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0
따라서 5억 장을 완성시키는 데 1년이 넘을 수도 있다.
마탑도 마탑이지만 현수도 곤란하다.
지르코프가 주문한 8,000만 장은 한시바삐 넘겨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되었네. 지금까지 작업한 것만 가져오게.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하지.”
“로드……!”
“후작이나 마탑에 실망해서 그런 거 아니니 마음 안 써도 되네. 그나저나 전에 말했던 그 사기 마나석을 한번 보세.”
“네? 아, 네. 모, 모시겠습니다.”
후작의 뒤를 따라 마탑 후원으로 가보니 작은 동산 정도 되는 돌무더기가 보인다. 현수의 눈엔 모두 수정으로 보인다.
“이게 전부 다 그건가?”
“네, 사기 마나석이라고도 하지만 공갈 마나석, 또는 유사 마사석이라 하는 거지요.”
“흐음, 양이 꽤 되는군.”
눈대중으로 집작해 보아도 다 옮기려면 25톤 덤프트럭으로 수백 번은 날라야 할 정도로 많다.
“저걸 내가 다 가져가도 되겠는가?”
“아이고, 그럼요! 필요하시면 얼마든지 가져가셔도 됩니다. 저희에겐 쓸모없는 것이니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혈운의 마탑에선 이걸로 장신구를 만들기도 한다. 손재주 좋은 마법사들의 심심풀이 용도이다.
제법 잘 만들기에 적지 않은 돈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매지션 로드께서 원하신다.
이깟 공갈 마나석이야 다 줘도 아깝지 않다. 그렇기에 아무런 쓸모도 없다고 한 것이다.
“고맙네. 잘 쓰도록 하지. 아공간 오픈! 입고!”
작은 동산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한 아렌드 후작은 눈을 크게 뜬다. 본인은 아직 시전조차 해보지 못한 마법이기 때문이다.
“이실리프 자치령이 건설되는 중이네. 조만간 같이 가세.”
“그, 그래주시겠습니까, 로드?”
아렌드 후작이 부르르 떤다. 격동해서이다.
이실리프 자치령으로 오라는 소리는 그곳에 얼마간 머물러도 된다는 뜻이다.
방문이 아닌 초청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고대하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여 벌써부터 가슴 벅차 몸이 저절로 떨리고 있는 것이다.
“일단 작업이 끝난 것들을 다 모아주게. 안 끝난 것도 가져오고.”
“로드……!”
후작이 다시 말을 잇지 못한다.
“작업 효율이 너무 없어서 그러네. 나는 시급히 필요한 것이거든. 아무래도 새로운 마법 하나를 창안해야 할 듯하네.”
“네? 마, 마법을 새로 창안하신다고요?”
후작의 눈이 커진다.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낸다는 말에 화들짝 놀란 것이다.
마법사들은 마법서에 기록되어 있는 마법 이외엔 알지 못한다. 새로운 걸 만들어낸다는 건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그런데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길 하니 반쯤 넋이 나간 것이다.
“마법으로 하면 될 것을 괜한 고생을 시켰네.”
“아, 아닙니다, 로드!”
후작의 허리는 더 깊숙이 숙여진다.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일어서이다.
겉보기에 현수는 겨우 25세이다.
후작에 비하면 한참 어린 나이이다. 하지만 본인보다 어리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겉모습만 이럴 뿐 실제 나이는 최하 300살이라 여기고 있다. 그렇지 않고 인간이 어찌 10서클의 경지에 오르겠는가!
후작은 경외9)하는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같은 시각, 이냐시오는 꽃밭에서 놀고 있다. 내로라하는 집안 여식들이 둘러싼 때문이다.
이냐시오는 에델만 공작의 손자이자 백작의 아들이다. 제대로 성장만 하면 언젠가는 공작이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랜드 마스터이자 매지션 로드이며, 이 세상 모든 마탑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이실리프 마탑주의 조카이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를 갖게 된다.
이냐시오의 배우자가 되는 것은 이런 권세를 같이 누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냐시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말만 해. 뭐든 다 먹을 수 있게 해줄게.”
닐센 도널드 반 프레쉐 공작의 손녀 자밀라가 한 말이다.
“이냐시오, 내일 나랑 같이 연못가로 피크닉 가지 않을래? 모든 준비는 내가 할게. 너는 몸만 와.”
하프만 돌첸 폰 쿠마렌 공작의 손녀 에밀리이다.
둘 다 공작가의 손녀인지라 매우 도도하다. 하여 아카데미의 어느 누구도 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둘은 오로지 학업에만 관심 있다는 듯 각자의 학부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상당한 성취를 이루었기에 도도함은 더해갔다.
하여 같은 아카데미 생도이지만 다가가기 힘든 존재였다.
둘은 서로를 마뜩치 않게 여긴다. 그렇기에 같은 아카데미에 있으면서도 가까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오늘은 경쟁하듯 이냐시오의 좌우에 착 달라붙어 환심을 사려 한다.
공작의 손녀가 곧 공작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될 텐데 공작위를 물려받을 사람에게 시집가는 게 아니라면 신분이 내려앉는 셈이다.
그런데 이냐시오라는 싱싱한 먹잇감이 생겼다. 잡기만 하면 평생 호의호식하면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하여 이렇듯 아양까지 떠는 것이다.
두 공녀의 주변엔 후작가나 백작가의 여식, 또는 손녀들이 우글거리며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인원이 너무 많아서 자작이나 남작가는 아예 명함조차 못 내밀 상황이다.
이냐시오는 갑작스런 여자들 공세에 정신 못 차리고 있다.
16세부터 23세까지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의 아름다운 여자들이 저마다 향기를 뿜으며 유혹한다.
혈기 왕성한 사내 앞에 일부러 드러낸 가슴골이 널려 있는데 어찌 맨 정신일 수 있겠는가!
이냐시오는 뭇 사내들이 부러워할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볼 건 다 보고 있다.
장차 에델만 공작가에 지분 냄새가 진동하게 될 듯하다.
노스럽이라 불리던 사내가 있다.
현수가 아르센 대륙에 와서 처음으로 방문했던 도시 올테른의 영주 에릭 마이스진 백작의 하나뿐인 아들 피어슨 마이스진의 별명이다.
수도에 있는 아카데미 재학 시절 초절정 정력가로 수많은 여인을 섭렵했던 자이다. 세실리아 여관에서 까불다가 현수에게 호되게 당한 자이기도 하다.
이냐시오 역시 그에 버금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손만 뻗으면 어떤 여인이든지 기꺼이 품에 안기겠다고 안달을 하고 있다. 웬만한 자제력으론 견뎌내기 힘들 것이다.
같은 시각, 케이엔 제국의 수도에 위치한 이레나 상단 지부에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에, 그러니까 이 물품은 아르센 대륙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겁니다. 오로지 우리 이레나 상단에서만 취급하는 품목이라 그렇습니다.”
일루신 에델만 드 로이어는 눈앞의 거만하게 생긴 귀족이 빨리 결정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커피잔 세트를 사러 여러 번 방문했는데 오늘은 두 시간째 비싸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값이 안 맞으면 안 사면 그만이다. 그런데 가질 않는다.
“너무 비싸서 그렇다. 깎아주면 매입하겠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멀리 브론테 왕국에서 왔다는 이 사내는 커피잔을 사기 위해 갈비온 산맥을 넘어왔다고 한다.
그게 최단 거리 코스이기 때문이란다.
갈비온 산맥은 바세른 산맥에 버금갈 험산 준령이 즐비한 곳이다. 당연히 몬스터도 많다.
그런 곳을 거쳐 왔으니 깎아달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이레나 상단은 현수로부터 받은 커피잔 세트를 정가 판매하고 있다.
카이로시아가 있는 미판테 왕국이나 이곳 카이엔 제국, 그리고 본점이 있는 라이셔 제국 모두 동일한 가격이다.
그렇기에 깎아달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도 막무가내이다.
진짜 귀족인가 의심이 갈 지경이다.
차라리 안 팔고 말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부친의 엄격한 당부가 있었기에 그러지도 못한다.
이레나 상단의 모토10)는 친절이다.
상단이 돈을 버는 것은 고객이 있기 때문이니 상대가 어떠하든 끝까지 웃음 띤 얼굴로 인내심을 가지고 거래에 임하라는 것이다.
하여 지금까지 그래 왔듯 인내심을 갖고 응대하는 중이다. 입이 말라 수시로 집사를 불러 차를 내오게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상단에선 정찰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힘들게 오신 건 알지만 할인 판매는 못해 드립니다.”
정중히 고개 숙여 예를 표했다. 이쯤 되면 가라는 뜻이다.
“허어! 조금만 깎아주면 산다니까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나? 물건 팔기 싫은가?”
“그건 아닙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씀드렸듯 할인은 못해 드립니다. 그러니 정가대로 매입하실 의사가 없으시면 이만…….”
뒷말은 알아서 상상하라고 일부러 흐린다.
“허어! 참! 좋아, 알겠네. 오늘은 이만 가지.”
내일도 올 생각인 듯하다. 이 얼굴을 또 볼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벌써 사흘째 하루에 두 시간씩은 빼앗기고 있다.
“끄응!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그래도 고객이라 여기고 정중히 예를 갖췄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사내들이 있다.
일루신의 뒤쪽엔 세 명이 있다. 경호원 개념으로 고용한 A급 용병들이다.
이레나 상단이 특이한 물건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자 이를 시기한 다른 상단으로부터 해코지가 있을 것이 예상되어 고용한 자들이다.
브론테 왕국의 백작이라는 자의 뒤에도 사내 하나가 있다. 눈매가 날카롭게 생긴 호리호리한 자이다.
“휴우! 내일 또 온다고? 차라리 자리를 비울까? 백작이라면서 비싸다고 깎아달라는 사람은 처음이네. 브론테 왕국이 그렇게 어려운가?”
브론테 왕국은 테리안 왕국과 접경한 국가이다. 흑마법사들이 득세한 나라로 현수에게 작살난 바 있다.
악의 무리에 의해 점령된 땅이지만 결코 가난하진 않다. 옆 나라 침략으로 조금씩 영토를 넓히는 가운데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마법 무구를 수출한다.
다크매직 미사일 마법이 인챈트된 검이 제일 많다.
대결 중 갑자기 음산한 기운을 띤 다크매직 미사일이 쏘아져 나오면 감당하기 힘들기에 많이 팔려 나갔다.
이레나 상단은 현재 대륙 거의 모든 나라에 지부가 있다. 하지만 브론테 왕국에는 없다.
흑마법사들을 상대로 거래하기 싫어서이다.
어쨌거나 귀족치곤 희한한 핑계를 대고 물러갔다.
“으음! 또 일이 밀려 있겠지?”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한시도 일루신으로부터 다섯 발자국 이상 떨어지지 않는 A급 용병 가운데 하나의 말이다. 고용 기간이 길어지면서 상단의 속사정을 알게 되었다. 하여 이런 대답을 하는 것이다.
“집사! 집사!”
“네, 지부장님!”
“밀린 일 많은가?”
“네, 서류 결재해 주실 게 40건쯤 되고, 면담하실 분 여섯 분이 기다리십니다.”
“알겠네. 저녁 식사는 집무실에서 할 것이니 때 되면 들여보내 주게. 서류는 내 책상 위에 놓고, 면담할 사람은 차례대로 들여보내게.”
“네, 지부장님!”
잠시 후, 일루신은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 대부분의 일과를 마친 일루신은 침대에 올랐다. 피곤해진 몸을 쉬게 하려는 것이다.
이불을 덮고는 한마디 했다.
“거기 있지?”
“네, 오늘은 제가 불침번입니다.”
야간 경호를 맡은 용병의 대답이다.
“아! 자네군. 오늘도 잘 부탁하네.”
“네에. 걱정 마시고 편히 쉬시길…….”
잠시 후, 일루신의 숨소리가 고르게 변한다. 잠에 빠져든 것이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더 흘렀다.
야간 경호를 맡은 용병이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슬쩍 자세를 바꿨다. 그 순간이다.
쉬이익―! 퍼억!
“크흑!”
단검 한 자루가 용병의 목에 박혔다.
“끄르르! 크르르르!”
털썩―!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섬전 같은 암습이었다.
A급 용병이 되기까지 수많은 몬스터를 상대했고, 상당수의 산적들을 죽였으며, 여러 번 전쟁터를 경험했다.
나름대로 실력이 있다고 자타가 공인했는데 너무도 어이없는 죽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