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6
모든 작업이 끝났을 때 이들은 케린도 빌모아의 지휘를 받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금괴 제련에 가장 솜씨 좋은 드워프가 바로 케린도 빌모아였던 것이다.
“꺼내놓을 금은 다 녹여서 다시 만들어줘야 합니다.”
“걱정 마시고 꺼내놓기나 하시게.”
케린도 빌모아는 자신만만한 어투다. 드워프 중에서도 가장 솜씨가 좋으니 이럴 만도 하다.
“참! 이번 것엔 불순물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충분히 주의하겠네. 걱정 마시게.”
“좋습니다. 그럼 꺼냅니다.”
말을 마친 현수가 아공간에서 금괴를 꺼내놓기 시작하자 모두들 입을 딱 벌린다.
많아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포트녹스 8,350톤, 연방준비은행 8,000톤, 그리고 지나 공상은행의 20개 지점 금괴보관소에 있던 2,300여 톤, 피터 로스차일드에게 팔려갔던 금괴 등을 다 꺼냈다.
다 꺼내놓고 나니 20,000톤 정도 된다.
현재의 가치로 9,000억 달러, 1,080조 원어치이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너무 많아서 황금빛 보도블록을 꺼내놓은 것 같다.
“허억! 이, 이게 다 황금이란 말인가?”
급기야 케린도 빌모아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온다.
“네, 황금 맞습니다. 작업은 최대할 빨리 해주십시오. 이게 다 끝나면 더 꺼내놓을 거니까요.”
“끄으응!”
금괴 제련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순도가 99.99%가 되도록 하려면 보통의 세심함으론 어림도 없다.
그렇기에 케린도 빌모아가 낮은 침음을 냈다.
한편 론슨과 피터 등은 멍한 시선으로 황금빛 번쩍이는 작은 동산을 바라보고 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황금은 처음 보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지시는 이어졌다.
금괴의 겉면엔 순도 표시와 더불어 이실리프 그룹의 로고를 넣도록 했다. 아울러 10자리 식별 번호도 넣도록 했다.
아라비아 숫자를 모르기에 가르쳐 줬다.
15,000톤은 10㎏짜리로, 나머지 5,000톤은 5㎏짜리로 제작하도록 했다. 이것들은 공식적으론 콩고민주공화국 이실리프 금광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질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최대한 빨리 작업해 주십시오.”
“아, 알겠네. 최선을 다하지. 그나저나 너무 많아서…….”
일 무서운 줄 모른다는 드워프가 걱정스런 표정이다. 금괴가 너무 많아서 언제 다 하나 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일련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드리튼 백작은 병사 중 솜씨 좋은 자들만 따로 추렸다. 이들은 나이즐에게 보내졌고, 나머지 인원은 컨테이너 배정 작업이 진행되었다.
한참 작업 지시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저어, 마탑주님!”
“…왜죠?”
“누가 찾아왔습니다.”
“찾아와요? 누가요?”
“테리안 왕국의 마법사님과 기사님들, 그리고 미판테 왕국의 기사님들과 마법사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알았네. 곧 가지.”
보고를 듣는 순간 까먹고 있던 존재가 생각났다.
카이엔 제국의 수도에 있을 전장의 학살자 토마스와 똥치기 대장 란돌프, 그리고 그 일행이다.
언제 데려가나 하며 여관에 묵고 있을 것이다.
‘여기 일 끝나면 바로 갔다 와야겠군. 그나저나 테리안 왕국과 미판테 왕국의 기사와 마법사들은 왜 온 거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영지 경계까지 다가갔다.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아직은 발을 들여놓지 못한 것이다.
“위대하신 이실리프 마탑주님께서 오십니다!”
누군가의 외침이다.
“추웅―!”
“추우웅―!”
쿠쿵, 쿠쿠쿠쿠쿠쿠쿠쿠쿵!
“위대하신 그랜드 마스터님을 알현하옵니다!”
“하늘 위의 존재 위대한 마탑주님을 뵙습니다!”
“그랜드 마스터님을 뵙게 되어 일생의 광영이옵니다!”
“흠모하는 매지션 로드시여, 저를 받아주십시오!”
모두들 한마디씩 하느라 잠시 시끄러웠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금방 정적이 찾아든다.
현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기사들은 한 무릎을 땅에 댄 채 오른 주먹을 왼 가슴에 댄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마법사들은 머리에 쓴 로브를 벗고 공손히 무릎을 꿇고 있다.
제법 인원이 많았기에 잠시 긴장된 순간이 흘렀다.
“어찌 된 영문으로 날 찾았는지 누가 말해주겠는가?”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추웅! 저는 테리안 왕국 스미스 백작이옵니다. 기사들을 대표하여 한 말씀 드리겠나이다.”
“충―! 미판테 왕국의 후작 로윈입니다. 저는 아국의 마법사들을 대표합니다.”
“충성! 미판테 왕국의 가가린 백작, 기사들을 대표합니다.”
“추웅―! 스멀던 후작이옵니다. 테리안 왕국의 마법사들을 대표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머지는 여전히 기사의 예를 표하고 있거나 마법사가 매지션 로드를 알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좋아, 테리안의 스멀던 후작부터 이야기해 보게.”
이 땅이 테리안 왕국으로부터 할양된 것인지라 먼저 지목한 것이다.
“감사하옵니다, 로드! 저와 테리안 왕국의 마법사들은 이실리프 마탑의 탑주이시자 매지션 로드이신 위대한 존재를 위하여 봉사하고자 이곳을 찾았사옵니다.”
“흐음! 그런가?”
“네! 부디 저희를 내치지 마시고 받아들이시어 이실리프 자치령이 한시바삐 완성되기를 바라 마지않나이다.”
후작이면 매우 높은 작위이다. 아마도 테리안 왕국 권력 서열 10위 내에 들 것이다.
그럼에도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겸손하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 로윈을 바라보았다.
“자네들의 뜻을 고맙게 받아들이지. 미판테 왕국의 로윈 후작과 마법사들은 어떤 뜻으로 이곳을 찾았는가?”
“저희들도 이실리프 자치령을 위해 뼈를 묻을 생각으로 왔사옵니다. 저희 또한 받아들여 주시오소서.”
현수는 이들의 진실된 의도를 꿰뚫었다.
그럼에도 표내지 않고 테리안 왕국의 기사를 대표한 스미스 백작에게 시선을 주었다.
“알겠다. 스미스 백작, 그대와 기사들의 뜻을 말하라.”
“감사하옵니다. 저희들 역시 이실리프 자치령의 일원이 되고자 찾아왔사옵니다. 다른 뜻은 없으니 저희 또한 받아들여 주시옵소서.”
스미스 백작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가가린 백작에게 물었다.
“가가린 백작, 그대들 또한 테리안 왕국의 기사들처럼 이실리프 자치령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왔는가?”
“물론입니다. 받아들여 주시기만 하면 견마지로를 다하여 이실리프 자치령의 발달에 기여하고 싶사옵니다. 추웅―!”
가가린 백작이 믿어달라는 뜻으로 다시 한 번 기사의 예를 취한다.
현수는 모두에게 시선을 주었다.
테리안 왕국에선 마법사 203명, 기사 167명이 왔다.
미판테 왕국은 마법사 224명, 기사 188명이다.
보아하니 각국 전력 중 최상위에 해당하는 자들인 듯싶다. 그렇다면 각국의 전력에 큰 공백이 생겼을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열정의 빛을 읽은 현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그대들의 가상한 뜻을 받아들여 전원을 받아들인다.”
말을 하며 일부러 마나 개방을 하였다. 내심 의도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우와아아아아! 이런 엄청난 마나라니!”
“헉! 세상에 맙소사! 마나가 엄청나!”
“만세, 만세, 만세! 매지션 로드 만세! 만세!”
“우와아! 그랜드 마스터님이시다!”
모두 아이들처럼 환호성을 지른다. 이때 현수가 오른손을 치켜들자 일제히 입을 다문다.
“너희는 이실리프 자치령의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이곳을 찾았다. 그 점 기특하여 기사에겐 검법을, 마법사에겐 마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만세, 만세, 만세!”
또 한 번 환호성이 터진다. 이들이 이곳까지 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현수의 말이 떨어지자 장내는 곧 고요해진다.
“보다시피 이실리프 자치령은 겨우 개발단계에 놓여 있다. 15,000명에 이르는 인원과 1,500명 가까이 되는 드워프들이 힘을 합쳐 이루고자 애를 쓰지만 아직 요원한 일이다.”
“……!”
“기사와 마법사들을 조련해 내기 위한 아카데미가 지어질 예정이다. 아울러 더 많은 지식을 주기 위한 도서관도 만들어질 것이다. 당연히 무척이나 큰 공사이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 아무런 여건도 갖춰져 있지 않다.”
현수가 잠시 말을 끊자 어서 말을 이으라는 듯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기사들은 영지 외곽의 순찰을 맡으라. 마법사들은 공사의 편의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
“당연하신 말씀이옵니다. 저희를 믿어주시옵소서.”
스미스 백작이 가장 먼저 입을 열어 대답하였다.
“고맙다. 이실리프 자치령의 기초가 어느 정도 닦인 순간부터 너희가 원하는 바가 시작될 것이다. 참여하겠는가?”
“물론입니다, 로드!”
“당연하신 말씀이옵니다. 마스터!”
“저희를 도구로 써주십시오.”
“온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
“죽을힘을 다하겠나이다.”
…….
또 잠시의 소란이 이어졌다. 결국 현수가 또 한 번 손을 들고서야 웅성거림이 멈춰졌다.
“시간이 되면 이곳과 미판테 왕국의 수도, 그리고 테리안 왕국의 수도를 잇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해 줄 것이다. 그러니 마음 편히 머물러도 될 것이다.”
국어 수업 시간에 ‘행간의 의미’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 말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음에도 느껴지는 것이 있음을 뜻한다.
현수가 방금 한 말은 언제든 미판테 왕국이나 테리안 왕국에 위기가 닥치면 곧바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마음 편히 이곳에 머물며 온 힘을 다해 도우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이들을 위한 임시 숙소 역시 항온 마법진과 공간 확장 마법이 인챈트된 컨테이너이다.
인원수에 따라 테리안 왕국엔 열세 개, 미판테 왕국엔 열네 개를 배정해 주었다. 각각의 왕국엔 네 개가 추가로 배정되었다.
두 개는 식품 창고이고 나머지 두 개는 식당이다.
이것들 역시 공간 확장 마법과 항온 마법진이 부착되었다. 식품 창고엔 당연히 보존 마법진이 추가되었다.
일련의 작업을 마칠 즈음 이냐시오가 다가왔다.
“고모부,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 또 손님이 왔다고? 이번엔 누구지?”
“숲의 일족 중 장로라 했습니다.”
“숲의 일족? 그럼 엘프란 말이냐?”
“네, 인간과 달리 귀가 뾰족했습니다.”
“알았다. 어디에 계시느냐?”
엘프의 수명은 대략 1,000년 정도 된다. 장로라 함은 최소 500년 이상 살았을 것이기에 높임말을 쓴 것이다.
“저 숲 속에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이냐시오는 겁도 없이 바세른 산맥 안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작업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웬만한 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먼 곳이다.
“이냐시오, 언제 여기까지 왔었단 말이야?”
“드워프들이 말하길 이실리프 자치령엔 몬스터가 없다 하여 경치 구경하려 왔었어요. 고모부는 많이 바쁘셨잖아요.”
“그래도 겁이 없구나. 매사에 조심해야지.”
“네, 앞으론 조심할게요. 근데 고모부, 엘프가 왜 왔을까요? 세상에 나타나지 않은 지 꽤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글쎄?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근데 아직 멀었니?”
“여기서 한 20분쯤 더 가면 되요.”
“……!”
길도 없는 울창한 숲 속에 대체 뭐 볼 게 있다고 뒤지고 다녔는지 의아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냐시오 나이 때는 호기심이 왕성하기 때문이다.
뒤를 따르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오늘 온 마법사만 427명이다.
6서클 1명, 5서클 3명이다. 4서클은 261명이고 3서클 162명이다. 이 정도면 제법 쓸 만한 전력이 된다. 각기 1서클씩만 올라간다면 웬만한 제국의 마법병단을 능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