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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779화 (778/1,307)

# 779

자기보다 훨씬 예쁜 연희와 이리냐가 보스와 행복한 한때를 보고 있는 것이 왠지 샘났기 때문이다.

* * *

“야, 너!”

“미안하다, 미안해!”

“그래도 그렇지. 아, 어서 오십시오.”

현수에게 무어라 투덜대려던 주영은 뒤따라 들어온 연희와 이리냐를 보고는 얼른 고개 숙여 예를 갖춘다.

그러고 보니 정말 퇴근 않고 기다렸는지 수염이 덥수룩하다. 곧 결혼할 새신랑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고 있다.

“우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쪽으로 직행한 거다. 그러니까 내가 깜박한 거 이제 잊어라. 알았지?”

“휴우! 그래, 알았다. 아무튼 앉자. 두 분도 앉으세요.”

“네.”

“전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요.”

연희는 앉았고, 이리냐는 자리를 비웠다.

“은행 설립 최종 인가가 떨어졌다는 이야긴 들었고, 직원들은 다 뽑았냐?”

“너는 좋겠다. 말만 하면 다 되니까. 나는 네가 말 한마디 하면 그때부터 뼈 빠지게 일해야 하는데.”

“미안하다. 앞으론 가급적 네 업무량 줄여줄게.”

“오냐. 꼭 그렇게 해다오. 나 이러다 진짜 죽을 거 같다.”

“죽으면 안 되지. 알았다, 알았어.”

주영은 이제야 조금 분이 풀리는지 표정을 바꾼다.

“그나저나 형.수.님.들. 하곤 잘 지내냐?”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하는 걸 보니 아직 맺힌 게 다 풀린 건 아닌 듯싶다.

“그럼. 나야 그렇지. 너는 결혼 준비 잘되고 있지?”

“잘될 턱이 있냐? 집에도 못 들어가는데. 은정 씨와 장모님, 그리고 할머니께서 고생하시지.”

“그래, 내가 나중에 죄송하다고 말씀드릴게.”

“아무튼 일 얘기부터 하자. 전국에 4∼5층 빌딩 100개 매입은 끝났다. 계열사 별로 돈 낸 걸로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마쳤어.”

말을 하며 준비된 서류들을 내놓는다.

전국 각지에 매입한 건물의 등기서류와 사진, 그리고 평면도와 입면도 등이다.

현수와 주영의 대화가 길어지자 연희는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이실리프 빌딩을 둘러보고 오겠다고 한다.

그러라 하고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1층은 울림 모터스가 입주해. 참, 박동현 대표하고 통화했는데 회사 명칭 바꾼다고 하더라.”

“그래? 무엇으로 바꾼다는데?”

한 번도 생각지 않은 일인지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긴, 이실리프 모터스지. 네 지분이 제일 많다며?”

“그래? 그렇긴 하지만 굳이 그릴 필요 없는데.”

“울림보다는 이실리프라는 브랜드가 더 고급이래. 그리고 더 널리 알려졌고. 그래서 바꾼다고 하더라. 아무튼 1층엔 이실리프 모터스 전시장이 입주할 거야. 그리고…….”

주영은 종이를 꺼내놓고 합의 사항을 하나하나 기록하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의 건물은 이실리프 빌딩으로 이름을 바꾼다.

울산 빌딩, 인천 빌딩, 전주 빌딩, 충주 빌딩, 서귀포 빌딩 등 지역 이름으로 구분한 것이다.

1층은 자동차 전시장과 이실리프 뱅크가 들어선다.

2층은 이실리프 농산, 축산, 농장에서 생산된 작물 및 육류 등이 판매된다. 이 밖에 항온 의류 매장이 들어선다.

3층은 이실리프 카페와 쉐리엔, 건강 3.65%, 그리고 청향 직판장으로 쓴다. 남는 공간은 지역 주민을 위한 작은 도서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4층과 5층은 각 점포의 점장과 직원 거주지로 쓰인다. 지하층은 각 점포의 창고와 주차장 용도로 쓰인다.

“뭐? 의자를 네가 직접 고른다고?”

“그래. 그러면 안 돼?”

“야, 너 엄청 바쁘다며? 그런데 고작 상담하러 오는 손님용 의자를 고르러 다니겠다고?”

“응. 그것만은 내가 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대체 무슨 의도로……? 휴우! 알았다. 그건 네 맘대로 해라. 별일도 아니니.”

“그래, 미리 주문해 놓을 테니 건물들 주소나 넘겨.”

“알았다. 이메일로 보내줄게. 자, 그건 그렇고, 너 또 무슨 일 벌이려고 하지?”

“어라, 어떻게 알았냐?”

현수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주영을 바라보았다.

“날마다 하나씩 벌이잖아. 뭔데? 어서 털어놔.”

“콩고민주공화국 현지에서 노천 금광이 발견되었다.”

“뭐? 금광?”

주영이 눈을 크게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래서 이실리프 금광이라는 회사를 현지에 만들 거야. 아, 이건 내가 현지에서 알아서 할 테니 넌 신경 꺼도 된다.”

“그, 그래? 그런데 진짜 금광이야?”

“오냐. 그것도 노천 금광이다. 그냥 줍기만 하면 돼.”

“우와! 너 정말 재수 좋다.”

주영은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이었다.

“이실리프 농산, 축산, 농장은 규모가 확장될 거야. 지도 가져와 봐.”

“잠깐만!”

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기에 발작하진 않는다.

잠시 후, 주영은 입을 딱 벌리고 있다.

현수가 형광펜으로 표시한 이실리프 농장 등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4,500㎢짜리도 어마어마하다 여기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플러스 10만㎢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조차 받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보다 인력이나 장비 등을 더 많이, 더 빨리 수배해야 할 거야.”

현수가 표시한 걸 보면 타조알 속에 메추리알을 그려 넣은 듯하다. 타조알이 새로 획득할 땅의 경계이고, 메추리알은 현재 개발 중인 곳이다.

“끄응! 지금도 죽겠는데……. 아무튼 알았다. 이제 이게 끝이지?”

“아냐. 하나가 더 있는데 그건 너하고 별 상관없다. 그래도 알아두긴 해라.”

“뭔데?”

“우연히 천연 비아그라를 발견하게 되었어. 인체에 부작용이 하나도 없는 거야. 먹으면 허약체질도 변강쇠가 된다.”

“변강쇠?”

주영은 곧 결혼하게 되는데 본인의 정력이 약하다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은근히 그쪽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데 허약체질도 변강쇠가 된다니 흥미가 돋은 것이다.

“그래. 신혼 첫날밤에 한번 써봐. 끝내준다.”

“정말?”

“속고만 살았냐? 나 좀 믿어라.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안 그래?”

현수는 아무도 고칠 수 없던 한쪽 팔을 정상으로 만들어주었다. 따라서 의학적으로 지식이 있다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현수가 내민 플라스크를 받아 들었다. 바이롯을 먹기 좋게 간 것이다.

홍당무, 감자, 호박, 사과, 바나나 등은 믹서로 갈면 비타민이 쉽게 파괴된다.

그렇지만 양배추, 양파, 무, 토마토, 귤은 무방하다.

그런데 바이롯에서 얻으려는 건 비타민이 아니다. 하여 믹서로 갈았다. 원료가 무엇인지를 감추려는 의도이다.

주영을 못 믿어서가 아니다. 바이롯을 주면 결혼식까지 어딘가에 보관할 것이다. 주영이 아닌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기에 보안 차원에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효과가 있어?”

“자식, 백문(百聞)이 불여일음(不如一飮)이다. 나를 믿어라. 신혼여행 가거든 저녁 먹고 나서 분위기 잡기 직전에 마셔라. 그러면 효과를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크크크, 뼈까지 저려?”

“오냐. 난 아주 짐승 취급당했다. 크크, 너도 한번 당해봐야지. 안 그러냐?”

“크크, 크크크! 알았다. 고맙다.”

주영은 바이롯을 받아 책상 서랍에 곱게 모셔놓는다. 사내들이란 이렇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나직한 웃음을 지었다.

같은 시각, 화장실을 가겠다며 나간 이리냐는 웃음꽃 핀 얼굴로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다.

이실리프 상사 고문변호사인 예카테리나 일리치 브레즈네프가 그녀이다. 이곳은 그녀의 집무실이다.

“그래서 언니는 잘 지냈어요?”

“그럼. 이리냐는 어때? 그리고 여긴 웬일이야?”

“이 회사에 볼일이 있어서 왔어요.”

“그래?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따 한잔 어때?”

“저야 좋죠. 시간 날 때 전화 주세요.”

둘이 대화하는 동안 연희는 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회사 구경하다 요의를 느껴 화장실로 왔다.

볼일을 보고 일어서려는데 누군가 들어왔다. 그리고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그 내용 때문에 숨죽이고 있는 중이다.

“본부에 보고할 게 그거뿐이야?”

“네. 여긴 아무리 털어도 먼지가 별로 안 나와요. 이런 회산 처음이에요.”

“당연하지. 실제적인 일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여긴 인력 송출 작업과 각종 기자재를 발송하는 일밖에 안 해. 몰랐어?”

“아,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긴급하게 현장에 투입되어 몰랐습니다.”

“아무튼 특별히 보고할 건 없다는 거지?”

“네,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건 있습니다.”

“뭐지?”

“자금 출처입니다. 막대한 자금이 있는데 출처가 모호합니다. 김현수 사장이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왔는데 액수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래? 얼마나 되기에?”

“엄청나게 썼는데도 아직도 16조 원이 넘습니다.”

“뭐? 얼마?”

예상치 못한 숫자였는지 보고 받던 여인의 음성이 커졌다.

“팀장님!”

“아, 미안. 너무 놀라서. 근데 얼마라고? 16조?”

팀장의 음성은 확연하게 낮아졌다.

“네. 제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 회사는 방위사업체인 KAI와 세트렉아이, 그리고 퍼스텍 주식의 대부분을 사들였습니다. 이 밖에 상당히 많은 제약사 주식을 샀습니다. 그리고도 남아 있는 돈이 16조 원이 넘습니다.”

“헐……!”

팀장이라는 여자는 할 말을 잃었다는 듯 탄성만 낸다. 하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는다.

“일단 돈이 어디서 흘러들었는지 확인해. 용처도 일일이 체크해 두고. 이쪽 사람들 눈치 빠르니까 신분 노출되지 않도록 유의하고. 알았어?”

“네. 전임자가 어떻게 해서 그만뒀는지 압니다.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본부로 연락하지 말고 내게 전화해. 자, 이건 내 전화번호야.”

“네, 팀장님.”

대화를 마친 둘이 화장실을 나가고도 한참 동안 연희는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적중했다. 나간 것으로 알고 있던 팀장의 음성이 들린 것이다.

“흐음! 내가 잘못 들었나?”

삐이꺽! 철컥―!

또각, 또각, 또각……!

하이힐 굽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연희는 혹시 몰라 한참을 더 머물렀다.

“으으! 쥐 올랐어.”

쏴아아―!

물을 내리곤 저린 자리를 주무르며 밖으로 나왔다. 혹시 몰라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다.

“어서 현수 씨에게 알려야 해. 그런데 어디 소속이지? 왜 이 회사를 감시할까?”

이실리프 상사는 개인이 설립한 회사이다. 국제적인 활동을 하지만 전혀 의심 받을 게 없는 기업이다.

그런데 조금 전 두 여자의 대화는 어떤 기관에서 이실리프 상사를 주시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뭔가를 캐기 위해 조직원을 침투시켰다.

잘 들어보았지만 어디에서 보냈는지, 구체적인 목적이 뭔지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연희는 서둘러 전무이사실로 향했다. 이때 복도를 걸어오는 두 여신이 보인다.

이리냐와 테리나가 오고 있는 것이다.

“아, 언니!”

“응!”

시선이 마주치자 이리냐가 먼저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든다.

공식적으론 친분만 있는 사이일 뿐 한 남자가 둘의 남편이라는 건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다.

“이리냐, 아는 사람이야?”

“네, 잘 아는 언니예요.”

“그래? 정말 예쁘다. 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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