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00화 (799/1,307)

# 800

“알겠습니다.”

“오늘 지시한 내용은 그 일이 끝난 후 시작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떨떠름한 표정이다. 아무 소용도 없을 일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모인 날 현수는 절대충성 마법을 구현시킬 것이다.

그 즉시 몰래 스며든 첩자도 아군이 된다. 그리곤 그를 보낸 조직의 정보를 캐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마음대로 역정보를 흘릴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 * *

“흐음! 어디 보자.”

백화점을 찾은 현수는 마음에 드는 크리스털 병을 찾아보았다. 장인어른에게 선물할 엘프주를 담을 병이다.

“손님, 이게 어떨까요?”

점원이 손짓한 곳엔 독일에서 수입한 ‘나흐트만 스킨 디캔더’가 있다. 900㎖자리인데 36만 5,000원이다.

곁에는 ‘리델 소믈리에 블랙타이 시리즈 버건디 그랑크뤼’라는 긴 이름을 가진 와인글라스가 있다.

하나의 가격이 무려 16만 8,000원이나 한다.

“이거 네 개와 잔 네 개 주십시오.”

현수의 주문에 점원이 환히 웃는다.

“네, 손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부지런한 손길로 주문한 것들을 포장하곤 바라본다. 계산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표정이다.

“얼마죠?”

“213만 2천 원입니다, 손님.”

계산을 마치자 고개 숙여 고맙다는 뜻을 표한다. 고가 제품을 까다롭게 굴지 않고 사가니 좋았던 것이다.

회사로 되돌아온 현수는 마법으로 크리스털 술병을 깨끗하게 했다. 그리곤 아리아니의 도움을 얻어 엘프주를 담았다.

상당히 진한 갈색이다. 아주 오랫동안 숙성된 결과이다.

“자, 장인어른 선물은 되었고, 이제 장모님의 선물을 준비해야지. 아리아니, 아공간에 있는 것 중 반지만 골라주겠어?”

“물론이에요, 주인님.”

아리아니가 있어 참으로 편하다는 생각을 할 때 반지 한 무더기가 쏟아져 나온다.

주워 담으면 라면 박스로 세 개는 담을 분량이다.

“헐! 엄청 많네.”

현수는 얼른 문부터 잠갔다. 직원들이 보면 안 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곤 재빨리 반지를 골랐다.

골라낸 것은 사파이어 반지다. 사파이어는 2월의 탄생석이라 알고 있다. 이 보석은 평화의 권위를 의미한다.

너무 진하지 않은 반투명한 푸른색이라 마음에 든다.

드워프가 세공한 미스릴은 보석을 더욱 빛나게 하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유려한 디자인이다.

다음은 아리아니에게 사파이어 목걸이를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채택된 것 역시 아주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나비의 날개 형상을 메인으로 채택하였으며, 다른 작은 보석들이 박혀 화려함을 더한 것이다.

조금 전에 다녀온 백화점에선 이와 유사한 것을 60억 2,900만 원에 판매하겠다고 진열해 놓고 있었다.

물론 현수는 이 가격을 모른다. 예쁜 디자인만 눈여겨보고 왔기 때문이다.

“흐음! 되었군. 이 정도면 혼나진 않겠지.”

현수가 골라놓은 반지와 목걸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 아리아니의 음성이 들린다.

“근데 주인님.”

“왜?”

“디오나니아 잎사귀 가지러 갈 때 됐는데.”

“아, 그렇지. 근데 채수병을 아직 준비 못했어. 잠깐만.”

말을 마친 현수는 채수병 판매처를 확인했다. 재빨리 운전하여 4리터짜리 30,000개를 구입했다.

12만 리터나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많이 준비한 것은 얼마나 많은 수액을 채취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갈까?”

“근데 걔들 먹이는요?”

“아차! 잠깐만.”

텔레포트하여 설치해 높은 쥐 수집 틀을 수거했다. 불과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우글우글하다.

“진짜 대단하군. 서울에 쥐가 이렇게 많았나?”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다.

“어휴! 냄새! 어서 가요.”

“그래.”

이번에도 200만 마리나 되는 쥐를 생포했다.

현수는 하수관로에서 곧장 차원이동했다.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후와! 역시 여기 공기가 좋아요.”

“그래, 나도 공기는 여기가 훨씬 좋다고 생각해. 그나저나, 우와아∼!”

현수는 감탄사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30㎝에 불과하던 잎사귀가 길이 200㎝, 폭 130㎝짜리로 커져 있었다.

게다가 일제히 만개한 꽃을 달고 있다. 그 향기가 너무나 그윽하여 심호흡이 절로 나올 정도이다.

“흐으으음! 좋다!”

“네, 디오나니아 꽃의 향기는 떼어내도 반년은 시들지 않아요. 사막에서 살던 거라 꽃잎이 공기 중의 수분을 빨아들이거든요.”

잠시 아리아니가 쫑알거렸다.

드래곤들도 이 향기를 좋아하여 직경 30㎝ 정도 되는 꽃을 레어에 가져다 놓는다고 한다.

꽃이 모두 지면 바나나 같은 열매가 열린다.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인 이것은 두어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다.

아주 맛이 있고 폐부가 청량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껍질과 과육의 경계에 얇은 막이 있는데 강력한 진통 효과를 보이는 물질이 있다.

그렇기에 열매를 먹으면 통증을 잊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니 아공간엔 디오나니아 열매가 있다. 줄리앙 등과 이곳에 왔을 때 2,000송이를 담아두었다. 한 송이 당 열매가 20개씩 달리니 40,000개가 있는 것이다.

왠지 흐뭇한 기분이 든다. 세탁소에서 찾아온 양복 주머니 속에서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발견한 그런 기분이다.

“주인님, 얘들이 주인님 기분 좋으시라고 꽃을 피웠대요.”

“그래? 정말?”

식물들이 보은한다는 소리는 난생처음인지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리아니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네, 그래요. 그리고 절반은 따 가셔도 된대요.”

“꽃의 절반을……?”

“나머지 절반으로는 탐스런 열매를 맺게 할 테니 나중에 와서 가져가시래요.”

“진짜?”

식물계의 트롤, 사람도 잡아먹는 식물이 디오나니아이다.

그런데 너무 친절하지 않는가!

게다가 오늘은 뿌리 하나당 잎사귀 네 장씩 찢으러 온 날이다. 고통을 느낀다면서 정말 놀라운 선물을 준비했다.

“네. 주인님 덕분에 개체수가 충분히 늘었으니 더 이상 새끼 치지 않아도 돼서 그런대요.”

“아, 그렇군.”

식물은 한곳에 붙박이로 있으니 토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양분이 한정되어 있다.

현수가 없었다면 이곳의 디오나니아들은 더 이상의 번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척박하기만 하니 새로운 개체가 얻을 양분 등을 섭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시로 와서 영양가 만점짜리를 제공했다. 그 덕에 수백 년은 걸려야 할 만큼 많은 번식이 이루어졌다.

그러니 더 이상 씨를 떨궈 종족번식의 의무를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니 꽃과 열매 모두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고맙다고 전해줄래?”

“네, 잠시만요.”

디오나니아로 이루어진 정글 중앙부로 이동한 아리아니는 이 꽃 저 꽃을 돌아다녔다.

“전해줬어요. 그리고 꽃부터 따시래요. 꽃받침 부분을 돌리면 쉽게 떨어진다네요.”

“그래? 알았어. 고마워.”

현수는 가까이 있는 디오나니아의 꽃부터 채취했다. 공짜로 준다는데 싫다고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상당히 많기에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묵묵히 꽃을 땄다. 그때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라는 뜻을 전했다. 친해둬서 나쁠 일 없기 때문이다.

“아이고, 안 되겠어요. 이걸 언제 다 따요? 주인님, 잠시 비켜보세요.”

“응? 좋은 방법 있어?”

“네, 잠시만요. 실라이론 나와.”

참고로 실라이론은 상급 바람의 정령이다.

아무튼 아리아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금발의 아가씨가 허공에 솟는다. 완전히 발가벗은 모습이다.

“라라라∼! ♬ 랄라! ♪ 랄라라∼! ♬∼”

나타나자마자 영롱한 음색으로 노래를 부른다.

“부르셨어요, 아리아니님?”

“그래. 정령계로 가서 네 친구들 좀 데리고 와.”

“얼마나 데리고 올까요?”

“저기 보이는 저 꽃의 절반을 딸 거야. 그러니까 니가 알아서 데리고 와.”

“네. 랄라! ♪ 랄라라∼! ♬∼”

노래를 부르며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전에 나타났던 실라이론보다 키와 체구가 작은 아가씨들이 우르르나타난다.

모두 다 벗은 몸이지만 현수는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정령을 살필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리아니의 명령이 떨어진다.

“여기 있는 식물의 꽃 가운데 절반을 따와. 알았지?”

“네, 아리아니님!”

곧이어 실라이론이 작은 정령들에게 무어라 소리친다.

정령어이기에 알아들 수는 없었다. 황급히 통역 마법을 펼쳤지만 그때는 이미 명령이 끝난 뒤였다.

바람의 정령들은 디오나니아가 알려준 대로 꽃받침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린다.

떨어진 꽃은 바람에 실려 현수에게 날아오고 있다. 그런데 현수는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다.

바로 앞에서 꽃을 따고 있는 실라이론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외모를 하고 있는데 아주 아름다운 아가씨이다. 발가벗어서 들어간 곳과 나온 곳 전부 다 보인다.

머리카락은 엉덩이를 뒤덮을 정도이다. 인간과 다른 점은 허공을 유영한다는 것이다.

“주인님, 뭐해요? 아공간 여세요.”

“응? 그, 그래. 아공간 오픈!”

아공간이 열리자 아리아니가 날아오는 꽃들을 담는다.

이곳에 서식하는 디오나니아는 약 2만 5천 그루이다.

이들 모두가 꽃을 피웠다. 따라서 날아온 것은 약 1만 2,500송이의 꽃이다.

현수는 디오나니아 꽃의 향기에 취해 버렸다. 너무도 달콤하고 너무도 그윽한 향이다.

이런 냄새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맡고 싶을 것이다.

“태을제약에서 만들 향수가 하나 더 늘었군. 상표는 뭐라고 할까? ‘디오나니아의 눈물’ 정도면 괜찮겠네.”

조금 있으면 잎사귀들이 찢긴다. 고통을 안다고 하니 그것을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무튼 실라이론의 지휘 아래 바람의 정령 실라페와 실프가 협력하여 무사히 임무를 완수했다.

“고마워, 실라이론, 실라페, 실프.”

“어머! 저희들이 보여요?”

실라이론의 예쁜 눈이 더 커진다.

“그래. 아주 예쁘네. 도와줘서 고마워.”

“바보야, 내 주인님이셔. 당연히 너희가 보이지.”

아리아니가 끼어들자 실라이론 등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리아니는 모든 정령 요소가 뭉쳐져 생성된 존재이다.

하여 물, 불, 바람, 땅뿐만 아니라 빛, 어둠, 금속의 정령까지도 불러낼 수 있다.

정령왕도 불러낼 수 있지만 늘 대등한 대접을 요구해서 잘 부르지 않는다.

아무튼 아리아니의 주인님이라면 넘치는 정령력을 가진 존재이다. 계약을 맺으면 수시로 중간계 구경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실라이론 등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자, 너희들은 이만 돌아가. 오늘은 수고했어.”

“네.”

실라이론 등은 찍소리도 못한다. 정령왕도 함부로 대할 존재가 아리아니이기 때문이다.

“앞으론 수시로 불러줄 테니 삐치진 마라. 주인님 엄청 바쁘셔서 정신없으니까. 알았지?”

“네, 아리아니님. 그럼 믿고 이만 돌아가요.”

실라이론이 고개를 숙인다.

“실라이론, 다음에 또 봐.”

“네, 저도 또 뵙기를 고대할게요.”

실라이론은 예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순간 현수는 코피가 터질 뻔했다. 보아선 안 될 두 개의 수밀도를 본 때문이다.

『전능의 팔찌』 3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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