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9
“그런 건 없는데? 하지만 전에 셋을 구해준 적은 있어.”
“그래요? 이미 구해줬다는 거죠? 그럼 그거에 대한 대가는 받았어요?”
“대가? 위그드라실의 잎사귀 하나는 받았어.”
“그럼 그녀와 결혼했어요?”
아리아니는 당연한 듯한 표정이다.
“근데 그거 꼭 해야 하는 거야? 받을 땐 몰랐는데 나중에 그렇다고 듣기는 했어.”
참 애매한 입장이라 한 말이다.
“그러니까 결혼은 했냐구요.”
“아니. 안 했어.”
“그럼 엘프주는 결혼예물이에요. 그걸 준 처녀 엘프가 결혼을 거절당하면 평생을 홀로 지내야 해요. 그래서 제발 결혼해 달라는 뜻으로 주는 거라구요.”
13장 요강에 똥 사는 씁새!
“헐!”
“안 그러면 그 짠돌이들이 엘프주를 1,000통이나 내줄 리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나야 엘프들이 짠돌인지 아닌지 모르지. 아무튼 골치 아프군. 참, 안 받겠다고 하면 되나?”
“엘프들이 얼마나 고집 센지 모르시는군요. 만일 준다는 걸 거절하면 아예 들러붙을 거예요. 허락할 때까지.”
“끄응!”
“아무튼 축하해요! 인간 사내가 엘프 여인과 결혼하는 예는 거의 없었어요. 엘프들은 다들 예쁘지만 인간과는 수명이 다르니까요. 주인님은 엘프만큼 오래 사시니까 그 엘프는 좋겠네요. 최소한 1,000년 해로는 할 수 있으니까요. 아마 주인님이 더 오래 사실 거예요.”
아리아니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현수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머리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엘프까지? 허어∼!’
판타지 소설을 보면 엘프 여인은 인간 남자의 로망이다.
하지만 현수에겐 아니다. 엘프만큼 아름다운 여인이 이미 다섯이나 있다. 그렇기에 별로 당기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에게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행복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씁새!”
* * *
“어서 오십시오.”
“네, 사장님!”
천지건설 기획영업단장실인 이곳엔 엄규백과 이성원, 최찬성과 배진환 팀장이 있다.
이들에겐 어펜시브 참 마법을 건 바 있다. 그렇기에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이다.
“보고 받기 전에 먼저 묻겠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국정원을 그만두고 이실리프 정보로 자리를 옮긴 분들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정확히 362명입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네?”
국정원의 정직원 수는 7,000여 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362명이라면 5%가 넘는다.
이연서 회장을 통해 압력을 넣을 만하다.
“그렇게 많은 분이 국정원을 그만두고 온 이유는 뭐라 생각합니까?”
“그건 제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현수의 시선이 넷 중 가장 연장자인 이성원 팀장에게 향한다. 말해보라는 뜻이다.
“국정원은 지난 대선 때 상부의 지시에 따라 SNS 전담반인 심리정보국 직원 70명과 외부 조력자(알바들)들이 댓글 작업을 한 바 있습니다.”
“……!”
현수가 대꾸하지 않자 이 팀장의 말이 이어진다.
“인터넷 트위터, 다음 아고라, 오유 등 영향력 있는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댓글 작업을 통한 정치 개입을 하였지요.”
현수는 대꾸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해 연말 즈음부터 지금까지도 이 사건 때문에 말이 많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저를 비롯한 많은 직원이 조직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도 잃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인원이 저희에게 합류한 겁니다.”
“으음!”
현수 본인이 국정원 직원이었더라도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이내 입을 열었다.
“앞으론 더 이상 국정원에서 인원을 빼오지 마십시오. 그 때문에 제가 아는 어떤 분으로부터 경고를 들었습니다.”
엄 팀장 등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은 작업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 하여 이실리프 정보가 위축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국정원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입니다. 앞으론 군과 경찰, 검찰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반인들의 채용도 고려하구요.”
“현재의 인원은 얼마나 되죠?”
“정확히 1,124명입니다.”
“후우, 많군요.”
“네, 이쯤해서 1차적인 조직 정비를 했으면 합니다.”
인원이 많아졌기에 하는 말이다.
“네 분보다 선배인 분들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이실리프 정보는 앞으로…….”
현수는 시간 날 때 생각해 둔 방안을 풀어냈다.
이실리프 정보는 4국(局) 체제로 정비된다. 1국부터 4국까지의 국장은 엄 팀장 등이 맡는다.
1국과 2국은 국내의 정보를 취합하여 분석, 보고하는 기관이다. 3국과 4국은 국외의 정보를 담당한다.
1국과 2국의 인원은 각기 400명씩이다.
아직은 외국의 정보가 긴요하지 않기에 나머지 인원의 절반이 3국과 4국에 배속된다.
같은 임무를 두 개 국이 동시에 부여 받는 이유는 정보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함이다. 두 군데에서 올라온 보고내용이 같아야 신뢰성 있는 정보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1국 국장은 엄규백이다. 2국은 이성원이, 3국은 최찬성, 4국은 배진환이 맡기로 했다.
“앱솔루트 피델러티!”
샤르르르르릉―!
마나가 네 명에게 동시에 쏘아져 간다.
절대충성 마법이 구현되자 우호적이던 눈빛에 존경과 흠모의 빛이 어우러진다. 이제부터는 어떠한 명령을 내리든 무조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최 국장님! 배 국장님!”
“네, 사장님!”
“두 분에게 임무를 부여합니다. 일본 내각이 언제 어느 장소에서 회의를 할 건지 알아오세요.”
“사장님, 잠깐만요.”
두 국장이 대답하기도 전에 엄규백 국장이 끼어든다. 시선을 돌리자 다이어리를 꺼내 대답한다.
“내각회의는 내일 오전 9시에 총리공관에서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다른 임무를 부여하죠.”
“말씀만 하십시오.”
“일본 내각조사처와 공안조사청의 위치 및 건물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확보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확보되는 대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가는 김에 일본 시중은행들의 현금 보관장소를 파악해 주세요. 참고로 뱅크 오브 도쿄, 미쓰비시, 미즈호, 스미토모 등 9개입니다.”
일본과 관련하여 결코 좋은 기억이 없다. 하여 이들 시중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 및 외화를 모조리 가져올 생각이다.
“알겠습니다. 즉시 착수하겠습니다.”
“엄 국장님!”
“네, 사장님!”
“이실리프 정보가 입주할 만한 건물을 찾아주십시오. 겉보기엔 평범한 회사여야 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물론입니다. IT 관련 기술업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그쪽 직원들도 뽑아야 하는군요.”
“저는 사장님께서 설립하려 하시는 이실리프 뱅크 보안팀이 입주했으면 합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행의 정보를 관련하는 회사 정도로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그러려면 이실리프 뱅크 본점 근처가 되어야겠군요.”
“네, 역삼동에 적당한 건물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러세요. 다음은 3국과 4국의 임무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최찬성 3국장과 배진환 4국장 모두 다이어리에 메모 준비를 갖추고 있다.
“록히드 마틴 본사의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아울러 보잉과 노스롭 그루먼사의 기술연구소 위치 및 설계도를 입수해 주십시오. 또한…….”
현수의 입에선 계속해서 미국 군수업체들의 명단이 흘러나왔다.
Bell Helicopter Textron과 KAMAN은 헬리콥터 제작사이다. Honeywell Technology Center는 무기유도장치 제조사이다.
엔진 제작사는 General Electric과 Pratt & Whitney이다.
전술미사일 제조사 Hughes Missile System Company가 언급되었다.
군함 건조 회사는 General Dynamics Electronic Boats이다. 전차는 General Dynamics Land Systems이며, 항공모함 제조사는 Newport News Ship Building을 꼽았다.
깜박 잊었다며 추가한 회사는 레이더 및 통신 장비를 제작하고 함재장비 등을 생산하는 Raytheon과 SAIC이다.
이 밖에 항공기 탑재 통신, 전자, 센서와 관련된 Accurate Automation Corporation도 대상이다.
“상당히 많군요.”
“그렇죠? 그러니 뭐든 필요한 것은 동원하세요. 반드시 알아 와야 합니다. 단, 대원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는 범위입니다. 제가 필요한 것은 정확한 위치와 설계도뿐입니다.”
“……!”
기업가인 현수가 왜 군수업체를 찾는지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물론 절대충성 마법이 걸려 있기에 의심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묻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조사하여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 또 있네요.”
“말씀하십시오.”
접었던 다이어리를 다시 펼친다.
“JP모건 체이스, 웰스 파고, 골드만삭스, 모건 스탠리,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시티그룹의 현금 보관장소도 조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궁금했지만 묻지 않는다. 현수는 절대왕정 시절의 왕과 같은 존재이다. 무엇을 원하든 묻고 따질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최찬성 3국장과 배진환 4국장은 토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이후 엄 국장 등과 여러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많은 지시를 내렸다. 지금껏 덩치만 키우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부터는 실질적인 임무수행을 하면서 인원을 늘리기로 했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군에도 조직에 실망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선은 그들을 받아들이고 이후부터는 직원을 뽑아 교육시키기로 했다.
신입직원의 경우는 콩고민주공화국이나 러시아, 몽골,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등지에 설립되는 이실리프 농장에서 교육하기로 했다.
치외법권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국정원은 현재 조직을 빠져나간 인재들이 이실리프 정보라는 회사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여 요원을 심어두었을 것이다. 당연히 활동상황 전부가 낱낱이 보고되는 중임이 분명하다.
현재는 덩치를 키우는 중이기에 어디에 소속된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엄규백 국장이 한 말이다.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는 것은 예전의 동료였으며,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인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간을 두고 옥석을 가릴 틈이 없었던 것이다.
이성원 국장과 최찬성 국장, 그리고 배진환 국장 역시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다.
그리곤 오늘 언급된 활동을 시작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짚는다.
미국의 군사 관련 기업과 주요 시중은행을 조사하는 일을 알게 되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먼저 요원들과의 시간이 필요하군요.”
“네?”
만나서 뭘 어쩌겠느냐는 표정이다. 자신들도 누가 국정원에서 파견한 첩자인지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번 보기나 해요. 만나는 날 신분증도 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