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2
어느 날 갑자기 땅값이 오르는 바람에 졸지에 부자가 된 자들이 거들먹거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탕주의가 만연해지고 알박기 같은 치졸한 짓을 생각해 낸다.
사회 전체를 생각해 보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아무튼 졸부와 그 자식들로 인한 사회적 물의가 심각하게 우려된다. 대한민국에 부동산 투기가 벌어지고 있을 때 동남아 등 여러 나라에선 성과 관련된 각종 추문이 만연했다.
관광을 갔으면 얌전히 구경만 하고 오면 되는데 현지 여인의 성을 돈으로 사는 추잡한 짓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들 졸부의 공통점은 모두가 무례하고 안하무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너무도 이기적이어서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자들은 결코 생겨나선 안 된다. 그래서 모든 토지는 현수의 소유이다. 빌려만 주는 것이다.
영지에는 운영 세칙이라는 것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 규정을 따르지 않는 영지민들은 가차없이 추방된다.
세금은 없을 수 없다. 영지 개발에 어마어마한 자본이 투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추후엔 수확의 20% 정도가 세금이다. 인구에 비해 수확량이 엄청날 것이기에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지될 것이다.
“우와! 정말 대단해요.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성녀가 감탄사를 터뜨린다. 불과 며칠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때문이다.
“다들 열심히 일을 하니까. 하루라도 빨리 완공해야 다음 일을 할 수 있잖아.”
“저도 여기서 살게 될 텐데, 신전은 안 지으실 건가요?”
“당연히 지어야지. 어디 괜찮은 곳 봐둔 데 있어?”
“네, 저기요.”
성녀가 손짓한 곳은 언덕 위 별장 인근이다. 호수가 내려다보여 경관이 끝내주는 곳이다.
“저기? 저긴 좀 멀지 않을까? 스테이시가 계속 신전에만 머문다면 모를까.”
성녀도 아내가 되기로 했다. 그렇다면 로시아와 로잘린처럼 한옥에서 기거해야 한다. 그런데 성녀가 가리킨 곳은 한옥으로부터 상당히 멀다. 꼬박 반나절은 걸어야 할 거리이다.
“그리고 영지민들의 접근성이 떨어지잖아. 안 그래?”
“아, 그렇군요. 저는 경치만 보고……. 그럼 어디에 짓죠?”
“저긴 어때?”
현수가 가리킨 곳은 한옥 바로 옆이다.
근처에 제법 널찍한 대지가 있다.
이곳에 신전을 짓게 되면 성녀는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다. 아울러 종자개량 작업도 가능하다.
“저기요? 네, 좋아요. 자기 뜻대로 하세요.”
성녀가 배시시 웃음 짓는다. 그러고 보니 엄청 섹시하다.
나이즐은 성전을 건축하라는 현수의 말에 영광이라며 허리를 굽힌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땅속에 묻힌 철광석 등을 주관하기에 드워프들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 찍어두었던 성녀전 건물을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좋은 참고가 되었다면서 걱정 말라고 한다.
“온 김에 알베제 마을에 가볼까?”
“알베제 마을이요?”
“그래. 내가 여기 와서 첫 번째로 방문했던 마을이야. 같이 갈 거지?”
“그럼요.”
떨어지면 섭섭하다는 듯 얼른 현수의 팔을 부여잡는다.
“좋아!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어라? 여기가 왜 이렇게 변했지?”
알베제 마을 외곽 커다란 바위 위에 당도한 현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의 규모가 수십 배나 커져 있는 때문이다.
“왜요? 뭐가 변한 건데요?”
“이렇게 큰 마을이 아니었거든. 왜 이렇게 커진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곤 아래로 내려갔다. 바위 밑으로 내려서자 숲 속으로부터 커다란 샤벨타이거가 튀어나온다.
크르렁! 크르르르렁―!
“어머! 샤, 샤벨타이거예요.”
화들짝 놀란 성녀가 얼른 현수 뒤에 숨는다.
엄청나게 큰 덩치가 갑자기 튀어나오자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자, 자기……!”
성녀가 겁에 질린 말을 이으려 할 때 웬 사내가 숲 속에서 튀어나오며 걸걸한 음성으로 꾸짖는다.
“헉헉! 야, 이 녀석아! 그렇게 갑자기 뛰어가면 내가 어떡해! 헉헉! 어라, 마탑주님? 아하! 어째 이 녀석이 발버둥 치나 했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요?”
보아하니 감각 예민한 샤벨이 현수를 느끼고 냅다 달려온 듯하다.
“그래, 오랜만이네. 엘베른. 잘 있었지?”
“그럼요!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었습죠. 그런데 뒤에 계신 분은 부인이신가요?”
엘베른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스테이시 아르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너무도 고귀해 보이고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성녀는 여전히 현수의 뒤에 있다. 느닷없는 샤벨타이거의 등장에 너무 놀란 마음이 아직 다스려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네. 내 아내가 될 사람이네.”
“아! 안녕하십니까? 알베제 마을의 엘베른이라 합니다요.”
엘베른이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이때 샤벨이 현수의 발밑에 머리를 비벼댄다. 너무 커서 뒤로 밀릴 지경이다.
“하하! 녀석, 그래, 너도 잘 있었느냐?”
목덜미며 머리 위를 북북 긁어주자 기분 좋다는 듯 나직한 소리를 낸다.
크르릉, 크르르르릉―!
인간이 아니기에 말은 못하지만 뜻은 통한다. 샤벨은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느냐며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현수는 샤벨의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마을엔 별일 없나?”
“그럼요.”
“근데 마을이 많이 커진 것 같네.”
“아, 네. 이 부근이 독립 영지로 선포되고 나서 사람들이 많이 흘러들었습니다요. 주로 케이상단을 따라 들어왔지요.”
“그럼 케이상단 사람들인가?”
“아닙니다. 유민인데 케이상단의 안내를 받은 겁니다.”
알베제 마을에 이실리프 마법사의 흔적이 있다는 소문이 번지자 많은 유민이 모여들었다.
귀족의 학정4)과 몬스터들의 습격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5) 같은 곳이라 여긴 모양이다.
“그럼 인원은 얼마나 되나?”
“현재 약 삼천여 명입니다. 마을이 좁아서 저쪽 숲에 사는 인원이 꽤 되지요.”
“삼천 명이나? 식량이 부족했을 텐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기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랬지요. 저희도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케이상단 덕분에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습죠.”
케이상단 제7지부 서기에 불과했던 알론은 현재 승진하여 지부장이 되었다. 전임 지부장 말링코는 본점으로 들어갔다.
현수 덕에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그렇기에 알베제 마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은혜를 아는 것이다. 덕분에 식량 부족을 겪지 않는다면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 인원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나?”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겨울이다. 그리고 근처엔 짐승이 없다. 샤벨이 다 잡아먹은 때문이다.
가축이 조금 있으나 알베제 마을 사람의 수요도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이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라 지금은 내년을 위한 준비만 하고 있습죠.”
“그래? 그렇다면 일을 주지. 저쪽 보이는가?”
현수는 한옥 등이 지어지고 있는 곳을 가리켰다.
“얼마 전에 많은 사람이 간 곳이군요.”
“그렇다네. 그곳에 영주성을 짓고 있지. 놀고 있는 사람들을 보내면 일자리를 주겠네. 겨우내 노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야.”
“그래주시면야 저희야 고맙지요.”
외부에서 흘러든 사람들 때문에 반목과 질시가 빚어지는 중이다. 원주민들이 텃세를 부려 그런 건 아니다. 자기들끼리 그러니 뭐라 할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저쪽 작업장으로 가면 나이즐 빌모아라는 드워프가 있네. 그를 찾아가 내가 보냈다고 하면 일을 줄 것이야.”
“알겠습니다. 사람들을 그쪽으로 보내지요. 한데 저희도 갈 수 있는 겁니까?”
“아무렴. 놀지 말고 일하라 하게.”
“네, 알겠습니다.”
엘베른이 얼른 고개 숙여 사의를 표한다.
“그것 말고는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지?”
“그럼요! 여기가 어딘데요.”
외부에서 흘러든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는 다투기도 하지만 원주민들에겐 결코 함부로 하지 못한다.
이실리프 마탑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여기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샤벨이다.
아르센 대륙의 어떤 마법사도 길들이지 못한 맹수이다. 그런데 원주민들에겐 순한 양처럼 굴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여 되도록 부딪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마을 좀 둘러봐도 되지?”
“아이고, 물론입니다요.”
어서 가서 구경하라는 듯 손짓한다.
“스테이시, 가볼까?”
“네, 가요.”
현수는 성녀와 더불어 알베제 마을을 둘러보았다.
요즘엔 제대로 먹어서인지 낯빛부터 다르다. 옷도 달라졌다. 디자인은 여전히 별로이지만 그리 허름하지는 않다.
이실리프 마탑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테리안 왕궁으로부터 적지 않은 하사금이 내려진 결과이다.
이곳저곳 둘러보던 중 마을 사람들에게 작업 지시를 내리던 촌장과 마주쳤다.
“아! 마탑주님, 오랜만입니다요.”
“그렇군, 마레바. 오랜만일세.”
“네. 한데 여긴 어떻게…….”
몹시 바쁠 터인데 어찌 이곳까지 행차했느냐는 물음이다.
“지나는 길에 들렀네. 별일 없지?”
“그럼요! 마탑주님 덕분에 저희는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요. 감사합니다요.”
마레바 촌장의 허리가 계속해서 꺾인다.
진심으로 고마워함이 느껴진다. 그의 뒤로 마을 사람 전부가 허리를 꺾고 있다.
현수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기에 전 같으면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들었을 터인데 그러지 않는다.
“내년에도 쉐리엔 수확에 애를 써주게.”
“물론입니다요. 여긴 지천에 널린 게 쉐리엔이니 아마 어마어마한 양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요.”
“그래,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참, 이쪽으로 사람들을 좀 보내겠네. 잘 돌봐주게.”
“알겠습니다요!”
마레바 촌장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이 더 온다 함은 일손이 늘어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년 봄부터는 온 산에 널려 있는 쉐리엔을 수확할 수 있다. 뿌리를 캐지 않으면 베어내도 또 자라는 식물이다.
뿌리를 뽑더라도 얼마나 번식력이 왕성한지 서너 달만 지나면 금방 쉐리엔으로 채워진다.
마레바 촌장은 쉐리엔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인원이 늘어나는 것을 환영한 것이다.
촌장과 헤어진 현수와 성녀는 알베제 마을을 둘러보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따져 보았다.
이곳 사람들은 상처가 나도 이를 치료할 줄 모른다.
약초학이 발달되지 않은 탓이다. 그리고 큰 상처가 아니면 자연 치유력에 맡기고, 심각하면 신전이나 마법사를 찾기 때문이다.
“흐음, 후시딘과 구충제, 그리고 소독약이 많이 필요하군.”
이곳 사람들은 약이란 걸 써본 적이 없기에 초기에 처치만 잘해도 감염되지 않을 것이다.
2장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스테이시, 여기 땅은 어때?”
지나가는 말로 물어본 것이다.
“본시 비옥했던 땅인데 같은 작물을 계속 심어 지력이 많이 쇠해졌네요. 내년엔 농사짓지 말라고 하세요.”
“그럼 그냥 묵혀?”
“네, 일 년쯤 내버려 두면 많이 좋아질 것 같네요.”
성녀는 땅거죽의 색깔만 보고도 상황을 정확히 짚어낸다. 이 정도면 지구의 농학박사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가볼까?”
“네.”
스테이시 아르웬이란 이름을 가진 이 여인은 결코 거절할 줄 모르는 듯 무조건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