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59화 (758/1,307)

# 759

* * *

“어머! 흐흑! 자기야!”

“오랜만이지? 잘 있었어?”

“흐흑! 너무해요.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카이로시아가 달려들자 현수는 두 팔을 벌려 교구를 받아 안았다. 이곳 시간으로 벌써 두 달 가까이 흘렀다.

그동안 연락 한 번 없었으니 이럴 만도 하다.

현수는 말없이 흐느끼는 로시아의 등을 토닥였다.

“이제 다시는 안 놔줄 거예요.”

말을 하며 현수의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을 준다.

“자긴 정말 못됐어요. 흐흑!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기나 해요? 흐흐흑!”

하마터면 어쌔신에게 순결을 잃고, 목숨까지 빼앗길 뻔한 일이 떠올랐는지 로시아의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한다.

“미안해. 내가 좀 많이 바빠서……. 그런데 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말을 하며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으라는 의미이다.

“자기 없는 동안 죽을 뻔했어요. 어떤 어쌔신이 와서…….”

잠시 그날의 일을 이야기했다. 현수는 대거에 마법을 인챈트해 주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준 거잖아. 아무튼 다행이네. 그 녀석이 임무를 다해서. 안 그래?”

“치이! 자기는 내가 죽을 뻔했다는데도 그렇게 웃음이 나와요? 그날 얼마나 무서웠는데……. 자기야도 못 보고 죽으면 어떻게 하나, 첫날밤도 못 치렀는데 그놈에게 당하면 어떻게 하나 해서 벌벌 떨었단 말이에요.”

카이로시아가 입술을 삐죽이며 짐짓 앙탈을 부린다.

“미안해. 하지만 나도 되게 바빠서 못 온 거야.”

“치이, 여자들 후리러 다니느라 바빴던 거죠?”

“……!”

로시아의 말에 현수가 움찔하자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말해봐요. 진짜 여자들 후리러 다니느라 여기 안 온 거예요? 그런 거예요?”

“그, 그게 말이야…….”

현수가 말꼬리를 흐리자 로시아가 토라진 표정을 짓는다.

“치이, 나하고 로잘린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자기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데. 너무해요! 엉엉!”

굵은 눈물방울이 줄지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로, 로시아! 그, 그게 말이야.”

“몰라요, 몰라! 나빴어, 정말! 흐흐흑! 흐흐흐흑!”

“끄응!”

심하게 도리질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말릴 재간이 없다.

“슬립!”

“치사하게… 하으음!”

뭐라 말을 하려던 로시아가 스르르 쓰러지며 잠든다.

“이런 제길! 뭐라 말하지? 잠깐 생각 좀 정리해 보자. 생각을 정리해.”

현수는 눈물 젖은 얼굴로 잠든 카이로시아를 보면서 고심했다.

오로지 자신만 사랑해 주는 여인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해야 하는데 가급적이면 덜 아프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으아! 뭐라 말하지? 뭐라 말을 해? 미치겠네. 끄응!”

아무리 생각을 쥐어짜도 마땅한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어휴∼! 모르겠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자.”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나직한 한숨을 쉬었다.

“어웨이크!”

“끄으응! 아함! 응? 내가 잠들었어요? 자기야, 근데……? 아, 맞다. 자기 진짜 여자 후리러 다닌 거예요?”

“로시아, 내가 바빠서 여길 못 왔다고 했잖아? 그건…….”

현수는 카이엔 제국에서 일루신을 만나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라이셔 제국에선 로이어 영지와 하켄 공작령 간의 영지전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로시아는 긴박감을 느끼는지 계속 침을 삼키며 ‘그래서요? 그래서요?’를 반복했다.

하켄 공작이 자신을 아들의 첩으로 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말엔 살짝 눈을 부라린다.

‘어디서 감히!’라는 표정이다.

하켄 공작군이 벌인 온갖 나쁜 짓엔 아미를 찌푸린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며, 여자들이 당한 고통은 어떠했을지 짐작 간다는 표정이다.

현수가 하켄 공작을 맞아 그와 그의 둘째아들의 목숨을 거뒀다는 말을 듣고는 벌떡 일어나 끌어안는다.

“그래서요? 그 다음엔요? 아빠는 만나보셨어요?”

“그랬지! 장인어른을 만나서는…….”

현수의 말이 또 이어졌다. 에델만 백작과 큰오빠인 에머럴을 만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 말 나온 김에 백작님, 아니, 아버님께 정식으로 청혼의 말씀을 드립니다. 카이로시아를 저의 처로 맞아들이고 싶습니다. 따님을 주십시오.”

“그랬더니요?”

아버지의 반응이 궁금하다는 듯 침을 꿀꺽 삼킨다.

“금방 대답하진 않으셨지. 그래서 ‘카이로시아는 저의 정실부인이 될 겁니다’라고 말씀드렸어. 그랬더니…….”

“그, 그랬더니요?”

“‘당연히 허락하네’라고 말씀하셨어.”

“저, 정말요?”

카이로시아의 두 볼이 붉게 상기된다. 사랑하는 하인스 백작과의 혼인이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그래. 로시아는 이제 명실상부한 내 여자야. 내 정실부인이 되는 거지. 사랑해!”

말을 마치고 팔을 벌리자 스르르 안겨온다.

둘의 입술이 가까워지자 로시아의 별빛이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속눈썹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으읍!”

한동안 두 입술이 붙어 있었다. 그 사이로 무엇이 오갔는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다.

“아아! 자기야… 사랑해요!”

길고 긴 입맞춤이 끝나자 로시아가 현수의 품으로 파고든다.

“나도!”

잠시 아무런 말 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그리고 나선 어떻게 되었어요?”

다시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참, 그전에 라이셔 제국의 황궁에 갔는데…….”

황궁에서 세피아 황녀와의 드잡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황녀가 현수와 엮였다면 정실부인 자리는 양보해야 한다.

황국의 신민으로서 그건 당연한 일이다. 하여 혹시라도 황녀가 연적이 된 것은 아닌가 하여 한참을 귀 기울인다.

다행히 별일 아닌 것으로 끝나는 듯하자 그제야 곧게 세웠던 등에서 힘을 뺀다.

“그래서요?”

“그래서 장인어른은 공작으로 승작하셨지. 하켄 공작은 하켄 백작으로 강작되었고.”

“아빠가 공작이 되셨다고요?”

로시아의 눈이 엄청나게 커진다. 백작과 공작은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래! 황제는 하켄 백작령 영지의 3분지 2를 로이어 공작령에 편입시켰어. 명실상부한 공작령이 된 거지. 그리고 에머럴 형님에겐 별도의 백작위가 내려졌어.”

“아아! 자기야!”

로시아는 현수의 입술에 먼저 뽀뽀를 한다. 너무나 고마워서이다. 이를 어찌 거부하겠는가!

둘은 또 한참 동안 말없는 대화를 나눴다.

“아무튼 영지의 일이 끝난 뒤 이냐시오를 데리고 수도로 갔어. 그런데…….”

이번엔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이야길 했다.

20m쯤 되는 검강을 뽑아냈다는 소리에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는다.

그걸 눈앞에서 보고 있었을 헤이글이 불쌍하다고 한다.

아울러 이냐시오에게 골탕 먹이던 여덟 악동은 어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현재 영지 개발 공사에 참여 중이다.

카엘과 대니얼 등 사내 녀석들은 말단 인부로 작업하고 있다. 피아렌 백작의 둘째딸과 요세핀 자작의 장녀는 주방 일을 하는 중이다.

노동 강도가 엄청 세서 저절로 곡소리가 나는 중이다.

이 경험은 이들의 미래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영지민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너무도 처절하게 경험하기에 늙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이들이 영주인 영지는 타 영지에 비해 살기 편한 곳이 된다. 일을 하면서 깨닫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실리프 자치령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을 반짝인다. 늙어 죽을 때까지 지낼 곳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가이아 여신의 신전에서 신탁 받은 이야길 했다.

그곳에 왜 갔느냐는 물음에 이실리프 자치령에서 사용할 종자를 얻으러 갔다고 둘러댔다.

“그때 여신의 음성이 들렸는데, ‘너는 내가 간택한 내 딸의 배우자! 선택받은 인간이여! 누릴 수 있는 모든 복락을 누리며 살지니 내 딸을 잘 보살펴 내 뜻이 세상에 널리 퍼지도록 하라. 나의 뜻에 따를 때 네 세상에도 나의 힘이 미치리라’라고 말씀하셨어.”

“여신께서 친히요?”

“그래. 그때 빛의 기둥이 내게 쏘아져 왔어. 그래서 신성력을 쓸 수 있게 되었어. 볼래?”

말을 마친 현수는 창가에 놓인 화분으로 다가갔다.

카이로시아의 집무실엔 항온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다. 하여 한겨울임에도 향기 좋은 꽃이 피어 있다.

지구로 치면 튤립과 유사한 붉고 노란 꽃이다.

“가이아 여신의 축복을 네게 베푸노라!”

현수가 손을 뻗자 손끝으로부터 황금빛 찬란한 빛줄기가 화분의 흙속으로 스며든다.

잠시 후, 약간은 시들어 있던 이름 모를 꽃이 천천히 만개하기 시작한다. 아울러 진한 향기를 뿜는다.

심신이 상쾌해지는 향이다.

‘어라, 이 향은……?’

처음 보는 꽃이다. 그런데 언젠가 맡았던 향기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가이아 여신의 신전에서 신관이 빙빙 돌렸던 향로에서 나던 냄새와 아주 비슷하다.

바닐라 향 + 페퍼민트 향으로 느껴진다.

‘흐으음! 향내 한번 끝내주는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시들었던 꽃은 생생함을 되찾고 있다. 누가 봐도 최고의 생육 상태로 보인다.

“세상에! 다 시들어서 내다 버리려 했는데.”

카이로시아가 감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믿을 수 없는 현상 때문이다.

“가이아 여신의 신성력이라고 했죠? 정말 대단해요.”

“그래. 이게 여신의 뜻을 받아들인 결과야.”

“그럼 성녀님이 셋째가 되는 건가요?”

“…고마워, 로시아.”

“고맙기는요. 여신께서 친히 간택하신 건데 제가 어찌……. 앞으로 잘 지낼게요. 그런데 성녀님의 이름은 뭐예요? 혹시 스테이시 아르웬님인가요?”

“어라? 성녀 이름을 어떻게 알아?”

“당연히 알죠. 라이셔 제국 최고 미녀인데요.”

“……!”

로시아는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는 표정이다. 하긴 여신이 직접 점지했다는데 어찌 뭐라 할 수 있겠는가!

현수는 문득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지만 전해놓고 나니 신이 인정했으니 너도 당연히 인정해라 하는 꼴이 되어버린 때문이다.

속담에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다. 남편이 첩을 얻으면 부처같이 점잖고 인자하던 부인도 시기하고 증오하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로시아라 하여 어찌 자신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지 않겠는가! 로잘린을 받아들일 때에도 선선했다.

오늘은 성녀 또한 너무도 기꺼이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케이트와 다프네까지 이야기해야 한다.

한꺼번에 이야기하지 않고 뜸을 들이면 받아들이기야 하겠지만 심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로시아, 바세른 산맥 아래쪽 테리안 왕국 안에 이실리프 자치령에선 말이야. 지금…….”

또 현수의 말이 이어졌다. 이실리프 자치령이 완성되면 그곳에서 평생을 지내게 될 것이다.

당연히 이레나 상단 테세린 지부를 떠나게 된다.

물론 이실리프 지부장 직을 맡게 될 것이다. 현수의 아공간에 담긴 온갖 신기한 물건들을 독점하기 위함이다.

“거긴 언제 완공돼요? 아아! 빨리 가보고 싶어요.”

이 말은 하루라도 빨리 같이 살고 싶다는 뜻이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인데 문제가 생겼어. 하필이면 그곳이…….”

드래곤 로드와의 영토 분쟁 상태를 설명했다.

당연히 당황하고 겁먹은 표정이다. 드래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드 드래곤 제니스케리안과 레드 드래곤 라이세뮤리안이 중재를 나서기로 했는데 조건이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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