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68화 (767/1,307)

# 768

현수는 손톱 끝으로 핸들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제르바이잔에 진출해서 달랑 공사 하나만 하고 빠져나올 생각이 없는 것이다.

역삼역을 지난 즈음 휴대폰이 또 한 번 진동을 한다.

부르르르, 부르르르―!

“여보세요.”

“현수냐? 나 주영이다. 방금 금융위원회로부터 연락받았는데 이실리프 뱅크 최종허가가 떨어졌단다.”

“아! 그래? 잘되었네.”

“뭐냐? 이 반응은……!”

너무도 선선히 대꾸해서 그런지 달아올랐던 주영의 음색이 급격하게 가라앉는다.

“우리에게 결격 사유가 없잖아. 그러니 당연히 허가가 떨어질 거라 생각했다.”

“너어! 아무튼 시간 내서 좀 들러라. 허가가 떨어졌으니 의논할 일이 많다.”

“알았다! 출근했다가 곧바로 가마.”

“여기가 니 회사야. 천지건설은 심심해서 다니는 데가 되어야 한다고.”

“알았어. 최대한 빨리 갈게. 성질 좀 죽여라.”

“하여간 말은……. 너 올 때까지 기다릴 거다. 나 엄청 바쁜 거 알지?”

“최대한 빨리 볼일 보고 갈게. 저쪽 일도 급해서 그래.”

통화를 마친 후 이번엔 은행에 관한 생각을 했다.

“빌딩 매입 절차는 다 끝났나? 사람들도 뽑아야 하고, 집기며 보안팀 구성 등 할 일이 태산이겠네.”

문득 주영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실리프 뱅크가 설립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곧 결혼할 텐데……. 쩝! 헤드 헌팅을 해야겠군. 그나저나 은행 설립이 허가되었으니 이실리프 자치구마다 해외지점 설치해야겠네.”

이제 곧 수많은 사람을 고용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는 가급적 이실리프 뱅크의 계좌로 보내질 것이다. 아울러 달러가 아닌 한화로 지급할 생각이다.

달러화뿐만 아니라 엔화와 위안화의 가치가 동반 폭락될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은 많고 사람은 없고. 나 혼자 다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마법을 적극적으로 써야겠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천지건설 본사에 당도하였다. 임원이 된 이후엔 경비실에서 발레파킹13) 해준다.

하여 현관을 통해 엘리베이터 홀까지 이동했다. 그러는 동안 경비들이 깍듯한 경례를 붙인다.

모두 나이 많은 분이기에 일일이 고개 숙여 답례를 하는 것도 고역이다.

띵―! 스르르르릉―!

“어머! 부사장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김지윤 과장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다. 어디론가 볼일을 보려 내려오던 모양이다.

“어디 가요?”

“네? 아, 네에. 알아볼 게 있어서 외출하려던 차입니다.”

“그래요? 그럼 다녀오세요.”

현수가 한 발짝 옆으로 비켜서자 김 과장은 얼른 내린다. 하여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여놓자 다시 올라탄다.

“안 가요?”

“회의 참석하려구요.”

“바쁜 일이 아니었나 보네요.”

“석유화학단지 공사를 하게 되면 어떤 일들을 하나 조사해서 보고서 작성하려 했거든요.”

지시가 떨어지기 전에 알아서 일하려던 모양이다.

“김 과장님!”

“네?”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아요?”

“그건 왜……?”

지윤은 무슨 의도냐는 표정을 지었다.

“인사기록 카드를 보니까 학창시절에 상당히 공부를 잘했더군요. 신화중학교와 덕원여고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내내 전교 1등이라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

지윤은 입사 지원할 때 남들과 다른 준비를 했다.

면접관이 확인할 것을 대비하여 중, 고등학교 학생부 사본과 대학교 전학년 성적표를 지참한 것이다.

당시엔 명문대 출신들도 픽픽 떨어지는 판이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웬만한 스펙으론 대기업 입사가 몹시 어렵던 시절이었다. 하여 나름대로 발버둥친 바 있다.

이력서 특기사항란에 학창시절 전교 1등 여러 번 경험이라고 쓴 것이다.

예상대로 면접관은 전교 1등을 몇 번이나 했는지 물었다. 이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며 성적표를 제출하였다.

중학교 때는 12번의 시험 중 10번 전교 1등을 했다.

고등학교에서도 12번 중 10번이나 차지했다.

대학교 전학년 평점은 A+이다.

이런 특이한 준비 때문이었는지 지윤은 합격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인사기록 카드에 성적표 사본이 첨부된 채 보관되었다.

그렇기에 지윤의 학창시절 성적을 현수가 알게 된 것이다.

학생부엔 성품에 관한 것도 기록되어 있다.

10장 은행 전무 해볼래요?

품행 단정하고, 정직하며, 매사에 솔선수범합니다.

온화하고, 사려 깊으며, 남을 잘 배려하는 착한 성품입니다. 또한 논리적이며, 이성적이지만 때론 감수성이 깊기도 합니다. 매우 명석하며 타의 모범이 됩니다.

이 정도면 최상의 평가이다. 이 중 정직하다는 것과 사려 깊다는 것을 떠올렸다.

“김 과장님! 천지기획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아직까지 명확히 정해진 업무가 없어 조금 혼란스럽지요?”

“네? 아, 네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천지건설에 있을 때와 다른 게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사장님께서 자리를 자주 비우셔서 업무방향 설정도 어렵구요.”

“그래서 말인데 한 번 더 자리를 옮겨볼 생각 있어요?”

“네? 어디… 로요?”

김지윤 과장은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는지 약간 말을 더듬고 있다.

“뭐, 그렇게 이상한 데 아니에요. 그냥 은행이에요.”

다행히도 엘리베이터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있다.

“네에? 저더러 은행에서 근무하라고요?”

“은행장을 대신하여 업무 전반을 아우를 두뇌가 필요해요. 김 과장님이 적격인 것 같아서 그래요.”

“제가요? 제가 어떻게 은행장을 대신해요?”

지윤의 동공이 급격히 확장된다. 놀랐다는 뜻이다.

평범한 은행 업무를 생각했는데 은행장 대리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여러 종류의 사람이 포진하게 될 거예요. 서로가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요. 그들을 컨트롤할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지윤은 사내연애를 하다 깨진 바 있다.

현재는 박진영 과장과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여 상처가 어느 정도는 봉합된 듯하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현재의 애인과 옛 애인이 있다면 상당히 신경 쓰일 것이다.

또한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뒷담화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럴 땐 떨어져 있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눈에 띄지 않으면 생각에서도 멀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제가 어떻게 은행엘……?”

지윤이 또 말끝을 흐린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한 때문이다.

“김 과장님이라면 아주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명석한 두뇌를 믿어보세요. 아셨죠?”

“네? 아, 네에.”

지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임시 직책은 전무입니다.”

“네에? 저, 저, 전무요?”

건설에서 기획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과장으로 일 계급 승진했다.

이런 일은 종종 있기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오히려 직위가 높아졌다면서 어머니는 무척이나 반기셨다. 급여도 따라서 오르니 일석이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과장에서 곧바로 전무로 승진하는 것은 상황이 다르다. 대기업에서 소기업으로 이직할 때도 이런 파격적인 진급은 없다.

하물며 은행이란다. 천기기획이 대기업 계열사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주 작은 조직일 뿐이다.

그런데 과장에서 차장, 부장, 이사, 상무를 뛰어넘어 곧바로 전무가 되라고 한다. 다섯 계급 승차이다.

대리에서 과장으로 진급된 날도 얼마 되지 않으므로 실제적으론 여섯 계급 승진이나 다름없다.

이쯤 되면 벼락출세이다.

당연히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잠시 얼이 빠진 때문이다.

현수가 지윤에게 전무 자리를 제안한 까닭은 그만한 위치에 있어야 전체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실리프 뱅크는 전 직원이 현수와 일면식조차 없다.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해서도 모른다.

구심점이 없으면 모래알 같은 조직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윤이 은행장으로부터 전격적인 신뢰를 받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구심점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전무라 하면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함부로 대들거나 깔보는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은행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지윤이 알고 있는 은행은 국민, 신한, 우리, 하나, 외환은행이다. 산업은행과 중소기업은행은 국영이고, 시티뱅크와 스탠다드차타드는 외국계이다.

이들 중 현수가 마음대로 전무 자리를 줄 수 있는 은행은 없다. 그렇기에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혹시 저축은행인가요?”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설립할 수 있고 규모가 작다. 이 정도라면 현수가 사비로도 일으킬 수 있다 생각한 것이다.

“아뇨! 시중은행이에요, 명칭은 이실리프 뱅크입니다. 내가 설립했죠. 이제 막 은행설립 인가가 떨어졌습니다. 하여 태동 단계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아……!”

지윤은 나직한 탄성을 내며 현수를 바라본다. 대체 어떤 능력을 가졌기에 은행까지 설립하는가 하는 표정이다.

“일단은 100개 지점으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각 지점엔 지점장 외 상담직원 2명과 업무보조 1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청원경찰도 1명씩 재직합니다.”

잠시 이실리프 뱅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각 지점에 채용될 인원은 대부분 은행 근무경력이 있는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다른 은행에서 구조조정을 당해 실의에 빠져 있던 사람 위주로 뽑으라 하였다.

그들의 실무 경험이 필요한 때문이다.

이 밖에 당장 취업하지 않으면 생계 곤란을 겪게 될 성실한 사람이 있다면 뽑으라 하였다. 주로 업무보조 역할이다.

청원경찰은 특수부대 출신 위주로 뽑되 불량하지 않은 자를 고르라 하였다.

본사에 근무하게 될 보안팀은 울림네트워크 쪽과 협의하라 하였으니 준비가 되었을 것이라 이야기했다.

현수는 이실리프 뱅크에 대한 대강의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니까 이실리프 뱅크는 고리사채를 쓰거나 대부업체에서 대출받은 사람 위주로 대출업무만 한다는 거죠?”

“그렇긴 한데 금융위로부터 시중은행 설립인가가 떨어졌으니 직원들 급여통장 정도는 취급하게 될 겁니다.”

“직원들이요?”

“이실리프 뱅크 직원과 이실리프 그룹사 직원들입니다.”

“이실리프 그룹엔 사원들이 많은가요?”

“많은 곳은 상당히 많을 거예요.”

국내뿐만 아니라 몽골, 러시아, 콩고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에 파견될 직원과 현지인 직원들의 수효를 모두 합치면 어마어마할 것이란 걸 김 과장은 아직 모른다.

그렇기에 순진한 얼굴로 물은 것이다.

“계열사라고 하셨는데 어떤 회사들인 거죠?”

“이실리프라는 이름을 쓰는 건 상사, 뱅크, 어패럴, 농산, 축산, 농장, 무역상사, 엔진, 정보, 자원, 트레이딩, 광업, 엔터테인먼트, 유화가 있어요. 이밖에 천지약품, 울림 모터스, 대한의약품, 대한동물약품 등등이 되겠네요.”

“허억! 그, 그렇게 많아요?”

대강 헤아려도 20개는 되는 듯하다.

현수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므로 이토록 많은 회사를 설립했거나 하려는 중이라는 걸 몰랐다.

들어보니 천지그룹 뺨칠 정도의 규모이다.

“회사 명칭이 그렇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천지약품의 경우는 콩고민주공화국 천지약품, 에티오피아 천지약품, 우간다 천지약품, 케냐 천지약품, 몽골 자치령 천지약품, 러시아 자치령 천지약품 등으로 법인이 세분화될 거예요.”

“헐……!”

할 말을 잃었다는 표정이다.

방금 말한 대로 국가별 법인이 설립된다면 현수가 운영하는 회사 수는 20개가 아니라 100개가 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