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9
“…감사합니다, 사장님!”
“네, 기대되는군요. 하하하!”
다 같이 음식을 먹으며 친교의 시간을 갖자는데 싫을 이유가 있겠는가!
“오늘은 저녁에 비번인 분들도 모두 오셨으면 합니다. 편안한 잠자리까지 제공할 것이니 다들 불러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모두 집합시키죠.”
경호 인력 중 계급이 제일 높은 사람은 육군에서 파견한 소령이다. 그렇기에 모두를 대표하여 나선 모양이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저는 운동하러 갑니다.”
“네, 잘 다녀오십시오.”
현수가 매일 아침 운동을 하면서 아차산 일대는 경계 병력이 늘어났다. 번거로운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미리 문제가 될 만한 것을 점검하는 차원이다.
물론 현수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
안다면 자신 때문에 애먼 사람들이 잠 못 자고 고생하는 것을 어찌 좌시하겠는가.
리노와 셀다를 데리고 아침 운동을 마치고 오니 셋이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맞이한다. 이들과 단란한 아침 식사를 만끽했다. 참으로 살맛나는 세상이라는 느낌이다.
“다녀오세요.”
“그래. 집 잘 지켜.”
“쳇! 저는 집 지키는 멍멍이가 되었군요.”
연희가 짐짓 삐친 표정을 짓는다. 현수는 얼른 달려가 진한 키스를 해줬다.
“멍멍이는 아니지.”
“그럼 뭔데요?”
“으음! 집 지키는 병아리? 크크! 예쁘고 귀엽잖아. 아무튼 집 잘 지켜. 이따 올 테니.”
“알았어요. 청소해 놓고 기다릴게요.”
오늘은 연희만 외출 계획이 없다. 지현은 업무 때문에 출근해야 하고, 이리냐는 오늘 촬영 스케줄이 있다.
쉐리엔 광고를 새로 찍기로 했다고 한다.
지현부터 내려주었다. 남종우, 김종철, 박태화, 심계섭 검사와 또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검사님들!”
“아! 김현수 사장님, 또 뵙네요.”
“네. 어제도 한잔하셨나 보네요.”
보아하니 컨디션이 모두 엉망인 듯싶다. 하긴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린다. 퇴근하면 푹 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습관처럼 한잔하니 피곤이 풀릴 시간이 없다.
“네, 오늘 공판도 있는데… 쩝!”
심계섭 검사는 생각만으로도 피곤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 또 뵙죠.”
인사를 하곤 일제히 돌아선다. 남의 여자가 되어버린 지현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롭기 때문일 것이다.
“매스 바디 리플레쉬!”
샤르르르릉―!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넷의 몸속으로 파고든다.
그와 동시에 체내에 쌓여 있던 피로 물질들이 빠른 속도로 분해되기 시작한다.
걷는 동안 조금씩 컨디션이 나아지고 있었지만 넷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뒤따라 걷고 있는 지현에게 신경 쓰느라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검찰청을 벗어날 때 이리냐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저분들에게 뭐해주신 거예요?”
“응. 너무 피곤해 보여서 피로를 풀어줬어. 자기들 힘들어할 때 해주는 것처럼.”
“아, 그거요?”
이리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이 없을 때라도 현수가 마법을 걸어주면 거짓말처럼 몸이 편해짐을 느끼곤 했다.
그렇기에 어떤 기분인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그래주면 몸이 편해지지?”
“그럼요. 되게 좋아요.”
이리냐가 내린 곳은 이태원 호텔 앞 커다란 유리 건물 현관 앞이다. 이실리프 엔터테인먼트 조연 대표가 대기하고 있다 얼른 다가온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네, 요즘 잘나가시죠? 이리냐 잘 부탁드려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잠깐 시간 있으십니까?”
현수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건물 로비로 들어섰다.
조연 대표는 이리냐의 상품 가치가 매우 높으니 이실리프 엔터테인먼트 소속 모델이 되게 해달라고 한다.
의향을 물어보니 해보고 싶다 하여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세계적인 모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연 대표는 진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기쁨에 환한 웃음을 짓는다.
실제로 이리냐는 세계적인 모델이 된다.
기존의 쉐리엔 광고는 전 세계에 방영되는 중이다. 여기에 항온의류 모델까지 했다. 이미 지명도는 얻었다.
그런데 새롭게 찍게 되는 광고는 이리냐가 미란다 커보다도 유명한 모델이 되게 만든다.
독특한 콘셉트가 미모와 몸매를 돋보이게 한 결과이다.
새 광고의 콘셉트는 마법이다.
이 광고에서 이리냐는 신데렐라로 등장한다.
그런데 몸매가 매우 뚱뚱하다. 무도회에 가고 싶은데 옷은 너무 작다.
너무도 예쁜 드레스이지만 몸에 맞지 않는 것이다. 하여 슬프게 울고 있을 때 마법사가 나타난다.
그녀가 준 쉐리엔을 먹고 날씬하고 섹시한 여자로 변모한다. 이윽고 무도회장에 도착하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왕자가 나타나 몸매 유지 비결을 묻는다.
이때 쉐리엔을 꺼내서 보여준다. 다음엔 둘이 가벼운 운동을 하며 조깅하는 모습이 비춰진다.
이날 이후 빗발치는 광고 섭외에 몸살을 앓게 된다. 선점하는 기업이 가장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냐는 각 분야에서 이름난 기업들의 광고를 찍게 된다.
물론 어마어마한 수입을 올린다. 하지만 현수가 주는 용돈에는 미치지 못한다.
“어서 와라! 웬일이냐? 부르지도 않았는데.”
바쁜 업무를 수행하던 주영이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난 그냥 오면 안 되냐?”
“설마 내게 또 뭔가를 시키려고 그러는 거냐? 진짜야?”
생각만으로도 겁난다는 표정이다.
“나, 내일모레 장가가는 거 알지?”
더 이상 일 시키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알아, 알아. 오늘은 뭐 일 시키려고 온 게 아니야. 일단 나랑 좀 나가자.”
“나가? 설마 밖에 일을 만들어놓은 거냐?”
주영은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이다.
“아냐, 인마. 하여간 나하고 좀 나가.”
“알았다.”
현관 밖으로 나가니 노란색 스피드가 보인다.
“차 타고 나가? 그럼 저 차 내가 한번 운전해 보자.”
“운전을 해? 니가? 면허증은 있어?”
주영은 왼팔을 전혀 쓸 수 없는 장애인이었다. 당연히 면허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을 한다.
“있어. 얼마 전에 땄거든.”
“바쁘다면서 운전 연습할 시간은 있었나 보네.”
“야, 결혼하면 나도 은정 씨랑 놀러 다니고 그래야지.”
“알았다. 하지만 조심해라. 차가 아주 민감하다.”
“오냐. 걱정 마라. 이래 봬도 내가 다닌 운전학원에선 베스트 드라이버로 불렸다.”
주영이 운전석에 앉자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다.
“자, 시동 걸고 출발해.”
“그래. 와아! 이 차 엄청 조용하다! 스포츠카라 되게 시끄러울 줄 알았는데.”
주영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의당 ‘부우웅!’ 하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이건 뭔가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기어를 넣으며 더욱 세게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스피드가 도로 밖으로 튀어 나간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순간에 지나던 차가 있었다.
끼이익―! 콰아아앙―! 와지직! 콰지직―!
“야!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야지, 그걸 계속 밟고 있으면 어떻게 해? 어서 발을 떼!”
초보 운전자들은 사고가 날 경우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더니 지금 주영이 그러하다. 액셀러레이터를 계속 밟고 있다.
현수는 서둘러 기어를 빼고 시동을 껐다. 그리곤 얼른 차에서 내려 상대 차로 다가갔다.
조수석에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이 있다. 그러고 보니 조수석 문짝과 펜더(Fender)가 움푹 파여 있다.
“으읏! 으읏!”
콰지직―!
사고 결과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힘주어 잡아당기자 열린다. 그랜드마스터의 힘이 아니었다면 유압 장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괜찮으세요?”
“으으! 괜찮은 줄 알았는데. 으으! 아파요.”
나직한 비명에 다리를 보니 다친 듯 피를 흘리고 있다.
“안 되겠네요. 119 부르겠습니다.”
전화를 꺼내 사고 내용을 알리자 금방 출동한다고 한다.
100% 주영에게 과실이 있기에 차를 옆으로 빼도록 했다.
노란색 스포츠카가 골목에서 튀어나와 지나던 차를 들이받는 사고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다.
시선이 많았기에 마법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잠시 후 구급 차량이 당도했다.
현수와 주영은 병원으로 가는 동안 경찰서에 신고했다. 사고 내용과 인적 사항을 불러주니 금방 온다고 한다.
응급실에 당도하여 접수를 하고 나니 엑스레이 먼저 찍겠다며 피해자를 데리고 간다.
“미안합니다. 저희 쪽 운전자가 초보라……. 100% 저희 실수입니다. 저희가 가입한 종합보험 처리를 하겠습니다.”
“아, 네.”
피해 운전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상대가 과실을 인정하며 모든 걸 부담하겠다는 뜻을 밝히니 뭐라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경찰이 와서 사고내용을 기록하고 갔다.
차량이 찌그러졌고, 부상을 입었지만 심하진 않다.
이럴 경우엔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피해자와 합의되면 형사처벌 없이 해결된다.
다만 11대 중과실 사고의 경우는 예외이다.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속도위반, 앞지르기 금지위반, 철도 건널목 통과위반, 횡단보도 사고, 무면허, 음주, 보도 침범 사고, 개문발차 사고, 어린이 보호구역 사고를 뜻한다.
경찰이 그냥 간 이유는 부상 정도가 경미한 때문이다.
부러진 것으로 알았는데 뼈나 인대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한다. 마침 음료수 병을 들고 있었는데 충돌 시 그게 깨지면서 상처를 입은 것이다. 의사의 소견은 전치 2주이다.
“괜찮으세요?”
“네. 조금 찢긴 것뿐이라 하더군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실수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생활하다가도 다치는데요.”
피해자가 흔쾌히 나오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이때 피해자가 동승했던 운전자에게 시선을 준다.
“근데 의사가 오늘 경기는 안 된다는데 어쩌지?”
“그러게. 할 수 없이 양 감독님도 뛰라고 해야지. 잠깐만.”
운전자가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른다.
“감독님, 전데요, 오늘은 감독님도 뛰셔야겠습니다.”
“나? 난 안 돼! 어제 너무 폭음해서 컨디션 빵점이야. 지금 세상이 다 어지러워. 근데 무슨 일 있어?”
“네, 영식이가 교통사고가 나서 몇 바늘 꿰맸습니다. 그래서 오늘 경기 못 뛴다고 합니다.”
“헐! 그럼 어쩌냐? 우린 후보선수도 없는데.”
잠시 통화를 하는데 내용이 다 들린다.
보아하니 이들은 사회인 축구팀의 일원이다. 후보 없이 감독 한 명과 선수 열한 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팀의 명칭은 ‘오리지날’이다. ‘오리도 지랄하면 날 수 있다’는 뜻으로 죽어라 뛰면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은 모 기업에서 개최한 사회인 축구대회 결승전이 치러지는 날이다.
오리지날 팀은 후보선수 없이 대회에 참가했음에도 운 좋게 부상 없이 결승까지 올라왔다.
팀원 중에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 생활을 했던 사람만 다섯이나 된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계속하여 운동을 했기에 타 팀에 비해 기량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등 상금은 1,000만 원이고, 준우승은 300만 원이다.
“아! 마누라에게 트로피 가지고 들어간다고 큰소리쳤는데 어쩌지? 그냥 열 명으로만 뛸까? 양 감독님은 그냥 아무 데나 서 있으라 하고.”
운전자의 말에 피해자가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필이면 오늘……. 재수가 없는 거지. 어떻게 하겠냐? 상대팀도 만만치 않는데……. 우리가 질 거야.”
“그렇겠지? 웬만큼 하는 사람 하나만 있어도…….”
운전자의 시선이 현수에게 머문다. 이제 겨우 25세로 보이는데다 뚱뚱하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