선택한 것이 독일어였기 때문이다.

이런 감미로운 가사를 컬러링으로 쓰는 걸 보니 요즘 깨가 쏟아지는 모양이다. 하긴 3월 1일이 결혼식이다.

“자식, 한참 좋은 모양이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주영은 한쪽 팔을 쓸 수 없는 고난의 세월을 살았다. 가진 것 없고 비빌 데 없는 인생이었다.

수학 교습소는 쇠퇴일로에 놓여 있었고, 그게 망하면 대책 없는 삶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지금은 아주 잘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이실리프 상사의 전무이사로 재직 중이지만 실제는 경영자와 다를 바 없다.

“결혼 선물로 승진시켜 줘야겠군.”

현재 이실리프 무역상사가 사용하고 있는 건물을 주는 건 어떨까 싶다.

“차라리 양평에 집을 지어줄까?”

지금은 괜찮지만 조금 더 지나면 경호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현수의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출퇴근이 문제인데…….”

양평 저택에서 역삼동까지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에이, 지가 알아서 고르라고 하지. 어쭈! 근데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연결음이 길어지자 나직이 투덜거렸다. 이때 기다렸다는 듯 주영의 음성이 들린다.

“여보세요. 현수냐?”

“그래, 인마! 대체 뭔 짓을 하고 있기에 전화도 안 받아?”

“나? 크흐흐! 좋은 거 하고 있었다.”

“어쭈! 대놓고 자랑질이지, 지금!”

“크흐흐! 지금 깨가 쏟아지는 중이다. 부럽지?”

“부럽긴. 야, 지금 바쁘지 않으면 만나서 술이나 한잔하자. 격조했잖아.”

“술? 좋지. 제수씨도 나오냐?”

“제수씨? 인마, 내가 너보다 생일이 석 달이나 빠르다. 앞으론 형수님이라고 불러. 알았어?”

“그거야 만나서 민증 까보면 알 일이고. 아무튼 지금 올 거야? 어디에서 만나?”

“너희 집 근처로 갈게. 기다려.”

“오케이! 이 근처에 꽤 괜찮은 집 하나 봐뒀다. 와라.”

“오냐. 곧 가마.”

통화를 마치곤 침실로 갔다. 지현은 여전히 자는 중이다.

“바디 리프레쉬!”

샤르르르르릉∼!

마나가 스며들자 웅크리고 있던 지현의 몸이 펴진다.

“어웨이크!”

“끄응! 하암! 어머! 자기…….”

“나 지금 주영이랑 이 실장님 만나서 한잔할 건데, 더 잘래, 아님 같이 갈래? 더 잔다고 하면 내가 재워줄게.”

자고 있던 지현을 깨워놨지만 다시 재우는 건 일도 아니다. 슬립 마법 한 방이면 내일 아침까지 깨지 않고 푹 잔다.

“주영 씨요? 은정 씨도 나와요?”

“응. 아주 깨가 쏟아지나 봐.”

“호호, 그럼 가야죠. 은정 씨 본 지도 꽤 됐어요. 잠시만요. 준비할 시간 주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지현이 후다닥 씻고 옷을 입는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묻는다.

“가서 술 마실 거면 차 안 가져갈 거죠? 그럼 택시 타고 가는 거예요?”

“아니.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텔레포트로 가지.”

“…갈 때는 좋은데 올 땐 택시 타고 와요. 그거 울렁거리잖아요. 도착하자마자 토하면 어떻게 해요?”

“그런가? 알았어. 그럼 그럴게. 준비 다 됐어?”

“네, 가요.”

말을 마치곤 냉큼 다가와 팔짱을 낀다.

“매스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현수와 지현의 신형이 사라진다.

둘이 나타난 곳은 이실리프 무역상사 건물 옥상이다.

“마법이 편하긴 하네요.”

“그치? 나중에 배워볼래?”

“정말요? 저도 할 수 있을까요?”

“그건 배워보면 알겠지.”

마나에 대한 감응도가 뛰어날수록 마법사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확인하는지는 모른다.

마법사들 틈에 있었다면 벌써 배웠겠지만 지금껏 그런 걸 익힐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하여 지현, 연희, 이리냐가 어떤지 아직 모른다.

“알았어요. 나중에 가르쳐 줘요. 저는 생활 마법 위주로 가르쳐 줘요. 설거지나 청소, 빨래 같은 거 마법으로 하면 엄청 편할 거예요.”

지현의 입에서 생활 마법이라는 말이 나왔다.

요즘 틈날 때마다 판타지 소설을 읽은 결과이다.

지구엔 마법사가 없다. 따라서 마법에 관한 전문 서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편이 마법사이다. 마법이란 걸 익혔다는데 대체 뭘 얼마나 아는지 궁금했다.

전에 이야기 듣기론 치유 마법이 메인이라 했다. 그러면서 소소한 마법 몇 가지를 아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그런 것 같지가 않다.

당장 텔레포트라는 마법만 봐도 그렇다. 판타지 소설을 읽어보면 하위 마법사는 시전조차 못하는 고위 마법이다.

일전에 이야기 듣기로 한국에서 콩고민주공화국까지 서너 번만 이 마법을 시전하면 당도할 수 있다고 했다.

음속 따윈 상대도 안 되는 엄청난 속력이다.

이런 걸 어찌 소소한 마법이라 할 수 있겠는가!

캐묻지는 않았지만 남편은 상당한 수준의 마법사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생활 마법 정도는 당연히 섭렵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설거지 마법과 청소 마법, 그리고 세탁 마법을 익혀볼 생각이다.

그런데 지현은 굳이 이런 걸 익히지 않아도 된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을 만큼 넘치는 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지현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가사도우미를 두지 않는 것은 부부 간의 살가운 시간을 조금 더 오래 갖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제 양평으로 이사 가면 그러지 못할 것이다.

집이 너무 커서 하루 종일 청소만 해도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리사 세 명, 청소 도우미 세 명, 세탁 및 다림질 도우미 두 명, 원예사 여섯 명, 운전기사 세 명 등이 최소 인원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베이비시터부터 시작하여 과목별 홈스쿨링 교사까지 필요하다.

현수는 그렇게 될 것을 꿰고 있다. 그렇기에 고용인을 위한 고급 숙소까지 짓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현이 설거지 마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설거지? 그래, 그러지. 자, 이제 내려가 볼까?”

“네.”

이실리프 무역상사 아래로 내려와 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이서 근처 생맥주집에서 한잔하는 중이라고 한다.

“짜식, 좀 기다리지.”

“우리도 어서 가요.”

당도한 곳은 상당히 깔끔히 인테리어를 한 호프집이다. 유리창이 빙 둘러 있어 실내가 보이는 룸이 여럿 있다.

입구에 당도하니 웨이터가 다가왔고, 주영의 이름을 대자 친절히 안내해 준다.

“여어, 어서 와라! 제수씨도 어서 오십시오.”

“네, 그간 안녕하셨지요? 은정 씨도 안녕!”

“어서 오세요, 사장님, 언니.”

“이 실장님, 앞으로 사장님이라 부르지 마세요.”

“네? 그게 무슨……?”

현수가 갑자기 정색하자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 주영이 끼어든다.

“짜식, 회장님이라 불러달라는 거냐?”

“아니. 너 민증 까 봐. 내가 분명히 너보다 석 달 형이다.”

현수의 시선이 다시 이은정 실장에게 돌아간다.

“앞으론 시아주버님이라 불러주세요.”

“네? 아, 네에. 호호, 호호호!”

잠시 긴장했다가 농담이라는 걸 알게 된 은정이 웃음을 터뜨린다. 이때 주영이 지갑을 꺼낸다.

“좋아, 말 나온 김에 누가 형인지 확실히 하자. 여기 증인이 둘씩이나 있으니까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좋아, 까 봐.”

둘은 주민등록증을 꺼내 비교해 보았다.

“봤지. 내가 석 달 형이다. 앞으론 까불지 마라. 알았냐?”

“으윽! 이럴 수가! 쳇! 나이 더 먹어서 좋겠다.”

주영이 뒷머리를 긁적인다.

“앞으론 형수님이라 불러. 알았지?”

“오냐. 꼬박꼬박 형수님이라 불러드린다.”

“핫핫! 기분 조오타.”

현수의 너스레에 지현과 은정이 환히 웃는다.

“자, 일단 마시자! 오늘은 형아가 쏜다!”

“오냐, 아주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셔주마. 은정 씨, 거기 벨 눌러.”

“네? 왜요?”

“술 더 시키게요. 안주도 제일 비싼 걸로 시킵시다.”

“네? 호호! 네.”

잠시 후 이 호프집에서 제일 비싼 안주와 술이 나왔다. 잔을 부딪치고는 시원하게 한 잔씩 비웠다.

“결혼식 준비는 잘 되어 가냐?”

“그래, 어머니와 할머니께서 애써주고 계신다.”

주영에겐 이제 일가친척이라 할 만한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 그렇기에 은정의 모친과 조모께서 준비해 주는 듯하다.

“엉아가 아우 결혼 선물로 뭘 줬으면 좋겠냐? 원하는 거 있어?”

현수의 말에 반응한 것은 은정이다.

“어머, 아니에요. 그동안 받은 것만 해도……. 정말 괜찮아요. 저희 결혼식에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은정 씨 말이 맞다. 네 덕에 우리 둘이 만났고 부족한 거 없이 살고 있다. 그러니 축복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머, 그래도 그건 아니지요. 할 도리라는 게 있는 거잖아요. 필요하신 게 뭔지 말씀하세요. 우리 이이 돈 많은 거 아시죠? 뭐든 말씀만 하시면 해줄 거예요.”

지현의 말에 주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부자이다.

2013년 10월 현재,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대략 213조 4,600억 원 정도 된다. 지나와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 가져온 것만으로도 이런 회사 수십 개는 살 수 있다.

따라서 현수 앞에서 돈 자랑하는 건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짓이며, 포크레인 앞에서 모종삽으로 흙 뜨는 격이다.

1억 정도는 남들 1,000원 쓰는 것처럼 쓸 수 있기에 무엇을 원하든 기꺼이 결혼 선물로 해줄 수 있다.

이 기회에 단단히 한몫 보려고 비싼 자동차 같은 것을 사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주영과 은정은 염치를 아는 사람들이다.

현수가 있어 인생이 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기에 얼른 고개를 젓는다.

“아니에요. 그냥 축복해 주시는 걸로 만족해요.”

“그래, 마음만 있으면 된다.”

“알았다, 알았어. 그럼 결혼 선물은 내가 알아서 하지. 이쑤시개 같은 거 사주면 되지?”

“오냐, 고맙다.”

“자, 그런 의미에서 한잔하자.”

“그래, 다 같이 건배!”

넷은 화기애애한 술자리를 즐겼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참, 지하에 있는 룸살롱 말이야.”

“락희? 락희는 왜?”

“그거 임대 기간 언제까지냐?”

“거의 끝날 때 다 됐지. 며칠 전에 와서 계약 연장 얘길 하더라. 임대료 조금 올려 받을 생각인데, 왜?”

“그러지 말고 걔들 내보내라. 우리 빌딩에서 룸살롱 같은 거 해서 조폭들이 돈 버는 거 싫다.”

현수의 말에 은정과 지현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많은 여인의 애환이 녹아 있을 장소라는 것이 짐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무자인 주영은 다르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내보내고 주차장으로 개조해?”

음성에 약간의 까칠함이 묻어난다. 강남은 요즘 불경기로 인해 빌딩 공실률이 상당히 높다.

이실리프 빌딩의 경우는 계속해서 이실리프 계열 회사들이 생겨 사무실이 부족할 정도이기에 기존 입주자들의 임대 기간이 만료되면 내보내고 있다.

현재는 이실리프 상사 이외에 이실리프 엔진이 입주해 있다. 이실리프 어패럴과 이실리프 무역상사도 자리가 비면 들어오겠다고 한다. 이실리프 뱅크도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지하는 다르다.

락희가 나가고 나면 그런 업종 이외엔 입주하려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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