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02화 (801/1,307)

# 802

그것을 토기에 담아 깊은 동굴 속에 보관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입구가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수백 년이 흐른 뒤 원주민 꼬맹이가 발견한 것으로 했다.

술을 담근 지 수백 년이 흘렀음을 강조한 것이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고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랬군. 그럼 이 술 이제 더 없나?”

“제게 조금 더 있기는 합니다. 더 드릴까요?”

“그, 그게 말이네, 허험! 허험! 알아서 하게.”

권 고검장은 권력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다. 다만 명주에 대한 욕심만은 강하다고 들었다.

당연히 더 마시고 싶을 것이다.

“하하! 네, 알겠습니다. 조금 더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고마워! 자, 식사하세.”

이 말을 끝으로 오순도순 대화를 하며 준비된 음식을 먹었다. 연희와 이리냐가 이 자리에 없는 이유는 외조부인 안준환 옹이 언제 귀가할지 몰라서이다.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았다.

“지현아, 네 엄마 생일인데 아무것도 준비 안 했니?”

고검장은 현수나 지현에게 별다른 소지품이 없기에 약간 불안한 표정이다.

생일을 맞은 사람은 안 여사인데 술 선물은 자신이 받았다. 이것으로 끝이라면 둘이 가고 난 뒤 한동안 쌩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이 분명하다.

현수는 피식 웃으며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지현을 만나기 전에 보석상에 들러 벨벳 상자를 샀다.

푸르고 작은 상자엔 사파이어 반지가, 붉고 긴 상자엔 목걸이가 들어 있다.

“장모님, 사위가 되어 처음 드리는 생신선물입니다. 받아주십시오.”

“아이, 뭘 이런 걸 다…….”

짐짓 빼는 척하면서도 받을 건 받는다. 보아하니 반지와 목걸이 세트이다.

작년 연말 안 여사는 지현을 시집보내면서 패물이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공무원의 아내로 늘 검소하게 살아온 결과이다.

고검장과 결혼할 때 받았던 반지는 오래전 분실하여 흔한 금반지조차 없었던 것이다.

딸을 시집보내면서 엄마 패물만 살 수는 없어 친구에게 빌린 반지며 목걸이를 패용했다.

어쨌거나 사위가 준 작은 상자의 뚜껑부터 열었다.

“장모님, 사파이어는 2월의 탄생석이라 알고 있습니다.”

“엥? 아닌데? 사파이어는 9월이고 2월은 자수정이네.”

고검장에 말에 현수는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네? 아니에요? 아, 제가 자료조사를 잘못한 모양입니다.”

“아빠 말씀이 맞아요. 2월의 탄생석은 자수정이에요. 사파이어는 9월이 맞고요.”

“아! 이런…….”

급하게 준비하느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음을 떠올린 현수는 나직한 침음을 냈다.

“근데 다행이에요. 자수정보다 사파이어가 훨씬 비싸거든요. 안 그래요, 엄마?”

“호호! 그래, 사위가 착각하는 바람에 내가 덕을 보는구나. 호호호!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어. 고맙네, 사위! ”

안 여사는 반지를 끼어보곤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제법 알이 굵다는 느낌이지만 가격은 잘 모른다.

평상시에도 보석엔 관심이 없었고 지현을 결혼시키면서도 보석상이란 곳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현이 현수와 결혼할 때 준비한 예물은 은반지 하나이다.

지현 본인이 디자인하여 주문 제작한 것이다.

유려한 곡선이 중첩되며 우아한 분위기를 내는 것이다. 반지의 안쪽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Love you forever ― J.H

간결하면서도 확실한 의미가 담긴 글귀이다. 지현은 한글로 새기고 싶었지만 너무 길어 영문으로 했다.

사위가 엄청난 부자라는 걸 알기에 안 여사는 섭섭했지만 둘의 뜻을 존중했다.

어쨌거나 반지가 마음에 드는지 계속 불빛에 비춰본다.

“장모님, 나머지 것도 열어보시지요.”

“아, 그래. 어머! 이거 너무 예쁘다.”

뚜껑을 열자 여러 색깔의 보석이 박힌 목걸이가 화려한 빛을 발하고 있다.

“……!”

곁에서 보고 있던 지현과 고검장 또한 놀라는 표정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디자인인 것이다.

안 여사는 서둘러 목걸이를 패용하고 남편에게 시선을 주며 묻는다.

“여보, 어때요? 나랑 잘 어울려요?”

“김 서방, 이거 비싼 거 아냐? 너무 좋아 보이네.”

남자인 고검장이 보기에도 괜찮아 보인 모양이다.

“네, 맞습니다. 그거 엄청 비싼 겁니다. 그러니 잘 보관하세요. 장모님은 결혼반지도 잃어버리셨다고 들었습니다.”

“응? 그, 그거? 여보, 미안해요.”

어린아이 지능을 가졌을 때 분실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전에 찍었던 사진엔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안 여사는 반지 이야기만 나오면 안절부절못한다. 괜스레 남편에게 죄지은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

“괜찮아, 괜찮아. 이렇게 좋은 반지와 목걸이가 생기려고 그랬나 봐. 하하! 김 서방, 고맙네, 고마워.”

“하하! 네.”

안 여사는 반지와 목걸이가 엄청 비싸다는 말에 그냥 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다이아몬드가 비싸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에 비해 에메랄드나 사파이어는 등급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후, 안 여사는 친구들 모임에 나간다.

당연히 반지와 목걸이를 패용한 상태이다. 사위가 준 생일선물이라 자랑하려는 것이다.

친구 중 하나는 백화점에서 보석상을 운영한다.

춘희라는 이름의 그녀는 안 여사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자마자 경악성을 토한다.

“야, 안숙희! 너, 너, 그거… 그거……!”

친구가 목걸이를 가리키자 안 여사는 드디어 자랑할 타임이 왔다고 생각하고는 화사한 미소를 짓는다.

“뭐? 아, 이거? 우리 사위가 내 생일에 선물해 준 거야.”

“야! 네 사위, 그거 어디서 산 거래?”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야, 나 그거 좀 자세히 보자. 빼봐.”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그사이에 춘희는 백에서 루페2)를 꺼내 든다.

“어디 보자. 우와! 이건……!”

본격적인 감정에 나선 춘희의 감탄사에 친구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대체 무슨 말이 나올까 싶은 것이다.

“이건 예술이다, 예술! 어떻게 이런 세공을 했지? 우와! 이 솜씨 봐라, 솜씨! 이거 분명 대단한 장인의 작품이야!”

“……!”

이쯤 되면 도대체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인가 궁금해진다. 그렇기에 친구들의 눈빛은 더욱 빛난다.

“알은… 햐아! 이건 완전 초특급 사파이어네. 크기는… 야! 이건 에비뉴엘 부쉐론 매장에서 전시하는 것보다 더 비쌀 거야! 우와! 우와! 이건 진짜 명품이다, 명품!”

“춘희야, 뭐가 어떤지 제대로 말해봐. 혼자서 감탄만 하지 말고. 우리도 좀 알자.”

누군가의 말에 춘희는 침을 튀어가며 말한다.

“이거 말이야, 백화점 명품관에서 이런 거 비슷한 걸 팔고 있어. 그래서 구경 갔지.”

“그래? 그게 뭐였는데?”

“9.08캐럿짜리 에메랄드와 사파이어, 그리고 다이아몬드를 박아서 만든 건데 이름은 ‘부퀘 델레’라고 했어.”

“부퀘 델레? 뭔 이름이 그렇다니?”

“부퀘 델레(Bouquet d’Ailes) 컬렉션은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1901년에 착용했던 브로치에서 영감을 받아 그 모양을 재해석한 작품이야.”

“그래? 어떤 건데?”

“나비와 잠자리의 날개를 모티브로 아주 정교하게 세팅한 거야. 그리고 황금 주조과정 없이 직접 금속작업을 하는 전통 방식(상퐁트)으로 만든 명품이지.”

“그래? 그게 얼마였는데?”

가장 궁금한 내용인지라 모두의 시선이 춘희에게 쏠린다.

“60억 2,900만 원!”

“뭐? 얼마……? 60억이 넘었다고?”

“그래. 근데 이건 그거보다 훨씬 더 비쌀 거야. 알도 더 크고 세팅도 정말 예술적이야. 이건 전통 방식 중에서도 비전으로 전해지는 방법을 쓴 것 같아. 이건 있잖아…….”

춘희는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한참 동안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듣고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안숙희 여사마저 멍한 표정이다.

60억 원이 넘는다는 말에 넋을 잃은 것이다.

아무튼 모든 설명이 끝났다. 또 누군가가 묻는다.

“그래서, 만일 이 물건을 네 가게에서 판다면 얼마나 받고 팔릴 물건이니?”

누군가의 물음에 춘희는 고개를 흔든다.

“이거? 이건 값을 매길 수가 없어. 단순한 목걸이가 아니라 예술품이니까. 만일 스위스의 울리 지그(Uli Sigg) 같은 제대로 된 컬렉터를 만나면 300억도 받을 수 있을 거야.”

“뭐? 사, 사, 삼백억? 진짜?”

“그래! 이 정도면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거야.”

춘희의 말이 끝나자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안숙희 여사에게 쏠린다.

“야, 너 진짜 사위 잘 뒀다. 장모 생일에 300억짜리 목걸이를 선물하는 사위가 세상에 어디 있냐?”

“그러게. 넌 대체 어디에 복이 붙어서 그런 대단한 사위를 얻었냐? 부럽다. 부러워 죽겠다. 쳇!”

“야, 안숙희! 오늘부터 우리 모임 음식 값은 네가 다 내. 난 배 아파서 한 푼도 못 내겠다.”

“그래! 나도 괜히 배 아프다. 네 딸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행정고시 패스해서 잘나간 것도 배가 아팠다. 근데 그건 상대도 되지 않으니……. 아이고, 배 아파!”

친구들이 뭐라 많은 말을 했지만 안 여사의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300억이라니! 세상에, 맙소사!’

이 음식점은 음식 값 비싸기로 유명한 집이다.

모처럼 이런 집에서 우리도 한번 모여보자는 누군가의 뜻에 따라 왔다. 그리고 많은 음식을 주문했다.

쉐리엔이 있으니 다이어트 따윈 신경 쓰지 말고 수다나 떨면서 실컷 놀자고 잔뜩 시킨 것이다.

안 여사는 본인의 카드로 음식 값 전부가 일시불로 결제되는 것도 모른 채 멍한 시선이다.

친구들과 헤어진 후 곧장 남편에게 갔다. 그리곤 300억짜리 목걸이를 어찌할 것인지 의논한다.

고검장 역시 대경실색한다. 농담처럼 엄청 비싼 거라 하였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건 비싼 정도가 아니다.

결국 목걸이는 은행 대여금고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라도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할까 싶어 패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은 현수는 목걸이 뒤에 귀환마법진을 인챈트한다. 잃어버리더라도 언제나 되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대여금고 신세를 면하게 되었다.

2장 조어도를 탐내지 말라

“후후, 잘들 자네.”

현수는 곯아떨어진 아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지난밤에도 거센 열풍이 분 결과이다.

아마도 서초동 장인 댁도 곯아떨어져 있을 것이다. 권 고검장이 바이롯을 반병이나 들이켠 것이다.

“후후후.”

모든 게 만족스럽다. 하여 나직한 웃음을 짓고는 서재로 향한다. 이제부터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지도책을 꺼냈다.

오전 9시가 되면 일본 동경도 지요다구 나가타정에 위치한 총리 관저에서 내각회의가 열린다고 한다.

이곳에 집결하는 자들 대부분이 주변국가의 속을 박박 긁는 망언을 일삼는 자들이다.

일찌감치 야스쿠니 신사를 어스퀘이크 마법 등으로 작살내놓지 않았다면 그동안 여러 번 그곳을 찾았을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전범들의 위패를 놓고 절을 하며 참배한다는 의미는 그들의 명복을 비는 행위만은 아니다.

그들이 저질렀던 전쟁의 목표를 끊임없이 되새기겠다는 무언의 표현이다. 다시 말해 과거의 침략전쟁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군국주의로 되돌아가겠다는 뜻이다.

당연히 좌시할 일이 아니다.

“흐음, 나가타정의 좌표는…….”

현수는 좌표를 잡기 위해 구글 어스까지 동원했다. 그리곤 안전하다 싶은 곳을 찾았다.

어제 엄규백 국장으로부터 전달 받은 쪽지에 의하면 오늘 참석자는 25명이나 된다.

이 중 아소 다로 부총리, 고마쓰 이치로 법제국 장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야마모토 이치타 영토문제담당상 등 망언한 놈들을 데려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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