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65화 (764/1,307)

# 765

“흐음! 일단 아리아니에게 다녀와야겠군. 좌표가… 흐음, 여기 있군.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안개처럼 스러진 현수의 신형이 나타난 곳은 라세안과 온 적이 있는 커다란 호숫가이다.

그때 그날처럼 여전히 잔잔하다.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는데 신비스럽다는 느낌이다.

[아리아니! 나 하인스인데 지금 방문해도 돼?]

마나에 의지를 실어 수면 아래로 보내고 대략 1분쯤 지났을 때다.

퐁―!

수면에서 뭔가가 솟아나오며 동심원이 그려진다.

“하인스? 정말 하인스가 다시 온 거야?”

키는 30㎝쯤 되며 날개 달린 존재의 음성엔 반가움이 가득했다.

“그래. 하인스 맞아. 잘 있었지?”

지난 8월에 보았으니 거의 다섯 달 만의 만남이다.

“아아! 어서 와! 어서 와! 반가워! 잊지 않고 찾아줘서!”

아리아니는 골드 드래곤 켈레모라니가 마나의 품으로 돌아간 이후 처음 만난 하인스가 다시 방문한 것이 정말 기쁜 듯 가까이 다가와 볼을 비빈다.

“그래, 반가워. 잘 있었지?”

손을 내밀어 작은 몸을 쓰다듬으려다 멈췄다. 키는 30㎝밖에 안 되지만 완전한 여성체인 데다 벗은 몸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아리아니는 현수의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작기는 하지만 들어갈 곳과 나올 곳이 확연하기에 다소 민망했으나 티를 내진 않았다.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레어로 가. 욕심 없는 하인스는 얼마든지 들어가도 되니까. 어서 따라와.”

말을 마친 아리아니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수면 아래로 들어가 버린다.

퐁―!

“흐음, 옷 젖는 거 싫은데. 쩝, 할 수 없지. 플라이!”

레어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에 일단 몸을 띄웠다. 그리곤 레어 상공에 당도하자 마법을 바꿨다.

“매직 캔슬! 퍼펙트 쉴드!”

풍덩―!

현수의 몸이 중력에 따라 수면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서 커다란 파문을 만들어낸다.

“이런 제길!”

퍼펙트 쉴드 마법은 전신을 마나로 이루어진 구체로 둘러싸는 것이다. 전방위로 쇄도하는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마법적 공격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구상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쉴드 내부에 공기가 문제가 되었다. 이로 인한 부력 때문에 가라앉지 않는 것이다.

“으이그, 매직 캔슬!”

쉴드가 사라지자 현수의 신형이 수면 아래로 내려간다.

‘이럴 때 쓸 마법도 하나 만들어야지. 이게 뭐야? 속옷까지 홀랑 다 젖었잖아.’

투덜거리며 수면 아래로 내려간 현수는 유영하여 레어로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마나 농도가 짙어짐이 느껴진다.

‘흐음, 이러다 언젠가는 다 사라지겠군.’

“어서 와!”

“응, 그래. 여긴 변한 게 하나도 없네.”

“그렇지, 뭐. 우선 옷부터 말려.”

현수의 옷에선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이베포레이션!”

건조 마법이 구현되자 잠시 뿌연 수증기 속에 갇히게 되었다.

“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은데?”

“그렇지? 그동안 작은 깨달음이 있었거든.”

“축하해! 아참, 잠깐만 기다려 줘!”

아리아니가 앙증맞은 날개로 어디론가 사라지자 여전히 수면 아래 잠들어 있는 켈레모라니의 동체가 눈에 띈다.

“또 왔네요.”

“……!”

영혼을 잃은 드래곤이 대답할 리 있겠는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공간 오픈!”

아공간을 열어 무농약 당근 주스와 식혜를 꺼냈다. 이때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신형이 있었다.

“하인스, 나 어때?”

“……!”

170㎝ 정도 되는 늘씬한 여인이 천천히 걸어나온다.

“아리아니……?”

“그래, 여기 나 말고 또 누가 있어? 나 어때 보여?”

“헐!”

현수는 나직한 탄성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현수도 남자이기에 대학 다닐 때에는 란제리 모델의 사진이 눈에 뜨이면 자세히 살피곤 했다.

현재 아리아니는 망사로 만들어진 브래지어와 팬티 차림이다. 이전에도 그렇게 느꼈지만 충격적으로 섹시하다.

헤어질 때 티셔츠와 스키니 청바지를 준 바 있다. 그런데 그건 걸치지 않은 상태이다.

아무래도 거추장스러운 모양이다.

“아, 아리아니, 예쁘긴 한데 왜 그것만 입었어? 내가 그거 위에 입는 것도 줬잖아.”

“아, 그거? 그것도 입어야 해? 잠깐만.”

뒤돌아서는 아리아니의 섹시한 엉덩이가 실룩인다. 차마 시선을 줄 수 없어 얼른 고개를 돌렸다.

켈레모라니가 평생 동안 모은 소장품들이 잘 전시되어 있다. 물론 먼지 한 점 묻지 않은 상태이다.

“이제 괜찮아 보여?”

“……!”

흰 티와 스키니 청바지만을 걸쳤을 뿐이다.

그런데 청순, 요염, 섹시, 백치, 우아, 성결, 고고함 등이 한꺼번에 느껴진다.

“나 어때 보이냐니까?”

말을 하며 한 발짝씩 다가서는데 입이 열리지 않는다.

카이로시아, 로잘린, 스테이시, 케이트, 다프네, 그리고 이리냐, 테리나 같은 미녀들을 보았음에도 너무도 아름답다 느껴진 때문이다.

“어? 어! 괘, 괜찮아. 아니, 아주 좋아. 예뻐.”

“호호! 그래? 호호! 호호호!”

아리아니는 아주 기분이 좋은 듯 예쁘게 웃는다. 이러다 현혹될까 싶은 생각이 들기에 얼른 용무를 꺼냈다.

“아리아니, 부탁이 있어서 왔는데, 혹시 도와줄 수 있어? 참, 이거 먹어.”

꺼내놓은 당근주스와 식혜를 건네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주 맛있는 거야. 몸에도 좋고.”

“그래? 하인스가 주는 거라면…….”

아리아니는 당근 주스 먼저 마셨다.

“와아아! 이거 맛있네. 이건 색깔이 다르니까 또 다른 맛이겠지?”

이번엔 식혜를 마셨다.

“달아! 아주 달아! 흐음, 너무 달콤해. 고마워, 이런 걸 맛보게 해줘서. 그나저나 내 도움이 필요해? 호호, 하인스의 부탁이라면 기꺼이 들어줄 수 있지. 뭔데?”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세계수가 있는데 시들고 있어.”

“세계수가 시들어?”

“응. 아리아니는 숲의 요정이니까 도와줄 수 있지?”

“그럼 나더러 여기서 나가라고?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켈레모라니님이 레어의 청결 상태를 늘 유지하라고 했단 말이야.”

아리아니의 표정이 금방 새침해진다.

“그럼 영원히 여기에 묶여 있어야 하는 거야?”

“저기 계신 켈레모라니님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을 하며 수면 속 드래곤의 사체를 가리킨다.

“세계수가 시들어 버리면 안 되잖아.”

“그건… 그렇지만 난 여길 떠날 수 없어.”

아리아니의 고개가 좌우로 살랑인다. 돕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유감이라는 표정이다.

“으음!”

오기만 하면 쉽게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리아니와 헤어질 때 분위기가 매우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난관이 기다리기에 저절로 나직한 침음이 나온다.

“그럼 방법이 없어?”

“응. 난 여길 늘 청결하게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조금도 생각해 볼 여지가 없다는 듯 단호한 표정이다.

“그럼… 혹시 내가 여기에 보존 마법을 걸어주는 건 어때?”

“보존 마법?”

“응. 보존 마법이 걸리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아. 심지어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양도 확연히 줄어들지.”

“정말? 정말 그렇게 하면 켈레모라니님의 몸이 마나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속도가 늦어져?”

아리아니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런 방법이 있었느냐는 표정이다. 보아하니 마법을 잘 모르는 듯하다.

“당연하지! 보존 마법이 걸리면 이곳엔 먼지 한 점도 늘어날 수 없어. 모든 변화가 억제되는 거거든.”

“오! 그런 수가 있었구나.”

아리아니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감탄사를 터뜨린다.

“그래주면 나가서 날 도와줄 수 있지?”

“그거? 그럼, 그럼. 근데 문제가 하나 더 있어.”

“뭐지? 어려운 거야?”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린다는 느낌에 살짝 속이 탔다.

“나는 종속되어야 존재할 수 있는 존재야.”

“응? 뭐라고? 그게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존재라는 어휘가 반복된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속하지 않으면 존재하기 어렵다는 뜻이야. 나는 나를 속하게 하는 존재의 마나가 있어야 하거든.”

“속해? 존재? 아……!”

이제야 무슨 뜻인지 이해되었다는 뜻으로 짧은 감탄사를 터뜨릴 때 아리아니가 손짓한다.

“주인님이 저기 저렇게 계시는 것도 나 때문이셔.”

켈레모라니의 마나가 대기 중으로 다 흩어져 버리면 아리아니 역시 증발하듯 사라지게 된다.

생시에 아리아니를 가까이했던 켈레모라니는 조금이라도 더 존재하라는 뜻과 레어를 잘 보존해 달라는 뜻으로 다른 드래곤과 다른 죽음을 맞이했다.

본인의 마나가 아주 서서히 대기 중으로 흩어지게 한 것이다. 마법이라 하여 완전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보존 마법이 걸려도 그 효과가 영구한 것은 아니다. 마법진이 유지되게 하는 마나석에 담긴 마나가 모두 소진되면 보존 마법은 무효가 된다. 지금처럼 결계를 이루게 한 마법진이 깨질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리아니를 너무도 아꼈던 켈레모라니는 마나석 대신 드래곤 하트를 사용했다. 그 안에 담긴 마나가 간신히 마법진이 유지될 정도로만 흩어지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렇기에 사후 1,000년이 흘렀지만 보존 마법이 여전히 유지되는 것이다.

켈레모라니는 그것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존마법진 밖에 결계를 쳤다.

이 세상 마법진이라도 마나 효율이 100%인 것은 없다.

다시 말해 마법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 이외에 무의미하게 흩어지는 마나가 있다.

그것마저 잡아두기 위해 결계를 친 것이다.

“아리아니, 내 마나 정도면 되겠어?”

세계수가 시든다니 데리고 나가기는 하는데 마땅한 수가 없기에 한 말이다.

“정말? 하인스가 날 종속시킬 거야?”

아리아니의 표정이 매우 밝다. 몹시 상기된 듯하다.

“내 마나로도 아리아니가 존재할 수 있다면.”

“되지! 당연히 돼! 주인님의 비늘이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아리아니는 몹시 기쁜 듯 환한 웃음까지 짓는다.

“주인님? 아, 켈레모라니? 그런데 켈레모라니의 비늘이라니? 그건 뭐지?”

현수의 물음에 아리아니는 더없이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아! 그래서 전능의 팔찌가 그랬던 거구나.”

이제야 팔찌에 박힌 마나석이 왜 늘 완충 상태였는지를 깨달은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이 비늘로 아리아니는 얼마나 버틸 수 있지?”

현수는 본인의 왼쪽 가슴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리아니의 비늘이 스며든 곳이다.

“하인스가 살아 있는 한은 언제까지나 그럴 거야. 주인님의 비늘은 사용된 마나가 다시 충진되도록 만들어진 거니까.”

“아……!”

비늘의 새로운 기능을 알게 되었기에 나직한 탄성을 냈다.

“그럼 내게 종속돼 줄 수 있겠어?”

“기꺼이! 하인스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종속되어 줄게. 대신 날 많이 아껴줘야 해. 주인님처럼.”

다시 수면 속의 켈레모라니를 바라본다.

“알았어. 그렇게 해줄게.”

현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이 종속된다는 의미를 아직은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종속의 예식을 해줘.”

“종속의 예식? 그건 어떻게 하는 거지?”

“그건… 으음, 하인스가 내게 입맞춤을 해주면 돼.”

“입맞춤? 그래, 알았어.”

현수는 여러 여인과 입맞춤을 한 바 있다.

권지현, 강연희, 이리냐, 그리고 카이로시아 이외에도 예카테리나가 있다.

당연히 거부감이 적다. 그렇기에 얼른 하자는 듯 입술을 내밀었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하여 실눈을 뜨고 바라보니 아리아니가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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