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44화 (743/1,307)

# 744

“겨울의 밤은 길지. 크흐흐, 천국 구경을 몇 번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장담하지. 죽어서 갈 천국보다 훨씬 나을 거야.”

어쌔신은 말을 하며 하의를 벗었다. 팬티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인지라 바지만 벗으면 곧장 알몸이다.

“으아아악! 저, 저리 가! 저, 저리 가란 말이야!”

흉물을 덜렁거리며 다가서자 카이로시아는 필사적으로 도주하며 손에 집히는 모든 것을 집어 던졌다.

“크흐흐흐!”

어쌔신은 던지는 물체를 피하며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삐꺽―! 후다닥!

어쌔신은 단숨에 제압할 마음이 없는 듯하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 천천히 다가서며 공포심만 가중시킬 뿐이다. 하여 침실을 벗어나 집무실까지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저, 저리 가! 오지 마! 오지 말란 말이야!”

휙―! 와장창! 휙―! 우당탕!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휙―! 와장창! 휙―! 우당탕!

계속 손에 집히는 진열품들을 던졌지만 거리가 벌어지진 않았다. 어쌔신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설 뿐이다.

덜컥! 덜컥―!

집무실의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무엇인가 장치를 했는지 열리지 않는다.

왜 침실을 벗어나도록 내버려 두었는지 짐작이 간다.

“흐흑!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크흐흐! 좋아, 좋아! 크흐흐흐!”

어쌔신은 계속해서 음흉한 웃음을 짓는다. 카이로시아가 도주하는 모습이 섹시하게 느껴진 때문이다.

“이잇! 저리 가란 말이야!”

휘익―! 와당탕탕.

비싼 진열품이 내동댕이쳐졌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상자가 부서졌고, 내용물이 흩어졌다.

만드라고라였다. 하지만 둘 다 그것엔 관심이 없다.

“또 던져보지 그래? 오, 그래! 책상 위에 대거가 한 자루 있군. 그걸 집어. 그리고 던져봐.”

어쌔신은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여유 있는 표정을 짓는다.

“대거? 아, 대거……!”

서둘러 책상으로 다가갔지만 어쌔신은 막지 않았다.

이제 책상 위의 물건만 다 던지면 본격적인 겁탈을 시작하려 마음먹은 때문이다.

“그래, 대거!”

후다닥 달려가 대거를 집어 든 카이로시아는 서둘러 검집을 벗겼다.

“그래, 던지라구! 크하하하!”

여자가 던지는 대거 따위엔 절대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기에 어쌔신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린다.

이때 카이로시아는 두 손으로 대거를 잡고 외쳤다.

“체인 라이트닝!”

번쩍―! 번쩍―! 번쩍―!

콰직! 파지지지직!

“헉! 캐액!”

챙그랑―! 콰직―! 우당탕탕! 털썩―!

“……!”

“휴우∼!”

먼저 대거로부터 눈부신 빛이 뿜어졌다.

곧이어 어쌔신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플람베르그가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다음 순간, 어쌔신은 통나무 쓰러지듯 자빠졌다.

그런데 하필이면 책상 모서리에 뒤통수가 찍혔다. 이때 책상이 기울면서 위에 있던 것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쌔신이 쓰러진 위로 잉크며 갖가지 물건들이 쏟아진다. 그리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카이로시아가 긴 한숨을 쉴 때 어쌔신의 뒤통수로부터 선혈이 배어나왔다.

카이로시아가 들고 있는 대거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대비하여 마법을 인챈트시킨 것이다.

똑같은 것을 로잘린도 가지고 있다.

샤프니스와 스트렝스, 그리고 하루에 세 번까지 체인 라이트닝 마법이 구현된다.

최소 일곱 명의 목숨을 앗을 체인 라이트닝이 한 몸에 부어지는 동안 어쌔신의 혼백은 육신을 떠났다.

이미 죽은 것이다.

그런데 뒤로 자빠지면서 책상 모서리에 뒤통수를 찍혀 두개골이 깨졌다. 이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었을 것이니 확인 사살된 셈이다.

카이로시아는 죽어 자빠진 어쌔신에게 다가가 발로 건드려 보았다. 혹시라도 깨어나면 안 되기에 여차하면 대거로 심장을 찌르려는 자세를 취했다.

움직임이 없다. 하여 엄청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여러 번 심호흡을 했다.

“흐으음, 휴우우! 흐으음, 휴우우! 흐으음, 휴우우!”

3분쯤 지나자 심장박동 수가 서서히 줄어든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곤 상단 내 숙소들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두 죽음처럼 깊은 잠에 취해 있을 뿐이다.

카이로시아는 대거를 손에 쥔 채 꼬박 밤을 새웠다. 그러는 동안 현수의 영상을 여러 번 떠올렸다.

대거를 주지 않았다면 오늘 정절을 잃고 목숨까지 잃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거 덕분이야. 아, 하인스님, 어서 오세요. 보고 싶어요.”

대거를 쓰다듬으면서도 주변을 살폈다. 혹시 또 다른 어쌔신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 * *

“자, 출발 준비 다 되었나?”

“네.”

힘없이 대답한 녀석은 카엘이다. 판테온 후작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어서 그런지 풀이 죽어 있다.

카엘의 뒤에는 대니얼을 비롯한 일곱 악당이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떨고 있다. 이제 가려는 곳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심히 우려되기 때문일 것이다.

현수의 바로 곁에는 성녀와 토리나 백작, 그리고 이냐시오가 있다. 아울러 론슨과 피터 등 80여 명도 있다.

론슨과 피터는 각각 헨리와 세실리아의 아비이다.

이들 일행은 수년 전 수도에 있던 공방에서 사라진 보석 세공 장인과 그 가족이다.

현수가 마을을 방문했을 땐 60여 명이었는데 그새 인원이 늘어 80여 명이나 되었다. 늘어난 20명 모두 공방에서 이들로부터 기술을 전수 받던 제자쯤 되는 인물들이다.

영지 개발을 위해 솜씨 좋은 사람이 많이 필요한 현수이다. 그렇기에 이주를 제안했다.

전에는 현수의 도움을 얻어 고블린과 트롤은 쫓아냈지만 얼마 후 오거가 한 번 더 들이닥쳤다.

다행히 지하에 마련해 놓은 토굴 속에 사흘이나 숨어 있어서 모두들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사람 냄새를 맡고 왔던 오거는 먹이가 없자 분노하여 오두막을 거의 다 때려 부쉈다.

하여 어찌 사나 걱정하는 시기에 현수가 방문했다.

보자마자 몹시 반가워하면서 혹시 오거를 퇴치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기에 빙그레 웃어주었다. 그리곤 신분을 밝혔다.

모두들 화들짝 놀라 자빠지려 했다.

너무나 어마어마한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성녀가 동행했기에 현수의 신분을 밝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현수는 이실리프 자치령엔 몬스터가 없으며, 세공인이 많이 필요하니 같이 가자고 권했다. 론슨 일행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면서 데리고 가달라고 청했다.

그래서 이렇게 마법진 안에 서 있는 것이다.

헨리와 세실리아는 천방지축이던 모습이 사라졌다.

어른들 말씀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변했다고 한다. 호된 처벌을 받아 그럴 것이다. 오냐오냐하면서 귀여워하기만 하면 안 된다는 반증이다.

“좋아, 모두 마법진 안에 들어서라. 신체의 일부가 진 밖으로 나가면 텔레포트 할 때 몸에서 분리되니 주의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현수의 말에 대답한 사람은 성녀와 토리나 백작뿐이다. 나머진 겁먹은 표정으로 몸을 움츠렸을 뿐이다.

“좋아, 이제 간다. 매스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마나가 주변을 감싸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모든 것이 스르르 사라진다.

“대단하군!”

감탄사를 뱉은 이는 황제이다.

현수는 어제 신전 근처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했다.

여러 개의 마나석이 소요되었지만 전량 혈운의 마탑에서 제공했다. 이걸 이용하면 이실리프 자치령까지 오갈 수 있다.

이레나 상단 창고엔 별도의 마법진이 만들어져 있다.

로이어 영주성 ↔ 라이셔 제국 수도 코린 ↔ 미판테 왕국 테세린 ↔ 카이엔 제국 수도 ↔ 이실리프 자치령을 원하는 대로 오갈 수 있는 마법진이다.

카이로시아가 자주 친정을 오갈 수 있도록 배려하려는 의도이다. 또한 이레나 상단의 상행을 돕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 마법진은 마나 결계진이 중첩되어 있어 텔레포트를 해도 마나유동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되어 있다.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 열 명이다. 화물의 경우는 짐마차 다섯 대 분량까지 보낼 수 있다.

물론 방금 전처럼 현수가 직접 텔레포트 마법을 시전할 경우에는 300명도 가능하다.

황제와 세피아 황녀, 그리고 샨크스 왕궁에서 온 절세미녀는 현수 일행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려 일부러 왔다.

뿐만이 아니라 수도의 많은 귀족이 텔레포트라는 희대의 마법을 구경하러 와 있다. 물론 혈운의 마탑주 홀리오 아렌드 판 유세 후작과 마법사들도 와 있다.

모두 현수 일행이 연기처럼 사라진 현장을 보면서 눈만 껌벅이고 있다. 눈으로 봤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들 가운데 마법사들은 다른 이들과 달리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뭔가 다른 것을 본 때문이다.

“세상에! 이실리프 마탑은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다르군.”

아렌드 후작이 나직이 중얼거리자 곁에 있는 부탑주 등도 고개를 끄덕인다.

“네, 확실히 다르군요. 이건 정말… 과연 이실리프 학파답습니다. 대단해요, 정말!”

마법이란 마나를 특정 규칙에 따라 배열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때 모든 마나가 마법 구현에 소모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마법에도 마나 효율이라는 것이 있다.

혈운의 마탑을 창건한 혈운의 마법사는 혈운학파를 만든 장본인이다. 이 학파의 마나 효율은 40%쯤 된다. 나머지 60%는 마법 구현에 쓰이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방금 전 현수가 시전한 매스 텔레포트 같은 대단위 마법은 효율이 훨씬 떨어져 25%가 고작일 뿐이다.

75%는 그냥 소모되는 것이다.

소모된 마나가 흩어지는 것을 마나 유동이라 한다.

마법사들은 마나에 민감하기에 이걸 보고 마법이 구현되었음을 아는 것이다.

방금 전 현수가 시전한 매스 텔레포트 역시 마나 유동 현상이 빚어졌다. 그런데 그 양이 지극히 미미하다.

효율로 따지만 90% 이상이다. 다시 말해 불과 10% 정도만 마법에 쓰이지 못한 것이다.

멀린은 이마저도 불만이었지만 아렌드 후작과 다른 마법사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렇기에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같은 시각, 현수 일행은 이실리프 자치령에 마련된 텔레포트 마법진 위에 나타나고 있다.

샤르르르르르릉―!

갑작스런 마나 유동과 동시에 일단의 무리가 나타나자 근처에 있던 드워프들이 일제히 시선을 보낸다.

“아! 마탑주님, 어서 오십시오.”

드워프 중 누군가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숙여진다.

“모두들 수고가 많습니다.”

현수가 한 바퀴 돌며 손을 흔들어주자 모두의 입에 미소가 걸린다.

“어서 오시게.”

“네, 바쁘죠?”

빌모아 일족의 족장 나이즐 빌모아과 그의 아우인 유스페 빌모아와 케린도 빌모아가 근처에 있다 바쁘게 다가온다.

“당연히 바빠야 하지 않겠나? 마탑주 말대로 엄청 바쁘다네. 그런데 뒤쪽의 이들은 누구지?”

1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두리번거리고 있기에 물은 말이다.

“이쪽은 보석 세공에 솜씨가 괜찮은 장인들입니다.”

론슨과 피터 일행은 작달막한 드워프들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중이다.

라이셔 제국엔 단 하나도 없는 드워프들이 누가 뿌려놓은 것처럼 많았기 때문이다.

론슨과 피터는 알아주는 보석세공사이다.

제국의 수도 코린에선 장인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드워프에 비하면 한참 부족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우연히 보게 된 드워프제 목걸이를 본 뒤이다.

자신들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기에 언제고 드워프를 만나게 되길 고대했다.

한 수 배울 수만 있다면 더없는 영광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많다.

많아도 아주 많다.

“로, 론슨, 저, 저기 저분들, 전부 드, 드워프 맞지?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거 아니지?”

“그, 그러게. 오! 맙소사! 이토록 많은 드워프라니! 피터, 나 한번 꼬집어줘. 이거 꿈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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