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5
둘을 비롯한 나머지 장인들이 감탄하고 있을 때 현수와 나이즐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아, 장인 좋지. 장인! 그렇지 않아도 우리 일손만으론 부족한 일이 많았는데 잘되었군.”
나이즐은 시켜먹을 일이 많다는 듯 환히 웃는다. 이때 현수가 좋은 기분에 초를 친다.
“그런데 어쩌죠? 이분들에겐 제가 긴급하게 부탁할 일이 있는데요.”
“긴급하게 부탁해? 우리가 아니고?”
“네, 금괴 제련이 더 필요해서요. 양이 제법 많습니다. 그러니 일족 중 제련에 솜씨 좋은 분으로 하여금 작업 과정을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끄응! 그렇지 않아도 일손이 부족한데……. 그래도 좋네. 자네 부탁이니 기꺼이 그렇게 하지. 대신 일손이 조금 더 많아야겠네. 할 일은 태산이고 사람은 너무 적은 상황이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현수가 대답하던 그 순간 누군가 소리친다.
“적이다! 적이 쳐들어왔다!”
“……?”
이곳은 바세른 산맥 아래 자락으로 100% 테리안 왕국의 영토였다. 따라서 공격하려는 자는 테리안 왕국군 이외엔 있을 수 없다. 다른 나라의 병사들이 자국 영토를 침범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흐음!”
본인이 이실리프 마탑주라는 걸 알면서 공격할 정도로 테리안은 멍청하지 않다. 오히려 우호관계를 갖게 된 것을 지극히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반색했다.
하여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리가 난 쪽으로 이동했다.
멀지 않은 곳에 병사들이 기치창검13)을 들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멈추시오!”
외곽 경비를 맡은 누군가가 소리치자 다가오던 이들의 선두에 있던 자가 손을 들어 일행을 멈춘다.
“누군지 신분을 밝히고 왜 왔는지 용무를 알려주시오!”
상대가 기사 복장인지라 정중한 물음이다.
“나는 테리안 왕국의 자하드 에리안 드 폰셔트 자작이다! 국왕 폐하의 명령을 받아 하인스 마탑주님께 노예들을 인계하러 왔으니 서둘러 전갈하라!”
“네?”
“마탑주님의 노예 오천을 인솔해 왔다. 인계해야 하니 마탑주님께 말씀을 전하라.”
“아, 알겠습니다. 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현수는 누군가 헐레벌떡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하켄 공작군에 속해 있던 자이다.
“헉헉! 헉헉! 아……!”
다가오던 자 역시 현수를 발견하곤 황급히 다가선다.
11장 영지를 찾는 손님들
“보고 드립니다. 테리안 왕국의 자하드 에리안 드 폰셔크 자작이 노예 오천을 인솔해 왔다고 합니다.”
“들게 하게.”
“네, 명령 받들어 모십니다.”
병사가 다시 뛰어갈 때 나이즐이 묻는다.
“노예 오천이라니? 새로운 일손인가?”
“네. 제가 전에 그랬잖아요. 곧 일손이 늘어날 거라고요.”
“흐흐흐! 나야 좋지. 오천이라……. 전부 사내들인가?”
“네. 사지 멀쩡하고 힘 좋은 젊은 사내로만 오천입니다.”
“흐흐흐! 좋구만, 좋아!”
나이즐은 대놓고 시시덕거렸다.
부려먹을 일손이 많아짐은 세기의 예술품이 될 이실리프 자치령의 모든 건물이 일찍 완공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본인과 일족의 손으로 일구는 중이지만 하루라도 빨리 완성된 모습을 보고 싶었다.
현수가 태블릿PC로 보여준 것보다 더 웅장하고, 더 화려하며, 더 정교하고, 더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들 꿈에 부풀어 있는 것이다.
나이즐이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지구의 건축 공법에 대해 어느 정도 개안을 한 때문이다. 참고하라며 준 태블릿PC엔 여러 건축물의 도면도 다수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위대하신 마탑주님을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테리안 왕국의 자하드 에리안 드 폰셔트 자작이옵니다.”
“먼 길 오느라 애썼네.”
“마탑주님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자작의 말은 사실이다. 오천이나 되는 노예, 이들은 과거 브론테 왕국의 기사와 병사들이었던 자들이다.
이들을 호송하는 임무를 맡은 자작은 일만에 이르는 병사를 동원했다. 하나라도 도주하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일만 오천에 이르는 대규모 행렬이 되었다.
오는 내내 잠자리와 식량 등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다.
몬스터들과도 여러 번 조우했지만 워낙 인원이 많아 그건 문제도 아니라 여길 정도였다.
“고생 많았네. 고맙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마탑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동자세로 보고하는 자작을 본 현수는 빙그레 웃었다.
“자자, 일단 노예 인수부터 하지.”
“네, 지금 즉시 시작하겠습니다.”
노예 인수는 나이즐 빌모아가 맡았다. 직접적으로 일을 지시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수가 곁에 있었다.
성녀, 이냐시오, 토리나 백작도 함께 있었다.
“백작 드리튼, 이실리프 마탑주님께 보고드립니다. 저를 포함한 총원 5,489명 무사히 당도하였습니다.”
오는 동안 패잔병들이 더 수습된 모양이다.
기사의 예를 갖춘 브론테 왕국의 드리튼 백작의 보고를 받은 현수는 도열해 있는 전직 기사 및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상당히 많은 숫자이다. 이들은 브론테 왕국군 복장이라 테리안 왕국군과는 확연히 구분되었다.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너희는 이곳에서 노예로서 지내게 될 것이다. 너희 모두는 여기 있는 나이즐 빌모아 족장님의 지시를 받는다. 성실히 임해주길 바란다. 이상!”
“전체, 차렷! 마탑주님께 대하여 군례!”
“충―!”
오천여 명이 내뱉는 소리는 땅을 진동시킬 정도로 컸다.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볼 정도이다.
“드리튼 백작!”
“네, 마탑주님!”
“약속대로 브론테로부터 온 노예들에 대한 지휘권을 자네에게 준다. 잘 통솔하여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라.”
“마탑주님의 금언,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충―!”
브론테 왕국의 귀족인 드리튼 백작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엔 이유가 있다.
브론테 왕국은 본시 다른 국가와 다를 바 없는 나라였다. 상공업이 발달하여 살기 괜찮은 나라이기도 했다.
그러다 흑마법사들에 의해 권력이 장악되었다.
카이로시아는 이때 미판테 지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와 동시에 이레나 상단 브론테 지부는 전격 철수되었다.
흑마법사들과의 거래는 대륙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드리튼 백작은 국왕의 명에 따라 테리안 왕국과의 전쟁에 나섰다. 하지만 마땅치 않았다. 흑마법사들의 야욕을 이뤄주기 위해 애꿎은 병사들이 죽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을 좀비와 구울로 바꿔 다시 투입하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직접적인 전투엔 가담하지 않고 뒤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러다 현수에게 생포되어 끌려온 것이다.
그때 현수와 대화한 바 있다. 현수는 백작의 성품을 파악해 본 결과 선량하다고 판단 내렸다. 흑마법사들의 농간에 의해 전장까지 오기는 했지만 타국의 영토를 무단 침범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병사들 대부분 드리튼 백작의 영지병이다.
테리안 왕국과의 전쟁에 동원되었기에 노예라는 이름으로 끌려가겠지만 일정 기간 성실히 일해주면 신분을 회복시켜 준다고 했다.
그리고 가족들이 온다면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다. 물론 흑마법사와 관련된 자들은 예외이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신분을 인정하여 노예들에 대한 지휘권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드리튼 백작으로선 손해 볼 일이 아니다.
게다가 흑마법사들의 농간을 더 이상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하여 테리안 왕국군에 의해 이곳까지 압송되기 전에 전령으로 하여금 자국으로 가서 소식을 전하게 했다.
첫째는 이실리프 마탑으로 끌려감을 알리는 것이다.
흑마법사들은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절대 악이라는 것이 현수의 판단이다.
일부러 도발하여 한꺼번에 제거하려는 목적이다.
둘째는 압송되는 기사와 병사들의 가족으로 하여금 은밀히 탈출하여 이곳으로 오라는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다.
남자들만 우글거리면 문제가 발생되기 때문이고, 가족 간의 생이별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실리프 영지엔 영지민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드리튼, 이분은 빌모아 일족의 족장 나이즐 빌모아네. 앞으로 이분의 지시를 받아 작업에 임하게.”
“명대로 하겠습니다.”
드리튼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이즐이 한 발짝 나선다.
“먼저 노예 중 손재주가 좋은 자들을 따로 추려주게.”
“알겠습니다.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절도 있는 자세로 대답한 드리튼이 병사들에게로 향한다.
“저들에게 거처부터 마련해 주십시오.”
날씨가 점점 더 매서워진다. 따라서 노숙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한 말이다.
나이즐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에구, 없는 집을 어떻게 당장 마련하겠는가? 컨테이너라는 거 있으면 더 내놓으시게. 그거 아주 좋더군.”
“…그러죠.”
잠시 후, 컨테이너 210개를 숲 사이에 내놓았다.
각각의 컨테이너에는 공간 확장 마법진이 인챈트되어 30명씩 기거하는 임시 숙소가 된다.
이것들 모두 항온 마법진이 부착되어 아무리 거센 추위가 닥쳐도 결코 춥지 않도록 했다.
5,489명이니 182개만 있어도 되는데 숫자가 많은 까닭은 드리튼과 같은 귀족 출신들을 대우하기 위함이다.
백작의 휘하엔 자작 두 명과 남작 네 명이 있다.
드리튼에게 하나, 자작 두 명에게 하나, 그리고 남작 네 명에게 하나의 컨테이너가 배정된다.
그래도 25개가 남는다.
이 중 15개는 단체 식당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식사하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열 개의 컨테이너엔 갖가지 식재료가 담긴다.
그 속으로 백두마트에서 털어온 온갖 식품이 쏟아져 들어갔다. 그중 가장 많은 건 라면이다.
라면이 많은 이유는 조리가 간단한 때문만은 아니다.
적당한 영양분이 있으며, 뜨거운 국물로 추위 속에서 일하는 속을 달래라는 뜻이다.
갖가지 그릇과 휴대용 가스레인지도 있는 대로 꺼내놓았다. 숟가락과 젓가락, 그리고 포크와 나이프도 내놓았다.
당연히 나이즐을 비롯한 드워프들이 관심을 보인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기물이니 그럴 것이다.
어쨌거나 이실리프 자치령은 왕국이 아니다.
따라서 공작이니 백작이니 하는 작위를 줄 수 없다. 하여 드리튼은 임시 총관으로, 휘하 자작과 남작은 임시 지배인으로 임명되어 병사들을 지휘하게 될 것이다.
먼저 와서 열심히 작업 중인 9,600여 하켄 공작의 병사들이 있다. 이들 중 가장 계급이 높았던 자는 현재 임시 총관으로 불린다. 그의 휘하에도 십여 명의 임시 지배인이 있다.
이제 나이즐 빌모아에겐 15,000명이란 일손이 있다. 드워프 하나당 열 명 정도 인원이 배치될 수 있다.
“이제 일손은 안 부족하겠지요?”
“어느 정도는…….”
나이즐 빌모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워한다.
“참, 농기구를 조금 더 가져왔습니다.”
“오! 그런가? 다행이네. 어서 내놓으시게.”
“아공간 오픈!”
현수는 아공간에 담겨 있던 각종 농기구를 꺼내놓았다. 가이아 신전 농장 및 리아 농장에 꺼내놓고 남은 것이다.
농기구들이 수북하게 쌓이고, 리어카와 일륜차도 상당히 많이 꺼내놓았다.
작업 강도는 낮춰주고 속도는 빠르게 해줄 것이다.
보도블록도 모두 꺼내놓았다. 그리곤 어떻게 시공하는지를 찬찬히 알려주었다. 길이 먼저라는 현수의 말에 나이즐 빌모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곁에서 이런 장면을 지켜보던 론슨과 피터 등은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온갖 기물에 대경실색한 것이다.
이들에게도 컨테이너가 배정되었다.
노예가 아닌지라 두 가구가 하나씩 쓰도록 했다. 가운데를 칸막이로 막아 쓰면 된다. 식량과 그릇 등도 배분되었다. 일찍이 백두마트를 털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