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7
아까 마나 개방을 한 이유는 이들로부터 가슴에서 우러나는 절대 충성을 받기 위함이다.
매지션 로드이니 대륙의 모든 마법사가 명에 따른다. 안 그러면 마법사로서의 삶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것과는 질이 다른 충성을 받아야 한다. 이실리프 마법을 아무에게나 가르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실리프 마법은 고효율이다. 이를 좋은 의미로 쓰기만 하면 세상은 살 만해질 것이다.
오늘 이실리프 자치령에 당도한 마법사들은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리를 박찬 사람들이다.
개중엔 후작이나 백작위를 포기하고 온 이도 있다.
현수는 이들 모두 이실리프 마탑의 마법사로 만들어볼 생각이다. 이들은 권하지 않았음에도 제 발로 왔다. 기특해서라도 상을 줘야 한다.
첫째는 대규모 마나 집적진이다. 그 안에서 수련하면 전에 비해 한결 마나 모으기가 쉬워질 것이다.
둘째는 각 서클별 마법서 공개이다. 깨달음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힌트를 줄 생각이다.
물론 이건 조금 더 미래에 있을 일이다.
이실리프 마탑의 일원이 될 품성이 갖춰졌는지를 먼저 가늠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이들에겐 중요한 일이 맡겨진다.
첫째는 항온 마법진에 마나석을 박는 일이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할 일은 아니다. 워낙 수량이 많기 때문이다.
퍼펙트 카피 마법으로 항온 마법진을 복사할 수 있었다.
따라서 마나석이 박혀들게 하는 마법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좋은 머리로 만들려고 노력하면 결국엔 될 것이다.
둘째는 지구에서 사용될 각종 엔진에 마법진을 부착하는 작업이다. 아공간에 담아와 이곳에서 손을 본 뒤 다시 지구로 가져가면 될 일이다.
소문을 듣고 점점 더 많은 마법사가 몰려올 것이니 일손 걱정은 덜어도 될 듯하다.
“뭐 그래도 사람이 많으니 한번 해볼 만하겠어.”
12장 그걸 준 이유를 아시나요?
“네? 뭐라고요?”
“아니다. 나 혼자 중얼거린 거야. 그나저나 오늘 수련은 언제 할 거니? 하루라도 빼먹으면 안 된다.”
“네. 하루도 안 빼먹고 매일매일 할 거예요. 고모부 안내만 하고 곧바로 돌아가서 할게요.”
이냐시오는 현수를 존경함과 동시에 두려워한다.
수많은 기사와 마법사들이 어찌 대하는지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매일 수련하라는 말을 거역치 못하는 것이다.
“저기예요. 저 나무 아래에 있었어요. 저는 돌아가서 수련을 할게요.”
“그래, 조심해서 가거라.”
“네, 걱정 마세요.”
이냐시오는 날랜 사슴처럼 요리조리 달리며 숲을 빠져나간다. 얼마 되지 않았건만 수련의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이냐시오가 지목한 커다란 나무 근처에 당도하자 자연과 동화된 복장을 걸친 여인 하나가 얼굴을 내민다.
신장은 175㎝,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를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겉보기엔 40대이지만 실제 나이는 500살이 넘었을 것이기에 고개 숙여 예를 갖췄다.
현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엘프 여인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아!”
잠시 현수를 바라보던 여인 역시 고개 숙여 예를 표한다.
“숲의 일족 후렌지아입니다. 한데 님에게서 숲의 가호가 느껴집니다.”
후렌지아는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현수로부터 느껴지는 진한 숲의 향기 때문이다.
일생을 숲에서만 사는 엘프족 족장 정도의 향이다.
이 정도면 근처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수목의 생장을 촉진시킬 것이다.
“그리고 위그드라실의 향기 또한 느껴지는군요. 어찌 된 영문인지요? 드래곤도 아니시고 엘프의 피가 흐르는 것 같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후렌지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숲의 가호는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위그드라실의 향은 이것 때문일 겁니다.”
말을 하며 위그드라실의 잎을 꺼내 들었다.
숙소용 컨테이너들은 우물 근처에 있어야 한다. 하여 우물의 위치를 파악하려 아공간에서 꺼내놓았던 것이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물 펌프를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건… 잎이 시들지 않은 걸 보니 아직 완전한 인연을 맺지는 않으신 모양입니다. 어느 엘프가 그걸 드렸는지 물어도 되는지요?”
“이건 하일라 토들레아라는 엘프가 주었습니다. 미판테 왕국에 머물 때 우연히 만났지요. 그때 자그마한 친절을 베풀었는데 감사의 뜻으로 이걸 주더군요.”
“하일라가? 그렇다면 레이찰과 오마샤 또한 구해주신 일족의 은인이시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하일라의 고모인 후렌지아 토들레아가 일족을 대표하여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아! 레이찰 남매의 고모이셨군요. 하하, 만나서 반갑습니다.”
생판 남이 아니라 그래도 아는 사람, 아니, 아는 엘프와 인척 관계라니 약간은 긴장했던 마음이 풀린다.
이곳에 오는 동안 엘프의 방문 목적을 가늠해 보았다.
그러던 중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엄청난 넓이의 숲을 없앴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여 그것에 대한 항의를 하러 온 것이면 어떻게 무마할 수 있을까를 고심했다.
그런데 좋은 매개가 있으니 다행이다.
“세상 구경을 해보겠다고 나갔던 아이들이 오랫동안 복귀하지 않아 애를 끓였는데 은인 덕분에 무사 귀환하여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그러시다니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그나저나 저를 찾으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분위기 좋을 때 본론을 끄집어내서 해결하는 게 가장 좋다 여겼기에 한 말이다.
“숲이 많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혹시나 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바세른 산맥에 자리 잡은 엘프들은 울창한 숲을 관리한다. 전대 드래곤 로드가 내린 명이다.
후임 로드는 이것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바세른의 숲은 여전히 토들레아 일족 관할 하에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몰려와 나무를 베고 공사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나무 태우는 냄새가 온 숲에 번졌다.
날씨가 추워 목재를 만들고 남은 것들을 태운 것이다.
처음 이러한 사실을 알았을 때는 와서 항의를 할 수 없었다. 드래곤의 향기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세뮤리안이 잠시 왔다 갔는데 그걸 느낀 것이다.
만일 드래곤이 주관하는 일이라면 토들레아 일족은 나설 수 없다. 드래곤 로드에게 허락 받고 하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서히 그 향이 옅어졌고, 어느 날부터는 아예 존재감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몬스터들을 몰아 멀고 먼 브론테 왕국까지 갔기 때문이다. 하여 어찌 된 상황인지를 먼발치에서 살펴보았다.
드래곤은 없고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원수 같은 드워프들이 떼를 지어 작업 중이다. 아울러 10,000명에 가까운 인간들이 작업에 동참해 있다.
거대한 건축물을 이곳저곳에 설립하는 중이다.
수많은 나무가 베어졌고, 절벽의 바위들을 가져다 다듬는 중이다. 목재와 석재로 사용하기 위함인 듯하다.
경계근무를 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 숫자가 제법 많다. 일족을 이끌고 공격할 것인가를 고심했는데 이는 뒤로 미뤄졌다. 맞붙을 경우 많은 희생이 발생할 것이고, 처음에 느껴졌던 드래곤의 존재감이 마음에 걸린 때문이다.
하여 정황만 살피던 중 무지막지한 마나 개방을 느끼게 되었다. 가히 드래곤과 맞먹을 양이다.
하여 깜짝 놀라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가까이 다가온 이냐시오를 발견하여 불러들였다.
호기심 많은 녀석은 웬 키 큰 여인이 숲에서 부르는데 겁도 없이 다가갔다. 엘프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후렌지아 토들레아는 자신의 귀를 보여주며 누가 이토록 어마어마한 마나를 뿜는지를 물었다.
고모부를 자랑스럽게 여기기에 현수라고 대답했고, 만나보고 싶으니 불러달라고 청을 했다.
그 결과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은인, 저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조카들을 구해준 사람이라니 어투 자체가 바뀌었다. 아까보다 훨씬 공대하는 느낌이다.
“말을 하자면 조금 길 듯합니다. 잠시만요. 아공간 오픈!”
아공간에서 꺼낸 것은 1인용 소파 두 개와 탁자이다.
“……!”
“앉으시죠.”
“아, 네. 어머, 굉장히 푹신하군요.”
“네, 조금 그렇지요. 이것 조금 드셔보세요.”
딱―!
사람끼리 대화할 때 뭔가를 같이 먹으면 훨씬 더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회식을 하는 것이다.
현수가 건넨 것은 식혜였다.
캔을 따서 먼저 한 모금을 마시고 손짓하니 그대로 따라 한다.
꿀꺽꿀꺽―!
“흐으음! 아주 부드럽고 달군요.”
“입에 맞으시니 다행입니다. 이제 대화를 해볼까요?”
“좋아요. 말해보세요.”
“일단 이 일대는 테리안 왕국으로부터 할양 받은 저의 영지입니다.”
“이곳에 인간의 영지를 조성한다고요? 조금 더 내려가면 멀쩡한 땅도 많은데 하필이면 왜 이 험한 산속에…….”
후렌지아 토들레아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현수가 중간을 차고 들어간 때문이다.
“멀지 않은 곳에 제 마탑이 있어 그렇습니다.”
“마탑이요? 그럼……?”
자신의 생각이 맞느냐는 표정이다.
“맞을 겁니다. 저는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탑주이자 매지션 로드입니다.”
“아! 이실리프…….”
오래전의 일이지만 토들레아 일족과 아드리안 멀린 반 나이젤은 교류가 있었다.
멀린은 신선한 야채가 필요했고, 엘프는 사정거리가 더 긴 활이 필요했다.
가끔은 경각에 달한 엘프를 치료해 주기도 했다.
컴플리트 힐이나 리커버리는 종(種)에 구애받지 않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하여 한동안은 일 년에 한 번쯤 만나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실리프 마탑이 바세른 산맥 어딘가에 있다는 걸 안다.
이실리프 마탑은 드래곤조차 한 수 접어줬던 곳인지라 엘프들도 조심스럽게 대했다.
주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지막지한 마나의 양과 제2대 마탑주라는 말에 어쩌면 자신과 대등한 나이일지로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약간 자세를 달리한다. 조금 더 공손해진 느낌이다.
“그럼 이곳은 이실리프 마탑의 직할령이 되는 건가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다른 영지처럼 인간이 무한정 늘어나진 않을 겁니다. 적정 규모가 되면 출입을 제한할 계획이니까요.”
“아! 그런가요? 그나저나 이렇듯 진한 숲의 향기는 무엇에서 연유한 것인지요?”
아까부터 궁금했던 내용이다.
“글쎄요? 무얼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나 저는 숲의 향이가 뭔지……. 아! 일전에 어떤 존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인지 모르겠네요.”
“어떤 존재요?”
“네, 아리아니라는 숲의 요정이라 했습니다.”
“네? 설마 아리아니님을 직접 만나셨단 말입니까?”
후렌지아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네, 어떤 드래곤의 레어에서 잠시 만났지요.”
“예? 드, 드래곤의 레어요?”
“네, 잠시 만나 대화를 한 게 전부입니다.”
“그, 그런데 이렇듯 강한 축복을 내렸다고요? 세상에,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아아아!”
대체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더니 감탄사를 터뜨린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드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하일라가 마탑주님께 위그드라실의 잎을 건넨 건가요?”
“네, 헤어질 때 고맙다면서 주더군요. 덕분에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습니다.”
수맥 찾는 데 이보다 좋은 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직도 생생한 위그드라실의 잎을 쓰다듬었다.
“엘프 여인이 사내에게 위그드라실의 잎을 건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혹시 아시는지요?”
“거기에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현수의 반응을 본 후렌지아가 나직한 한숨을 쉰다.
“아아! 하일라는 아직 어린데 너무 일찍 결정했구나. 긴긴 세월을 어찌 살려고… 쯧쯧.”
나직이 혀를 차며 중얼거리는 말을 현수는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