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87화 (786/1,307)

# 787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며 창밖 풍경을 보고 있을 때 문이 벌컥 열린다.

“오래 기다리시게 하여 정말 미안합니다. 선약된 상담이 있어 조금 늦었습니다. 수출진흥과 정인래 대리입니다. 방산 물자 수출상담 건으로 오셨다고요?”

“네, 저는 이실리프 무역상사 김현수이고, 이쪽은 저희 회사 이은정 실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어디로 어떤 물자를 수출하려 하시는지요? 또 물량은 얼마나 되는지도 말씀해 주십시오.”

“수출하려는 국가는 에티오피아입니다. 수출하고자 하는 품목은 FA―50 20대와…….”

“자, 잠깐만요. 방금 FA―50 20대라고 하셨습니까?”

“네, 대신 그쪽 조종사들에게 비행훈련을…….”

현수의 말은 또 중간에 끊겼다. 정 대리가 먼저 입을 연 때문이다.

“잠깐만요. 이건 제가 다룰 건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기다려 주시면 저희 과장님을 모셔오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네? 그러시죠.”

정인래가 나간 후 현수와 은정은 피식 웃었다. 데자뷰 느낌이 든 때문이다.

처음 이실리프 무역상사를 만들고 둘이 찾아갔던 제약사가 있다. 그때 임동훈 영업과장이라는 사람이 둘을 맞이했다.

그는 현수가 내민 서류를 받아 들고는 경악성을 토했다. 어마어마한 물량 때문이다.

“헉! 이렇게나 많이……?”

“네, 일단 그 정도가 필요하고 추후로도 계속해서 약품을 수출할 계획입니다.”

현수의 말에 임 과장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잠깐만요. 이건 제 선에서 어찌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 부장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늘의 이 상황이 그때와 상당히 유사하기에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문이 벌컥 열리고 정장차림 중년인이 들어선다. 그의 뒤에는 정인래 이외에도 직원 하나가 더 있다.

“안녕하십니까? 방사청 수출진흥과장 홍덕만입니다.”

“네, 이실리프 무역상사 대표 김현수입니다.”

“이은정 실장입니다.”

명함을 주고받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방금 전 정 대리로부터 FA―50 20대를 에티오피아에 수출하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네, 수출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겁니다. 대신 저쪽 조종사들을 교육시켜 줘야 합니다.”

“…FA―50 20대의 가격이 얼만지는 아시는지요?”

“가격은 제가 잘 모르지요. 하지만 저쪽에서 그걸 사겠다는 의사는 분명합니다.”

“실례지만 무기구매를 의뢰한 저쪽의 담당자가 누군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기거래 관련 국제적인 사기꾼들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물론입니다. 저쪽의 구매 담당자는 에티오피아의 국방장관인 시라즈 페게싸 셰레파입니다.”

“네에?”

국방장관이 직접 나서서 무기를 구매하겠다고 한다.

현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공을 들이고 또 들이면서 애를 태워도 성사될까 말까 한 무기 수출이 성사되는 셈이다.

그것도 아무런 비용도 경쟁도 없는 상태에서!

그렇기에 홍덕만 과장의 눈이 커지고 있다.

FA―50 수출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구매 확정 국가

필리핀 : FA―50 12대 확정

인도네시아 : T―50 16대 확정

● 구매 협상 국가

폴란드 : 16대 입찰 경쟁 중

이라크 : T―50 포함 24대, 8억 달러 구매 의향 있음

태국 : 16대 구매 의사 타진. 1차 협상 중

미국 : 300대 100억 달러 규모 훈련기 협상 예정

폴란드의 경우는 대통령 대 대통령이 만나서 접점을 찾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아무런 소식도 없다가 느닷없이 ‘20대 산다니 팔아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쪽의 구매의사는 확실한 겁니까?”

“네. 팔기만 하면 100% 구매하겠다고 했습니다.”

“어허! 세상에!”

긴장했다가 맥이 풀리는 듯 소파에 등을 기댄다. 이때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수리온도 구매할 수 있으면 18대를 사겠다더군요.”

“수리온 18대를요?”

“네. 뿐만 아니라 K―2 흑표 100대와 다연장로켓포 구룡, 그리고 K―9 자주포 100문을 사겠답니다.”

“……!”

점입가경이기에 홍 과장 등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현수의 말은 그치지 않고 있다.

“아울러 현무와 천무 미사일도 판매하라고 합니다.”

“끄으응!”

“참, K―2 소총도 산답니다. 삼영 E&C에서 개발한 단파통신체계도 갖추려 하니 협조해 달라더군요.”

“……!”

입만 열면 믿지 못할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기에 홍덕만 과장 등은 넋 나간 표정이 되어 있다.

현수는 홍 과장 등이 이야기를 듣느라 메모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다. 하여 은정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 실장, 프린터에 연결하여 주문 의뢰서를 인쇄하세요.”

“네, 사장님.”

은정은 가방 속에서 노트북과 휴대용 프린터를 꺼냈다. 그리곤 지시대로 의뢰서를 인쇄했다.

“이게 제가 주문 받은 물량입니다. 가격은 제가 잘 모르니 가급적 좋은 가격을 제시해 주십시오. 산다고는 했지만 너무 비싸면 발을 뺄지도 모르니까요.”

“아이고, 그럼요.”

은정이 건넨 의뢰서를 받아 든 홍 과장은 얼른 수량을 살핀다. 방금 전 현수가 말했던 그대로이다.

그러고 보니 눈앞의 사나이는 수십 조원짜리 공사를 턱턱 따오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신뢰가 간다.

“알겠습니다. 윗분들과 상의하여 최대한 빠른 인도 시기와 적절한 가격을 제시토록 하겠습니다.”

“그래주시면 저야 고맙지요. 참, 앞으로의 업무는 제 곁에 있는 이은정 차기 사장이 맡을 겁니다.”

“네?”

“이 실장님이 곧 저희 회사 대표이사가 될 거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홍 과장은 은정을 보며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곧 어마어마한 거래를 하게 된다. 그런데 너무 어려 보인다. 하여 우려 섞인 표정이다.

“염려 마십시오. 이 실장님은 지금도 매월 3억 달러 이상의 수출입 업무를 주관하고 있으니까요.”

“아, 그렇습니까?”

홍 과장 등은 또 한 번 놀라는 표정이다.

이제 겨우 20대 초반인 듯싶은데 매월 3,600억 원짜리 거래를 결정한다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참, 이실리프 어패럴에서 러시아에 항온전투복을 수출하겠다는 서류를 접수시켰을 텐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 그 건이요?”

곁에 있던 정인래 대리가 끼어든다. 시선을 주니 들고 있던 패드를 조작하곤 대답한다.

“별문제 없는 한 곧 최종 승인이 될 듯합니다.”

“다행이군요. 알았습니다.”

“저흰 이만 가볼게요.”

“네? 아, 네에.”

홍 과장이 뭐라 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선 둘은 정중히 예를 갖추곤 자리를 떴다.

둘이 나간 후 홍 과장은 다시 한 번 의뢰서를 읽어본다.

밀고 당기기 한번 없이 주문이 확정되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정식 계약서를 체결할 때 인수 조건 등이 붙을 것이나 그건 관례에 따르면 된다.

“정 대리, 나 청장실에 갔다 올게.”

“네, 다녀오십시오.”

홍 과장마저 자리를 뜨자 잠시 머뭇거리던 정 대리도 직원을 데리고 나간다.

2018년 2월 22일 금요일에 일어난 일이다.

* * *

“하음, 자기야! 어서 와요! 따랑해요!”

우미내 집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리냐가 뛰어와 품에 안긴다. 그런데 술 냄새가 풀풀 난다.

“어? 이리냐, 술 마셨어? 누구랑?”

“누구긴요. 브레즈네프 변호사랑 마시고 와서 저래요.”

현수의 재킷을 받으며 지현이 생끗 웃는다. 술 취한 이리냐가 꽤 귀엽게 굴었던 모양이다.

“헤헤, 자갸! 나 오늘 기분 너무 좋다요. 까차 언니랑 많이 마셨쪄요. 헤헤, 헤헤헤!”

“이런!”

주량보다 과음했다. 그래도 귀여워서 웃어주었다.

“그렇게 기분이 좋았어?”

“헤헤, 네! 까차 언니 참 좋아요. 헤헤, 헤헤헤!”

현수는 품에 안긴 이리냐를 번쩍 들었다.

“어머! 벌써 침대로 가려구요? 언니들도 있는데.”

영 상황 파악을 못하는 듯하다.

“아니, 여기서 이러지 말고 소파로 가자고.”

성큼성큼 걸어 소파로 나가가선 내려놓았다. 그래도 목에 건 팔을 풀지 않는다.

“자갸, 나 기분 좋은데 뽀뽀 한번 해줘요. 응?”

“…그래.”

쪼옥∼!

입맞춤을 해주는데 연희의 음성이 들린다.

“자기, 저녁식사는요?”

“응. 아직 전이야.”

“잘되었네요. 우리도 막 먹으려던 참인데. 가요.”

“그래, 잠시만. 슬립!”

“하으음!”

마법이 구현되자 이리냐가 축 늘어진다.

“웬 술을 저렇게 많이 마셨대?”

“같은 러시아 사람이라 마음 풀고 마신 모양이에요.”

“그래도 그렇지.”

“일단 식사부터 해요.”

식탁에 가자 먹음직스런 음식이 그득하다. 또 솜씨를 부린 모양이다.

“설마 이거 다 나 먹으라는 건 아니지?”

“왜 아니겠어요? 우리 둘이 온갖 정성을 다 들인 거니까 하나도 남김없이 꼭꼭 씹어서 드세요. 아셨죠?”

적어도 10인분은 되어 보인다.

“헐!”

“음식 식어요. 어서 드세요.”

“그래, 다 같이 먹을 거지?”

“그럼요. 우리도 먹어야 살죠.”

지현이 생긋 웃는다. 현수는 두 여인이 계속해서 얹어주는 반찬을 먹어야 했다. 좋은 점은 맛이 좋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배가 불러도 계속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휴∼! 배불러.”

“그래도 맛은 있죠?”

“그래. 너무 맛있어서 과식했어. 소화제라도 먹어야 할 판이야. 아무튼 고마워. 날 위해 음식 준비해 줘서.”

“어머! 고맙다니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갑자기 전투적으로 변한 연희를 보곤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럴 거리가 없다. 하여 ‘대체 내가 뭘?’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

“자기는 남편이고 우린 아내예요. 아내가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요.”

“…아, 그런 거야? 알았어. 미안해. 앞으론 안 그럴게.”

“네, 앞으로 조심하세요. 대신 벌은 받으셔야 해요.”

“벌? 무슨 벌?”

“헤헤, 다 알면서.”

생긋 눈웃음치는 연희가 왠지 섹시해 보인다.

“아, 알았어. 그러려면 바이롯을 먹어야 하나?”

슬쩍 운은 던지니 샐쭉한 표정으로 바뀐다.

“쳇! 짐승은 싫어요. 너무 힘들단 말이에요. 히잉!”

“에구, 에구! 알았어. 알았다고. 하하! 하하하!”

현수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소파로 갔다. 이리냐는 여전히 잠든 상태이다.

“자기, 커피 마셔요.”

“응, 고마워.”

“금방 지적을 받고도 또 그래요?”

지현이 내밀던 커피잔을 뒤로 빼며 샐쭉한 표정을 짓는다.

“응? 내가 뭘? 뭘 지적 받았는데?”

“아내한테는 고맙다는 말 하는 거 아니라구요. 당연한 거잖아요. 안 그래요?”

“그, 그래. 그렇군. 알았어. 앞으론 고맙다는 말 안 할게.”

“대신 남편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일은 더 열심히 하실 거죠?”

현수는 이건 또 뭔 소린가 싶은 표정을 지었다.

“남편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일?”

“네. 그거 해주셔도 우리도 고맙단 말 안 할 거예요. 아셨죠? 당연히 할 일이니까요.”

“그래? 그, 그래, 알았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