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4
박 과장의 고개가 크게 위아래로 움직인다. 이때 현수의 입술이 다시 한 번 달싹였다.
13장 주인님! 이거 몸에 좋은 거예요
“앱솔루트 피델러티!”
샤르르르르릉―!
절대충성 마법이 구현되자 박 과장의 눈빛이 미묘하게 바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호적인 눈빛뿐이었는데 거기에 존경하고 흠모하는 빛까지 곁들여진 것이다.
한때 연적이었고, 못살게 군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현수는 인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기에 내 사람을 만들어서 쓸 생각을 한 것이다.
“참! 본사에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지요. 박 과장이 보고하세요.”
“제가요?”
이런 일은 가장 공이 큰 사람이 보고한다.
박 과장은 분명 많은 일을 했고 애도 썼다. 하지만 결정적 기여는 현수이다. 그렇기에 주저하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샤워를 할게요. 사장님께 직접 보고하세요.”
말을 마친 현수는 넥타이를 풀며 욕실로 향했다.
“네? 아, 네에. 알겠습니다.”
얼떨결에 대답한 박 과장은 잠시 심호흡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어떻게 보고할 것인지를 가다듬어 본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투와 서울의 시차는 5시간이다.
이곳은 밤이지만 서울은 아직 낮이다. 그렇기에 비서실을 통한 통화는 어렵지 않게 연결되었다.
“사장님! 저, 기획영업단 박진영 과장입니다.”
“어! 그래. 간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그쪽 사람들은 만나 보았나?”
황만규 주임의 보고가 올라갔기에 신 사장은 현수가 이곳으로 향한 것을 알고 있었다.
“네, 사장님! 아제르바이잔 대통령님과 주무장관인 천연환경자원부 장관님과의 협상이 조금 전까지 있었습니다.”
“그래? 잘 진행되고 있지? 뭔가 걸림돌이 있는가?”
“아뇨, 그런 건 없습니다.”
“그래? 그럼 뭐 보고 할 거 있나?”
“네, 사장님! 여기 건 우리 회사가 수주했습니다. 김현수 부사장님이 나서서 단번에 해결을 봤습니다. 계약서 준비하랍니다.”
“뭐어? 그, 그게 정말인…….”
신 사장이 뭔가 이야기를 이으려 할 때 박 과장의 말이 터져 나온다. 마치 방언하듯 속사포였다.
“김현수 부사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쪽의 누군가가 지나건축공정총공사와 벡텔에 우리 쪽 정보를 몽땅 흘려서 계약이 어려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부사장님이 나서서 단번에 계약 이야기까지 끝냈습니다.”
“……!”
신형섭 사장이 뭔가 이야기하려는 조짐을 보이는데 박 과장의 말이 또 이어진다.
“공사비는 172억 달러랍니다. 턴키 베이스구요. 아무튼 우리가 계약했습니다. 우리 부사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독학으로 아제르바이잔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익히셨습니다.”
“뭐라고?”
“그리구요. 우리 김현수 부사장님은요…….”
박 과장은 아이돌그룹을 열렬히 쫓아다니는 빠순이처럼 현수를 찬양했다.
같은 순간, 지구 저편의 신형섭 사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아싸! 가오리!’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박 과장이 뭐라 뭐라 지껄이고 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아제르바이잔 석유단지 조성공사를 천지건설이 단독으로 수주했다는 생각에 너무 기뻐서이다.
공사비는 172억 달러이고, 이번에도 현수가 큰 공을 세웠다. 역시나라는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고 있다.
뭔가를 보고하려 들어서던 조인경 대리는 이런 신 사장을 보고 웃었다. 너무도 익살스러워 보인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현수와 박 과장은 알리예프 대통령 일행과 조찬을 함께했다. 화기애애한 정도를 넘어 죽마고우가 만나서 식사하는 분위기였다.
식사를 마친 후엔 실무자들이 줄줄이 불려 들어와 인사를 나눴다. 박 과장은 그들의 신상을 기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식사 후 곧바로 출국했다.
박 과장을 데리고 킨샤사로 갈 수는 없기에 터키 이스탄불에 내려놓았다. SBJ는 곧장 콩고민주공화국으로 향했다.
* * *
“자기야!”
킨샤사 저택의 현관을 들어서니 연희와 이리냐가 달려든다.
퍼억―!
“윽―!”
너무 빨리 달려온 데다 둘이 한꺼번에 안기자 뒤로 밀리며 휘청거렸다.
“자기! 미워요.”
“맞아! 너무했어요.”
“미안, 미안! 그동안 너무 바빴어. 그나저나 잘 있었지?”
“그럼, 그럼요!”
연희와 이리냐가 환한 웃음을 짓는 동안 피터스 가가바와 그의 아내 엘린 가가바, 그리고 본관 2층을 책임지는 알리사, 마리나, 세레나 등도 환한 미소를 짓는다.
저택의 안주인들이 요즘 자주 한숨을 쉬었기 때문이다.
“자기야! 어서 올라가요.”
이리냐가 응석받이 아이처럼 몸을 흔든다.
“잠깐만! 부모님과 장모님들께 인사 먼저 드리고.”
“아! 네에, 같이 가요.”
부모님과 장모님들은 빈관에 머물고 있다. 하여 잘 가꿔진 정원을 지나쳤다. 이때 아리아니가 입을 연다.
“주인님! 여긴 숲이 많네요.”
“그래! 여긴 오염이 될 되었지?”
“네, 여긴 좋아요. 구경하면서 조금 놀다 올게요.”
“그래!”
말 떨어지기 무섭게 날아오른다. 그리곤 저택 뒤쪽으로 가버렸다.
“참! 여긴 일부러 조성하는 곳이니까 식물들 막 자라게 하면 안 돼. 알았지?”
마나에 의지를 실어 보내자 금방 뜻을 전한다.
“알았어요. 일단은 구경만 할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 저 왔습니다.”
“응! 왔어? 온다는 말 못 들었는데.”
“죄송합니다. 너무 바빠서 미리 연락도 못 드렸습니다.”
“에구, 큰일 하는 사람이니 그렇지. 어디 아픈 덴 없지?”
“그럼요! 장모님도 안녕하시지요?”
강진숙 여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근심을 모두 덜어내고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몇 년은 젊어 보인다.
이때 화장실에 갔던 안나 여사가 온다.
“Мать в законе! Как дела?”
“О! Очень приятно.”
안나 여사가 반색하며 다가온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두 분 장모님 설날에 세배도 못 드렸습니다.”
“설날? 아, 그렇구나. 지났냐?”
아버지도 설날을 생각지 못하신 모양이다.
“네, 1월 말일이었습니다.”
“그랬구나. 여기 날씨가 더워서 설날은 생각도 못했다.”
어머니도 그런 듯하다.
“늦었지만 세배 드리겠습니다.”
“그래, 결혼하고 첫 설이니 며늘아기들과 같이하거라.”
“네에.”
현수가 큰절을 올리기 위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기다렸다는 듯 연희와 이리냐가 좌우에 선다.
“아버지, 어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현수를 따라 둘이 절을 한다. 연희는 한국 사람이니 절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지만 이리냐는 아니다.
배우긴 배웠는데 몸에 익지 않아 그런지 어설프다.
쿵―!
결국 엉덩방아를 찌었다.
하지만 아프다고 울상을 짓거나 하지는 않는다. 설날에 부모에게 큰절 올리는 게 어떤 의미인지 배운 것이다.
“그래! 그래. 이제 예쁜 손주만 안겨주면 된다.”
“네, 어머님! 최대한 빨리 손자 안겨 드릴게요.”
“저도요.”
연희와 이리냐가 예쁜 미소를 짓자 부모님 모두 흐뭇하다는 표정이다. 결혼을 했으니 조만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장모님, 절 올리겠습니다.”
“아이고 아니네. 아닐세. 사장어른과 사부인도 계시는데 내가 어찌……. 아니네.”
강진숙 여사가 화들짝 놀라며 물러서자 어머니가 나섰다.
“사부인! 아이들 결혼하고 첫 세배예요. 그냥 받으세요. 우리 신경 쓰지 말구요.”
“그래도 어찌……!”
“우리 많이 친해졌잖아요. 그러니 부담 갖지 마세요.”
“……!”
“안나 사부인도 같이 받으세요.”
“저도요?”
한국말이지만 안나는 알아듣는다. 통역마법이 인챈트된 목걸이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네에, 안나 사부인도 장모님이잖아요.”
“……!”
“앉으세요. 절 올릴게요.”
잠시 후 둘은 어색한 표정으로 앉았다.
“두 분 장모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엄마! 건강하세요.”
“엄마도 건강하세요. 복 많이 받으시구요.”
연희와 이리냐가 따라서 절을 했다. 이리냐는 이번에도 엉덩방아를 찌었다.
“사위도 건강하시게.”
“사위! 우리 이리냐 많이 아껴줘.”
“그럼요! 당연합니다.”
세배를 마치고 나니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잠시 후 식사 준비되었다며 식당으로 부른다.
어머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떡국을 끓여내셨다.
“와아! 떡국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이게 먹고 싶어 준비했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거지.”
“네에, 과연 어머니세요.”
모두가 환히 웃고는 맛있는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엔 빈관과 경호동을 둘러보았다. 공사가 끝나 깔끔하게 청소된 모습이다.
체력단련실에서 운동하던 경호원들이 일제히 다가와 인사를 하느라 잠시 소란스러웠던 것만 빼면 다 좋았다.
“그동안 별일 없었지?”
“네, 자기가 없어서 심심한 거 빼면 다 좋아요.”
연희의 대답이었다. 이곳엔 변변한 문화시설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대답을 한 이유는 민주영과 이은정 때문이다. 둘은 이곳의 존재를 안다.
그렇기에 물심양면으로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 결과가 도서관과 시청각실이다. 연희가 인터넷으로 연락하면 필요한 것들 즉각즉각 보내주는 중이다.
책과 DVD뿐만이 아니다. 식료품이든 화장품이든 말만 하면 도착한다. 심지어 강아지도 보내준다.
현재 저택 마당에는 진돗개 두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다. 생후 5개월밖에 안 된 녀석들이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연희가 길러보고 싶다 하자 보내준 것이다.
본관 2층으로 간 현수는 샤워를 마치고 차 한잔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열풍이 불었다.
연희가 먼저 나가떨어지고, 한참 있다 이리냐마저 곯아떨어졌다. 그러고도 체력이 남은 현수는 저택을 둘러보았다.
“주인님! 저쪽에 몸에 좋은 거 있어요.”
어느새 아리아니가 다가와 어깨 위에 앉는다.
“몸에 좋은 거? 뭔데?”
“가요, 가요! 저쪽으로…….”
아리아니가 무엇을 보고 왔는지 가보자고 잡아끈다. 하여 따라가 보았다. 아무리 봐도 잡초 같은데 그걸 가리킨다.
“이게 몸에 좋은 거야?”
“응! 드래곤들도 가끔 먹는 거야요.”
뭔지는 모르지만 몸에 좋다니 일단 사진을 찍어두었다. 나중에라도 헷갈리지 않기 위함이다.
“근데 이게 어디에 좋은 건데?”
“그건 나도 몰라요. 뽑아서 뿌리를 먹어요.”
“뿌리를?”
인삼 비슷한 건가 싶어 조심스레 뽑았다.
“홍당무인가? 근데 색깔이 왜 이렇지?”
크기와 모양이 딱 그만하다. 다른 게 하나 있다면 보라색이라는 것뿐이다.
“홍당무랑은 다른 건가?”
“주인님! 그거 먹어요. 몸에 좋을 거예요.”
“정말이지?”
“그럼요! 내가 봤다니까요. 드래곤들이 먹는 거 봤어요.”
“그래? 알았어. 워싱!”
마법으로 뿌리에 묻은 흙을 닦아내곤 한 입 베어 물었다.
쌉싸름한 맛이다. 다 먹었지만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별거 아닌가 본데?”
“그럴 리 없어요. 드래곤들은 장가가는 날이면 그거 꼭 먹어요. 그러니까 몸에 좋은 거예요.”
“뭐야?”
현수는 어이가 없었다. 아리아니는 드래곤을 맹종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드래곤이 하는 건 뭐든 다 좋다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렇기에 먹으라 하였던 것이다.
“이런……!”
조금 전에 먹은 정체 모를 식물의 뿌리는 분명 최음 효과가 있던지 비아그라 효과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리아니의 순진함 덕분에 뻗어 있던 연희와 이리냐는 밤새도록 몸살을 앓게 된다. 그러다 지쳐서 곯아떨어지면 어웨이크와 바디 리프레쉬 마법이 구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