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6
“뭐야……? 지금 감히 우리 판테온 후작가를 능멸하려는 거야? 그런 거야?”
“오! 판테온 후작가의 자식이었어? 근데 그러면 이렇게 건방지고 무례해도 되나?”
현수는 일부러 카엘로 하여금 화를 내게 도발했다.
“이자가 감히……!”
급 분노했는지 부들부들 떨던 카엘이 준비된 장갑을 꺼내 현수의 얼굴에 던졌다.
“네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결투라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카엘이야 아카데미 생도라면 누구나 아는 얼굴이지만 현수는 거의 모두 처음 본다.
막 생도 식당으로 들어선 토리나 백작만이 알 뿐이다.
“이런, 늦었구나.”
토리나 백작은 아카데미 부원장과 각 학부 주임교수와 식사를 하던 중 혹시 이런 일이 있을지 몰라 서둘러 왔다.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서이다.
그런데 벌써 일이 벌어진 듯하다. 칼부림을 한 건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카엘은 영특한 두뇌 덕에 마법학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이제 겨우 18세인데 벌써 1서클을 넘어 2서클로 접어들려 한다. 하지만 아직 전투에 마법을 쓸 수준은 아니다.
따라서 대(代) 전사를 내세울 것이다.
후작은 현재 수도에 머무르고 있다.
당연히 기사단장도 따라왔을 것이다. 기사단장이 있다는 건 휘하 기사들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냐시오의 가문인 에델만 백작가에도 기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영지전 때문에 모두들 로이어 영지에 있다.
따라서 하인스를 대신하여 결투에 나설 사람은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A급, 또는 특급 용병 정도가 되어야 후작가에서 내세운 기사와 대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설 용병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라이셔 제국에서 칼밥 먹는 용병이라면 실세 권력자 중 하나인 판테온 가문과 척지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레나 상단 호위무사 중 하나가 나서게 될 것이다.
많은 호위무사를 고용하고 있지만 특급이나 A급에 속한 자들은 영지전을 위해 로이어 영지에 머무는 중이다.
따라서 결투에서 패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호위무사는 목숨을 잃을 것이고, 하인스, 또는 에델만 백작가는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내게 될 것이다.
“지금 내게 결투 신청을 했나?”
“그러하다. 혹시 겁이 나서 도주하려는 건 아니겠지?”
카엘은 일부러 현수를 도발하고 있다. 어제의 치욕이 잊히지 않은 때문이다.
“도주라니, 그럴 일은 없다. 좋아, 너의 결투 신청을 받아들이마. 언제 어디에서 하지?”
“식사 후 생도식당 후원에서!”
“그러지. 그럼 이제 우리끼리 식사해도 되겠지?”
“…그, 그래, 먹어라.”
카엘은 왠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가 나서 펄펄 뛰거나 아니면 잔뜩 쫄아서 벌벌 떨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현수는 너무도 태연하다. 곁에 있는 이냐시오는 웃긴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뭔가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는 안 될 일이다.
“자, 잠깐! 결투 시간을 변경하자. 점심 먹고 대수련장에서 하는 걸로 바꾸자.”
“그래? 그럼 그러지. 자, 이제 버르장머리 없는 네 녀석은 내 눈 앞에서 사라져라.”
“뭐?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그래. 대체 집에서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기에 싸가지가 이렇게 없는 건지 궁금하다. 아무튼 지금 당장 대결할 것 아니면 가라. 밥 좀 먹게.”
“…조, 좋아, 두고 보자.”
“내 고향엔 ‘두고 보자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이 없다’는 말이 있다. 네 녀석은 덜 익은 놈이 분명하구나.”
“뭐, 뭐야? 이익! 이따 두고 보자.”
말을 마친 카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생도 식당을 빠져나갔다. 계획 변경이다.
애초의 계획은 대니얼의 기사 몇을 빌려 쓰려 했는데 이젠 아니다. 그렇기에 서둘러 아카데미를 벗어났다.
카엘이 향한 곳은 수도에 마련된 후작가의 저택이다.
일 년에 몇 번 황제 폐하와 더불어 국사를 논하러 수도로 올 때 사용하는 곳이다.
저택에 당도한 카엘은 어제의 치욕부터 시작하여 현수가 막말하였음을 과장하여 고하였다.
판테온 후작은 가문을 욕했다며 기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누가 대전사로 나갈 건지 의향을 물었다.
나선 것은 차기 기사단장으로 내정된 수석기사이다.
일련의 상황이 끝나갈 즈음 황궁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이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이냐시오를 데리고 개인 수련장으로 갔다.
생도들은 누구나 사전 신청 후 사용할 수 있는 곳이다.
아침에 토리나 백작과 걸으면서 신청해 두었다.
“이냐시오, 잘 보거라. 이 동작의 특징은…….”
하켄 공작의 검법 후반부까지 소상히 설명했다.
이냐시오는 눈빛을 빛내며 수련에 임했다. 시간이 흘러 점심나절이 되었지만 수련장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만! 결투 시간이 되었으니 가보자.”
“네, 고모부.”
이냐시오는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환히 웃는다. 결투 따윈 전혀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다.
아르센 대륙에 누가 있어 10서클 마스터이자 그랜드 마스터인 현수를 당해내겠는가! 결투를 청한 놈이 바보이다.
그리고 중간계의 조율자라는 드래곤도 꼬리를 말고 도망쳐야 할 무력의 정점에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수련하자는 말에 찍소리 않고 따라온 것이다.
“자, 그럼 가볼까?”
“네, 고모부.”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너를 괴롭히는 녀석은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하여 수련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물론이에요. 그리고 저는 소드 마스터가 될 때까지 고모부를 따라다닐 거예요. 그러니 절 떼어놓고 어디 가실 생각은 하지 마세요.”
이냐시오의 이 말은 진심이다. 존경해 마지않는 고모부와 한시도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다.
“아무튼 가자꾸나. 근데 대수련장이 어디지?”
“아카데미에서 가장 넓은 곳이에요. 1년에 한 번 기사학부와 마법학부 생도들이 최강자를 선출하는 곳이지요.”
“그래? 제법 넓겠구나.”
“그럼요. 관중석도 꽤 넓어요. 한 이만 명까지는 입장할 수 있대요.”
“그래? 꽤 넓구나. 어서 가자. 이러다 늦으면 겁쟁이 소리 듣겠다.”
“그럴 수는 없죠. 자, 제가 안내할 게요.”
현수가 이냐시오의 뒤를 따라 이동할 때 대수련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꽉 찬 상태가 되었다.
아침에 있었던 일이 황도 전체로 번져 간 때문이다.
재미있는 볼거리가 없는 세상이다. 지구에서도 이런 시절에 제일 좋은 볼거리는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었다.
당연히 구름처럼 운집했다. 한가한 귀족들은 물론이고 시간 있는 평민들도 다수가 모여들었다.
소문을 접한 이레나 상단에선 모든 업무를 중단시키고 종업원 전부를 대수련장으로 집결시켰다.
갑자기 수도 전체가 들썩이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와와와! 드디어 입장한다! 와와와와와!”
현수와 이냐시오가 대수련장에 발을 들여놓자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온다.
오늘의 메인 이벤트를 장식할 장본인이 입장한 것이다.
“저기 판테온 후작가의 황금철벽 기사단이 입장한다!”
“와와와와와와!”
관중성의 함성이 한결 커진다. 양자 모두 입장하였으니 곧 볼 만한 싸움이 시작되리라 생각한 때문이다.
“우와! 판테온 후작가의 대전사는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인 기사 헤이글님이다.”
“와와와! 헤이글! 헤이글! 헤이글!”
헤이글이란 기사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 왜 이러느냐는 표정을 짓자 이냐시오가 입을 뗀다.
“8년 전에 아카데미 기사학부 최종 우승자예요. 그때 황제 폐하께서 친히 검을 수여하셔서 유명해졌죠.”
“황제가 검을 줘?”
“네. 그때는 20대 초반이었는데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었어요. 나이에 비해 굉장한 거지요. 그래서 장차 라이셔 제국의 소드 마스터가 되라면서 검을 하사하셨지요.”
“그래? 그런데 왜 황궁에 머물지 않고 판테온 후작가의 기사가 되었지?”
“판테온 후작가가 아카데미 수업료를 다 대줬거든요. 그쪽 영지의 평민이었대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일 때에도 헤이글을 연호한다.
“와와와! 헤이글! 헤이글! 헤이글!”
관중들의 연호 소리가 점점 커졌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서 제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략 3분 정도 지날 무렵 누군가가 대수련장 중앙으로 걸어나온다.
이때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친다.
“와아아! 리먼 백작님이시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리먼 백작이 손을 들었다가 내린다. 잠시 조용히 해달라는 몸짓이다.
이윽고 조용해지자 리먼 백작이 입을 연다.
“오늘의 대결은 내가 주관하겠다. 양측 전사들은 나서라.”
“와와와! 헤이글! 헤이글! 헤이글!”
또 헤이글의 이름을 연호한다.
이때 풀 플레이트 아머를 걸친 기사가 보무도 당당하게 나선다. 잡털 하나 섞이지 않은 흑마를 타고 있다.
방패도 들고 있고 랜스도 들고 있다.
“하인스는 나서라! 하인스는 나서라!”
어떻게 알았는지 현수의 이름이 불린다. 이에 현수는 터덜터덜 걸어 수련장의 중심부로 나아갔다.
상대 기사는 말을 타고 있고 완전무장한 상태이다. 그런데 현수는 깔끔하기는 하지만 너무 심플한 복장에 빈손이다.
“하인스라 했나?”
현수가 중앙 근처에 당도하자 리만 백작이 묻는다.
“…그렇소.”
“그렇소?”
백작의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고위 귀족인 백작에게 반말을 썼기 때문이다.
“대결에 임할 자는 누구인가?”
현수는 아무런 아머도 걸치지 않은 상태이다. 손에는 레비프 영감이 만든 바스타드 소드 한 자루가 들려 있다.
이냐시오에게 주었는데 잠시 빌렸다.
“내가 나설 것이오.”
“달랑 검 한 자루만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오.”
계속된 반말이 신경을 건드린 듯하다.
“이놈이! 좋아, 일단 결투부터 하지.”
리만 백작의 시선이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헤이글에게 향한다.
“헤이글 경, 준비되었나?”
“네, 백작님! 그런데 저 상태로 결투에 임하는 겁니까?”
리만 백작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고 한다. 결투 태세를 갖춰라.”
“그렇다면 저도 아머를 벗겠습니다.”
기사도 정신에 위배된다 생각했는지 즉시 하마한다. 기다렸다는 듯 기사 시종이 다가와 아머를 벗긴다.
“와와아아! 헤이글! 헤이글! 와아아아!”
“기사 헤이글! 역시 멋지다! 멋지게 이겨라!”
“헤이글! 헤이글! 헤이글!”
상체 갑옷이 벗겨지자 근육질 상체가 드러난다.
나머지 해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기사 헤이글은 현수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대개의 경우 서로 기세를 뿜는다.
이때 상대의 화후를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현수로부터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주 맹탕 아니면 기세를 갈무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현수는 전혀 긴장하지 않은 기색이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긴장된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다.
“헤이글 경, 준비 다 되었는가?”
“네, 다 되었습니다.”
리만 백작이 손을 들어 관중을 진정시키곤 큰 소리로 외친다.
“이제 판테온 후작가의 장남 카엘 판테온 드 라이센을 대신한 기사 헤이글과 이레나 상단의 하인스 간의 결투를 시작하기로 한다! 어떠한 수를 써도 좋다! 다만 가급적이면 목숨을 빼앗지 않기를 바란다!”
대결에 임할 때면 주관자가 내뱉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은 별로 지켜지지 않는다.
결투를 한다 함은 감정이 극도로 상한 상태임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대개의 경우는 한쪽이 죽어야 끝났다.
“둘에게 가이아 여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 내가 물러나 깃발을 휘두르면 결투를 시작하도…….”
리먼 백작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빵빠라빵∼! 빵빵 빠라빵∼!
“들어라! 존엄하신 황제 폐하께서 행차하셨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춰라.”
마나를 실어 음성이 확대되었는지라 대수련장 모든 곳까지 전달되었다. 그렇기에 모두들 기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