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37화 (736/1,307)

# 737

결투보다 황제에 대한 예의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관중석의 일부가 비워진다. 황제와 그 일행이 앉아야 하기 때문이다.

말에 타고 있던 황제가 하마하여 관중석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자칫 불경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황제와 곧 황후가 될 샨크스 왕국에서 온 절세미녀, 그리고 세피아 폰 라이셔 공주가 착석하자 고위 귀족들이 인근으로 몰려든다. 인사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기사 헤이글은 황제가 있는 쪽을 향하여 기사의 예를 갖춘 채 고개 숙이고 있다.

그게 예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수는 뻣뻣하게 서 있을 뿐이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폐하, 오늘의 결투는…….”

판테온 후작이 무어라 입을 열기 전에 황제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후작, 다 알고 왔으니 번거롭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오. 자, 이제 결투를 시작하시오.”

“알겠습니다. 폐하.”

판테온 후작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곤 뒷걸음질로 물러선다. 그러면서 중앙에 서 있는 리만 백작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결투 개시를 선언하라는 뜻이다.

“자, 그럼 결투를 시작하라!”

휘리리리릭―!

리만 백작이 신호를 하자 병사가 들고 있던 붉은 깃발을 휘두른다. 대결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행동이다.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관중들의 함성이 점점 고조된다.

“헤이글이라 하네.”

“하인스라 하오.”

헤이글은 올해 서른이다. 고된 수련 때문에 30대 중반으로 보인다.

현수도 서른이다. 바디체인지 때문에 25세로 보인다.

겉보기엔 열 살이나 차이 난다. 그럼에도 헤이글은 발작하지 않았다. 기사란 검으로 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 검엔 눈이 없어 다칠지 모르니 조심하시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

헤이글은 아카데미를 나서기 전 어느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았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 중 최강자였다.

판테온 후작의 자랑인 황금철벽 기사단 단장과의 첫 만남 이후로도 그렇다.

갓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온 헤이글의 실력을 검증하겠다고 나섰던 부단장을 쓰러뜨리는 데 불과 5분 걸렸다.

단장 역시 7분 만에 검을 놓쳤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불과한 실력이었지만 독특한 검법을 구사한 때문이다.

아카데미 생도 시절 헤이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밖으로 나가 용병들과 검을 섞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실전 검법을 만들어냈다.

현재는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으로 조만간 소드 마스터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재목이다.

그런데 상대는 아무리 봐도 25세 정도이다. 풍기는 기세도 이렇다 할 것이 없어 허당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지나치게 여유롭다. 왠지 경계심이 돋아 쉽게 공격하지 못하고 노려만 보는 중이다.

“자아∼! 조심하라 일렀으니 이제 슬슬 시작해 보는 건 어떻겠소?”

헤이글이 검을 곧추세워 기사로서의 예를 갖춘다.

황제와 수도의 귀족들이 집결해 있는 자리이다. 기사로서 표본을 보이고 싶어 이런 것이다.

이는 현수가 검을 뽑아 제대로 된 자세를 잡으면 그때부터 공격하겠다는 의도이기도 하다.

스르르르릉―!

허리춤으로부터 레비프 영감이 만든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냈다. 그리곤 천천히 검을 들었다.

헤이글은 현수가 검을 내려 자세를 잡으면 곧바로 공격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면 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여 막 태세를 갖추려던 순간이다.

찌이잉―! 찌이이이이이이이잉―!

“허걱!”

털썩―!

곧추세운 현수의 검끝으로부터 하얗다 못해 시퍼런 검강이 쭉 뻗어 나온다.

라이셔 제국 소드 마스터들의 검강은 평균 길이가 1m를 약간 상회한다. 그리고 흰색 검강은 없다.

오래된 고서를 보면 검강에도 등급이 있다.

그중 최강이 순백이다. 이게 진해지면 시퍼렇게 보인다.

검강의 색이 균일하면서 길고 굵을수록 강력하며 이 세상 무엇도 파괴할 수 있다.

헤이글은 현수의 검끝으로부터 거침없이 뿜어지는 검강을 보는 순간 너무도 놀라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관중석도 마찬가지이다.

“헉! 검강이닷! 아앗! 길이를 봐라! 엄청나다!”

“으앗! 저, 저건 검, 검, 검강이다! 검강이야!”

“허걱! 검강이야! 세상에, 맙소사! 판테온 후작가는 대체 누굴 건드린 거야?”

“아아아! 세상에 저런 검강이 있다니! 말도 안 돼!”

“저 정도면 그냥 소드 마스터가 아니라 그랜드 마스터야, 그랜드 마스터라고! 세상에 내가, 내가, 내 눈으로 그랜드 마스터님을 뵙다니.”

“끄응!”

털썩―!

“어머! 여보, 정신 차려요! 여보! 여보, 제발……!”

관중석 전체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온다. 남녀노소 구분도 없다. 다만 딱 두 곳만은 예외이다.

황제와 그 일행이 있는 곳, 그리고 이레나 상단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판테온 후작가가 건드린 사람이 현수라는 것을 알기에 구경시켜 주려고 하던 일마저 멈추고 몽땅 몰려온 것이다.

그렇다 하여 마냥 무반응인 것은 아니다.

모두들 턱뼈가 빠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두 번째 목격하는 황제가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잠시 시끄럽던 관중석이 고요해진다. 이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데 옆 사람의 심박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경악이 극치에 이르러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세, 세, 세상에! 대, 대, 대체 누, 누, 누구십니까?”

헤이글은 더 이상 커질 수 없도록 눈을 부릅뜬 채 간신히 말을 이었다. 넋이 반쯤 나가 버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뿜어냈던 검강을 고요히 갈무리했다.

스르르르릉―!

철컥―!

대수련장 한가운데에서 검집에 검을 넣는 소리가 관중석까지 들린다. 너무도 고요한 때문이다.

“나는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마탑주인 하인스 멀린 킴 드 셰울이라 하네.”

“네? 네에?”

덜커덕―!

“커억―!”

급기야 헤이글의 턱이 빠져버렸다. 그런데 혼자만 그런 게 아니다. 관중석 곳곳에서 나직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들도 턱이 빠져버린 것이다.

잠시의 고요가 관중석을 지배할 때 황제가 있는 자리에서 커다란 고동 소리가 들린다.

뿌앙―! 뿌아앙―!

갑작스런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황제에게 쏠린다.

이때 자리에서 일어선 황제의 입이 열렸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위대한 존재를 만나게 되었다. 대수련장 중앙에 계시는 저분은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마탑주이자 매지션 로드이시다.”

“……!”

매지션 로드라는 말에 모두의 뇌가 또 한 번 강타당했다.

세상 모든 마법사의 정점에 있는 존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황제의 말이 이어진다.

“아울러 아르센 대륙 유일의 그랜드 마스터이기도 하다. 모든 기사와 모든 마법사는 위대한 존재에게 예를 표하라!”

쿵! 쿠쿵! 쿠쿠쿠쿠쿠쿠쿠쿠쿵―!

황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의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춘다.

기사들은 영원한 우상이 될 그랜드 마스터에게 충심으로 바치는 예의이고, 마법사들은 하늘같은 매지션 로드에게 올리는 기꺼운 존경심의 발로이다.

쿵―!

“소, 소인 헤이글, 감히 그랜드 마스터님께 불경을 범했습니다. 죽여주십시오.”

쿵―!

먼저의 쿵 소리는 무릎 꿇는 소리이고 나중의 쿵 소리는 이마로 단단한 땅을 찧는 소리이다.

이곳 시간으로 어제 현수는 이레나 상단 사람을 시켜 황궁에 전갈을 넣은 바 있다. 오늘 아카데미에서 뭔 일이 있을 터인데 미리 알고 있으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황제가 친림했다. 그리곤 너무도 거창하게 소개를 해주었다.

뭐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니 차라리 이렇게 공개되는 편이 낫다 싶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때 현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여인이 있다. 세피아 폰 라이셔 황녀이다.

자신과 잠시 드잡이를 한 현수가 그랜드 마스터에 이실리프 마탑주이며 매지션 로드라는 말에 넋이 나간 상태이다.

제국의 황제조차 예의를 갖춰야 할 존재에게 너무 함부로 대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순간 콧대 높은 이 아가씨의 마음이 움직였다. 속된 말로 하면 뿅 간 것이다.

지금껏 찾지 못했던 자신의 배필을 만났다 생각하고 있다.

불행히도 현수의 눈이 너무 높아 이 꿈은 이루지지 못할 것이다. 어쨌거나 황녀는 넋 나간 표정으로 현수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이때 황제의 말이 이어진다.

7장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마침 모든 귀족이 모여 있는 듯하니 오늘 이곳에서 중대한 발표를 하겠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황제에게 향한다. 아직 미혼인 세피아 황녀와 현수의 결혼 발표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랜드 마스터이자 매지션 로드가 라이셔 제국 황가에 머문다면 안전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카이엔 제국과의 지긋지긋한 전쟁도 끝나 오래도록 평화스런 세월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된다.

이때 황제의 말이 이어진다. 궁정마법사가 음성 증폭 마법을 건 상태이기에 황제의 육성은 관람석 끝까지 전달된다.

“에에,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얼마 전 하켄 영지와 로이어 영지 간의 영지전이 있었다.”

황제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한때 수도를 달군 이슈였기 때문이다.

현재는 카이엔 제국과 전쟁 중이다.

그런데 최전방에서 있어야 할 군부의 수장인 하켄 공작이 에델만 백작가를 상대로 영지전을 선포했다.

겉으론 모욕당한 둘째 아들의 명예를 되찾아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풍부한 자금력을 갖게 된 이레나 상단을 통째로 집어삼키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무튼 두 영지 모두 수도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아직 몇몇만이 결과를 알고 있을 뿐이다.

황제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나 궁금하다는 귀족과 백성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영지전의 결과 하켄 영지가 패했다. 그 과정에서 로이어 영지에 비해 세 배 이상 강한 전력을 가진 하켄 공작이 국법을 어긴 것으로 확인되었다.”

“……!”

사람들은 대체 무슨 소린가 싶은지 황제에게 시선을 집중시킨다.

“오로지 국경 수비에만 동원할 수 있는 중갑보병들을 무단으로 차출하여 로이어 영주성을 공격토록 한 것이다.”

‘말도 안 돼! 세 배나 강한 전력에 소드 마스터도 둘씩이나 있었으면서……!’

거의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할 때 황제의 말이 이어진다.

“아무튼 영지전의 승자는 로이어 영지이다. 하여 관례에 따른 처벌 및 승작을 발표하겠다.”

‘백작이 공작을 이겼으니 후작쯤 되겠구나. 공작은 백작에게 패했으니 후작으로 내려앉고.’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 때 황제의 발표가 이어진다.

“영지전에서 승리한 퍼거슨 에델만 드 로이어는 공작으로 승작한다. 에드몬드 빈셀 드 하켄과 그의 차남인 베르나르 빈셀 드 하켄은 목숨을 잃었다. 하여 그의 상속자인 날리오 빈셀 드 하켄에겐 백작으로 작위를 내린다.”

“우와!”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파격적인 조치이기 때문이다. 하여 서로 간의 의견을 이야기하려 할 때 황실근위대장의 음성이 터져 나온다.

“모두 조용하시오! 폐하의 발표는 아직 끝나지 않았소!”

“……!”

모두 입을 다물자 황제는 장내를 둘러보며 말을 잇는다.

“하켄 백작가는 영지의 3분지 2를 배상금 명목으로 로이어 영지에 할양할 것을 명한다. 아울러 백작가에 허용된 병력만 보유할 것도 명한다. 초과되는 인원은 전원 국경수비대로 배속된다.”

“하켄 공작가, 아니, 하켄 백작가는 이제 망했군.”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소리이다. 이럴 때 강한 병력 순으로 차출된다는 것을 알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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