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3
성질 급한 레드 일족만 아니었다면 드래곤 로드 직에 오를 뻔한 위대한 존재이다. 그런 드래곤의 이름이 아무렇지도 않게 거론되자 모두들 웬일인가 하는 표정이다.
“줄여서 라세안이라고도 하는데 내 친구입니다.”
“헐!”
모두가 입을 딱 벌린다. 드래곤과 친구라는 인간과 대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웬일이십니까?”
“아! 후렌지아로부터 보고를 받았습니다. 아리아니님을 아신다고요.”
“네, 만났었지요.”
“혹시 그분을 저희에게 인도해 주실 수는 없는지요?”
“네?”
“아니면 저희를 그분에게 데려다 주실 수 있는지요? 그도 아니라면 그분이 계신 곳이라도 알려주십시오.”
“…아리아니가 있는 곳은 알려줘도 갈 수 없습니다. 라수스 협곡 안에 있거든요.”
“아……!”
엘프들이 일제히 탄식을 터뜨린다. 라수스 협곡은 외부의 어떤 종족도 접근할 수 없는 절대 금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을 데려다 줄 수도 없으며, 위치를 알려준다 해도 찾아갈 수 없는 곳이다.
엘프들의 낯빛이 현저하게 창백해지자 현수가 물었다.
“그런데 아리아니를 왜 보려는지 알 수 있는지요?”
숲의 종족은 은혜를 입으면 그에 몇 배로 되갚음을 알기에 물은 말이다. 이 기회에 도움을 주고 좋은 이웃이 되고 싶은 저의에서 한 말이다.
현수는 오로지 엘프들만 담글 수 있다는 엘프주를 맛본 적이 있다. 라세안과 동행할 때 여러 번 마셔보았다.
날마다 소주와 삼겹살로 배를 채우다 그것도 지겨워 닭 가슴살 샐러드를 만들었을 때 그걸 안주 삼아 마셨다.
아주 독특한 맛이었다. 달콤하면서도 향기로웠고, 목 넘김 또한 매우 부드러워 마시기에 편했다.
라세안의 말에 의하면 몸에 좋은 약초만 골라 빚은 것이라 했다. 그래서인지 숲의 진한 향기가 배어 있는 것 같아 마시면 몸에 좋을 것 같았다.
실제로 엘프주는 공해에 찌든 현대인들의 간에 활력을 줄 수 있다. 다량의 천연 피톤치드가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면역력 증진 효과가 있다.
하여 과음하지만 않으면 나빠진 간 기능을 되살려 줄 약효를 가진 술이 된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감소, 숙면 유도, 피부질환 해소, 치매 예방 효과까지 있다.
어쨌거나 엘프주를 얻거나 제조 비법을 알고 싶다.
우선은 술맛이 좋아 많이 만들어놓고 좋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음이다. 또 다른 이유는 지구에서 엘프주를 만들어서 팔고 싶은 생각 때문이다.
하루에 한 잔씩 마시면 간이 좋아지는 술이라고 광고하면 매출은 상상을 불허할 것이다.
게다가 술로 인한 가정 폭력이라든지 주폭을 줄이는 효과가 부수적으로 따를 것이니 일석삼조인 셈이다.
하여 청하지도 않은 친절을 베풀려는 것이다.
“현재 세계수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가지를 내어야 할 시기가 지났음에도 그럴 조짐을 보이지 않습니다.”
“……!”
무슨 소리인지 몰라 눈만 껌벅이자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세계수는 1,000년에 한 번 후계가 될 묘목을 내놓는다.
이걸 근처에 옮겨 심으면 본래의 세계수와 같이 성장하다 바통을 이어받는다.
엘프들의 계산에 의하면 올해 초가 새로운 묘목을 내놓는 시기였다. 그런데 감감무소식이다.
세계수가 후계목을 양성치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것은 엘프들에게 있어 재앙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노심초사하며 별별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중엔 드래곤 로드인 옥시온케리안을 찾아가 면담한 것도 있다. 그때 숲의 요정 아리아니에게 물으면 해결책을 알려줄 것이라 하였다.
하지만 아리아니가 어디에 있는지는 드래곤 로드인 옥시온케리안조차 알지 못했다. 고모인 켈레모라니를 마지막으로 본 게 1,500년 전이기 때문이다.
골드 드래곤 켈레모라니 라수스 에이페 컨페드리안 브지에텐토가리니안은 일종의 결벽증을 앓았다. 그렇기에 조카들에게도 자신의 레어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
인사한다며 들르는 것조차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아리아니가 고모와 함께 있다는 것만 알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는 것이다.
어쨌거나 속수무책으로 세월이 흐르면 세계수가 시들어 버릴 것이라 생각한 족장은 젊은 엘프들을 세상 밖으로 파견했다.
그중엔 하일라 토들레아 남매도 포함되어 있다.
이번 기회에 인간 세상을 두루 살펴보면서 숲의 요정에 관한 단서도 알아오라는 것이 임무였다.
물론 이들 이외에도 상당수 엘프들이 세상에 파견되어 있는 상태이다.
문제는 파견된 셋이 세상 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인간들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인간도 엘프들처럼 진실 된 마음만 가지고 살 것이라 믿은 것이 잘못의 시작이다.
우연히 들렀던 주점에서 식사를 하던 중 노예 상인에게 속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음식에 ‘오거의 꿈’이라는 초강력 수면제를 섞은 것을 몰랐던 것이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땐 마나 구속구를 차고 있었다. 체내의 마나를 전혀 쓸 수 없는 마법 기물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여성체인 하일라 토들레아가 작은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겉보기엔 볼품없는 것이지만 마법이 인챈트되어 본연의 모습을 감춰주는 아티팩트이다. 하여 간신히 추악함을 면할 정도의 추녀로 보였다.
눈과 눈 사이가 기형적으로 멀어 보이고 뻐드렁니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비가 오면 콧구멍으로 빗물이 들어갈까 우려될 정도의 들창코로 보였기에 순결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유카리안 영지 지하 감옥에 있던 셋은 현수의 의해 구함을 받았다. 하여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곳 시각으로 지난 4월 18일에 있었던 일이다.
이후 엘프족 전원에겐 귀환 명령이 떨어졌다. 소득도 없는 일에 위험만 가득하다 판단한 것이다.
이후 엘프들은 날마다 세계수 아래에서 기도만 했다. 새로운 후계목을 내려달라는 청원을 신께 바쳤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러다 후렌지아로부터 눈이 번쩍 뜨이는 보고를 받았다. 아리아니를 보았다는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하여 이렇듯 달려온 것이다.
“혹시 아리아니님에게 연락할 방법은 없으신지요?”
“글쎄요? 연락을 하자면 못할 것은 없겠지만…….”
일부러 말꼬리를 흐리자 다급한 표정을 짓는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세수 800이 넘은 족장이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그만큼 마음이 다급한 때문일 것이다.
같은 순간, 뒤쪽에 앉은 후렌지아는 눈빛을 빛내고 있다.
아공간에서 소파 등을 꺼내다 실수로 컴파운드 보우까지 딸려 나왔는데 그걸 눈여겨보고 있는 중이다.
300파운드(136㎏)나 되는 장력을 지닌 놈이다. 그렇기에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다는 걸 안 모양이다.
이것의 사거리는 1489.30m이다. 여기에 각종 마법이 인챈트된 결과 현재의 사거리는 약 4,500m짜리가 되었다.
거의 사기 수준이다.
게다가 화살의 비행 속도 또한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헤이스트가 인챈트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괴력 또한 엄청나게 늘어나 있다.
뿐만이 아니다. 촉에 오러를 실으면 웬만한 철검은 그냥 뚫고 들어간다. 검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혹시 저 활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활이요? 아, 이거. 그러시죠.”
선선히 활을 건네주자 후렌지아는 기다렸다는 듯 요모조모를 살피더니 시위를 당겨본다.
마음대로 되지 않자 힘을 줘서 당긴다.
여인의 몸인지라 엘프라 하지만 300파운드는 힘에 겨운 듯 바들바들 떨며 시위를 당겼다.
“이이이이잇! 헉!”
피이잉―!
힘에 부쳐 시위를 놓자 날카로운 파공음이 난다.
“한번 줘봐.”
곁에 있던 사내 엘프가 활을 받아 시위를 당겨본다. 남자라 할지라도 쉽지 않는 듯 이마에 핏대가 선다.
“이잇! 윽!”
피이이잉―!
너무도 강한 장력에 시위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자 이번엔 조금 더 긴 파공음을 내며 원상으로 되돌아간다.
“이 활 누가 쓰는 건가요?”
“이거요? 조금 세죠?”
현수가 피식 미소를 짓자 후렌지아가 설마 하는 표정이다.
“그거 혹시 마탑주님이 쓰시는 건가요?
“안 믿어지죠? 마법사가 활을 쏜다는 게.”
“솔직히 그러네요. 근데 정말 그 활을 다루실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그러니까 가지고 있죠.”
현수는 문득 장난기가 돋아 야릇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한번 쏴보세요.”
“쏘는 건 어렵지 않는데 그럼 뭐 줍니까?”
“네?”
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던 후렌지아가 아미를 치켜 올리며 대꾸한다.
“진짜로 그걸 쏘면 엘프주 한 병 드리지요.”
“오오! 엘프주. 정말이죠?”
현수는 짐짓 술이 탐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엘프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거 몰라요?”
후렌지아는 현수가 자신과 대등한 나이인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선 10서클 대마법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높임말이다.
“좋습니다. 쏘죠. 그럼 밖으로 나가볼까요?”
현수가 활을 들고 밖으로 나가자 우르르 따라나선다. 장로급조차 시위를 당긴 채 버티질 못했다.
그런 활을 쏜다니 호기심이 돋은 것이다.
“흐음, 저기 저쪽에 흰색 바위 보이시죠?”
현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대략 2㎞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집채만 한 바위이다.
“설마 저걸 쏘아 맞춘다고요? 지금 장난해요? 활로 어떻게 저 먼 거리까지 화살을 날려요?”
후렌지아가 발끈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공간에서 화살 하나를 꺼냈다. 그리곤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시위를 당겼다.
“아! 저건… 오러?”
“우와! 화살촉을 봐! 오러야, 오러!”
모두의 시선이 화살촉에 쏠렸다. 하얗다 못해 시퍼런 빛을 뿜고 있다.
“헐! 세상에 맙소사! 보우 마스터야, 보우 마스터!”
“우와! 진짜 보우 마스터?”
후렌지아의 눈마저 커진다. 그 순간 시위를 놓았다.
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콰아아앙―!
2㎞ 전방에 있던 흰 바위가 폭발하며 무너져 내린다.
“세상에 맙소사!”
“헐! 어떻게 저런 일이……!”
“세상에! 마법사라면서 어떻게……!”
모두들 감탄사를 터뜨린다. 그중엔 후렌지아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아르센 대륙에서 가장 활을 잘 쏘는 종족이 바로 엘프이다. 그런 엘프조차 보우 마스터가 되지 못했다.
수백 년 동안 활을 다뤘음에도 그러하다. 그런데 눈앞의 마탑주는 아주 손쉬운 일을 하듯 오러 실린 화살을 쏘았다.
“혹시 보우 마스터이신가요?”
“어쩌다 보니……. 한때 라이세뮤리안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익힌 결과지요.”
“……!”
엘프들 모두 입을 딱 벌린다.
그리곤 경외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여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지경으로 고요해졌다.
엘프들이 활을 아무리 잘 쏜다 해도 2㎞를 날리진 못한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방금 현수가 보여준 것과 같은 파괴력은 가질 수 없다.
표적을 10m 앞에 놓고 쏴도 마찬가지이다. 활을 다루는 종족으로서 존경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수는 문득 개구진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활도 있는데 한번 볼래요?”
“다른 활이요?”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할 때 아공간에 담겨 있던 각궁을 꺼냈다. 각궁 장인이 만든 명품이다.
엘프들은 각궁이 자신들이 다루는 활과 형태가 달라 고개를 갸우뚱한다. 너무 작아서 장난감으로 만든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살을 꺼내 시위에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