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1
“흐음! 자넨 누구신가? 내가 이 시간에 약속을 했나? 하여간 들어오시게.”
인사부장은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다 생각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먼저 들어간다.
현수가 따라 들어가자 의자를 손짓으로 가리킨다.
“그쪽에 앉으시게. 한데 어느 부서를 지원하셨는가?”
벗었던 안경을 쓰며 서류를 뒤적이는데 이 시간에 약속한 사람의 인적사항을 찾는 모양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실리프 상사 인사부장님이시죠?”
“그러하네. 자네 이름은 뭔가? 허어, 이상하네. 이 시간에 약속했으면 서류가 있어야 하는데 왜 없지?”
“찾지 마세요. 서류가 없는 게 당연하니까요. 저는 부장님과 사전 약속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 그런가?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무슨 용무로 나를 찾아오셨는가?”
인사부장은 자신보다 훨씬 어려 보임에도 말을 놓지 않고 반쯤 높여주고 있다. 마음에 드는 태도이다.
하여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민주영 전무이사를 이실리프 상사 대표이사 사장으로 진급시키려고 왔습니다.”
“뭐? 지금 나랑 장난… 헉! 사, 사장님!”
이제야 현수의 얼굴에 초점 잡힌 시선을 준 인사부장이 화들짝 놀라며 일어선다.
“에구! 앉으세요. 놀라게 하려 한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구요.”
“그, 그럼요! 한, 한데 사장님께서 어떻게 여길…….”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민 전무를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시키고자 왔습니다. 인사부에서 발령을 내주십시오.”
“그, 그럼 사장님은……?”
“나야 여기 잘 오지도 못하니 민 전무가 그 자리를 맡는 게 나을 겁니다. 앞으론 회사를 대표하는 자리에도 참석해야 하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승진 공고를 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인사부장이 이마에 솟은 진땀을 닦아낼 때 비서 아가씨가 들어와 커피를 내려놓고 공손히 허리 숙여 절하고 물러난다.
적어도 이실리프 상사에서 현수는 전설이다.
혼자 힘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농장을 개간하고 운영하는 게 어찌 쉽겠는가!
게다가 국내도 아닌 국외이며, 200년간 치외법권 지역으로 조차까지 받았다. 그곳에선 왕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대하기 어려운지 시선조차 마주치지 못한다.
“참, 현재 재직 중인 임원들 명단을 보고 싶네요.”
“네? 아, 잠시만요.”
인사부장은 육중한 몸을 민첩하게 움직여 현수가 원하는 것을 꺼내놓는다.
이실리프 상사는 거의 매달 증자되고 있다. 그 돈은 100% 현수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주식회사로 되어 있지만 주주는 현수, 지현, 연희, 이리냐, 부모님, 주영뿐이다. 명단을 보니 지현, 연희, 이리냐는 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그 밖의 임원은 아직 없다.
“흐음! 인재가 계속해서 필요합니다. 학력에 구애받지 말고 인품 괜찮은 사람들로 뽑아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누군가 우리 회사를 염탐하고 있더군요. 은밀히 찾아내어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그게 무슨……?”
연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자 대경실색한다. 그리곤 사람 보는 안목이 없어 그렇다며 백배사죄한다.
“앞으로 주의해 주시면 됩니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인사부를 나선 현수는 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인사부장을 이사로 승진토록 하였다.
* * *
현수가 이실리프 어패럴 사장실로 들어가자 박근홍 사장이 벌떡 일어나며 환히 웃는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에구, 그러시지 말라니까요.”
“무슨 말씀입니까. 명실상부한 회장님이십니다.”
“끄응!”
현수는 나직한 침음을 토했다. 박근홍 사장이 건넨 명함 때문이다. 이실리프 그룹 로고 옆에 이렇게 쓰여 있다.
이실리프 어패럴 회장 김현수
아래엔 본사 전화번호와 주소, 그리고 팩시밀리 번호가 명기되어 있다.
“그나저나 항온 유지 장치는 언제쯤 공급됩니까? 지르코프 상사로 보낼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건 잠시 후에 당도할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곳에 오기 전 천지건설 자재 창고에 들렀다.
그리곤 PP박스들을 아공간에서 꺼내놓았다. 안에는 완성된 항온마법진을 축소 마법으로 줄인 것들이 들어 있다.
이것 1억 장의 무게는 2,370톤이나 된다. PP박스로 11만 8,500개 분량이다.
전화를 걸어 유민우 대리를 불렀다.
그리곤 서울시 전역의 용달차를 총집결시켜서라도 배달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왔다.
하여 지금 그쪽은 온통 화물차로 가득 차 있다. 1톤 포터, 2.5톤 마이티, 5톤 메가트럭 등으로 붐빌 것이다.
화물트럭에 상차 작업을 할 지게차들도 총동원되어 분주히 작업하는 중이다.
“공급되는 수량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일단 1억 장입니다. 추가로 또 만들고 있으니 조만간 당도할 겁니다.”
“아! 그 정도라면… 휴우! 다행입니다. 혹시라도 늦어질까 싶어 노심초사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일찍 공급해 드렸어야 하는데.”
“아이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박근홍 사장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참! 두바이의 라일라 아지즈 양으로부터 추가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요? 이번엔 얼마죠?”
“1억 달러입니다.”
“휘유∼! 상당히 수량이 많겠군요.”
“네, 전에 보낸 건 당도한 다음 날 모두 팔렸다고 합니다. 항온의류에 대한 소문이 중동 쪽에도 퍼지는 모양이에요.”
“그렇겠지요. 알겠습니다. 그쪽에 공급할 것도 준비하죠. 디자인을 다양하게 하는 작업도 늦추지 마십시오.”
“물론입니다. 그래서 디자이너 20명을 더 뽑아 디자인실을 확충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조만간 중동뿐만 아니라 브라질이나 멕시코,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도 연락이 올 겁니다. 그에 대비한 디자인을 준비해 주십시오.”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박근홍 사장은 요즘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내놓기만 하면 다 팔렸다며 추가 주문이 들어온다.
그리고 거의 매일 백화점과 대형마트 바이어들이 찾아와 애원하다 돌아간다. 대박 아이템임을 인정한 것이다.
처음엔 백화점 마진 35%를 이야기했다. 현재는 10% 수준으로 내려와 있다. 하지만 이실리프 어패럴은 그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전국에 직영점 100곳을 낼 것임을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찾아온다.
박근홍 사장은 예전에 당했던 수모를 잊지 못하였다. 하여 적당히 바이어들의 애를 태우는 중이다.
“참! 미군 전투복도 추가 주문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할까요?”
“수량은 얼마나 되죠?”
“지난번에 주문한 여름용 20만 벌 이외에 추가로 80만 벌과 겨울용 100만 벌입니다.”
“그래요?”
“네. 헬멧과 전투화 역시 같은 수량입니다.”
미군에겐 한 벌당 300달러를 받고 있다. 헬멧과 전투화는 임가공 비용만 150달러이다.
전투복 200만 벌의 가격은 6억 달러이다. 헬멧 200만 개와 전투화 200만 켤레의 임가공 가격 역시 6억 달러이다.
총액 12억 달러짜리 주문이 들어왔다는 소리이다.
한화로 환전하면 1조 4,400억 원 정도 된다.
“흐음! 주문 물량이 상당히 많네요. 뜯어보고도 몰라서 주문한 거겠죠?”
현수의 입가엔 웃음이 배어 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충분히 짐작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미군은 납품 받은 전투복, 헬멧, 전투화를 샅샅이 분해했다. 그 결과 자그마한 금속 조각이 그런 효과를 낸다는 것까지는 알아냈다.
현미경으로 관찰했지만 표면엔 아무런 무늬도 없다.
그런데 그 금속이 무엇인지는 규명하지 못했다. 성분은 분명 스테인리스 스틸이다. 그런데 질량이 많이 다르다.
기존의 스테인리스 스틸보다 훨씬 무겁다.
그리고 지금껏 알려진 어떤 금속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하여 대한민국 곳곳을 쑤시고 다니며 찾고 있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연구소마다 항온마법진이 그려진 작은 철판이 공급되었고, 그에 대한 분석 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얻은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어쨌거나 기 납품된 항온전투복에 대한 미군 병사들의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 하더라도 그거 하나만 걸치고 있으면 추위를 느낄 수 없다. 발이 시립지도 않다. 즉시 병사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다. 그 결과가 대량 추가 주문이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하하! 하하하하!”
“특허를 내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랬지요. 추가 주문을 하면서 로버트 켈리 중령이 그러더군요. 왜 특허를 내지 않느냐고요.”
“그래서 뭐라 하셨습니까?”
“개발자가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복제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하라고 했지요.”
“후후, 아마 복제 못할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하! 하하하!”
생각만으로도 통쾌하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연다.
“참, 러시아 국방부에서도 주문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러시아는 현역 120만 명, 예비군 75만 명 정도 된다.
지독하리만치 추운 겨울을 겪어야 하기에 누구보다도 항온전투복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수량은 상당히 많을 것이다. 달랑 한 벌만 지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인당 두 벌을 지급한다면 약 400만 벌이 필요하다.
지르코프 상사를 통해 기 수출된 항온의류를 누군가 경험했다면 연락 오는 건 당연한 결과이다.
“러시아는 방위사업청과 협의해야 되는 상황인 거죠?”
“네. 전략물자관리원 KOSTI에서 이미 전략물자에 해당된다고 판정한 바 있습니다.”
“항온전투복이 전략물자로 판정되었다구요?”
“네. 미군에 납품한 뒤 그런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후 전략물자 수출 통제를 받는 중입니다.”
전략물자란 대량 파괴 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 및 그 운반 수단과 이의 제조, 개발에 이용 가능한 물품을 뜻한다.
소프트웨어 및 기술도 해당되고, 이러한 것들이 위험한 국가, 또는 단체에게 이전될 경우 국제 평화와 안전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여 민간의 자유로운 무역 거래가 제한되고 있다.
현재 전략물자는 대외무역법에 따라 지식경제부 장관이 지정 고시한 ‘전략물자·기술 수출입 통합고시 수출통제 품목’에 규정된 물품과 소프트웨어 및 기술이다.
이 목록에 물품으로서 항온전투복이 추가된 것이다. 항온 의류 제조기술을 외국에 전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군에 납품 후 정부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 박근홍 사장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항온의류 제조기술을 소상히 기록하여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은 것이다. 이는 즉각 거절되었다.
그리곤 곧바로 국방장관에게 연락을 취했다.
군수사령부의 최세창과 기무사의 선진식, 그리고 강철환과 같은 인물들이 개입되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참고로 최세창 대령과 선진식 소령은 군사재판 후 이등병으로 강등된 후 불명예 제대하였다. 그리고 강철환 등과 함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신고를 받은 국방장관은 곧바로 수사를 지시했다. 이후 기술 공개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다만 전략물자로 지정되었다는 통보만 받았을 뿐이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예전과 다르니 처리되겠지요?”
“일단 수출 신청서류는 접수시켰습니다.”
“그래요? 이번에 들어온 주문량은 얼마나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