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92화 (791/1,307)

# 792

스르르르르르릉―!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한꺼번에 많은 신성력을 써서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유출이 멈춘다.

“나는 다 했어.”

“알았어요. 이젠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리아니가 작은 날개를 흔들며 디오나니아로 이루어진 정글을 누볐다. 제법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서서 기다렸다. 하지만 이내 무료해져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다.

정글 전체가 우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날씨가 흐린가 싶어 하늘을 보았지만 구름 한 점 없다.

쏴아아아아―!

갑자기 호수의 물이 허공으로 치솟더니 디오나니아들에게 쏘아져 간다.

“뭐지? 아! 저게 물의 정령인가?”

반투명한 존재들이 물을 조절하는 모습이 보인다.

현수에게 강한 정령력이 있기에 계약을 하지 않았음에도 식별되는 것이다.

호수의 물이 공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우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맹렬한 기세로 성장하는 중이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30㎝밖에 안 되던 잎사귀가 금방 45㎝ 정도로 커진다. 슬로우 비디오로 영상을 보는 듯하다.

“정말 대단하군.”

보는 동안에도 쑥쑥 자라고 있음이 느껴진다.

“참, 수액을 받아야지.”

아공간 속을 뒤져보니 수액 채취에 쓸 만한 용기가 없다.

“흐음, 지구에서 말통이라도 사야겠구나. 아니다. 원료로 쓸 거니 무균 채수병을 사야 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쑥쑥 자란다.

“아리아니, 언제까지 여기 이러고 있어야 해?”

“다 했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아리아니가 되돌아온 것은 2시간쯤 지난 뒤다.

“헥헥! 제가 조금 늦었죠? 짜식들이 말을 안 들어서요.”

“말을 안 들어? 식물이?”

“네, 다 자라면 주인님이 잎사귀를 뜯어갈 거라고 하니까 차라리 자라기 싫대요. 잎사귀 찢길 때 아프대요.”

“헐……!”

식물과 의사소통을 했다는 것도 이상하고, 식물이 생각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통점이 없음에도 잎사귀가 찢길 때 아프다니 어이가 없었다.

하긴 숲의 요정도 있는데 무엇인들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주인님이 몇 번이나 먹이를 주신 분이라 하니까 자라겠대요. 하지만 시간이 필요해요.”

“……!”

“이틀만 시간을 주면 원하시는 사이즈까지 잎사귀를 키우겠대요. 대신 채취할 때 뿌리 하나당 넉 장까지만 가져가시래요.”

현수는 아리아니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믿기지 않는 말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에도 영양가 높은 먹이를 주셨으면 좋겠대요. 자라는데 큰 도움이 된대요.”

“알았어. 그렇게 해준다고 전해줘.”

살다 살다 식물에게 의사를 전달해 달라는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기에 조금은 웃긴 기분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눈은 없지만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네, 그렇게 전할게요. 잠시만요.”

아리아니가 날아간 뒤 현수는 마나심법을 운용했다. 사용한 신성력을 어떤 방법으로 채우는지 모르기에 해본 것이다.

켈레모라니의 비늘로 많은 마나가 쏠리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신성력은 변화가 없다.

“이게 아닌가? 그럼 어떻게 하지? 가이아 여신님, 신성력 다 썼습니다. 다시 채워주세요. 이렇게 말하나? 읏!”

그냥 해본 말이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신성력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현수는 느낌을 기억하려 정신을 집중했다. 신성력이 쌓이는 곳이 어디이며 어떤 경로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아……!’

신성력은 전신에 쌓이고 있다. 육체의 모양에 따라 옅은 안개처럼 채워지면서 점점 농도가 진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꽉 채워졌음이 느껴진다.

“아! 이런 거였구나.”

고개를 끄덕이자 기다렸다는 듯 아리아니가 입을 연다.

“주인님의 약속, 얘들에게 전했어요. 기대한대요.”

“그래, 알았어.”

헛헛한 웃음이 터져 나오려 하는 것을 애써 참았다.

“이제 돌아갈까?”

“흐으음, 그래요. 거기 가면 여기 공기가 그리울 거예요. 그래도 거긴 내가 할 일이 많아서 좋아요. 헤헤!”

“좋아, 이제 간다.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잠깐 사이에 현수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러자 디오나니아 정글 전체가 잠시 술렁인다. 마치 자기들끼리 대화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를 본 생명체는 아무것도 없다.

* * *

“리노! 셀다! 오늘도 좀 뛸까?”

컹, 컹―! 컹, 컹―!

좋다는 듯 펄펄 뛴다.

“주인님, 오늘은 좀 천천히 뛰시면 안 돼요?”

“왜?”

“주인님이 뛰는 쪽으로 가면 병든 녀석들이 많은데 너무 빨리 되돌아오니까 내가 볼일을 다 못 본단 말이에요.”

아리아니가 약간은 삐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알았어. 그럼 오늘은 조금 멀리 가서 거기서 머물다 올게. 자, 리노! 셀다! 가자!”

아차산 산길을 따라 달리면서 근력이 엄청나게 좋아졌음을 스스로 느낀다. 샤워를 하려 바지를 벗으면 눈으로 보기에도 다리 근육이 아주 탄탄하다.

달리면서 그 진가가 드러나는 듯하다. 마치 생고무 같은 탄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혀 힘들지 않다.

집에서 제법 먼 곳에 당도한 현수는 등산로를 떠나 인적 드문 곳으로 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미칠 수 없는 곳에 당도해선 벤치프레스 등 헬스기구를 꺼냈다.

100㎏을 넘어 200㎏까지 걸었음에도 크게 힘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너무 무거워 그런지 바벨이 휘는 느낌이다.

하여 중량을 늘리는 대신 횟수를 늘렸다.

평, 인크라인, 디크라인, 클로즈그립 벤치프레스를 모두 섭렵했다. 가슴 뻑뻑한 느낌이 왠지 좋았다.

다음은 하체 운동기구를 꺼내 땀이 날 때까지 운동했다.

허벅지와 장딴지 근육이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올 때까지 운동을 하고 나니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아리아니, 이제 집으로 가야 해.]

[알았어요, 주인님. 뒤따라갈게요. 먼저 출발하세요.]

리노와 셀다를 데리고 귀가하는 길은 상쾌하다.

“오늘부터 운동하시는 겁니까?”

“하하, 네. 수고 많으십니다.”

어제의 경호원이 아닌지라 현수가 운동하는 모습을 처음 본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오늘은 셀다가 신문을 물어다 준다. 녀석의 머리를 긁어주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운동 다녀오셨어요?”

“응. 오늘도 일찍 일어났네?”

“이 시간에 깨는 게 습관인가 봐요. 커피 드려요?”

“그래. 주면 좋지.”

소파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정치권은 여전히 티격태격한다. 경제 상황은 몇몇 종목을 빼곤 불안하다.

살펴보니 제약과 건설은 빠져 있다. 두 종목 모두 현수와 관련이 있어 호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큰 회사들도 법정관리에 들어갈 예정이라 쓰여 있다.

“흐음! 또 외국인들의 사냥에 당하는 건가?”

기사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의 명단이 있다.

“이건 외국인들에게 ‘사냥감 여기 있소’라고 가르쳐 주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쯧쯧.”

나직이 혀를 차곤 다음 면을 펼쳤다.

지나 불법조업 어선에 의해 해경 실종!

자세히 살펴보니 어젯밤에 일어난 일이다.

어젯밤 충남 태안 격렬비열도 해상에서 지나 어선 200여 척이 야간 및 기상 불량을 틈타 영해를 침범했다.

이들 타망 어선들이 휩쓸고 지나가면 어족의 씨가 마른다. 하여 불법조업을 단속하기 위해 해경이 출동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순순히 단속에 응하지 않았다. 조직적으로 쇠파이프와 갈고리 등을 휘두르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를 제압하기 위해 출동한 해경 가운데 하나가 지나 어부가 휘두른 갈고리에 끌려가 바다에 빠졌다. 밤새 수색 작업을 펼쳤지만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다.

의사는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발견된다 하더라도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확률이 높다는 조심스런 예측을 내놓았다.

부상당한 두 명의 해경은 육지로 후송되어 치료 중인데 상처가 깊어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뭐야! 이런 씁새들이!”

현수는 살짝 혈압이 높아짐을 느꼈다.

기사 아래엔 2008년부터 2013년 8월까지 지나 어선의 불법조업이 총 2,421건이나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철판으로 방어막을 치는가 하면, 선명(船名)과 허가 번호판을 위조해 정상적인 것처럼 속였다고 한다.

그간 우리 해경이 몇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지나 정부에 강력한 항의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역 보복 및 희토류 수출중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나 정부는 불법조업 어선들을 단속할 때 무력 사용을 자제하라는 서한까지 전달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적반하장이다.

“이런 개 같은 종자들은 그냥 둬선 안 되지.”

나직이 중얼거릴 때 지현이 다가온다.

“하암! 아무래도 잠이 모자랐나 봐요. 나 또 잘래요.”

나가보려는데 마침 잘되었다.

“그래, 피곤하면 쉬어야지. 가서 자.”

“네, 그래야겠어요. 자기한테 너무 시달렸어요.”

“그래? 하하, 알았어. 쉬어.”

지현이 방으로 들어간 후 마법으로 재웠다.

아직 깨지 않은 연희와 이리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곤 곧장 인천 차이나타운 한송모텔 옥상으로 텔레포트했다.

“어디 보자. 와이드 센스!”

마나를 퍼뜨려 확인해 보니 모텔엔 약 400명이 있다. 다행히 깨어 있는 사람은 없다.

오전 8시 경이지만 이들에겐 한밤중이기 때문이다.

“흐음, 여기에 300명 정도 있다고 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인원이 많은 거지?”

7층으로 내려서면서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을 구현시켰다. CCTV를 우려한 것이다.

“있군. 그렇다면…….”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공간 오픈!”

“주인님, 뭐하려고요?”

“아리아니, 내가 아공간에 살아 있는 인간을 집어넣으면 안에서 산소통 달린 컨테이너로 들어가게 해줄 수 있어?”

“왜요?”

“되도록이면 살려서 넣고 싶어서.”

“그거 문 열면 안에 있던 공기가 빠져나가는데요?”

“아, 그렇군. 잠깐만.”

현수는 컨테이너를 꺼내 입구에 마법진을 설치했다.

퍼늘(Funnel) 마법진이다.

아무런 도구 없이 언제 출현할지 모를 짐승을 마법으로 사냥할 때 쓰는 것이다. 이것이 구현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 깔때기가 유지되도록 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는 통발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또 다른 비유를 하자면 하지정맥 내부에 있는 판막(Valve)과 비슷하다. 이것은 혈액의 흐름을 항상 심장 쪽으로 일정하게 유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판막이 손상되면 심장으로 가는 혈액은 역류하게 된다. 하중은 밑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맥이 늘어나면서 혈관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오게 된다. 이것이 하지정맥류이다.

“이제 아공간에 넣으면 안쪽으로 밀어 넣을 수 있지?”

“네, 얼마든지요.”

아공간 안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든다. 하여 아리아니의 벌거벗은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고마워. 일 끝나면 당근주스와 식혜 줄게.”

그런데 몹시 부끄러운 듯 몸을 배배 튼다.

“아이고, 부끄러워라.”

“부끄럽긴, 난 주인님이니까 괜찮지?”

“호호! 그럼요. 네, 고마워요.”

현수는 지하로 내려갔다. 그리곤 모텔로 들어오는 전기 차단기를 찾아 내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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