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10화 (809/1,307)

# 810

반면 주영은 좀 둔하게 보인다. 요즘 책상 앞에만 있어 살이 찐 때문이다. 은정이 잘 먹인 덕분이다.

“저, 혹시… 축구 좀 하십니까?”

“네? 저요?”

“네. 이 친구가 우리 팀 수비순데 보다시피 부상당해 출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혹시 축구 좀 하시면 이 친구를 대신해서 한 경기만 뛰어주실 수 없겠습니까?”

“……!”

현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한 때문이다. 이때 주영이 끼어든다.

“이 친구 축구 잘해요. 학교 다닐 때 우리 과 대표선수였어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한 게임만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끄응!”

현수가 나직한 침음을 낼 때 주영이 또 끼어든다.

“야, 한 게임 뛰어드려. 나 때문에 다치셨는데 난 축구를 못하잖아. 그러니 네가 나 대신 좀 해줘라.”

이때 피해자가 입을 연다.

“최종 수비수 자립니다. 전방에 있는 친구들이 워낙 잘해서 웬만하면 공이 잘 안 갈 겁니다. 그러니 맘 편히 먹고 참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하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이 친구가 칭찬을 했지만 저는 그냥 평범한 수준입니다.”

현수는 대강 뛰는 척만 할 생각에 이렇게 대답했다.

“아, 다행이다. 야, 어서 감독님 매제에게 연락해. 선수 등록 해야지. 안 그래?”

“그, 그래, 알았다. 전화할게.”

타 팀은 20명의 선수를 모두 등록한 상태지만 오리지날 팀은 감독 외 11명만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대회를 개최한 회사에 오리지날 팀 감독의 매제가 근무하고 있다. 이번 대회 프런트이다.

그의 담당 업무는 대외 홍보 및 선수 등록이다. 다시 말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선수 등록을 해줄 수 있는 자리이다.

“참, 성함과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저요? 저는 김현수라 합니다. 나이는 서른입니다.”

“네? 정말요? 진짜 동안이시네. 잠시만요.”

운전자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대화하기엔 그랬나 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의 부주의로 다치게 하여 미안합니다. 차량 수리비와 병원비, 그리고 그 밖에 피해 입은 것이 있으면 모두 보상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살다 보면 다칠 수도 있는 건데요, 뭐. 찌그러진 거 수리해 주시고 여기 병원비만 내주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아무튼 치료 잘 받으십시오.”

“물론입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이다.

“야, 됐어. 이제 가면 돼. 지금 가도 되지?”

“제가 간호사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주영이 가서 몇 마디 물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넷은 택시를 타고 이실리프 빌딩으로 갔다.

차 안에 있던 경기용품은 모두 챙겼다. 사고 차량은 이실리프 상사 직원들에게 수리를 의뢰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스피드는 이실리프 모터스 광주 공장으로 보내졌다.

둘은 곧장 대회가 열리는 효창운동장으로 향했다.

현수와 주영은 다른 차로 이동했다. 축구화가 없기에 사러 들렀다 가야 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차도 찌그러뜨리고 사람도 다치게 해서.”

“아냐, 괜찮아. 차야 고치면 되지. 그리고 큰 부상이 아니라 다행이야. 그나저나 운전 연수 좀 받아. 초보 주제에 민감한 스포츠카에 도전하니까 그렇지.”

“쩝! 할 말이 없다. 아무튼 미안하다.”

“그건 그렇고, 너한테 할 말이 있다.”

“뭔데?”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겠다 싶었는지 굳은 표정이다. 지은 죄가 있기에 뭐라 하든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 제수씨와 요즘 트러블 있지?”

“…들었냐?”

뭔지 대충 짐작한다는 표정이다.

“그래.”

“너도 알다시피 나도 그렇고 그 사람도 그렇고 어려운 삶을 살았잖아. 우리 둘 다 네 덕에 팔자 핀 거고.”

“그 얘긴 빼고 본론만 말해.”

“알았다. 아무튼 어렵게 살다 이제 살 만해졌다. 솔직히 살 만해진 게 아니라 진흙탕 속의 미꾸라지였는데 이젠 용 된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과거를 잊고 앞으로는 우리도 멋지게 살아보자는 뜻에서 무리하려 했다.”

“무리? 내가 알기로 넌 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예물로 고르려 한다고 들었다. 맞냐?”

주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거하고 세트로 해서 목걸이와 팔찌까지 봐뒀다.”

“그거 다해서 얼만데?”

“…5,200만 원인데 5,000만 원만 내라고 하더라. 네가 살 집까지 빌려줬으니 집은 안 구해도 되니까.”

주영의 말이 맞다. 살 집은 이미 있다. 가구도 거의 다 갖춰져 있다. 따라서 신랑 입장에선 예물만 준비하면 된다.

그렇기에 다소 큰돈이 든다는 걸 알지만 내지를 생각이다. 평생에 한 번뿐인 결혼이기 때문이다.

“제수씨는 돈 아껴서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싶다던데?”

“그 사람은 그렇지. 살림하는 여자잖니.”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은정이 왜 그러는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야, 내 가방 좀 열어봐.”

“네 가방을? 왜?”

“아무튼 열어봐.”

“알았어.”

뭔가 보여주려나 싶어 가방을 여니 벨벳 상자 세 개와 서류 봉투 하나가 있다.

“상자 세 개와 서류 봉투 한 개 있다. 어떤 거 꺼내?”

“가장 작은 상자.”

주영이 반지가 든 상자를 꺼내 든다.

“그거 열어봐라.”

대체 뭐가 들어 있나 궁금한지 순순히 뚜껑을 연다. 하트 모양 보석이 박힌 반지가 보인다.

“반지네. 예쁘다. 근데 이건 뭐냐?”

“네 결혼 예물. 내가 주는 선물이다. 잉가댐 현장 부근에서 주은 원석을 가공한 거니까 부담 갖지 않아도 돼.”

“이걸 주웠다고? 알이 꽤 큰데?”

“크면 뭐하냐? 알아봤더니 다이아몬드이긴 한데 품질이 아주 좋은 건 아니라고 한다.”

“그래?”

주영은 3.5캐럿짜리 무결점 초특급 블루 다이아몬드가 박힌 드워프제 반지를 보고 있다.

루페 같은 확대경이 없어 디자인의 세부까지 살필 수는 없다. 요즘 과중한 업무 때문에 눈이 침침해진 탓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다이아몬드의 커팅이 하트 모양이라는 것이다. 아주 예쁘다.

“다른 상자도 열어봐.”

“……!”

대꾸 없이 제일 큰 상자를 연다. 5캐럿짜리 초특급 블루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가 들어 있다.

“그 정도면 은정 씨도 마음에 들어할 거야.”

“이거 다이아몬드냐?”

“아니. 모이사나이트라고 하는 거야.”

“모이사나이트? 그건 또 뭐냐?”

“인조 다이아몬드다. 진품보다 값이 훨씬 싸다.”

“아!”

주영이 나직한 탄성을 낸다. 인조 보석이라면 비싸지 않으니 은정도 거절치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현재 주영이 보고 있는 다이아몬드는 5캐럿짜리이다. 가격은 대략 9억 원 정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에 본 건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일곱 개를 박아 만든 팔찌이다. 이것 역시 드워프제이다.

예술품의 반열에 오를 정도의 세공이 가미된 것이다. 굳이 가격을 매기자면 2억 원 정도 할 것이다.

“이거 진짜 선물이냐?”

“그래. 너는 가서 3부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힌 귀걸이나 한 쌍 사라. 아무것도 안 사는 건 좀 그러니까.”

“…고맙다.”

주영은 현수가 얼마나 큰 부자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다.

“봉투도 열어봐라.”

“봉투?”

서류 봉투 안에 든 걸 꺼내보니 겉면에 ‘등기권리증’이란 굵은 글씨가 인쇄되어 있다.

“넘겨봐.”

“부동산 샀어? 이런 건 내게 맡기지.”

말을 하며 서류를 넘기던 주영의 움직임이 멈춘다. 눈에 익은 이름 두 개가 보인 때문이다.

민주영과 이은정이다.

6장 축구 좀 하십니까?

“너희 부부 결혼 선물이다. 새로 지은 건물인 건 알지?”

현수가 준 서류는 이실리프 무역상사가 입주해 있는 건물 전체의 등기권리증이다.

“현수야!”

“너와 제수씨는 내 회사의 핵심이야. 그러니 딴소리 말고 받아. 그리고 하나 더 있다. 그다음 거 봐.”

“알았다.”

주영은 등기권리증 아래에 있던 것들을 살펴본다. A4용지 크기의 사진 50개이다.

“여긴 어디냐? 되게 좋아 보인다.”

“제주도 섭지코지에 있는 유니콘 아일랜드에 있는 건물들이야. 그중에 하나 골라.”

“뭐? 설마……!”

“알다시피 이연서 회장님께서 50채를 주셨다. 나 혼자 50채 다 쓸 수는 없잖아. 그러니 하나를 너희 부부에게 줄게.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현수야……!”

주영은 목이 메는지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대신 죽도록 일을 해야 할지도 몰라.”

“현수야, 고맙다. 정말 고맙다.”

급기야 주영이 눈물을 글썽거린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고아나 마찬가지 신세였다.

게다가 왼팔마저 쓸 수 없었다. 운영하던 무적 1등 수학교습소는 망해가는 중이었다.

그때 홀연히 나타나 팔을 고쳐주고 취직도 시켜주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아내가 될 은정을 만났고, 승승장구하여 이실리프 상사 대표이사가 되었다.

아내는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대표이사이다.

졸지에 사장 부부가 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 그런데 결혼 예물과 집, 그리고 별장까지 준다고 한다.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는가!

“현수야, 살면서 너한테 진짜 잘할게.”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근데 오늘 같은 사고는 치지 마라. 이게 뭐냐? 일하러 가야 하는데 축구하러 가잖니.”

현수가 부러 이런다는 것을 알기에 주영은 주먹으로 눈물을 훔친다.

“알았어. 앞으로 주의할게.”

“그래, 그러면 됐어. 그리고 울지 마. 너와 난 친구잖아. 안 그래?”

“그래, 친구! 고맙다, 친구야! 안 잊을게.”

이후 둘은 반지와 목걸이, 그리고 팔찌를 어찌 포장하여 은정이 받게 할 건지에 대해 작전을 짰다.

물론 은정과 미리 짰다는 이야긴 하지 않았다.

현수로선 재미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실실 웃어가며 그럴듯하게 코치를 해줬다. 가다가 축구용품점을 찾아 축구화 등을 구입한 뒤 효창운동장으로 향했다.

“아! 이쪽입니다, 이쪽!”

주차를 하고 있으니 저쪽에서 손을 흔든다. 미드필더라던 피해 차량 운전자이다.

“경기는 잠시 후에 시작입니다. 이 옷으로 갈아입고 준비운동하면서 몸 좀 푸세요.”

“네, 알겠습니다.”

라커룸에 들어가니 팀원들이 보인다.

“어서 오십시오. 오리지날 팀 주장 곽형근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뒤쪽으로 안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네. 저는…….”

선수들이 다가와 각자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했다. 현수는 매번 같은 대꾸를 했다.

“김현숩니다. 선수를 다치게 하여 죄송합니다.”

이때마다 오리지날 팀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있죠.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리고 오늘 경기, 져도 괜찮습니다. 사실 후보선수 하나 없이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기적이니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모두들 이겨보겠다는 표정이다.

하긴 가족들까지 와서 열렬히 응원하는데 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열 번째 선수에게 이야기할 때 사내 하나가 나타난다. 유니폼은 입었지만 선수라 하기엔 다소 뚱뚱한 체구이다.

“이 친구야, 사고를 낸 사람이?”

“아니에요. 이분은 동승자예요.”

“아, 그래? 미안합니다. 양영만입니다. 오리지날 팀 감독 겸 팀 닥터죠.”

양 감독은 축구를 좋아하는 정형외과 전문의이다. 현재는 재활의학을 추가로 전공하고 있다.

물리치료학을 따로 공부했으며, 미국에서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 과정을 이수하고 온 바 있다.

이것은 그리스어에서 파생되었는데, 손을 뜻하는 ‘카이로(Cheir)’와 치료를 뜻하는 ‘프랙틱스(Praxis)’의 합성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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