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1
여주인이 재잘거리며 자리를 안내한다.
눈 내리는 바깥 풍경도 잘 보이면서 비교적 안쪽이라 아늑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곳이다.
“뭐로 준비할까요?”
“으음, 뭐 할 거야?”
현수가 메뉴판을 내밀자 모두들 시선을 모은다.
“나는 새우 필라프하고 고르곤졸라 피자 주세요. 그리고 생딸기 주스도 주세요.”
“저는 찹스테이크하고 파인애플 주스요.”
“흐음, 나는… 일단 크림 파스타만 주세요. 물하고요.”
“저도 찹스테이크 주세요. 참, 와인 할래?”
현수의 물음에 세 여인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진다.
“좋죠! 오늘 같은 날은 한잔 쭉 마셔줘야 해요. 그죠?”
연희의 말에 대꾸한 사람은 여주인이다.
“아이고, 그럼요! 오늘 같은 날 안 마시면 언제 마시겠어요? 분위기 좋게 눈도 오는데. 마침 괜찮은 와인 들여온 거 있어요. 어머!”
여주인이 접대용 미소를 지으며 와인 페이지를 펼치려는데 문이 열리면서 검은 양복차림 사내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경호원들이다. 그런데 덩치가 커서 그런지 조폭으로 오해한 듯 여주인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어, 어서 오세요. 자, 잠깐만요, 손님.”
조폭들은 조금만 늦게 응대해도 개판을 치곤 한다. 하여 얼른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안내하러 간다.
“조폭인 줄 알았나 봐요.”
“후후, 그러게. 조금 억울하겠네.”
“그쵸? 조폭인 걸로 아신 게 분명해요.”
지현은 조폭을 겁내지 않는다. 서울중앙지검에 있으면서 잡혀오는 녀석들을 수없이 본 까닭이다.
“그러게. 아무튼 기왕에 들어온 거니까 와인도 마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껏 먹고.”
“호호! 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에요.”
지현이 아주 예쁜 미소를 지으며 눈웃음친다.
결혼한 후 부쩍 섹시해진 느낌이다. 하여 와락 안아주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갑자기 손님들이 오셔서.”
“이렇게 죄송해하지 않으셔도 되요. 그 사람들 우리 일행이니까요.”
“네? 그럼…….”
“우리 경호원들이에요.”
“아! 그래서 덩치들이 크셨구나. 근데 웬 경호원들이 저렇게 많아요?”
국정원 4명, 해군 4명, 공군 4명, 육군 4명, 스페츠나츠 4명, 토탈가드 4명이다. 합계 24명이나 된다.
웬만한 사람은 이만한 수의 경호원을 데리고 다닐 수가 없다.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여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리냐가 모델인 것까지는 알았는데 대체 신분이 뭐기에 이러나 싶은 것이다.
“우린 이거로 주세요.”
현수가 짚은 건 이 카페에서 가장 비싼 것이다. 모처럼 아내들과의 외출이다. 기분 좋게 쏘려는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금방 준비해 드리죠.”
여주인은 기분이 좋다. 손님이 하나도 없었는데 갑자기 28명이나 들어왔다.
여자 셋과 남자 하나가 있는 테이블의 매상도 쏠쏠하지만 24명의 경호원들이 있는 테이블 쪽 매상이 훨씬 높다.
덩치가 커서인지 혼자서 세 가지를 주문하는 사람도 있고, 가장 비싼 찹스테이크를 2인분이나 주문한 사람도 꽤 된다.
특히 백인 네 명은 고르곤졸라 피자, 찹스테이크, 새우 필라프를 모두 곱빼기로 주문했다.
수고가 많았기에 무엇이든 마음껏 먹고 마시라고 했기에 부담 없이 주문한 것이다.
어쨌든 이 가게 하루 매상을 한 번에 올리는 순간이다.
음식을 다 먹고 나면 디저트까지 주문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하여 주방에 주문을 넣고 현수가 있는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절세미녀 셋에 둘러싸인 훈남. 많이 본 얼굴이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여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오라는 듯 손짓한다.
“네, 손님!”
“저기 저 피아노, 우리가 써도 돼요?”
“아이고, 그럼요! 당연히 쓰셔도 됩니다.”
얼른 쓰라는 듯 손짓하니 넷 모두 일어선다. 얼굴들이 예뻐서 그런지 몸에서 풍기는 냄새 또한 향기롭다.
“에고, 잘 못 치는데… 괜히 얘기했나 봐요.”
시선이 집중되자 지현이 부끄러운 듯 얼버무린다.
“괜찮아. 우리뿐인 걸 뭐. 근데 뭘 연주할 거야?”
“눈도 오고 하니 영화 러브스토리에 나왔던 스노우 플로릭(Snow Frolic) 연주할게요.”
“아, 좋지.”
“자, 그럼 연주할 테니 귀 기울여 봐요. 건반을 잘못 눌러도 그건 제가 그런 게 아니랍니다. 아셨죠?”
“하하, 그래. 어서 해봐.”
♬♪∼ ♪ ♪∼♬♬∼ ♪♪∼
지현이 연주하는 피아노 음이 카페 내부에 울려 퍼지자 창밖을 보고 있던 경호원들까지 시선을 돌린다.
잠시 연주를 듣고 있던 현수가 입을 연다.
“우우∼ 우우우∼ 우우∼! 우우∼ 우우우∼ 우∼우! 우우∼”
영화 러브스토리의 두 테마 중 하나가 연주되자 모두들 귀 기울인다. 제대로 된 연주에 잘 어울리는 하울링이 아늑하면서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윽고 모든 연주가 끝났다.
“우와∼! 브라비! 브라비! 9)”
짝, 짝, 짝짝, 짝짝, 짝짝짝!
“앙코르(Encore)! 앙코르! 와아아∼!”
경호원들이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소리를 지르자 지현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다.
“나도 앙코르! 하나 더 해봐.”
“그래요, 언니! 정말 멋졌어요. 하나 더 해요.”
연희가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에 못 이겠다는 듯 지현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우리 모두 아는 곡을 연주할게요.”
“그래. 근데 곡명은?”
“들어보시면 알아요.”
♬♪∼ ♬♪∼♬♪∼ ♬♬♪∼♩∼♪∼
“어머, 이곡은…….”
“호호! 언니, 이거 언니 주제가잖아요.”
지현이 연주한 곡은 현수가 작곡하여 현재 전 세계 음원 사이트 1위를 석권하고 있는 ‘지현에게’이다.
지현이 곡을 연주하자 연희와 이리냐가 합창을 한다. 연희는 제법 잘 부르는데 이리냐는 연습이 필요할 듯하다.
노래가 중반을 넘어서자 경호원들도 흥얼거리며 따라 부른다.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 좋아지는 곡인지라 우락부락한 사내들도 아는 것이다.
주문한 음식을 서빙하던 여주인은 연주하는 지현과 현수를 번갈아본다. 그러다 문득 알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뜬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일행이 이 가게에 온 것이다.
들고 있던 접시를 내려놓은 주인은 후다닥 카운터로 가더니 캠코더를 들고 나왔다. 그리곤 지현의 연주와 현수의 표정을 녹화했다.
“와아아아! 앙코르! 앙코르!”
짝, 짝짝, 짜짜짝, 짝짝짝!
카페가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터진다.
훌륭한 연주에 아름다운 노래가 곁들여진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의 앙코르는 없었다.
카페 여주인의 한마디 때문이다.
“손님,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테이블로 돌아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와인을 곁들인 음식을 먹고 디저트까지 즐겼다. 그러는 내내 양평의 이름 모를 야산이 체질 개선되고 있었다.
아리아니가 또 나선 것이다. 어차피 인적이 끊긴 곳이기에 정령들의 작업을 방해하는 것은 없었다.
‘아리아니가 또 뭘 하고 있나?’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켈레모라니의 비늘에서 마나가 빠져나가는 현상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고개를 갸웃하곤 단란한 한때를 즐겼다.
경호원 가운데 하나가 귀갓길 운전을 맡겠다고 왔지만 현수는 전혀 취한 상태가 아니다. 즐겁게 마시고 큐어 포이즌 마법으로 알코올을 분해시켜 버린 때문이다.
그래도 음주했다며 말리자 카페 여주인이 혈중알코올농도 측정기를 가져왔다. 측정 결과 0이 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린다. 마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분 좋게 집으로 왔다. 그런데 우미내 마을 입구부터 못 보던 차들이 빼곡하다.
러시아 발 기사를 보고 온 기자들이 틀림없다. 그 즉시 핸들을 틀어 서초동으로 향했다. 지현의 친정으로 간 것이다.
그런데 안준환 옹이 계시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선 현수의 아내가 셋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렇기에 다시 나와야 했다.
넷의 다음 행선지는 극장이다. 영화 한 편을 보곤 귀가했다. 기다리다 지친 기자들은 다 가고 없었다.
“이거야 원…….”
따라다니는 경호원들의 시선이 있기에 텔레포트로 귀가할 수 없었다.
‘흐음, 이럴 경우를 대비한 집 한 채쯤 따로 장만해 놓아야 하나? 쩝! 귀찮군.’
귀가 후 모두가 샤워를 했다. 그리곤 어제에 이어 마나심법을 전수했다. 바디체인지 과정에서 두뇌가 좋아지기는 했지만 마법은 여전히 난해하다.
그렇기에 수많은 질문이 오가는 시간이었다.
늦은 밤이 되자 불을 끄고 2세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열도 나고 땀도 나는 작업이다. 그래도 열심히 했다.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성적을 거두지 않겠는가!
그 결과 오늘도 모두가 지쳐서 곯아떨어졌다. 물론 현수는 예외이다.
“아리아니.”
“네, 주인님.”
“지금 갔다 올까?”
“그러죠. 저는 아공간에 있을게요.”
말하지 않아도 의도를 알아주니 기분이 좋다.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하으음! 역시 공기는 여기가 최고야!”
“휴우∼ 저도요. 주인님이 살던 곳은 숲이 너무 많이 망가져서 그래요. 여기처럼 울창하면 거기도 괜찮을 텐데.”
“그렇지? 하지만 나 혼자 힘으로는 어쩔 없는 일이니 이해해. 그래도 킨샤사, 아니, 더운 데는 괜찮지 않았어?”
“그래요. 거긴 괜찮아요. 아무튼 이제 좀 살 거 같아요.”
대화를 하며 살펴보니 움직이는 녀석이 없다. 생쥐들이 모두 디오나니아의 영양분이 된 모양이다.
“내 신성력과 아리아니의 정령력이 합쳐지면 얘들 생장이 촉진된다고 했지?”
“네, 일단 중심부로 가세요. 그곳에서 땅의 축복을 내리세요. 그럼 다음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중심부? 흐음, 그럼 플라이 마법을 써야겠군.”
아리아니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왜지?”
“주인님은 여신의 가호를 받으셨어요. 그래서 디오나니아가 건드릴 수 없는 존재예요. 그러니 그냥 걸어가셔도 되요.”
“정말?”
“제 말 못 믿으세요? 얘들은 저도 못 건드려요.”
말을 마친 아리아니가 디오나니아 잎사귀 바로 곁까지 날아간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9장 연옥도의 첫 손님들
“보세요. 저는 숲의 요정이에요. 이 아이들은 제가 관장하죠. 저를 믿으세요.”
“그래?”
잠시 머뭇거리자 아리아니가 말을 잇는다.
“만일 얘들이 주인님께 해를 끼치면 이 종족은 멸족당해요. 모조리 땅속으로 빨려들어 가죠. 그래서 주인님을 못 건드려요. 여신님의 처벌을 무서워하니까요.”
“알았어.”
아리아니는 자신에게 해가 될 말을 할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두말없이 디오나니아로 이루어진 정글의 중심부로 걸음을 옮겼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녀석의 잎사귀가 움찔거린다. 그러더니 무반응이다. 하여 손을 대보았으나 여전히 꼼작도 하지 않는다. 아리아니의 말이 맞는 것이다.
중심에 당도하자 아리아니가 입을 연다.
“이제 하늘로 올라가셔서 신성력으로 축복을 내려주세요.”
“그래? 알았어. 플라이!”
허공으로 몸이 둥실 떠오른다. 늘 느끼는 거지만 순간적으로 체중이 0이 되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고도 60m쯤 되자 디오나니아 서식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이아 여신의 축복을 너희에게 베푸노라!”
현수가 손을 뻗자 손끝으로부터 황금빛 찬란한 빛줄기가 흙속으로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