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5
삽시간에 집채만 한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비는 오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파고(波高)는 고작 1∼2m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7∼8m가 되었고, 점점 더 높아진다. 방파제 위로 바닷물이 쏟아질 정도이다.
“아앗! 갑자기 왜 이래? 조 경위, 오늘 기상청에서 태풍 분다고 했어?”
“아뇨! 이슬비만 올 뿐 바다는 잔잔하다고 했습니다!”
“일기예보 다시 확인해 봐! 갑자기 이게 웬 파도야!”
300톤급 신형 320함 소현식 함장은 우려 섞인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태풍 예보도 없었는데 파고가 너무 높다.
게다가 점점 높아지는 듯한 느낌이다.
이 정도면 사고 해역을 향해 출동하자마자 320함이 먼저 침몰할 수도 있다.
“함장님, 비 말고는 특별한 일기예보는 없었습니다.”
“그래? 그럼 이건 뭐지? 일시적인 현상인가?”
말하면서 봐도 확실히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본청에 연락해. 풍랑이 심해 출동할 수 없다고.”
“네, 알겠습니다. 본청에 연락합니다.”
부함장 조연호 경위가 보고하러 자리를 뜨자 휴대폰을 꺼내 현 상황을 녹화하기 시작했다.
본청 높은 분들은 기상청 일기예보만 믿고 출동명령을 재촉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파고는 어느새 15m를 넘고 있다. 먼 바다이기에 다행이다. 육지 근처라면 쓰나미에 해당된다.
“함장님, 본청에서 그래도 출동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럴 줄 알았다. 자, 이 동영상 전송해! 이거 보고고 출동하라면 가겠다고! 단 본 함이 먼저 침몰할 수도 있다는 걸 분명히 주지시키도록!”
“알겠습니다! 보고합니다!”
조 경위가 재빨리 자리를 뜬다. 함장은 시선을 돌려 남쪽 바다를 살폈다. 파도가 없다.
“응? 이건 대체 뭐지?”
바다에서 청춘을 바쳤건만 이런 현상은 처음이다.
파도치는 곳과 잔잔한 곳은 불과 2㎞ 남짓하다. 그런데 파도의 높이가 현저하게 다르다.
“뭐야? 이럴 수도 있는 건가?”
혹시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싶어 눈을 비볐다.
하지만 현실이다. 320함이 출동해야 할 방향은 나갔다간 곧바로 침몰할 지경이다.
반면 남쪽은 잔잔하여 항해하기 딱 좋다.
“뭐야, 이건? 구조하러 가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가?”
같은 시각, 지나 해경은 사고해역을 향해 전속력으로 이동 중이다. 시속 16노트의 속력이다.
참고로 시속 16노트는 30㎞/h 정도 된다.
불행히도 사고 해역은 산동반도에서 265km나 떨어진 곳이다. 따라서 아무리 빨라도 8시간 이상 걸린다.
고기 잘 잡힌다고 너무 멀리까지 간 것이다.
아무튼 오늘은 2014년 2월 24일이다. 기온은 2℃이다. 도착하면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은 시신만 가득할 것이다.
“함장님, 출동 안 해도 된답니다.”
부함장의 보고를 받은 소현식 경정은 말없이 남쪽 바다를 손으로 가리켰다.
“헉! 이건 대체 무슨 현상입니까?”
조 경위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광란과 고요가 공존하는 바다를 보고 있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되놈들 구해주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
“세상에,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조 경위뿐만이 아니다. 320함의 모든 해경이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을 딱 벌리고 있다. 젊은 친구 중 일부는 휴대폰을 꺼내 이 놀라운 광경을 녹화하는 중이다.
이때 함장이 마이크를 잡는다.
“함장이다! 320함의 모두에게 전한다! 우리는 조금 전 어젯밤 우리 동료를 실종케 한 지나 어선 200여 척이 침몰한 해역으로 출동하라는 명을 받았다!”
함장의 음성이 울려 퍼지자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운다. 원수를 구하러 가라는 소리를 들은 때문이다.
“본 함은 저 파도를 뚫기 힘들다 판단했다! 하여 본청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출동할 수 없음을 보고한 바 있다!”
“……!”
모두들 어떤 지시가 내려왔을지 충분히 짐작한다.
지나 어선을 단속하고 나면 칭찬보다 지적이 많았다. 해경 사망사고 이후 총기 사용허가가 내려왔다.
그래놓고는 최대한 자제할 것을 명한다.
지나 어선이 해경 경비함을 들이받고 난동을 피웠음에도 선장과 선원을 그냥 풀어주기도 했다.
따라서 본청에선 파도가 험하더라도 출동하라는 명을 내렸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하여 투덜거렸다.
“쓰벌 놈들! 그 새끼들을 왜 우리더러…….”
이때 함장의 말이 이어진다.
“본청에선 예상대로 재차 출동을 명했다! 해서 본 함장은 저 바다를 동영상으로 찍어 보냈다!”
“……!”
해경들은 설마 저런 바다를 뚫고 가라는 명령은 내리지 않겠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랬다면 정말 미친놈들이다.
남의 나라 불법조업 어선의 어부들을 구하라고 자국 해경의 목숨을 험난한 파도 앞에 내던지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방금 전 본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파도가 너무 심하니 잠잠해질 때까지 대기하라고 한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가기 싫은데 잘되었다. 꼴도 보기 싫은 놈들이기에 그런 기분은 더하다. 그런데 안 가도 된다니 모두들 함성이다.
“제군 중 잔잔한 바다를 찍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본 함장은 그것을 삭제하여 줄 것을 요구한다!”
“……!”
이런 신기한 현상은 당연히 텔레비전에 방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해경들은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바뀐다.
“다만 광란하는 바다는 찍어도 좋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또 한 번 함성이 울려 퍼진다.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의미의 함성이다.
11장 아! 진짜 더럽게 많네
“주인님, 빨리 가야 할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이 냄새나는 애들 다 죽을 거 같아요.”
“그래? 아, 산소 부족이구나. 알았어. 텔레포트!”
눈에 보이지 않던 현수의 신형이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광란하던 바다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잠잠해진다.
“헐! 바다가 괜찮아졌습니다. 본청에 보고할까요?”
“…아니. 바다는 아직도 광란하는 중이다.”
“네? 그게 무슨……? 보십시오. 저렇게 잔잔합니다.”
“아니. 앞으로도 최하 8시간은 계속해서 미친 듯한 파도가 치고 있다. 따라서 본 함은 출동이 불가하다.”
“아! 알겠습니다.”
조 경위의 고개가 크게 위아래로 움직인다. 함장의 의도를 읽은 것이다.
같은 순간, 현수는 여러 나라를 거쳐 연옥도로 이동하고 있다. 지나 → 이라크 → 리비아 → 콩고민주공화국 순이다.
전에 비하면 확연히 거점이 줄어들었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아악! 제발! 아아악! 아아아아악!”
연옥도에 당도하자 비명이 난무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고통에 겨워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
나뭇가지를 떼어내 필사적으로 휘두르는 녀석들도 있다.
“저리 가! 저리 가! 오지 마! 오지 말란 말이야!”
“아악! 사, 사람 살려! 앗! 악어야, 악어! 아아악!”
물가로 도망쳤던 자가 악어에게 물려 물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중이다. 하지만 돕는 자는 하나도 없다.
모두가 제 한 몸 간수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이지만, 원래 이기적이라 아무 일 없어도 구경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악! 마법사님,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아악! 아아아아아악!”
현수를 발견하고 도움을 청하던 자가 타란툴라 호크에게 쏘인 후 바닥을 나뒹군다.
눈물, 콧물, 침, 땀이 범벅이 되어 흙투성이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비싼 술에 기름진 안주를 먹으며 조직원들이 데려온 한국 여자를 품고는 온갖 폼 다 잡았을 것이다.
조금 더 조직원들을 쥐어짤 생각이었다. 그러면 상부에서 인정하여 더 높은 지위를 얻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발가벗은 채 미친놈처럼 나뒹구는 중이다. 인간 이하의 모습이다.
“흐음, 예상대로군. 좋아!”
말을 하며 존재감을 드러내자 타란툴라 호크들이 일제히 물러난다. 하지만 고통이 금방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여기저기에서 나뒹굴고 있다.
“아공간 오픈! 출고!”
“푸하아아! 냄새 때문에……. 주인님, 얘들 대체 뭐예요? 인간 맞아요? 가축도 이런 냄새는 안 나는데.”
되놈 어부들의 냄새에 질렸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언락!”
삐꺽―! 와당탕! 와당탕탕!
“어떤 새끼야?”
“뭐야? 여긴 대체 어디야?”
“어라! 바다였는데 갑자기 웬 정글? 여긴 어디야?”
컨테이너에서 쏟아져 나온 어부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러다 사방에서 나뒹구는 녀석들을 보았다.
“저건 또 뭐하는 잡종들이야?”
“그러게. 왜 빨가벗고 지랄들이지?”
“혹시 단체로 미친놈들 아닐까?”
“뭐? 미친놈?”
흠칫거리며 먼저 온 놈들로부터 떨어지려 한다.
이때 현수의 음성이 들린다.
“모두 들어라!”
“……!”
음성에 따라 시선을 든 어부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허공에 떠 있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지금부터 10초의 시간을 준다. 실오라기 하나도 허용하지 않겠다. 걸친 것 모두를 벗는다. 실시!”
“저건 또 뭐라는 거야?”
“그러게. 여긴 날아댕기는 미친놈도 있나봐.”
“야! 이거 꿈 아닐까? 이거 말이 돼? 배가 침몰했는데 갑자기 정글이고, 날아다니는 놈이 있어.”
몽땅 벗으라는 현수의 말은 완전히 씹혔다. 단 한 녀석도 옷을 벗지 않는 것이다.
“체인 라이트닝!”
번쩍, 번쩍, 번쩍―!
콰릉, 콰르릉, 콰르르르릉―!
“으악! 캑! 컥! 아악! 크윽! 으으으! 케엑!”
일곱 녀석이 쓰러져 바들바들 떤다. 마나의 양이 아까보다 약간 늘어서이다.
“모두 옷을 벗으라 하였다.”
현수의 음성이 벼락처럼 울려 퍼진다. 마나의 농도를 조금 높이니 거의 포탄 터지는 수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 즉시 옷을 벗지 않는 자는 벼락 맞아 죽을 것이다. 체인 라이트닝!”
잠시 시간을 두고 마법을 구현시키자 섬광과 더불어 낙뢰 음이 터져 나온다. 물론 일곱 녀석이 또 쓰러졌다.
이번엔 더 강력했는지라 머리카락에서 김인지 연기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충격이 강했는지 기절한 듯한데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다. 장난이 아님을 깨닫고는 옷을 벗기 시작한다.
“가장 늦게 벗는 자는 아나콘다의 먹이가 될 것이다.”
지옥도와 연옥도, 그리고 징벌도 인근에 서식하는 악어와 아나콘다는 몹시 굶주린 상태이다.
얼마 안 되는 먹이는 이미 다 먹어치운 때문이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서식하게 하려면 일정한 간격으로 적당한 영양이 공급되어야 한다.
현수가 데려다 놓은 삼합회 조직원 896명 가운데 21명은 이미 목숨을 잃었다.
타란툴라 호크의 공격을 피하려 이동하다 물가로 가게 되어 굶주린 악어와 아나콘다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벗어놓은 옷은 한곳에 모아놓도록 하라.”
현수는 모두가 발가벗고 입었던 의복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자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는 대한민국의 영해를 침범하여 불법조업을 일삼았다. 하여 그에 대한 처벌로 이곳 연옥도에 수감되었다. 이 섬을 벗어나려 하면…….”
아까의 설명을 또 해주었다. 모두들 설마 하는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 말 다 한 현수는 모아놓은 의복과 빈 컨테이너를 아공간에 담았다.
“그럼 그간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라! 텔레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