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3
“죄송합니다. 그 물량은 도저히 감당할 여력이 없습니다. 혹시 다른 회사에 위탁 생산을 해도 되겠는지요?”
다른 제약사들도 믿지만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는 안정성이 떨어질 확률이 높다. 최대한의 이득을 취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직접 생산해 낼 방법이 없기에 한 말이다.
“아닙니다. 바쁘신데 그것까지 맡길 순 없지요. 이실리프 무역상사와 거래하는 제약사들이 많습니다. 이번 건은 그들에게 나눠서 주문하겠습니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민 사장은 면목이 없다는 표정이다. 백신 전문 회사인데 그만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해서이다.
“대신 괜찮은 제약사들을 추천해 주십시오.”
“우선은 태을제약을 추천합니다. 철저한 품질 관리로 유명합니다. 다음은 인화약품입니다. 이 회사는…….”
잠시 민 시장의 말이 계속되었다.
태을제약은 태(太) 씨 성을 가진 사장과 을(乙) 씨 성을 가진 부인이 가문의 재산을 합해 설립한 토종 제약사이다.
태 씨나 을 씨 모두 한반도 고유 성씨이다.
태 씨는 발해 황실 계승을 표방하는 성씨이고, 을 씨는 고구려의 재상 을파소의 후계이다.
태을제약의 현임 사장은 듀 닥터가 성공하자 공장을 증설했다. 이실리프 무역상사로부터의 쏟아져 들어오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 공장을 짓는 동안 건설업에 눈을 뜬다. 하여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 건설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첫 번째 도전한 시공에서 사고가 발생되었다. 화재로 인한 철골 붕괴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공사 초기였다면 피해가 적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골조공사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게다가 인명 피해도 있었다. 현장에서 일하던 인부 셋이 목숨을 잃었고 여섯이 중상을 입었다.
담보를 맡았던 사채업자는 사고가 보도되자 즉시 주식을 내다 팔았다. 가치 하락이 뻔했던 것이다.
이것의 대부분을 외국인이 매입했다. 그 외국인은 러시아 사람으로 이리냐 파블로비치 체홉이다.
어쨌든 태 사장은 듀 닥터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아직도 남은 빚을 청산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이 회사를 추천한 이유는 품질 관리에 만전을 기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을제약은 불량률 0에 도전하는 제약사로 유명했다.
아무튼 이리냐의 태을제약 지분은 무려 37%이다. 30%는 이실리프 무역상사가 가지고 있다. 그전부터 사 모은 것이다.
나머지 23%는 사장과 부인 소유이고, 10%는 개미 투자자와 외국인 소유이다. 현재의 사장은 예전의 지분율을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중이다.
민 사장은 인화약품 이외에도 다른 한 곳을 더 추천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할 수 없이 다른 곳에 주문을 합니다. 앞으로는 어떤 주문이라도 소화할 능력을 갖춰주십시오.”
“죄송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민 사장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먹으라고 주는 떡도 받아먹지 못하게 되어 왠지 미안한 기분이 든 것이다.
이때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조만간 인구 3,500만인 우간다와 4,400만인 케냐에도 천지약품이 진출하게 될 것입니다.”
“네?”
대한의약품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거래를 끊은 이후 빈자리 대부분을 채웠다. 특허 약품이 아니라 일반의약품인지라 법률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생산라인이 문제였다.
하여 제약단지 전체를 사들이고 있음에도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엄청난 거래가 시작될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
알아서 준비하라는 말은 일 년 내내 날밤을 새우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이때 민 사장의 휴대폰이 부르르 떤다.
시선을 주니 ‘왕비마마’라는 닉네임이 떠 있다. 왕년의 탤런트 윤영지일 것이다.
“왕비? 이 시간에 웬일이야? 나 좀 바쁜데.”
역시나 윤영지가 맞는 듯 아주 다정스럽다.
“여보! 여보……!”
“왜? 무슨 일 있어?”
아내의 음성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민윤서의 표정이 단번에 바뀐다. 몹시 긴장한 표정이다.
“흐윽! 여보, 아기가… 아기가 나오려나 봐요.”
“뭐어? 자, 잠깐만. 119 불렀어? 아직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남았잖아. 괘, 괜찮아? 여보! 괜찮냐구!”
“흐윽! 아, 아직은……. 여보, 빨리요. 아아악!”
“아, 알았어. 집에서 꼼짝 말고 기다려.”
“아악! 어, 어서 와요! 아아악! 여보! 여보……!”
“알았어! 그, 금방 갈게.”
민 사장은 서둘러 119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당황해 1을 세 번이나 누른다.
현수는 당황한 민 사장을 대신하여 전화를 걸어주었다. 집주소를 불러주고 출산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소방서에선 이런 일에 익숙한 듯하다.
일련의 상황이 마쳤을 땐 민 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통화하는 사이 튀어나간 것이다.
“하긴……! 이건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어.”
현수는 아내들이 출산할 때 손쉽게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마땅한 곳을 수배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킨샤사에 있을 연희와 이리냐를 떠올렸다. 그곳은 한국보다 분명히 의료 여건이 열악하다.
“흐음, 의료원도 필요하겠군.”
현수의 이런 생각 덕분에 킨샤사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형 종합병원이 만들어진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인 서울아산병원보다도 규모가 크다.
풍납동에 있는 서울아산병원은 대지 면적 15만 2,052㎡(약 4만 6,000평)이며, 병상 수는 2,708개이다.
2위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2,062 병상이다.
3위는 서울 삼성병원 1,951 병상, 4위는 서울대병원 1,691 병상이다.
킨샤사에 지어지게 되는 ‘이실리프 의료원’은 총 대지 면적 100만㎡(약 30만 평)이며 10,000병상이 갖춰진다.
서울아산병원+신촌 세브란스병원+서울 삼성병원+서울대병원보다도 훨씬 크다.
2013년에 취합된 자료에 의하면 콩고민주공화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37달러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25,167달러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은 분명히 가난한 후진국이다.
하지만 킨샤사에 위치하게 될 이실리프 의료원은 결코 그저 그런 실력을 지닌 의사와 간호사들로 구성되지 않는다.
장비 또한 열악하거나 낙후된 것이 아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한국 등 의료 선진국 의사 가운데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의료진들로 망라된다.
또한 최첨단 의료장비로 중무장한다.
하여 아프리카 전역의 VIP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중증환자들이 몰려드는 명문 병원이 된다.
하여 10,000개나 되는 병상이 늘 가득 찬다.
세상은 넓고 환자는 널린 때문이다. 이러한 명성은 미라힐Ⅰ과 미라힐Ⅱ의 도움이 결정적이다.
절개를 해도 수술 자국조차 남지 않는데다 기적의 치료제라는 명성답게 아주 빠른 회복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콩고민주공화국 의료당국으로부터 신약 인정을 받게 되는 이것은 오로지 이실리프 의료원에서만 쓰인다.
효능이 소문나자 세상의 모든 병원으로부터 미라힐Ⅰ과 미라힐Ⅱ를 공급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하지만 외부에 판매되지 않는다.
외국에 팔 것이 아니니 미국 FDA 같은 곳에 신약 승인 신청을 하지 않는다.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식약청에 신약신청을 했을 때 의약관계자들의 반대에 부딪쳐 등록을 거절당한 바 있다. 그렇기에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미라힐Ⅰ과 미라힐Ⅱ은 제법특허나 물질특허도 신청하지 않는다. 복제해서 쓸 수 있으면 그러라는 뜻이지만 세상에 없는 물질을 어찌 복제할 수 있겠는가!
결국 이실리프 의료원에서만 쓰이는 의약품이 된다.
어쨌거나 이실리프 의료원은 명실상부한 세계 제1의 의료원으로 인정받게 된다. 의대 졸업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병원이 되는 것이다.
하여 하버드 의대, 스탠포드 의대, 존스 홉킨스 의대 등을 졸업한 레지던트들이 널리고 널린 곳이 된다.
나중의 일이지만 한국엔 이실리프 의료원 부설 의과대학이 설립된다. 그렇기에 이실리프 의대 출신 레지던트들이 득실대기도 한다.
현수는 대한의약품 민윤서의 아내 윤영지과 국방과학연구소 최희문 팀장의 아들 최윤준을 치료해 낸 바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중증근무력증 환자였다.
대구 동부경찰서 형사과 최장혁 경사는 외상뿐만 아니라 고질이었던 당뇨병까지 완치되었다.
치료를 포기했던 민주영의 마비된 왼팔도 고쳐줬다.
뿐만이 아니다. 이실리프 빌딩 경비팀장을 맡고 있는 곽인겸은 하반신 마비로 병석에 있었지만 일어나서 활동 중이다.
대구 역전회 회주였던 오광섭의 부친 오대준은 뇌사상태에 있었지만 기적적인 생환을 한 바 있다.
또한 엘리자베스 아폰테와 우미내 마을 집주인의 부인이 앓고 있던 말기 폐암도 치료해 냈다.
크론식당 강동호의 아내가 앓고 있던 크론병 또한 말끔하게 고쳐줬다. 권지현의 모친인 안숙희 여사와 외조부인 안준환 옹도 현수의 덕을 보았다.
말기 폐암은 세계 초일류 병원으로 일컬어지는 뉴욕 ‘메모리얼 슬로인 캐더링 암센터’에서도 손대지 못한다.
중증근무력증과 크론병, 뇌사상태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이실리프 의료원은 다르다.
폐암과 중증근무력증, 크론병은 100% 완치시킨다. 회복 포션과 리커버리 마법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현수의 아내들은 모두 이곳에서 출산하게 된다.
극성스런 언론도 피하고 세계 최고인 첨단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기에 일석이조이다.
이 병원의 특징은 의료비가 저렴하다는 것이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받는 진료비는 전액 의료진의 급여로 지급된다.
다시 말해 병원을 운영하여 벌어들이는 돈이 없다. 사회봉사 차원에서 조성된 곳이기 때문이다.
“헐! 정작 천연 비아그라 바이롯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보지도 못했네. 쩝! 할 수 없지. 엄청 바쁜데 그거까지 상용화하자고 했다간 큰일 나겠어.”
자리에서 일어난 현수는 킨샤사나 아디스아바바에 이실리프 제약을 만들 생각을 해보았다.
“일단 바이롯을 얼마나 구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겠어.”
나직이 중얼거리자 기다렸다는 듯 아리아니가 대꾸한다.
“바이롯? 보라색 홍당무 말하는 거죠? 그건 거기밖에 없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귀한 건데요.”
“…그걸 어떻게 알아?”
“당연히 알죠. 그게 있는 곳은 토질이 아주 특이한데, 그런 곳은 매우 드물거든요.”
“특이한 토질이라고?”
“네. 흙은 흙인데 하얀색이에요. 혹시 알아요?”
“하얀 흙이라면 혹시 전단토(田丹土)를 말하는 거야?”
“저야 이름은 잘 모르죠. 아무튼 하얀색 흙이에요. 사람이 먹을 수도 있어요. 그런 흙에서만 자라요, 바이롯은.”
전단토에 관한 것은 어떤 문서를 읽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다. 충청도 지방에서 춘궁기에 이것으로 떡이나 죽에 새알심처럼 만들어 먹기도 했다는 내용이다.
“그게 그렇게 드물어?”
“네, 거의 없어요. 하지만 호숫가 뒤쪽엔 많아요.”
“호숫가 뒤쪽이라면 어디를 말하는 거야?”
“여기보다 훨씬 더운 데요. 바이롯을 캤던 곳 말이에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이다. 하여 되물었다.
“근데 거긴 그게 많아?”
“네, 꽤 넓은 지역에 고루 분포되어 있었어요. 여기저기 띄엄띄엄 흩어져 있지만 주인님이 해달라고 하면 한곳으로 모아드릴 수는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