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34화 (733/1,307)

# 734

5장 혼내줘도 되죠?

요즘 회사 사정이 엉망이다. 아파트 미분양 물량이 너무 많이 쌓여 자금 회전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천지건설에서 나눠 주는 일감을 받지 못하면 부도 위기까지는 아니지만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렇기에 만나달라는 청을 간접적으로 넣은 것이다.

“허 사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가 시간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일 이야기부터 하지요.”

“네, 그러시죠.”

웨이터가 차를 내오기도 전에 대화가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허 사장은 기대했던 대로 상당히 큰 공사를 맡게 되었다.

최근 들어 천지건설은 어음 사용을 중단했다. 그리고 건설사들의 고질인 질질 끌다 결재해 주기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결제는 현금이다. 그리고 공사대금은 바로 지불한다. 하청을 받기만 하면 돈 걱정 없이 공사할 수 있는 신뢰받는 기업이 된 것이다.

허 사장은 만면에 미소를 짓고 돌아갔다.

며칠 후, 현수의 책상엔 항공사 카드 한 장이 당도한다.

전에 탔던 항공사의 비행기를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프리패스 카드이다.

이걸 제시하면 동반 1인까지 무조건 최고급 좌석이 배정된다. 기내 서비스 역시 최상급이다.

비용은 없다. 일체가 무료이다.

허 사장과 헤어진 현수는 경호 차량에 동승하여 우미내로 돌아왔다. 오는 동안 경호요원들의 어려움을 파악했다.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식사와 추위, 그리고 잠자리가 불편할 것이다.

“자기,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그치? 김치 담그는 거 도와주려고 뛰었어. 내가 뭘 해주면 돼?”

들어가자마자 옷부터 벗으며 한 말이다.

“호호, 정말 도와줄 거예요?”

“뭐든 말만 해. 도와줄게.”

“그럼 욕실에서 배추 절인 거 물 좀 빼줘요.”

“오케이!”

이런저런 이야길 하며 김치를 담갔다. 경호원들에 관한 이야기도 당연히 했다.

추위는 곧 지급될 항온의류로 말끔히 해결될 것이다.

식사는 인근 식당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현이 조치하겠다고 한다.

문제는 잠자리이다.

경호 차량에서 교대로 자는데 몹시 불편할 것이다. 이것은 컨테이너로 해결할 생각이다.

온열 기능이 있는 간이침대와 전기난로를 넣어주면 될 것이다. 전기는 집에서 끌어다 쓰면 된다.

어머니께서 동네 인심을 잃지 않았기에 공터에 컨테이너 하나쯤 가져다 놓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가끔 간식이라도 해서 줘. 고생하잖아.”

“네,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어요. 샌드위치나 햄버거 이런 걸로 만들어서 줄게요.”

“그래!”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현이 고춧가루가 묻어 빨개진 고무장갑을 벗으며 환히 웃는다.

“그나저나 자기가 도와줘서 일찍 끝났네요.”

“그치? 자, 이제 치우고 자자.”

“피이! 또… 그러려고 그러죠? 그죠? 으이그, 짐승!”

현수는 피식 웃었다.

“그거야 지현 씨가 너무 예쁘고 섹시하니까 그렇잖아. 그러니까 얼른 치우고 얼른 자자. 알았지?”

“쳇! 누구 좋으라구요?”

지현이 짐짓 삐친 척하지만 내심은 아니다. 손놀림이 빨라진 것이 반증이다.

다 치우고 샤워를 마친 둘은 곧바로 침대로 갔다. 그리곤 2세 제조 작업에 착수했다.

워낙 중요한 일인지라 땀까지 흘린다.

결국 지현이 먼저 나가떨어진다. 당연한 귀결이다.

코오오∼! 코오오오∼!

“후후! 딥 슬립! 잘 자.”

샤르르르릉―!

지현이 가늘게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든다. 현수의 체력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지쳐 버린 때문이다.

“자, 오랜만에 가보자.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안개처럼 스러진다.

2014년 2월 18일 월요일 새벽에 일어난 일이다.

* * *

“허어, 녀석!”

현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이불로 곤히 잠든 이냐시오를 덮어주었다.

피곤했던지 코까지 골고 있다.

이곳 시각으로 어제 오후 이냐시오는 하켄 공작의 검법을 전수 받았다.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제거된 반쯤 새로운 검법이다.

조금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켰더니 힘들다고 했다. 그때마다 바디 리프레쉬 마법을 걸어주었다.

그리곤 거의 휴식 시간 없이 수련에 몰두하도록 강요했다. 이냐시오를 하루빨리 소드 마스터로 만들기 위함이다.

그래야 약속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냐시오의 성품은 너무도 여려서 어찌 보면 우유부단할 지경이다.

그렇기에 판테온 후작가의 장남 등으로부터 빵셔틀을 당한 것이다. 강하게 반발했으면 안 보이는 곳에서 몇 대 맞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흐음, 이 녀석을 어떻게 소드 마스터로 만들지? 흐으음.”

팔짱을 낀 채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침대 곁에 병기점에서 산 검이 놓여 있다.

“하려는 의지가 있으니 언젠가는 되겠지. 그나저나 아픈 데는 없겠지. 일단 확인해 보자. 마나 디텍션!”

샤르르릉―!

이냐시오의 체내로 스며든 마나가 현재의 상태를 속속들이 보고한다. 문제가 될 만한 곳은 없다.

마나가 적을 뿐이다.

“흐음, 적당한 심법을 찾아야겠군.”

아공간에서 여러 서책을 꺼냈다. 하켄 검법과 조화를 이룰 만한 것을 찾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되겠지? 후후후!”

잠에서 깨어나면 좋아할 것을 생각하곤 나직이 웃었다.

“내친김에…….”

아공간에서 미스릴 반지 하나를 꺼냈다. 그리곤 마법진들을 새겨 넣었다.

첫째는 바디 리프레쉬이다. 고된 수련을 겪더라도 금방 피로가 풀리라는 의도이다.

둘째는 임플로빙 이뮤너티이다. 면역력이 높아야 자질구레한 질병에 시달리지 않는다.

셋째는 정말 위급한 순간에 발현되는 앱솔루트 배리어 마법진이다.

어렵게 키워냈는데 맥없이 죽어버리면 안 되기에 처조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리해서 새겨 넣었다.

제법 상급 마나석을 요구하는 마법진인 것이다.

“흐음, 이 정도면 되겠지.”

반지를 이냐시오의 머리맡에 놓고는 방을 나섰다.

아무도 깨어나지 않았을 신새벽이기에 머릿속을 정리하면서 산책하려 나선 것이다.

“흐음, 엄 팀장으로부터 아직 보고를 못 받았군. 윌슨에게도 돈 보내주라고 해야 하네.”

이리냐에게 연락하여야 할 일이다. 혹시 잊을까 싶어 다이어리에 메모해 두었다.

“전투기 구상도 마저 해야 해. 그나저나 록히드 마틴에도 다시 가야 하는군.”

대체 무엇을 감춰두었기에 그토록 철저하게 보안을 하는지 알 수는 없다. 기술적인 것은 아닌 듯싶다.

사장이 첨단 기술의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꿰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가에탄 카구지 장관과 조셉 카빌라 대통령도 면담해야 하고, 우간다와 케냐도 가야 하는군.”

계속해서 메모를 하며 홀로 중얼거렸다. 이때 멀리서 다가오는 인영이 있다. 이곳 시각으로 어제 만난 토리나 백작이다. 현수를 보더니 걸음을 빨리해 다가선다.

“아! 이냐시오의 고모부시군요. 그쪽도 아침 일찍 산책하나 봅니다.”

“네? 아, 네에.”

굳이 부인할 의사가 없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상단에는 안 계시다 하셨는데 그럼 무슨 일을 하십니까? 귀족이신 거죠?”

아카데미 원장은 몹시 궁금한 눈빛이다.

백작가의 후손인 이냐시오가 고모부라 했으니 귀족이긴 할 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기억력이 좋아 한 번 본 사람은 잊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라이셔 제국의 거의 모든 귀족을 꿰고 있다.

심지어 열 살 미만 아이들도 웬만하면 다 안다. 언젠가는 아카데미의 학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수는 원장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밤새 누구일까 고심하느라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가 답답해서 나온 것이다.

“귀족 맞습니다. 그리고 이레나 상단에선 일하지 않지요.”

“아! 그럼 다른 상단에 계시는 모양이군요?”

“다른 상단이라면…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럼 대륙의 5대 상단 중 하나겠군요.”

“아닙니다. 미판테 왕국에 있는 하인스 상단이죠.”

“하인스 상단이요?”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상단 이름이기에 토리나 백작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생긴 지 1년도 안 되어 아직 모르실 겁니다.”

“아, 그래요? 그렇군요.”

자신의 기억에 없으니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참! 성함이 어찌 되십니까?”

“하인스입니다.”

“아! 하인스님이군요.”

방금 하인스 상단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토리나 백작은 현수가 상단주일 거라는 추측은 하지 못한다.

그러기엔 너무 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하인스라는 이름은 세실리아라는 이름과 더불어 대륙에서 제일 흔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십시오.”

“하인스님은 마법을 익히신 듯합니다.”

“…네, 익혔지요.”

“제가 보아하니 자질은 괜찮은 듯싶습니다. 더 정진하시길 권유 드립니다.”

“네? 아, 네에. 알겠습니다.”

슬쩍 살펴보니 토리나 백작은 5서클 마법사이다.

10서클 마스터에게 5서클 유저가 마법 공부 더 하라는 소리를 했다. 어찌 웃음이 나지 않겠는가!

하지만 억지로 참아냈다. 상대가 진심을 담아 충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천성이 남 가르쳐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 같다.

“아카데미의 본격적인 수업은 보름 정도 더 있어야 시작됩니다. 개강을 하면 이곳에 머무실 수 없으니 마법을 익힐 의향이 있다면 그전에 날 찾아오십시오.”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나저나 미판테 사람이십니까?”

토리나 백작의 눈이 빛나고 있다. 뭔가 알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다.

“그건 아닙니다. 일 때문에 그곳에 머물렀지요.”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요즘 그쪽은 어떻습니까?”

뭘 물어보는 건지 대상이 모호하다.

“네? 그게 무슨……?”

“아드리안 공국을 협공한 3개국 중 미판테 왕국이 끼어 있잖습니까. 그곳 케발로 영지라는 곳에서 헬 파이어 마법이 시전되었다는데 혹시 보셨습니까?”

상단 관계자들은 일 때문에라도 엄청나게 돌아다닌다. 그렇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것이다.

현수 입장에선 그 마법을 시전한 장본인이니 현장 목격자 중 하나인 셈이다.

“네, 보았습니다.”

“어, 어느 정도입니까? 정말 소문대로 어마어마한가요?”

몹시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뭐, 마법 시전 범위가 상당하긴 했죠. 반경 200m 정도가 작살났으니까요. 폭심지라 할 수 있는 곳은 땅거죽이 녹아 유리질이 될 정도로 초고온이었습니다.”

“그, 그리고요?”

“오크와 오거는 물론이고 트롤 등이 무수히 죽었습니다. 삼천 마리는 훨씬 넘은 것 같습니다.”

“네? 사, 삼천 마리나요?”

“8서클 헬 파이어였으니까요.”

“아! 그걸 가서 봤어야 하는데 안타깝네요.”

토리나 백작은 아카데미에 묶여 있는 몸이다.

하여 현장에 가서 확인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로만 전해 듣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가서 봐봤자 별거 없습니다. 시전 범위가 조금 넓고 초고열이었다는 것 이외엔 특별할 게 없으니까요.”

“그래도요. 지금은 가봤자 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겠지요?”

“아마도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아! 아쉽습니다. 내 평생의 소원이 헬 파이어 마법을 한번 보는 겁니다.”

“……!”

토리나 백작은 ‘여기다 한번 날려줄까?’ 하고 싶을 정도로 진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걸 보는 게 소원인 겁니까, 아니면 이실리프 마탑주를 보는 게 소원입니까?”

“당연히 둘 다죠. 매지션 로드이신 그분을 뵙는 건 우리 같은 마법사에게 있어 평생의 광영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가요?”

“네. 하인스님은 이제 겨우 1서클이라 아직은 마법사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마음을 모르는 겁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