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66화 (765/1,307)

# 766

“왜?”

“몰라서 물어? 하인스가 이제부터 내 주인이 되는 거잖아. 근데 종속된 내가 어떻게 입맞춤을 해? 주인이 해야지.”

“아, 그래? 알았어. 이리 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까이 다가선다. 현수는 그런 아리아니를 당겨 안고 입맞춤을 했다.

“으읍!”

그저 입술과 입술이 닿았을 뿐이다.

그런데 아리아니의 눈이 확연히 커진다. 하지만 이내 닫히고 만다. 대신 속눈썹이 아주 심하게 떨리고 있다.

종속의 인(印)은 주인 될 존재가 아리아니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시 말해 신체접촉만으로도 가능하다. 물론 상호 간에 종속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리아니는 이를 부풀려 이야기했고, 지금 그 결과를 맛보는 중이다. 아무튼 아리아니는 두 입술이 맞닿는 순간 축 늘어졌다. 온몸의 힘이 한순간에 빠져버리는 느낌을 받은 때문이다.

하여 현수가 그녀의 교구를 받아 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입술을 맞대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먼저 뗄 수도 없다.

아리아니가 알아서 해주겠지 생각한 것이다.

같은 순간 아리아니는 극치의 황홀경을 헤매는 중이다.

워낙 예민한 촉각 및 시각과 미각 등을 가진 존재이기에 입맞춤만으로도 극치에 이른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흐으음!”

아리아니가 나직한 비음을 낼 때 현수는 그녀의 허리를 받아 안아야 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된 거야?”

약 2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그런데 아리아니의 양 볼이 새빨갛게 달아 있다. 부끄럽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또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 때문이다.

“주인님은 이제부터 영원히 내 주인님이에요.”

“다행이네. 내 수명이 길어서.”

“네, 앞으로 1,170년 동안 잘 부탁해요.”

아리아니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도 몸을 배배 틀고 있다.

“뭐? 1,170년? 970년이 아니고?”

“네, 주인님의 수명은 1,200년이니까요. 그런데 언제 여신의 가호까지 받았어요? 신성력으로 바디체인지가 가능한지 이제야 알았네요.”

아리아니는 마법만 익히지 못했을 뿐 상당히 많은 독서량을 자랑한다. 읽은 책 중엔 기사와 마법사가 어떻게 바디체인지를 겪는지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아르센 대륙 역사상 신성력에 의한 바디체인지는 없었다. 그렇기에 다소 놀란 표정이다.

“신성력에 의한 바디체인지라고?”

현수는 신전에서 강렬한 빛줄기로 세례 받을 때를 떠올렸다. 그리곤 어찌 된 영문인지를 추론해 냈다.

여신의 뜻을 받들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전신을 관통한 전율이 바로 신성력에 의한 바디체인지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참! 하나 까먹고 말 안 한 게 있어요. 나는 늘 하인스님 곁에 머물게 돼요. 종속되었으니까요.”

“늘?”

“네. 늘 곁에서 잘 모실게요. 뭐든 필요하면 요구하셔도 돼요. 저는 주인님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으니까요.”

“…만일 내가 다른 차원으로 간다면 어찌 되는 거야?”

“그때도 저는 주인님을 따라가요. 늘 곁에 있어야 하니까요. 주인님의 마나로부터 멀어지면 저는 흩어지거든요.”

“헐!”

현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리아니의 말대로라면 지구에서 지현, 또는 연희와 잠자리를 할 때에도 근처에 있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차원 너머로 가실 땐 제가 머물 공간을 주셔야 해요. 아공간도 괜찮아요.”

“정말? 아공간엔 공기가 없어서 숨도 못 쉬는데?”

“전 인간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오래 머물진 못해요. 그러니 도착하면 꺼내주셔야 해요.”

현수는 아리아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 결과 둘 사이의 최대 거리가 5㎞까지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대화하는 동안 레어 곳곳에 보존마법진을 그려놓았다.

그 마법진에는 마나집적진이 중첩되어 있다. 그냥 흩어지고 있는 켈레모라니의 마나를 재활용하려는 것이다.

레어 입구에 가장 많이 마나가 새어 나가는 곳에도 마나집적진이 그려졌다.

그곳엔 혈운의 마탑에서 가져온 공갈 마나석이 놓였다.

레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와 호수 속에 녹아 있는 마나를 끌어모으려는 의도이다.

“자, 이제 가요.”

아리아니가 생긋 미소 짓는다. 여전히 흰 티에 스키니 청바지 차림이다. 하여 너무도 아찔해 보인다.

한 가지 위안은 아무나 아리아니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리아니가 스스로 현신하여 보이게 하지 않는 한 상당한 수준의 정령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좋아, 내게 가까이 다가와.”

“걱정 말아요.”

아리아니는 기다렸다는 듯 현수의 품을 파고들었다. 왠지 포근하고 아늑한 기분이 느껴져서이다.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둘의 신형이 레어로부터 사라졌다.

9장 세계수가 시드는 이유

“저쪽이에요, 저쪽!”

현수는 아리아니가 가리킨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이실리프 자치령 인근으로 온 이후 플라이 마법으로 세계수를 찾아 나선 길이다.

그렇게 만 하루를 날았다. 토틀레아 일족이 머무는 숲은 바세른 산맥의 중심부에서 약간 벗어난 곳이다.

울울창창한 수림으로 뒤덮여 훤한 대낮이건만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하다.

그곳을 약간 지나치자 드넓은 초지가 나타난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대략 50,000여 평 정도 되는 넓은 공간이다.

이곳 중앙엔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오연히 서 있다.

멕시코 오악사카주엔 세계에서 가장 굵은 나무가 존재한다. 수령은 1,500년 정도 되는데 직경 11.62m, 밑동 둘레 48m, 높이 35.4m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피가 큰 나무가 있다. 수령은 2,300∼2,700년이다.

이 나무의 높이는 83.8m이고, 직경 11.1m, 밑동 둘레 31.3m, 부피 1,500㎥이다.

현수의 눈에 뜨인 이 나무는 높이 200m, 직경 30m, 밑동 둘레 100m, 부피 4,500㎥정도 된다.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과연……! 세계수답군.”

“근데 많이 시들었네요. 흐음, 잠깐만요.”

말을 마친 아리아니가 훨훨 날아 세계수로 다가간다. 그리곤 거대한 나무 곳곳을 옮겨 다니며 살피는 모습이다.

그러는 내내 세계수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세세히 살펴보았다. 워낙 큰 나무이기에 시간이 꽤 걸렸다.

“세계수의 뿌리에 오염된 게 닿아서 그래요.”

한참을 돌아다니고 온 아리아니의 말이었다.

“오염된 거?”

“네, 마족과 관련이 있는 거 같아요. 저쪽이에요. 가요.”

아리아니를 따라가 보니 너른 초지 중에서도 풀이 돋지 않은 곳에 이르렀다.

“여길 파 봐요. 깊이는 40m쯤 될 거예요.”

“알았어!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땅파기 마법이 구현될 때마다 2m 정도가 푹푹 팬다. 가로 세로 각기 3m 정도이니 약 18㎥ 정도이다.

지구에서 사용되는 굴삭기는 한 번에 2.6㎥가 대형이다. 따라서 디그 마법이 굴삭기보다 훨씬 효율적인 셈이다.

이십여 번이 지나자 마나의 양을 줄여 조심스레 디그 마법을 구현시켰다.

“저게 뭐지?”

확연히 다른 색깔이 눈에 뜨이는 것이 있다. 밑으로 내려가 그것을 살필 때 아니아니의 고함 소리가 들린다.

“그거 손대지 마요!”

“왜……?”

“그거 마족들을 봉인한 거예요. 전 주인님이 그랬어요.”

잠시 아리아니의 설명이 이어졌다.

5천 년쯤 전, 흑마법사들의 농간에 의해 마계가 열린 적이 있다.

그때 각종 마족이 그곳을 통해 중간계로 튀어나왔다.

약 3,000여 개체였다.

이들에 의해 수많은 인간이 학살당하자 중간계의 균형을 위해 드래곤들이 나섰다.

인간이 감당할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엔 헤츨링을 제외한 드래곤의 개체수가 1,000이 넘을 때였다. 그 모든 드래곤이 나서서 마족 사냥을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되었다. 마족을 죽이면 마계에서 환생하여 또다시 중간계로 되돌아오곤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마족을 죽이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여 당시의 드래곤 로드가 묘안을 냈다.

마족들을 생포하여 마나 구속구를 채운 뒤 결계 안에 가둔 뒤 영원히 봉인하자는 것이다.

그날 이후 마족들은 반쯤 죽은 채로 잡혀왔다.

모두에게 마나 구속구가 채워졌고 드워프들을 동원하여 만든 커다란 종 모양의 감옥에 갇혔다.

이것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감옥이다.

마지막 마족을 잡아넣은 후 뚜껑을 덮고 녹인 쇳물로 접합시켜 버린 때문이다.

마종이라 불린 감옥은 겉면에 수많은 마법진이 그려졌다. 마족들이 힘으로 깨거나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지하 깊숙한 곳에 묻혔다. 그것의 꼭대기로부터 지표까지는 작은 대롱 하나가 있을 뿐이다.

죽으면 또다시 마계에서 환생하기에 죽지 못하도록 가느다란 숨구멍 하나만 허용한 것이다.

“이게 마종이라고?”

“네! 생긴 모양을 들어보니 확실해요. 전 주인님도 그때 나섰다고 하셨거든요.”

“그래?”

왠지 음산한 기운에 현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흐음, 이 마종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때문에 세계수가 시들고 있다는 거지?”

“네! 확실히 그래요.”

“흐음, 이걸 꺼내서 다른 곳에 묻으면 어떨까?”

“안 돼요. 이곳에 묻은 건 가장 결계의 힘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는 곳이라 그렇다고 했어요.”

아리아니의 말이 또 이어졌다.

듣고 보니 마종을 다른 곳으로 옮겨선 안 될 듯하다.

“어쩌지……?”

잠시 상념에 잠겼던 현수의 눈이 뜨인 것은 대략 5분 정도 지난 후였다.

“맞아! 그거! 지구에 가봐야겠네.”

현수가 생각해 낸 것은 콘크리트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바다로 유출된 세슘이 문제가 되자 도쿄전력은 해저를 콘크리트로 덮는 방안을 추진했다.

시멘트와 점토가 혼합된 고화재(固化材)를 투입해 바닥에 쌓여 있는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의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다.

두께는 약 60㎝다.

세슘과 같은 위험물질도 막아내니 콘크리트라면 음산한 기운을 막는 역할을 충분히 할 듯싶다.

마종은 반지름 5m, 높이 15m짜리 원추형이다.

이것 전체를 60㎝ 두께로 덮으면 세계수가 시드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 될 것이다.

“가만히 있자, 그럼 콘크리트가 얼마나 필요하지? 약 140㎥가 필요하군. 철근도 있어야 하고…….”

현수는 머릿속으로 마종을 감쌀 구조물의 설계를 해보았다. 고강도 콘크리트를 사용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는 철골조에 비하여 6배 이상의 강성을 갖는다.

대신 돈이 많이 든다.

“쩝! 그 정도는 부담해야지.”

이제 아르센 대륙은 본인뿐만 아니라 카이로시아, 로잘린, 스테이시, 케이트, 다프네와 그 후손들이 살아갈 곳이다.

이제 이곳의 일원이다. 이번 일이 잘되면 엘프 일족과의 친밀감이 더해질 것이다. 손해 볼 일은 아니다.

“좋아, 그렇게 하자.”

“뭘 어떻게 하려구요?”

“으응! 방법이 있어. 근데 정말 아공간에 들어가 있어도 버틸 수 있는 거지?”

“네, 어느 정도는요.”

아리아니는 날갯짓으로 눈높이를 맞추며 방긋 웃는다.

“다행이네. 근데 시간은 얼마나 되지?”

“글쎄요? 아공간에 들어가 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아무튼 잠시는 버틸 수 있을 거예요. 설마 차원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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