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50화 (749/1,307)

# 750

현수가 아공간에서 꺼낸 건 볼펜이다. 제법 묵직한 고급형이다. 한쪽으로 돌려 심이 나오게 한 후 주석을 달았다.

스타이발 후작은 이런 모습을 숨도 안 쉬고 보고 있다.

매지션 로드가 손수 마법을 지도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흐음, 이제 되었네. 이 정도면 익히기 쉬울 것이야.”

“가, 감사하옵니다, 로드!”

“일단 텔레포트부터 배우게. 나머진 차차 알려주지. 그나저나 세 시간 후에 이실리프 자치령으로 갈 것이네. 생각 있으면 오게.”

“네? 무, 물론입니다. 가고 싶습니다. 갑니다. 저도 꼭 가게 해주십시오.”

스타이발 후작은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 가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좋아, 출발할 지점은…….”

현수는 토마스가 머물던 주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나는 바쁜 일이 있어 잠시 라이셔 제국엘 다녀오겠네. 이따가 보세.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헉! 라, 라이셔 제국이라고요? 여, 여기서 거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와! 역시 로드십니다.”

스타이발 후작은 초장거리 텔레포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시전한 것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다.

지금으로썬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하켄 백작령의 영주성이 있는 곳에 당도하였다. 유서 깊은 가문이었기에 대륙좌표일람에 명기되어 있었다.

당도하자마자 사람들에게 물어 리히스턴 자작의 저택을 찾았다. 삼 층짜리 건물인데 제법 규모가 컸다.

마침 안으로 들어가려는 자가 있어 다가갔다.

“네놈은 누구냐? 무슨 용무지?”

“리히스턴 자작 있는가?”

“뭐?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어디서 감히… 하늘 자작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경비병! 경비병!”

시종 복장 사내가 소리치자 문 안쪽으로부터 두 명의 병사가 달려나온다.

“아! 하만스 시종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놈이, 이놈이 방금 자작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 당장 체포하라.”

“네, 알겠습니다. 네 이놈! 어서 손을 번쩍 들지 못할까?”

둘 중 하나가 들고 있던 할버드로 현수를 겨냥한다.

나머지 하나는 전투용 도끼를 던질 자세를 취한다. 좋은 말로 할 때 알아서 깨갱 하라는 의도이다.

그런데 이들과 드잡이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렇기에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리히스턴 자작에게 전하라. 이실리프 마탑주가 왔다고.”

“…이런 미친……! 경비병, 더 볼 것도 없다. 그냥 죽여! 미친놈이니까! 어디서 감히 마탑주님을 사칭해?”

“하만스 시종님, 정말 죽입니까?”

경비병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하만스가 소리친다.

“그래! 미친놈이잖아. 죽여! 죽여 버리라고! 나 원 참, 살다 보니 별 미친놈을 다 보네.”

하만스는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남겨진 경비병들은 당황한 기색이다.

별일도 아닌데 죽이라는 지시를 받은 때문이다.

“네, 네 이놈!”

할버드와 도끼로 겨냥은 하고 있지만 공격할 의사는 없는 듯하다. 오히려 벌벌 떨고 있는 걸 보니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없는 자들인 듯싶다.

“안에 들어가 리히스턴 자작에게 이실리프 마탑주가 왔다고 전해주게.”

“이, 이런! 하늘같은 마탑주님을 사칭하다니! 어서 썩 물럿거라! 썩 물러!”

“그, 그래! 왜 하필이면 여기 와서 이래? 어서 가! 가란 말이야! 잘못하면 큰일 나니까!”

“자네들, 이름이 뭔가?”

“우, 우리 이름? 그건 알아서 뭐 하려고?”

할버드를 든 병사가 동료를 바라본다. 내 뜻에 동의하느냐는 표정이다.

“그래, 우리 이름으로 뭐 하려고?”

“그냥 알려주게. 손해 볼 일은 없을 테니.”

“나, 나는 란슨이고 저 친구는 에판이야. 자, 이제 이름 알았으니까 어서 가. 괜히 여기서 이러다가 큰일 치러.”

빨라 가라는 듯 손짓까지 한다. 그러면서 연신 뒤를 돌아본다. 하만스 시종이 다시 튀어나올까 싶어서이다.

“어서 가라니까. 아, 어서……!”

어물쩍대다 잘못될까 싶어 그런지 버럭 소리까지 지른다.

“리히스턴 자작! 리히스턴 자작!”

방금 한 말은 겉으로 소리가 나는 말이 아니다. 마나를 이용한 일종의 전음이다.

“야, 빨리 가. 여기서 이러다 하만스 시종님 나오면 우리도 봐줄 수 없단 말이야. 어서 가.”

현수가 떠나지 않자 란슨이 불안한 표정으로 연신 뒤를 돌아본다. 하만스 시종의 집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성도 더러워서 다시는 상대하고 싶지 않은 존재이다.

이때 현수의 뒤쪽으로부터 젊은 여인이 다가온다. 그녀의 뒤에는 부모로 보이는 장년인들과 여인의 남동생 둘이 있다.

이들을 발견한 란슨이 에판에게 손짓한다.

“에판, 마님 오신다!”

“어! 그러네. 이, 이봐, 좀 비켜서. 뒤에 우리 마님 되실 분과 그 가족들이 오시니까.”

에판의 말에 현수가 고개를 돌리자 젊은 여인과 시선이 마주친다.

“어머! 마, 마탑주님, 마탑주님께 어떻게 여길……! 그,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젊은 여인은 리히스턴 자작의 아내가 될 메리였다.

메리는 현수를 발견하자마자 후다닥 달려왔다. 그리곤 허리가 부러질 듯 깊숙이 고개를 숙인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란슨과 에판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부릅뜨고 있다.

“허어! 세상에! 지, 진짜 마탑주님이셨어?”

“끄으응!”

털썩―!

나직한 신음과 함께 기절한 것은 에판이다. 하늘같은 이실리프 마탑주에게 도끼를 던지려고 했다.

불경도 이런 불경이 없다. 이건 구족을 멸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혼절한 것이다.

“에판! 에판!”

란슨은 쓰러진 에판을 얼른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혼절한 사람이 어찌 일어나겠는가!

“어웨이크!”

샤르릉―!

“끄응! 여긴? 아! 헉! 마, 마탑주님! 주,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에판이 얼른 무릎을 꿇자 란슨 역시 나란히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 바라본다.

이때였다.

후다다다다다다―!

“헉헉! 아! 로, 로드! 어, 어서 오십시오, 로드!”

안쪽으로부터 황급히 달려나온 건 리히스턴 자작이다. 현수의 전음을 듣자마자 하던 일을 팽개치고 맨발로 튀어나온 것이다.

“잘 있었는가?”

“무, 물론입니다, 로드! 한데 로드께서 어찌 이곳까지 친히……!”

“자네를 데리러 왔네. 이실리프 자치령으로 가세.”

“로, 로드! 그럼 정말……!”

“이제 자넨 이실리프 마탑의 마법사가 될 것이네.”

“아아! 로, 로드시여!”

리히스턴이 현수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곁에 있던 메리도 얼른 무릎을 꿇는다.

남편의 하늘이면 본인에게도 하늘이기 때문이다.

메리의 부모와 동생들도 얼른 무릎을 꿇는다.

곁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대경실색하며 얼른 무릎을 꿇는다. 마법사들이란 너무도 괴팍하여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파리 잡듯 사람을 잡기도 함을 알기 때문이다.

“시간이 별로 없네. 꼭 가져가야 하는 것만 챙기게. 아울러 식솔들이 있으면 같이 가세. 참, 란슨과 에판도 가겠다고 하면 데리고 가세. 그 가족도 모두.”

“네, 로드! 이, 일단 안으로 드셔서 차라도 한 잔 하시지요. 시간이 조금 필요하니까요.”

“그럼 그럴까? 참, 하만스라는 시종이 있지?”

“네, 로드!”

“그자는 빼게. 성품이 별로인 듯싶으이.”

“알겠습니다, 로드!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리히스턴 자작의 안내를 받아 접견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차 한 잔을 대접 받았다. 물론 메리가 가져왔다.

차를 마시는 동안 리히스턴 자작성은 난리가 벌어졌다. 모두들 짐을 꾸리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딱 하나만은 예외이다!

하만스 시종은 넋 잃은 표정이 되어 있다. 졸지에 홀로 남겨지게 된 때문이다.

리히스턴 자작은 저택으로 복귀한 뒤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저택과 부동산은 모두 처분되었다. 잔금까지 모두 받았음에도 저택에 머물고 있음은 월세를 내고 빌린 때문이다.

애초의 계획은 본인과 메리를 비롯한 처가 식구들만 데리고 가는 것이다. 시종과 시녀, 그리고 경비병 등 여러 인원이 남겨지게 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여 헤어질 때 금전적 보상을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데려가도 된다고 하니 하나라도 더 가져가려고 바리바리 짐을 싸는 중이다.

“흐음! 다 되었는가?”

“네, 로드!”

“좋아, 이제 출발하지.”

리히스턴 자작 일가는 전원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 있다.

짐도 모두 그 안에 넣었다. 상당히 많은 양이지만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있어 가능했다.

“매스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르릉―!

“이런 젠장……!”

털썩―!

모두가 사라진 저택 현관에 하만스가 주저앉는다. 잘못 놀린 입 때문에 눈앞에서 행복을 잃은 기분이다.

하켄 백작령은 요즘 분위기가 흉흉하다.

영지전에 나섰던 하켄 공작과 둘째 아들 베르나르가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병사가 실종됐다.

그 즈음 수도로부터 칙령이 내려왔다.

공작위에서 백작위로 강등한다는 것과 영지의 3분지 2를 로이어에 영구 할양하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것 이외에도 백작으로 강등되었음으로 국법이 정한 숫자 이상의 기사와 병사 모두 국경수비대로 보내라는 내용도 있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 산적이 들끓기 시작했다. 치안을 유지할 병사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결과이다.

밤낮 가리지 않고 떼강도가 거리를 누볐다. 사람들은 겁을 내며 가급적 외출을 삼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심은 흉흉해지고 돈벌이는 시원치 않게 되었다.

옮겨갈 수만 있으면 아직은 치안이 유지되는 영주성 인근으로 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곳에 당도하기도 전에 강도들에게 모두 털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리히스턴 자작의 저택이 있는 동네는 비교적 안전했다.

마법사인 자작을 건드려서 좋을 게 없기 때문에 이곳에선 강도질이 덜한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아무도 없다. 자작은 본인의 재산을 다 가지고 갔다. 저택에 남은 건 하만스와 자작이 퇴직금 조로 주고 간 약간의 금전이 전부이다.

“흐흐흐! 나 이제 어떻게 해. 크흐흐흐!”

하만스는 통한의 눈물이라도 쏟고 싶은 심정이다.

이때 누군가가 음침한 괴소를 터뜨린다. 방금 퍼진 따끈따끈한 소문을 듣고 온 이 동네 왈패 우두머리다.

“크크크! 진짜로 다 갔단 말이지? 좋아, 좋아! 얘들아! 안에 들어가 쓸 만한 건 모두 챙겨라!”

“네, 형님! 근데 현관에 있는 저자는 어찌합니까?”

“어쩌긴, 싹 벗겨.”

“크크! 알겠습니다. 홀랑 벗겨 알몸으로 쫓아내죠. 가자!”

“네!”

일단의 무리가 조금 전까지 리히스턴 자작이 머물던 저택으로 난입해 들어갔다.

“아앗! 누구냐? 누가 감히 저택을 침입하느냐?”

“뭐해? 저 자식부터 홀랑 벗겨!”

“네, 형님!”

“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퍼억―!

“크윽!”

우당탕탕―!

퍽, 퍽, 퍽퍽퍽!

“캑! 크헉! 아악! 끄악!”

하만스는 왈패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정말 완전한 벌거숭이가 되어 저택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마음 한번 잘못 쓴 죄치고는 너무나 크게 당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은 전혀 그렇다 생각지 않는 모양이다. 어느 누구도 나서서 도우려 하지 않았다.

평소 거만하기 이를 데 없이 굴었고, 어려움에 처한 이에게 단 한 번도 온정을 베풀지 않은 결과이다.

하만스가 정신을 차린 건 어둑어둑해진 후이다.

그사이에 저택은 먼지만 남았다. 왈패들에 이어 동네 주민들이 샅샅이 훑어간 때문이다.

『전능의 팔찌』 31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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