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4
같은 순간, 흑마법사들의 지시를 받던 기사와 병사들은 입을 딱 벌리고 서 있다.
갑자기 땅거죽이 갈라지더니 시뻘건 용암이 솟아났다.
그것에 빠진 흑마법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산 채로 화형당하는 고통을 느낀 때문이다.
재빨리 플라이 마법으로 몸을 띄운 고위 마법사들이라 하여 무사한 것은 아니다.
간신히 피했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쉬려는 찰나 느닷없는 불비를 맞았다. 하늘로부터 시뻘건 화염이 연이어 쏟아져 내린 것이다. 당연히 당황했고, 마법은 지속될 수 없었다.
하여 모조리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때 기다렸다는 듯 용암이 솟구치니 도망갈 길은 없다.
이 와중에도 재빨리 동료를 죽이고 그 시신 위로 올라가려던 흑마법사들이 있었다.
역시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시뻘건 화염 속에서 길고 긴 비명을 지르다 쓰러질 뿐이다.
블링크 마법으로 현장을 빠져나가려 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워낙 마법 구현 범위가 넓어 대부분이 실패했다.
운 좋게 몇몇만 간신히 피했을 뿐이다.
그러는 동안 뜨거운 불길은 뼛가루 하나 남기지 않겠다는 듯 활활 타오르고 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좀비와 구울이 불타오르며 마치 오징어가 구워지듯 이리저리 비틀리는 모습을 보인다.
어찌 보면 고통에 겨워 몸부림치는 듯하다.
“세, 세상에 맙소사!”
“헉!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말도 안 돼!”
“호, 혹시… 위, 위대하신 존재가 온 건가?”
“뭐? 위, 위대하신 존재? 헉! 어, 어디?”
기사와 병사들 모두 전의를 잃은 듯 우왕좌왕하며 사방을 둘러본다. 뜨거운 불길을 피해 몬스터들은 일제히 후퇴한 상황이다. 자연히 허공에 떠 있는 케이트에게 시선이 쏠린다.
아이보리색 로브는 화염으로 인한 상승 기류의 영향을 받아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몹시 신비롭게 보였을 것이다.
“저, 저기 저분이신가?”
“오오! 위대한 존재시여!”
상대가 드래곤이라면 대적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 조금의 가망성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털썩―! 챙그랑!
누군가 다리 힘이 빠졌는지 주저앉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병장기 나뒹구는 소리 역시 들렸다.
털썩―! 털썩―!
“아! 이제 끝난 건가?”
누군가의 독백이다. 그리고 이건 모두의 심정이다. 드래곤과 싸워 어찌 이기겠는가!
방금 전 불에 타 죽은 흑마법사들과 스켈레톤, 좀비, 구울까지 몽땅 달려들어도 대적 불가한 존재가 드래곤이다.
브레스 한 방이면 끝날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만 남았다. 당연히 해보나마나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필두로 하나둘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흐흑! 어머니……!”
“아아! 이게 내 마지막이라니…….”
조금만 있으면 뜨겁디뜨거운 화염의 브레스가 몰아닥칠 것이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 순식간에 증발되어 버릴 것이다. 그 즉시 존재 자체가 지워진다.
그렇기에 나직한 탄성과 침음, 신음을 내며 고개를 조아린다. 평생을 살면서 있었던 일들을 반추6)하고 있을 것이다.
같은 순간, 허공에 떠 있는 여인의 눈 또한 퉁방울만 해져 있다. 갑자기 몬스터들 뒤에서 누군가 나타나더니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마법을 구사한 것이다.
그 결과 흑마법사과 스텔레톤, 좀비, 구울 등 사악한 존재들 대부분이 한줌 재가 되어버렸다.
말로만 듣던 9서클 마법이 구현되자 전장은 그야말로 불바다이다.
스승은 현재 이곳에 없다. 모종의 일로 잠시 자리를 비울 것이며 오늘은 오지 못한다고 했다.
스승과 함께하던 라이세뮤리안님은 현재 다른 곳에서 몬스터들을 조종하고 있다.
따라서 새롭게 나타난 존재는 제3의 인물이다. 대체 누구인가 싶어 시선을 돌리던 여인의 눈에 현수가 뜨인다.
“아! 저분은……!”
여인이 나직한 감탄사를 터뜨릴 때 현수의 입이 열린다.
“모두 무릎을 꿇어라!”
마나가 실린 묵직한 음성에 절로 힘이 빠지는 듯하다.
쿠쿵, 쿠쿠쿵, 쿠쿠쿠쿠쿠쿠쿠쿵―!
기사 200과 병사 20,000의 무릎이 거의 동시에 꿇린다.
이때 슬쩍 몸을 빼는 자들이 있다.
검은색 로브를 걸친 흑마법사들이다.
슬그머니 뒤쪽으로 물러나려 했지만 어찌 현수의 눈을 속일 수 있겠는가!
“어디서 감히! 매스 파이어 애로우! 매스 매직 미사일! 발사! 발사!”
불길이 일렁이는 화살 수백 개와 미사일처럼 유선형 모양을 한 마나 덩어리가 일제히 검은색 로브를 향해 쇄도한다.
“아아악! 피해! 블링크! 블링크!”
퍼억―! 팍―! 퍼억―!
“으악! 캐액! 끄윽!”
흑마법사들이 놀란 메뚜기처럼 산지사방으로 흘어진다. 파이어 애로우는 직진만 하기에 무효화된 것이 많다.
대신 유효한 것들의 파괴력은 컸다. 단단한 두개골까지 뚫고 들어갈 정도이다.
하나하나의 크기는 대략 어른 손가락 굵기에 길이는 45㎝쯤 된다. 조선시대 때 비밀 병기였던 편전과 유사하다.
그래서인지 사거리와 관통력이 남달랐다.
매직 미사일의 경우는 거의 전부가 유효였다. 가장 가까운 목표를 향해 궤도를 수정해 가며 쫓기 때문이다.
“아앗! 피, 피햇! 블링크! 블링크!”
퍽! 파악! 퍼억! 팍! 퍼억!
“캑! 끄윽! 악! 으아악! 캐애액!”
“매스 매직 미사일! 발사! 발사! 발사!”
흑마법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이에 현수의 신형 근처엔 1,000개에 가까운 매직 미사일이 조성되더니 일제히 쏘아져 간다.
통상의 매직 미사일은 사거리가 20m 이내이다. 그런데 현수와 흑마법사들 사이의 거리는 거의 100m가 넘는다.
그럼에도 매직 미사일은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 그들을 향해 일제히 쇄도했다.
“아앗! 또 온다! 피해! 피해!”
“블링크! 블링크! 캐액!”
퍽! 퍼퍽! 파악! 파파팍! 퍼억!
“아악! 으악! 캑! 끅! 캐애액! 아아악!”
피하고 싶지만 너무나 많아 비명이 난무한다. 그러는 동안 현수와의 거리가 조금 더 벌어진다.
“매스 파이어 애로우! 발사! 발사! 발사!”
이번엔 수백 개의 불화살이 허공에 형성된다.
이것들은 수시로 궤도를 수정해가며 멀어져 가는 흑마법사의 뒤통수를 향해 쏘아져 갔다.
“커헉! 또! 모두 피해라! 피해! 커억!”
쉐에엑! 쉐아앙! 쐐에에엑!
퍼억! 파직! 뻑! 퍽! 퍼퍽! 퍼억!
“캑! 컥! 끄악! 캐캑! 아악! 큭!”
이번에도 백여 명의 흑마법사가 거꾸러진다. 그러는 사이에 현수의 입술이 또 한 번 달싹였다.
“아공간 오픈!”
현수가 아공간에서 꺼낸 것을 컴파운드 보우이다.
“아니다, 이건!”
지구에서 구입한 이것의 화살엔 브로드 헤드 화살촉이 달려 있다. 하여 한 발당 가격이 무려 20만 원이다.
흑마법사들을 죽이는 데 쓰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아공간에 넣고 다른 것을 꺼냈다.
K―6 중기관총이다. 이전에 제작한 거치대를 꺼내놓고는 재빨리 설치를 마쳤다. 그리곤 그사이에 거리를 더 벌린 흑마법사들은 필사적으로 도주를 감행하는 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꽁지 빠지게 달려가고 있는 흑마법사들을 겨냥하곤 방아쇠를 당겼다.
두루루! 두루루루루루! 두루루루루루루!
피융! 핑! 쎄엥! 세에엥! 피잉! 피융!
총성과 파공음이 흑마법사들을 쫓아간다. 몇 초 후, 마치 썩은 짚단 쓰러지듯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냥 쓰러지는 놈들도 있지만 마치 춤추는 인형처럼 팔다리를 흔들다 엎어지는 놈들도 많다.
2,000명에 가깝던 흑마법사 대부분이 쓰러지는 데 불과 5분이 걸리지 않았다.
K―6의 분당 발사 속도는 450∼600발이다.
그리고 이것은 ‘잠금턱방식’을 채용해 뜨거워진 총열을 약 5초 만에 교체할 수 있다.
5분이면 최대 3,000발까지 발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일방적인 학살이다. 흑마법사들은 변변한 공격 한 번 못해보고 도망치다 당했다. 운 좋게 몇몇이 전장 너머로 도주했지만 멀쩡한 자들은 얼마 안 된다.
파이어 애로우가 박힌 채 달리는 놈도 있고, 매직 미사일에 맞아 피를 흘리는 자도 많다.
“빅 핸드!”
허공에 커다란 손이 만들어진다. 그리곤 여기저기 엎어지거나 자빠져 있는 흑마법사들을 한군데로 모았다.
“헬 파이어!”
화르륵! 화르르르르르르륵―!
“아아악! 앗, 뜨거! 아아아악!”
시뻘건 화염이 쏟아지자 죽은 척하고 있던 자들의 비명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현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흑마법사는 절대 악이다. 당연한 제거 대상이다. 따라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면 안 된다 여기기 때문이다.
일련의 상황을 보고 있던 기사와 병사들은 벌벌 떨고 있다. 헬 파이어도 무섭고, 매직 미사일과 파이어 애로우도 두렵다. 하지만 K―6만큼은 아니다.
요란한 소리만 났을 뿐인데 흑마법사들이 픽픽 나가자빠졌다. 그냥 쓰러진 자들도 있지만 머리가 수박 터지듯 터진 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렇게 겨냥된 까닭이다.
기사와 병사들이 보기에 이것은 소리만으로 적을 제압하는 마법이다. 총알은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K―6의 총구 속도 930㎧이다. 마하 2.7 이상인데 어찌 보이겠는가! 사람의 동체시력은 소리보다 빠를 수 없다.
흑마법사 가운데에는 현수로부터 1㎞ 이상 떨어진 곳까지 도주하는 데 성공한 자도 있었다.
실제 거리는 1㎞를 훨씬 넘겨 1,353m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목숨을 건졌다고 여겨도 될 거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터져 죽었다.
K―6 중기관총의 유효 사거리는 1,930m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것의 최대 사거리는 무려 6,765m나 된다.
기사와 병사들은 눈앞에 보이는 인물로부터는 도주라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랬다간 요란한 소리와 더불어 머리가 터져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사, 살려주십시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흐흑! 살려만 주시면 뭐든 하겠습니다.”
“……!”
겁에 질린 병사들이 눈물까지 흘리며 엎어진다.
기사라 하여 다를 바 없다. 워낙 압도적이기에 감히 대항해 볼 마음조차 품지 못한 채 마른침만 삼킨다.
갑자기 식도가 타는 듯 쓰라리고, 똥줄이 타는 듯 엉덩이 쪽에서 묵직한 기분이 느껴진다.
챙그랑―!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던 방패가 떨어지는 소리이다. 그와 동시에 모두들 오체투지하며 엎드린다.
“사, 살려만 주십시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함과 비명이 난무하던 전장이다. 물론 몬스터들의 위협적인 포효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고요하다. 총성과 더불어 뒤로 물러난 몬스터들조차 소리를 죽이고 있다.
눈앞에서 펼쳐진 불바다와 불지옥, 그리고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엄청난 총성에 놀란 때문이다.
가장 뒤쪽은 슬금슬금 숲 속으로 도주한다. 오거도 있고 트롤도 있다.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드레이크도 섞여 있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때 허공에 떠 있던 여인이 스르르 아래로 내려온다.
“마, 마탑주님!”
“케이트?”
폴리모프해서 모습은 비슷할 수 있지만 음성까지 일치하긴 힘들다. 게다가 마탑주라 부른다.
그렇다면 케이트가 분명하다.
“네, 케이트 맞아요. 케이트 에이런 판 포인테스요. 그런데 마탑주님께서는 어떻게 여길……?”
현수가 포인테스 영지를 방문한 것은 지난 9월 8일이다. 벌써 석 달이나 흐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