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6
현수의 신형이 사라지고 잠시 후, 타란툴라 호크들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20만 마리가 총출동했다.
“아악! 이게 뭐야? 아악! 아파! 엄청 아파! 아아악!”
“으아악! 마, 말벌이다! 오지 마! 오지 말란 말이야.”
“야야! 비켜! 비키라고! 으아아아!”
“아앗! 악어다! 진짜 악어야!”
“크엑! 여, 여긴 아, 아나콘다야! 으아아아아!”
난리가 벌어졌다. 새로 전입 온 1,527명의 지옥과 같은 운명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먼저 와서 아직 살아남은 875명과 합치니 연옥도의 인구는 2,402명이나 된다.
* * *
“자기, 어딜 다녀왔어요? 근데 옷은 왜 젖었어요?”
현수가 서재에서 나오자 지현이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한숨 자고 나니 안 보여서 찾았다. 혹시 외출했나 싶어 인터폰으로 경비원들에게 제공한 컨테이너에 연락해 보았다.
현수는 외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법으로 어디를 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홀딱 젖은 모습이니 놀란 것이다.
“아! 잠깐 바닷바람 좀 쐬고 왔지. 나 샤워부터 할게.”
또 씻었다.
“대체 하루에 몇 번을 씻는 거야? 하여간 귀찮게 하는 데 뭐 있는 놈들이야.”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지현이 따끈한 코코아를 건넨다.
“이거 마셔요.”
“맛있겠네. 고마… 역시 자기밖에 없어.”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말자고 했기에 얼른 말을 바꾸었다.
“쳇! 언니밖에 없다구요?”
시선을 돌려보니 이리냐가 토라져 있다.
“내가 말을 잘못했네. 역시 마누라들밖에 없어.”
“어머! 우리가 이제 마누라예요?”
연희의 눈이 동그랗다. 왠지 늙었다는 느낌 때문이다.
“마누라가 어때서? 이거 아내를 비하하는 뜻 아니야. 마누라는 말이지…….”
잠시 설명이 이어졌다.
마누라는 조선시대 때부터 사용되던 말이다.
처음엔 ‘대대 마노라’, ‘대전 마노라’, ‘선왕 마노라’처럼 마마와 혼용되어 쓰이던 극존칭어였다.
그러다가 늙은 부인, 또는 아내를 가리키는 낮춤말이 되었다. 이는 조선 왕조가 쇠퇴하면서 봉건시대가 막을 내리기 시작할 무렵의 일이다.
같은 시기에 종2품과 정3품을 이르던 ‘영감’이라는 말도 나이 먹은 노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변했다.
계급사회의 몰락과 함께 특정인을 지칭하던 말도 점차 그 의미가 낮아진 것이다.
“그래도 앞으로 마누라라고 부르지 말아요.”
“싫어? 그렇다면…….”
현수가 뭐라 하려 할 때 연희가 말을 자른다.
“지현 마노라, 연희 마노라, 이리냐 마노라라고 부르는 건 괜찮아요. 호호호!”
“호호! 그거 좋네요. 왠지 왕비가 된 느낌이에요.”
“헐! 마노라 발음하기가 쉬운 줄 알아?”
“우리같이 예쁜 마노라를 데리고 살려면 그 정도는 감수하셔야죠. 더구나 하나도 아니고 셋씩이나!”
지현의 말에 현수는 말문을 닫았다. 할 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사는 하셨어요?”
“아니, 아직.”
“뭐예요?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아침을……. 잠깐만 기다리세요. 금방 차려드릴게요.”
지현이 일어서자 연희와 이리냐도 동시에 주방으로 향한다. 식재료들을 지지고 볶고 삶고 데치면서 서로 간의 정을 키우기로 약속한 때문이다.
언제까지 요리나 설거지, 빨래를 함께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저택으로 들어가면 사용인들이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모든 일을 공동으로 하기로 약속했다.
현수는 따끈한 코코아를 마시며 TV를 켰다.
“속보를 말씀드립니다. 어제 실종된 해경대원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시신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저체온증이 사망 원인이라고 한다. 해경은 일 계급 추서하고 해경장으로 장례를 치른다고 한다.
다음 뉴스는 격렬비열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지나 어선에 관한 것이다.
긴급 출동한 지나 해경이 사고해역에 당도하려면 출발로부터 9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우리 해경에게 긴급 구조를 요청했다.
하여 출동하려 했지만 파고가 너무 높아 출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자료 화면으로 높이 15m짜리 대형 파도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미친 듯 파도치는 바다이다. 누가 봐도 저 상태에서 배를 띄우는 건 미친 짓이라고 할 만하다. 함장이 잘 찍어서 320함에서 직접 찍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또 전문가들이 나타나 의견을 주고받는데 이번에도 저체온증으로 사망자가 많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다음 전문가는 의문의 침몰사건을 지적했다. 파고가 높은 것도 아니고 인근해역에 암초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26척이나 되는 어선 전부가 침몰한 것은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전례가 없는 일인지라 전문가라 해도 딱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한창 전문가 의견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바뀐다.
“긴급 보도를 드립니다. 이 시각 현재 지나 어선 300여 척이 북방한계선인 NLL 근해 우리 수역으로 들어와 불법조업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의 보도 이후 헬기에서 찍은 영상이 보인다.
보도는 계속되었다. 지나 어선들이 어떤 방법으로 우리 수역을 유린하는지 설명한 것이다.
처음엔 백령도 북방의 북한 수역으로 진입한다. 이후 NLL선을 따라 동·서로 이동하면서 조업한다.
북한이 관할하는 수역이기에 우리에겐 단속 권한이 없다.
그러다 어장이 좋은 연평도 북방에 도착하면 야간에 NLL 남쪽 우리 수역으로 넘어와서 조업한다.
참고로 우리 어선들은 주간에만 조업한다.
이들은 연평도의 황금어장을 싹 쓸어간다. 불법 저인망으로 해저 바닥을 그물로 긁어서 치어까지 잡는 것이다.
성어기가 되면 수심이 얕아 우리 해군 고속정이 접근할 수 없는 우도(연평도 동방) 근해까지 진입하여 조업한다.
일일 평균 200∼300척이며, 연중무휴로 들어온다.
그런데 단속이 어렵다.
NLL선을 넘어와서 조업을 하다가도 해경, 또는 해군 함정이 접근하면 곧바로 북한 수역으로 도주하기 때문이다.
설명을 마친 후 다시 불법조업 중인 어선들을 보여준다.
“아, 진짜 더럽게 많네.”
현수가 투덜거린 말이다. 화가 나 들고 있던 코코아 잔을 내려놓고는 지도를 펼쳤다.
“아리아니, 또 가야 해.”
“설마 냄새나는 놈들 또 잡으러 가는 건 아니죠?”
“한 번만 더 하자. 응? 당근주스와 식혜 줄게.”
“으음, 그럼 먼저 줘요. 그놈들 냄새 맡으면 못 먹을 거 같아요.”
“알았어. 잠깐만.”
화장실로 들어가 당근주스와 식혜를 꺼내서 건넸다.
“지현 마노라,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또 나가요?”
“응. 금방 올 거야.”
“알았어요. 다녀오세요.”
“그래. 텔레포트!”
현수의 신형이 거실로부터 사라졌다.
“읏차! 플라이.”
예상 해역에 당도한 현수는 헬기부터 찾았다. 어선이 침몰하는 장면 등이 찍히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아까보다 바람이 조금 더 세져서 그러는지 보이지 않는다.
“잘되었군. 아리아니, 준비됐지?”
“네. 마스크 두 겹으로 꼈어요.”
전능의 팔찌로 투명 은신 마법을 펼쳐 몸부터 감췄다. 그리곤 불법조업 중인 지나 어선들을 침몰시키기 시작했다.
“싱크! 싱크! 싱크! 싱크! 싱크! 싱크! 싱크!”
가까이 있던 어선부터 침몰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허우적거리는 놈들을 아공간에 담기 시작했다.
약 한 시간 만에 318척에 달하는 어선 모두가 수장되었다. 아공간에 담긴 놈들의 수효는 1,581명이다.
간신히 떠서 허우적거리는 놈들은 2,000명쯤 된다.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거나 익사한 수효는 약 400명이다.
NLL 인근해역을 떠나 연옥도로 가보니 비명 천국이다. 모두들 고통에 겨워 땅바닥을 나뒹굴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1,581명을 홀딱 벗겨 풀어놓았다. 어제까지 아무도 없던 연옥도의 주민 수가 3,983명이 되었다.
이들 모두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다 하나둘 악어나 아나콘다의 먹이가 될 것이다. 악어나 아나콘다 역시 이들에게 잡혀 식량이 된다. 뭐든 먹는 족속이니 잡아먹는 것이다.
문제는 악어나 아나콘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땅한 식량도 없다. 그리고 타란툴라 호크에게 거의 매일 쏘이면서 조금씩 기력을 잃게 된다.
결국 언젠가 연옥도는 다시 비게 될 것이다.
남의 나라에 와서 폭력을 휘두르는 놈들이나 남의 영해까지 침범하여 마구잡이 싹쓸이를 하는 자들에겐 알맞은 처벌이다.
“다녀왔어!”
“에고, 옷이 또 젖었네요. 대체 어디를 갔다 오기에 매번 이렇게 젖은 거예요?”
현수의 젖은 옷을 수건으로 닦는 연희가 한 말이다.
“내가 간 쪽엔 비가 좀 와서. 배가 고프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데워서 내올게요.”
잠시 후 현수는 푸짐한 밥상을 받았다.
밥을 먹고는 보드게임도 하고 마법도 전수했다.
우미내 마음에 어둠이 내리자 불이 꺼진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모처럼 조용한 밤이다.
그러는 내내 지나 쪽은 난리법석이다.
하루에 어선 544척이 침몰했다. 원인 미상이다.
어선에 타고 있던 인원은 격렬비열도 쪽 2,825명, NLL 쪽 3,975명이다. 합계 6,800명이다.
이 중 생존자는 세 명뿐이다. 나머지는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었거나 실종되었다.
NLL 해역은 남북한 모두의 협조를 얻지 못하였다.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지나 해경과 해군은 물론이고 민간 선박까지 총동원되어 사고해역 인근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더 이상의 생존자는 없다.
모처럼 보도할 게 많아진 뉴스채널만 신났다. 해군과 해경의 협조를 얻어 사고해역을 계속해서 찍고 있다.
그렇게 밤이 지났다.
해 뜰 무렵 현수는 리노와 셀다를 데리고 아침 운동을 나갔다. 그리곤 어제처럼 각종 헬스기구를 꺼내 근육을 단련시키고 돌아왔다.
“좋은 아침이야!”
“네, 잘 주무셨어요?”
“그럼. 지현 마노라도 잘 잤지?”
“호호, 네. 잘 기억하시네요. 아무튼 이번 일주일은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기분이 너무 좋아요. 주말에 자기랑 있어서 그런가 봐요. 우리가 살 집에도 가보고요.”
“그래? 다행이네. 연희와 이리냐는?”
“둘 다 씻는 중이에요. 자기는 신문이라도 보고 계세요. 식사 준비 할게요.”
“그래.”
그렇지 않아도 뭐라 보도해 놓았을지 궁금하다.
하여 신문을 펼쳤다. 예상대로 1면 톱은 지나 어선의 의문의 침몰사건에 관한 것이다.
온갖 썰을 풀어놨다. 바다 속에 크라켄10) 같은 괴물이 있어 배들을 침몰시켰을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내용도 있다.
불법조업 지나 어선 침몰 544척!
사망 또는 실종 6,797명!
큰 제호 아래 어제 일어난 사건이 나열되어 있다.
격렬비열도 인근 사고부터 원인 모를 무지막지한 풍랑의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자료사진으로 동영상 안의 높이 15m짜리 파도가 게시되어 있다. 사고현장에 둥둥 떠 있는 잔해의 모습도 있다.
이곳에서 불법조업 중이던 지나 어선 226척 전부가 침몰하였다. 그리고 2,825명이 사망 또는 실종이다.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사고현장까지 출동하느라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