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67화 (766/1,307)

# 767

눈을 크게 뜨며 어서 대답해 달라는 표정이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알았어, 차원이동 하자마자 꺼내줄게.”

“호호! 네에.”

“아공간 오픈!”

아리아니가 환히 웃을 때 아공간이 열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 안으로 들어간다.

“날 잊지 말아요.”

“걱정 마!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르릉―!

세계수 앞에 있던 현수의 신형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 * *

“왔군. 아공간 오픈!”

말 떨어지기 무섭게 아공간이 열리고 기다렸다는 듯 아리아니가 튀어나온다.

“어머! 여긴 어디예요?”

아리아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기물들이 사방에 널려 있기 때문이 아니다.

대기 중 마나가 너무 희박했기 때문이다.

“여긴 지구라는 곳이야! 내가 태어난 곳이지. 아르센과는 전혀 다른 곳이니까 주의할 게 많을 거야.”

“…네에.”

사방에 널린 이상한 것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물건이 많은 까닭이다.

“저기 저 침대에서 자고 있는 사람은 내 아내야.”

“주인님의 반려인 거예요?”

“그래! 사랑하는 내 아내지.”

“네에, 알았어요.”

지구 시각으로 지금은 2014년 2월 18일 월요일 아침이다.

현수는 아리아니를 데리고 다니며 곳곳을 소개해 주었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나지라노와 그레셀다가 반갑다는 듯 다가오다 멈칫거린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리아니를 느낀 듯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주인과 함께 있다면 해롭지 않은 존재라 여긴 모양이다.

“잘들 있었지?”

어젯밤에도 보았다. 지현과 외출했다 돌아왔을 때에도 지금처럼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었다. 그래서 목덜미와 머리를 북북 긁어주었다.

이건 리노와 셀다의 경우이고 현수에겐 아니다. 아르센에 제법 있다 왔으니 오랜만에 본 듯한 느낌인 것이다.

“늑대인데 힘이 많이 약하네요.”

현수의 어깨 위에 앉은 아리아니가 한 말이다.

“그래……? 하긴 아르센의 늑대들이 조금 더 억세지.”

현수의 말처럼 아르센 대륙의 늑대는 리노와 셀다보다 몸집도 더 크고 기운도 더 세다.

생존하려면 그래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녀석들 이러는 건 숲의 기운을 잃어서 그래요. 제가 좀 도와줄까요?”

무엇을 어찌 돕는다는지 알 수 없지만 해되지는 않을 듯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리노와 셀다는 어떠한 방범 장치보다 확실하고 강력하다. 더 좋아진다면 이익이 될 일이다.

현수의 어깨 위에 있던 아리아니가 리노와 셀다에게 다가가 뭔가 주문을 외우는 듯한 몸짓을 한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리노와 셀다의 곁에는 몇 그루의 무궁화나무가 있다.

현재는 추운 겨울인지라 가지만 앙상하다. 그런데 이것들이 서서히 자라나고 있음이 확연하다.

가지가 조금씩 굵어지면서 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리노와 셀다는 마치 마법에 걸린 듯 가만히 서 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이 녀석들도 그렇지만 나무들도 힘이 없어요. 아무래도 제가 좀 나서야 할 듯해요.”

“그래? 편한 대로 해.”

현수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어떤 결과를 빚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지현이 언제 일어났는지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벌써 애들하고 다 놀아준 거예요?”

리노와 셀다 곁에 있는 걸 본 모양이다.

“응! 잘 잤어?”

“네에. 아주 푹 잤어요. 북어국 끓이려 하는데 괜찮죠?”

지현은 분주한 손길로 북어를 다듬고 있다.

“응, 좋아. 근데 내가 도와줄 일 없어?”

“왜 없겠어요? 냉장고에서 김치랑 꺼내주세요.”

“오케이!”

식탁 위에 밑반찬을 꺼내놓고 솥에서 밥을 펐다. 식이섬유가 많은 현미 등이 섞여 있는 밥이다.

“일하는 거 힘들지 않아?”

“전혀요! 자기랑 결혼하고부터 일하는 게 더 즐거워요.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이따가 퇴근하면 자기를 또 만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오히려 행복해요. 자기랑 결혼하길 정말 잘했다 싶어요.”

“…고마워! 그렇게 생각해 줘서.”

현수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지현의 뒤로 다가가 백허그를 해줬다.

“근데 얼마나 기다려야 해?”

“조금만요.”

잠시 후, 둘은 애정이 담뿍 담긴 표정으로 식사를 했다.

[아리아니! 나 지금 멀리 가야 해.]

차고에서 차를 꺼내며 마나에 의지를 실어 보내자 아리아니가 날아와 어깨 위에 앉는다.

“자!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이네. 갈까?”

“네에, 가요!”

지현이 현수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다.

키를 돌리면 ‘부르릉’ 하는 소리가 들려야 한다. 그런데 현수의 노란색 스피드는 그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RPM 게이지의 바늘만 움직일 뿐이다.

리모컨을 누르자 차고의 문이 열린다.

잠시 후, 노란색 스피드는 경호차량에 둘러싸인 채 서초동으로 향했다. 지현 먼저 출근시키려는 의도이다.

“고마워요.”

“고맙긴 당연하지. 이따 봐.”

“네, 조심해서 운전하세요.”

차에서 내린 지현이 깜찍한 손짓을 하며 환히 웃는다. 현수 역시 미소 지으며 창문을 닫았다.

지이잉―!

유리창이 닫히자 지현이 돌아선다. 이때 근처에 있던 사내 들이 웃으며 인사를 한다.

“권 사무관님! 보기 좋네요.”

“쳇! 우리같이 외롭고 불쌍한 솔로들 염장 지르려 일부러 이러시는 거죠?”

“그러게! 모태 솔로들은 나가 죽으라는 건지.”

“에이, 검사님들! 왜들 이러세요?”

지현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그제야 마주 절을 한다.

아직 현수의 차가 떠나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이다.

남종우, 김종철, 박태화, 심계섭이 이들의 이름이다.

사법연수원 동기들인 이들은 ‘권(權)바라기’라는 모임의 일원이기도 하다.

명칭 때문에 장차 권력의 중심부에 서길 바란다고 오해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이 바라는 권(權)은 지현을 의미한다.

어느 날 대구에서 전근 온 너무도 아름다운 권지현 사무관에게 홀딱 반했던 것이다.

넷은 누가 되었든 지현과 인연이 맺어지는 친구가 있거든 전폭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

하여 호시탐탐 다가갈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현수와 결혼해 버렸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어버린 이들은 모임의 명칭을 주(酒)바라기로 바꿨다.

인생의 쓰라린 맛을 술로 풀고 있는 것이다.

“크으! 술 냄새! 설마 어제도 밤새 술 마신 거예요?”

“밤새는 아니고 늦은 저녁까지입니다. 우리에게 낙이 뭐가 있습니까?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불쌍한 우리끼리 뭉쳐서 한잔한 겁니다.”

남종우 검사는 아직 술이 덜 깬 듯 발음이 약간 샜다.

“맞습니다. 우린 밤 샌 게 아니라 늦은 저녁까지 마셨을 뿐입니다. 그치, 김 검사!”

박태화 검사의 말에 김종철 검사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그런데 권 사무간님.”

“저, 사무간 아니고 사무관인데요.”

“쳇! 알았어요. 사무관님! 근데 앞으론 우리 출근 시간에 출근하지 말아요.”

“네? 왜요?”

“솔직히 눈꼴시려 볼 수가 없습니다. 다정해도 너무 다정한 거 아닙니까? 다정한 건 침대에서나…….”

“어이! 김 검사, 미쳤어? 권 사무관님, 어서 들어가십시오. 이 친구가 아직 술이 덜 깼나 봅니다.”

심계섭 검사가 얼른 들어가라는 듯 손짓한다.

“네에. 알았어요!”

지현은 고개를 꾸벅 숙여주고는 사무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네 사내의 입은 헤 벌어져 있다. 꿈에서도 그리던 여인이다.

얌전하고, 똑똑하고, 아름답고, 섹시하고, 우아하고, 부드러운 여인이다. 남의 여자가 되었지만 뒷모습만이라도 눈에 담아두려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후후……!”

룸미러로 일련의 상황을 지켜본 현수는 나직한 웃음을 지으며 액셀러레이터를 힘주어 밟았다.

부우우웅―!

노란색 스피드는 서초동을 떠나 천지건설 본사 쪽으로 이동했다.

이 차의 뒤로 육군, 공군, 해군의 경호요원들이 따른다.

레드마피아가 파견한 전직 스페츠나츠들과 토탈 가드 소속 경호원들, 그리고 국정원에서 보낸 요원들은 지현을 보호하기 위해 남아 있다.

강남역 사거리를 지날 즈음 휴대폰이 진동한다.

부르르르, 부르르르―!

현수는 귀에 꽂은 블루투스의 스위치를 눌렀다.

“음! 여보세요.”

“아! 부사장님.”

“박 과장님?”

“네, 박진영 과장입니다. 지금 통화 괜찮으십니까?”

“운전 중이지만 통화는 가능해요.”

“그렇다면 보고 드립니다. 방금 아제르바이잔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만나 뵙기를 청합니다.”

“아! 그래요? 그 사람은 누구죠?”

“일함 알리예프(Ilham Aliyev) 대통령님 비서실에서 연락이 온 겁니다.”

“누구요?”

“아제르바이잔 대통령님이요. 대통령 비서실장께서 직접 연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요? 박 과장님은 누구와 접촉한 겁니까?”

“자한지르 아디고자로브(Jahangir Adigozalov) 석유공사 부과장입니다. 실무자지요.”

2013년 12월 서울 메리어트 호텔에서『제3차 국제에너지협력 심포지엄』을 개최되었다.

대한민국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공동작업이었다.

이때 자한지르 과장이 참석하여 의제발표를 하였다. 박 과장은 그의 연락처를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선을 댔다. 그리곤 그를 만나기 위해 직접 아제르바이잔까지 다녀온 바 있다.

“언제까지 오랍니까?”

“최대한 빨리 와주길 희망한답니다.”

“알겠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요?”

“현재로선 이게 가장 시급한 사항입니다.”

“좋아요, 지금 회사로 가는 중이니까 잠시 후에 봅시다.”

“네, 부사장님!”

통화를 마친 현수는 실소를 지었다.

아제르바이잔은 1992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공화국이다. 석유와 가스가 많은 자원부국이기도 하다.

인구는 1,000만 명이 되지 못하지만 영토는 86,600㎢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99,720㎢이다.

“일함 알리예프! 2012년에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지?”

언젠가 읽었던 기사 내용이다. 너무 머리가 좋아져서 웬만한 것들은 다 기억하는 것이다.

“90억 달러를 차관으로 주고 뭘 달라고 할까? 석유나 가스를 달라 할까? 다른 건 뭐가 있을까?”

아제르바이잔은 새롭게 발전하는 나라이다. 찾아보면 할 일은 많을 듯싶다.

현재는 에너지 부문이 수출의 95%, GDP의 50%, 재정수입의 60%를 차지할 만큼 산업구조의 편중이 심하다.

하여 구조적으로 국제유가 변동에 취약성을 안고 있다.

세계의 경기침체와 맞물려 유가가 하락하면 향후 경제전망이 그리 좋지 못하다.

국제 신용평가사 중 피치가 정한 등급은 BB+이다.

원리금 지급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부적격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대통령은 3선 금지를 폐지하는 헌법개정안이 통과된 후 3선에 성공했다. 장기집권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다른 국가나 회사라면 몰라도 현수가 관여하게 되면 원리금 미지급이란 문제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흐음! 석유 가격이 하락하면 외화가 줄어들 것이라는 뜻인데 그럼 우리는 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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