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0
엔지니어링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
동북연화공정 유한공사와 미쓰이화학은 석유화학 분야에 상당한 기술이 축적된 검증된 회사들이다.
반면 천지건설은 석유화학단지 건설 경험조차 없다. 엔지니어링 분야는 당연히 백지 상태이다.
같은 조건이 되면 수주전에서 밀릴 확률이 매우 높다. 아니 높은 정도가 아니라 필패 상황이다.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다리에서 힘이 풀린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시선은 황 주임에게 향해 있다.
“그래서 계약이 성사되었다고 하나요?”
“아뇨.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지 분위기로는 우리가 아닌 둘 중 하나로 결정될 거라고 합니다.”
“흐음, 그래요? 그럼, 서둘러 가봐야겠군요. 알겠습니다. 현지까지 티켓팅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누구와 동반하실 건지요?”
“박 과장과 황 주임만 같이 갑시다.”
“알겠습니다.”
황만규 주임이 나간 후에도 박 과장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는다. 이제 다 틀렸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화기를 들었다.
띠리리링∼! 띠리링∼!
“네에, 회장님!”
“에구,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핫핫! 회장님 맞으시면서 왜 이러십니까?”
울림 모터스의 박 대표가 짐짓 너스레를 떤다.
“엔진 준비해 주면 잠시 후에 가겠습니다.”
“아!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오늘 손볼 게 얼마나 되죠?”
“분해 작업이 된 건 470개입니다. 작업하시는 동안 260개가 더 준비될 겁니다.”
“알았어요. 잠시 후에 뵙죠.”
전화기를 내려놓으니 그제야 박 과장이 일어선다.
“박 과장! 힘내세요. 아직 끝난 거 아니잖아요.”
“네에, 그렇지요.”
대답은 했지만 왠지 맥 빠진 표정이다. 그리곤 슬그머니 밖으로 나간다.
11장 신성력 + 정령력
“흐음, 일단 그것들을 확인해야겠군.”
현수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한적한 골목에 차를 대놓고 주변을 살폈다.
CCTV가 있는지 확인한 것이다.
“없군. 텔레포트!”
현수의 신형이 나타난 곳은 천지건설 창고이다.
“어디 보자! 다 되었을까? 아! 저기 있군.”
창고 곁에는 컨테이너 3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현수가 특수제작을 의뢰한 것들이다.
“아공간 오픈! 입고.”
말 떨어지기 무섭게 3개의 컨테이너가 사라진다. 다음엔 창고를 열어 안에 담긴 것들을 모조리 아공간에 담았다.
리어카와 일륜차, 그리고 각종 농기구와 우물펌프 등이다. 아울러 PP박스에 담긴 STS 철판들도 넣었다.
잠시 후, 천지건설 창고는 텅 비었다.
각종 물품들을 가져다 놓을 땐 여러 대의 트럭과 지게차가 분주히 오갔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그런데 그런 장비 하나 없이 불과 몇 분 만에 싹쓸이 되었다. 과연 마법이 편하긴 하다.
“좋아, 다음은… 흐음! 좌표확인, 텔레포트!”
이번에 이동한 곳은 대형 하수관로이다.
“흐음, 어디 보자. 어휴∼! 아직도 이렇게 많아?”
이곳저곳에 설치해 놓은 쥐 채집 틀마다 시커먼 것들이 우글우글거린다.
“아공간 오픈! 입고.”
“어휴∼! 냄새. 이거 무슨 냄새지요? 그리고 여긴 어디에요? 우웩! 이 징그러운 것들은 대체 뭐예요?”
아리아니는 대체 여기가 어디냐는 표정이다.
그리고 하수도와 쥐 채집 틀에서 풍기는 악취가 싫다는 듯 코를 잡고 있다.
“여긴 하수관로라는 곳이야. 사람들이 쓰고 버린 물이 흘러가는 곳이지. 그리고 저건 쥐들이야.”
“어휴! 냄새나고, 더럽고, 징그러워요. 어서 나가요.”
“그래, 잠시만…….”
현수는 몇 번의 텔레포트를 하여 쥐 채집 틀을 모두 회수했다. 틀 하나당 10만 마리 이상 담겨 있으니 200만 마리 이상 잡은 셈이다.
“이렇게 몇 번만 더 하면 서울의 쥐는 씨가 마르겠네.”
“엥? 이렇게 많은데도 아직도 더 있다구요?”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라 쥐들도 많아. 자, 이제 가자.”
“그걸 다 잡을 거예요?”
“일단은 그럴 생각이야. 해롭기만 하거든.”
아리아니는 현수의 어깨에 앉아 계속해서 쫑알거린다.
“이거 다 잡으면요?”
“다 잡으면 낙동강 하류지역에서 서식한다는 뉴트리아를 잡으러 가야지.”
“엥? 뉴트리아는 또 뭐예요?”
“쥐같이 생긴 건데 엄청 큰 거야. 낙동강 하류 습지에 산다는데 10만 마리 이상 있나봐.”
“우와! 많네요. 근데 얼마나 커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줄게. 지금은 갈 데가 있거든, 거기 도착하면 일 끝날 때까지 근처에서 놀고 있어.”
“호호, 좋아요!”
“좋아, 텔레포트!”
다음으로 텔레포트한 곳은 울림 모터스가 있는 경기도 광주이다. 현수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박동현 대표가 반색하며 일어선다.
“아! 어서 오십시오.”
“네에. 얼굴 좋네요. 어디죠? 엔진 있는 곳이?”
“뭐 그리 급하십니까? 차부터 한잔하시고…….”
박 대표의 말은 중간에 잘렸다.
“아닙니다. 빨리 처리하고 가봐야 해요. 어쩌면 오후에 출국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이쪽으로…….”
박 대표가 안내한 곳은 커다란 공장이다.
대지 면적 30,000여 평인 이곳에 여러 개의 공장동과 창고동이 조성되는 중이다.
그중 하나는 거의 완공 상태인 듯 보인다.
“제법 크네요.”
“네! 회장님 말씀대로 연간 100만 대 이상의 엔진을 생산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겠네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장 문이 열린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공장 안에서 우르르 나온 사람들은 거의 모두 머리가 허옇다. 기존 엔진공장에서 정년퇴직한 사람들이라 한다.
“처음 뵙습니다. 김현수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찬수라 합니다.”
선두에서 머리를 숙인 이 역시 백발이다.
“한 공장장님은 H 자동차 엔진공장에 재직하실 때 공장장을 하셨던 분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할 일 없어 놓고 있던 우리를 고용해주셨는데 오히려 저희가 잘 부탁드려야죠. 감사합니다.”
“아뇨! 이렇게 와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모두와 악수를 하며 인사를 마치곤 곧장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온통 분해된 엔진으로 그득하다.
지금껏 납품받은 엔진을 분해해 놓은 것이다.
“나머지는 다른 동에서 분해될 겁니다. 회장님!”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박 대표가 다소 미안하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매번 이렇게 직접 하셔야 하는 겁니까? 혹시 기술이 외부로 샐까 봐 그러시는 건가요?”
“아직은 그래요. 하지만 우리 공장이 완성되면 조립라인에서 직접 처리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현수는 혼자서 처리하지 못할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여 마법의 힘을 빌 생각이다.
이실리프 엔진의 사원들에게도 절대충성 마법진이 그려진 사원증이 배부될 예정이다.
지나 국안부 제3국에서 가져온 자료 가운데에는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의 기술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엔 Mercedes, BMW, Audi, Saab, Toyota, GM, Honda, Ford, Porsche, Nissan 등의 자료도 있다.
이것들은 이실리프 엔진 개발실에 제공될 것이다.
결코 외부로 새어 나가선 안 될 기밀자료들이다. 출처를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원 가운데 일부는 마법진 부착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조립이 끝나면 한곳에 모아놓고 활성화 마법만 구현시키면 된다.
이것 역시 외부로 알려져선 안 될 일이다.
따라서 사원들의 절대적인 협조가 필요하기에 절대충성 마법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 부탁드립니다.”
누군가 보고 있는 것을 꺼리는 것을 알기에 박 대표는 직원들을 데리고 물러났다. 현수는 즉시 작업에 착수했다.
여러 번 해본 일이기에 전보다 시간도 덜 걸렸다.
470개의 엔진을 손보고도 시간이 남아 결계를 치고 들어갔다. 그 속에서 기밀자료들을 분류했다.
KAI에 줄 자료와 이실리프 엔진에 줄 자료, 대한의약품 등에 줄 것들을 나눈 것이다.
“흐음, 국안부 3국 자료가 이러면 2국이나 1국은 어떤 자료들을 가지고 있을까?”
이때 문득 일본이 떠오른다.
“내각조사처와 법무성 산하 공안조사청(PSIA)에도 자료가 많을 텐데. 흐음! 거기도 한 번씩은 방문해 줘야겠지?”
내각조사처와 더불어 일본 정보기관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공안조사청은 아시아의 CIA라는 소리를 듣는 비밀기관이다. 내각조사처는 자체 정보활동을 하지 않고 각 부처의 정보 부서를 관리, 종합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비해 공안조사청은 자체 정보망을 바탕으로 국내외 첩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가보면 상당한 자료가 축적되어 있을 것이다.
결계를 풀고 나와 다른 공장에 들어가 260개에 달하는 엔진을 손봐주었다.
밖으로 나오니 박 대표가 피로회복제를 건네며 입을 연다.
“러시아에서 점점 더 많은 주문을 넣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소 걱정스럽다는 표정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주문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피드는 매월 5대씩 판매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데 지금은 매월 200대씩 만들고 있음에도 늘 부족하다. 드모비치 상사가 요구하는 물량만 월 500대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실리프 엔진이 가동되기 시작하면 엔진 문제는 해결되지만 다른 부품의 조달엔 애로사항이 있다. 전액 현금으로 결제를 해주고 있음에도 부품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파워트레인 계통만큼은 자급자족해야 합니다. 새로운 공장을 설립해서라도 해결해야지요.”
“네, 그래야지요. 그래도 문제입니다.”
울림 모터스는 최근 몇 개월간 내수판매를 못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울림 모터스가 완전히 망한 것으로 알 정도이다.
그런데 지금은 통신이 발달된 세상이다.
얼마 전, 울림 모터스가 제작한 스피드의 연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기사를 러시아 국영TV에서 보도한 바 있다.
그쪽 전문가들의 시험 결과 휘발유 1리터로 시내주행 시 112㎞, 고속도로의 경우는 166㎞를 달린다는 내용이다.
운전자는 평범한 시민 10명이었다. 각기 운전습관이 다르기에 평균 연비를 산출해 낸 결과이다.
그날 이후 빗발치는 문의가 있었다.
이에 울림 모터스는 당분간 내수판매를 하지 못한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드모비치 상사로 보낼 물량조차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인터넷상에서 성토당하는 분위기이다.
세계 최고의 연비를 가졌는데 왜 내수판매를 하지 않고 수출만 하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왜 남 좋은 일만 하느냐며 울림 모터스를 씹고 있다.
그런데 방송이 나간 이후 국내 자동차 메이커 중 하나가 러시아에서 스피드를 긴급 공수하였다.
국내로 다시 들여온 스피드는 완전히 분해되었다. 그리곤 러시아 국영TV의 보도가 오보임을 소문냈다.
그날 이후 현금을 줘도 부품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모르긴 몰라도 견제가 시작된 듯하다. 하여 박 대표는 안절부절 상태로 매일 부품조달을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구하기 어려운 부품이 어떤 것들인지 목록과 샘플을 준비해 주세요. 설계도를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