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1
이실리프 마탑주가 사위가 되면 수많은 방문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어느 누구도 악감정을 가지진 못한다.
자칫 이실리프 마탑과 척지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디에서 내리든 상당히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어디까지 가셨는데?”
“미판테 왕국 최남단까지 갔을 거예요. 내일부터는 쿠르스 왕국이라 배에서 쉬셔야 할 거구요.”
“엘리터는 바다에서도 사나?”
“아뇨. 짠물에서는 못 사는 걸로 알려져 있어요. 그러니 하루나 이틀만 잘 견디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흐음, 바다로 나간다는 말이지?”
로시아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진다.
“네. 다음엔 쿠르스 왕국 남쪽을 빙 둘러서 헬크란까지 가죠. 거기부터는 육로로 북상해서 수도까지 갈 거예요.”
“안전해?”
“그럼요. 항구마다 내려서 쉬실 거니까요. 먼 바다까지 나가지 않으니 괜찮으실 거예요.”
현수로부터 우려의 빛을 읽은 로시아가 배시시 웃는다.
로잘린과 그 부모를 챙기는 모습에서 현수가 처가 쪽에 얼마나 신경 쓰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여기서 쉬실 거죠?”
“물론이야. 그전에 이실리프 자치령에 다녀오자.”
“네? 아, 알았어요. 잠시만요.”
“어라? 이 아름다운 아가씨는 누구신가?”
나이즐 빌모아의 눈이 커져 있다. 성녀 못지않은 절세미녀가 현수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제 정실부인입니다. 앞으로 저곳에서 살 여인이죠.”
현수가 가리킨 곳은 한옥 단지이다.
“정실부인? 허어, 대단한 능력이네. 부럽군, 부러워!”
나이즐 빌모아는 성녀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능력이라 여겼다. 세상엔 여러 신이 있으니 성녀 또한 여럿이 있을 것이다. 스테이시의 미모는 그중에서도 발군이라 생각했다.
가히 여신급 미모이기 때문이다. 그런 성녀를 차지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에 필적할 만한 미녀를 데리고 왔다. 그렇기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로시아, 이 도시의 명칭은 카로스케다라고 지을 예정이야. 어때? 괜찮은 이름이지?”
“카로스케다요? 괜찮은 게 아니라 조금 괴상한데요? 그거 무슨 뜻이 있는 거예요?”
“당연히 있지. 카이로시아, 로잘린, 스테이시, 케이트, 그리고 다프네의 첫 글자를 딴 거야.”
“…고맙긴 해요.”
카이로시아는 자신을 첫 번째에 놓은 것에 기분이 좋았다. 하여 배시시 웃는 얼굴이다.
“하지만 너무 괴상해요. 도시 명칭이 다섯 음절이나 되는 건 없잖아요. 그러니 그냥 자기야 하고 관련 있는 셰울이나 코리아라고 하는 건 어때요?”
“그게 괴상한 건가? 흐음, 그럼… 코리아가 낫겠다.”
서울이라는 발음이 이곳 사람들에겐 어렵기에 발음하기 쉽도록 고른 것이다.
“코리아, 좋네요! 구경시켜 주실 거죠?”
“그럼! 자, 그럼 가볼까?”
“호호! 네에.”
카이로시아가 팔짱을 끼자 곧바로 출발했다.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은 바실리이다. 태블릿PC를 꺼내 모스크바에 지어진 것을 보여주니 눈이 커진다.
상행을 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들었지만 바실리 대성당처럼 색깔 고운 건축물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 다음은 한옥이라는 거야. 여기엔 이런 건축물이 이런 식으로 지어지지.”
이번에 보여준 화면은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창덕궁과 원림(園林)이다.
원림은 조선시대 때 임금이 소풍을 즐기고 산책하던 후원이다. 북원(北苑), 금원(禁苑), 후원(後苑)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때엔 비원(秘苑)으로 불리기도 했다.
돈화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인정전, 대조전, 성정각, 희정당, 낙선재, 영화당, 승재정 등을 보여주었다.
다음엔 부용정, 연경당, 주합루,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등이다.
가을 단풍이 절정일 때 찍은 사진들이라 색깔이 고와도 너무 고와 로시아는 연신 탄성을 터뜨렸다.
“근데 자기야, 건물마다 왜 이름을 붙이는지는 알겠는데 맨 마지막 글자들이 같은 게 많네요.”
“아! 인정전, 대조전, 선정전 이런 거?”
“네, 연경당과 희정당도 끝 글자가 같아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로시아는 궁금하다는 듯 눈빛을 빛내고 있다.
“그건 각 건물마다 서열이 있어서 그런 거야. 코리아 제국에선 건물의 중요도에 따라…….”
잠시 현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조선시대엔 건물에도 위계질서가 있었다.
『전(殿)당(堂)합(閤)각(閣)재(齋)헌(軒)루(樓)정(亭)』이 그 순서이다.
이렇듯 건물의 규모와 중요도에 따라 현판의 끝 글자를 달리하여 구분했다.
‘전(殿)’은 임금과 왕비 등 최고 신분을 가진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예를 들어, 인정전은 백성들에게 인자한 정사를 베풀라는 뜻의 정전이다.
대조전은 왕의 다음 대를 생산해 내는 중요한 일을 하던 곳이다. 다시 말해 왕자 생산처이다.
그렇기에 ‘전’이 되었다.
희정당의 경우는 국왕이 평상시에 사용하던 거처이다.
이곳에서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신하들과 직접 국정을 펼치는 곳보다 더 중요하다 여겼다.
왕비와 아들을 만들던 대조전과 비교해도 그러하다.
하여 한 단계 낮은 ‘당’이 된 것이다.
아무튼 국왕은 전에서 근무하기에 신하들은 그를 높여 ‘전하(殿下)’라는 칭호을 사용했다.
그래서 왕세자가 머무는 동궁은 한 등급 낮은 ‘당(堂)’이고, 관리들이 실무를 보는 곳도 ‘당’이 많다.
이보다 더 등급이 낮은 ‘합(閤)’과 ‘각(閣)’은 ‘전’이나 ‘당’의 부속 건물이라고 보면 된다.
합하(閤下)나 각하(閣下)는 전하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어휘로 높은 벼슬아치를 이르는 말이다.
‘재(齎)’와 ‘헌(軒)’의 경우는 임금의 가족이나 궁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주거용에 붙었다.
‘재’는 조용하게 독서나 사색을 하는 데 쓰는 건물이다.
‘루(樓)’와 ‘정(亭)’은 휴식을 위해 사용되던 공간이다. 그래서 가장 낮은 등급이 된 것이다.
창덕궁 부용지 인근 건물의 1층은 규장각이다.
왕실의 도서를 보관했다. 2층 열람실은 주합루라 불렸다.
도서를 보관하는 곳과 열람하는 공간에도 위계질서가 있었던 것이다.
전각의 위계에 대한 설명을 마치곤 전체 배치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옥 단지에는 로시아를 비롯하여 로잘린과 스테이시, 그리고 케이트와 다프네를 위한 다섯 개의 전각 군이 형성될 거야. 내가 머물게 될 이곳을 중심으로 저쪽이지.”
현수는 손을 뻗어 한창 공사 중인 전각의 뒤쪽을 가리켰다.
현재 짓고 있는 건물은 임시로 인정전이라 부른다. 이곳에선 공식적인 업무 및 접견 등이 이루어질 것이다.
평상시엔 편전이라 할 수 있는 선정전에 머물 계획이다. 올라온 기안에 대한 검토 및 결재 업무 등을 위한 공간이다.
밤에는 희정당에 머물며 독서 등을 한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수라간 및 개인 도서관과 체력 단련실 등이 조성된다.
각각의 명칭은 임시이다. 추후 이곳 사람들이 발음하기 좋은 의미 있는 어휘로 바꿀 예정이다.
물론 명확한 서열이 매겨질 것이다.
현수가 사용하는 건물들의 배후엔 다섯 개의 전각군이 형성된다. 다섯 명의 부인을 위한 거처이다.
각각의 전각엔 메인 건축물 주위로 부속 건물들이 지어진다. 시녀들이 거처할 공간과 창고, 주방 등이다.
다시 이 전각들의 뒤쪽엔 각각의 부인에게서 태어날 아기들을 위한 건축물이 조성되고 있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서관, 체력 단련실, 마법 연습장, 학습 공간 등도 만들어진다.
이 밖에 기마 연습장도 있다.
현수가 사용할 공간의 앞쪽엔 내의원이 준비될 예정이다.
현수의 다섯 부인은 슈퍼 포션을 복용한 뒤 바디체인지를 하게 될 예정이다.
이렇게 하면 평생토록 질병을 겪지 않게 된다.
새롭게 태어날 아가들에게도 벌모세수에 가까운 특별한 조치가 내려질 것이다.
물론 현수가 할 일이다.
그렇게 하면 아가들 역시 아프지 않고 잘 자라게 될 것이다. 막강한 면역력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의원은 산부인과와 관련된 의술을 익힌 의녀들이 머물 예정이다. 아기를 낳는 과정마저 들어가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각각의 전각군 사이엔 부용지나 애련지 같은 인공 호수가 만들어지며 중앙에는 인공 섬이 조성된다. 배를 타거나 운교를 이용하여 건너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대부분 목재 건축물이 될 것이기에 화재를 대비하여 울창한 숲은 약간 떨어진 곳부터 시작된다.
대신 건축물 근처엔 아기자기한 정원이 조성된다.
약 10만 평에 달할 한옥 단지는 창덕궁의 담장 못지않은 높은 석성으로 둘러싸이게 된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조처이다.
담장 내부엔 깊숙하고 넓은 해자를 팔 것이다.
혹시 있을지 모를 침입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으며, 화재 발생 시 소방수로 쓰기 위함이다. 또한 부용지나 애련지 같은 연못의 물이 순환되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자, 이제 아카데미가 될 파빌리온을 보러 갈까?”
“파빌리온이요?”
“그래. 다 지어지면 이런 모양이 될 거야.”
태블릿 PC로 로열 파빌리온의 모습을 본 로시아가 나직한 탄성을 낸다.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어머! 예뻐요.”
“그렇지? 다 지어지면 볼 만할 거야.”
“여기가 아카데미로 쓰여요?”
“그래. 마법학부, 기사학부 이외에 정령학부와 행정학부, 그리고 교육학부가 들어설 거야.”
“정령학부와 교육학부요?”
“그래. 정령사도 양성하고, 영지민을 교육할 선생님들도 배출해 낼 거야.”
로시아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영지민을 가르쳐요?”
“그래. 영지민이 똑똑해야 영지가 빨리 발전하거든.”
“그럼 영지민 전체에게 글을 가르치겠다는 말씀이세요?”
“결국엔 그렇게 되겠지. 아이가 태어나면 의무적으로 학교라는 곳을 다니도록 할 생각이니까.”
이곳에선 초등학교와 중학교 수준의 수업을 할 예정이다.
대륙 공용어와 수학, 그리고 과학이 주요 과목이다.
음악과 미술은 개인의 소질 계발을 위한 과목이고, 도덕과 지리는 보조과목이다.
잠시 현수의 설명을 들은 로시아가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아르센 대륙 어디에도 의무교육이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하여 잠시 설명해 주었다. 60년 전 코리아 제국은 전쟁 때문에 잿더미였는데 욱일승천하여 최첨단 기술력을 가진 경제 대국이 된 것을 에둘러서 이야기했다.
“우와∼! 그게 정말이에요?”
“그래. 그래서 코리아 제국의 문맹률은 1% 미만이야.”
“어머! 정말요? 1% 미만이라면 100명 중에 1명 미만이 글을 못 읽는다는 거잖아요.”
“그래. 모두가 읽고 쓸 수 있어. 그러니까 그토록 빨리 발전할 수 있었던 거지.”
“우와!! 대단해요.”
로시아가 감탄사를 터뜨릴 때 현수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우리 이실리프 자치령이 그렇게 되길 바라.”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로시아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아르센 대륙은 문맹률이 99% 이상이다. 100명 중 1명만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다.
귀족 중에도 여자는 문맹인 경우가 많다. 읽고 쓸 수 없어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이들을 가르칠 교사가 많이 양성되어야 하니까 나중에라도 관심 가져줘.”
“물론이에요. 자주 찾아올게요.”
로시아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