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1
약물치료나 수술을 하지 않고 예방과 유지적인 측면에 역점을 두어 신경과 근골격계를 복합적으로 다루는 치료이다.
실력 면에서 양영만은 최상의 팀 닥터이다.
“아닙니다. 선수를 다치게 하여 죄송합니다.”
“네, 사과 받아들입니다. 근데 포지션은 아십니까?”
“최종 수비수라 들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수의 대답에 양 감독은 다른 선수들에게 시선을 준다.
“가급적이면 공이 뒤로 가지 않도록 경기 내내 신경들 써. 알았지?”
배려의 뜻도 있지만 현수의 축구실력을 알 수 없기에 한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경기 끝나면 회식 있는 거 알지?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아이들과 제수씨와 애인들까지 모두 모이는 거야. 근데 영찬이 네 애인은 빼자.”
“네? 왜요? 왜 제 여자 친구만 빼요?”
영찬이라 불린 사내가 대들 듯 묻는다.
“야, 한 달에 하나씩 갈아치워서 얼굴도 기억 못하겠다, 이 카사노바야. 다음 달엔 새로운 여자 데리고 올 거잖아. 그러니 현재의 네 애인은 우리가 얼굴을 알 필요도 없잖아.”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죠. 그리고 저 이번엔 진짜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그런 말씀 마세요.”
“그래? 그럼 경기 끝난 후 운동장에서 식 올려. 그런 다음에 데리고 와. 알았어?”
“와! 이런 억지가…….”
영찬이라는 친구가 말을 이으려 할 때 방송이 나온다.
“결승전을 치를 양 팀은 운동장으로 나와 주십시오. 곧 경기 전 행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뭐해, 어서 나가지 않고?”
양 감독의 말이 떨어지자 우르르 몰려나간다.
경기 전 개회사가 있었다.
이번 대회를 개최한 회사의 사장이 한마디 한다. 회사 홍보 차원에서 개최되었는지라 사진과 동영상이 많았다.
현수는 팀원들과 어울려 공을 주고받으며 몸을 풀었다.
시간이 흘러 경기 시작 5분 전이 되었다.
“자자, 후보 없이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애썼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원 없이 뛰어. 그리고 우승하자.”
양 감독이 말을 끝내곤 손을 내민다. 선수들 모두 그 위에 손을 얹는다.
“아싸, 아싸! 오리지날 팀 파이팅!”
“와아아아! 오리지날 팀 파이팅! 파이팅!”
관중석의 가족들이 일제히 응원의 함성을 질러준다. 상대팀 쪽도 만만치 않게 많은 응원단이 앉아 있다.
그들 역시 열렬한 응원을 보여주었다.
잠시 후, 페어게임을 하겠다는 뜻으로 상대팀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심판이 양쪽 주장을 불러 동전으로 공수와 골대를 정했다. 현수네 팀은 4―4―2 포지션이다.
현수는 라이트 백 자리에 섰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공을 점유한 포워드가 스트라이커에게 패스하자 상대팀이 달려든다. 이 공은 곧바로 레프트 미드필더에게 패스된 후 디펜시브 미드필더에게 보내졌다.
상대팀은 처음부터 강한 압박을 하겠다는 뜻으로 계속해서 달려든다. 다음 순간 현수의 앞으로 공이 온다.
얼떨결에 패스한 모양이다. 그러자 상대팀 스트라이커가 쏜살처럼 달려든다. 경기 시작 15초 후의 상황이다.
공을 받은 현수는 달려드는 상대팀 선수를 보며 공을 발바닥 아래에 두었다. 그리곤 몸을 돌려 간단히 따돌렸다.
지네딘 지단이 잘 쓰던 마르세이유 턴이다.
그리곤 공을 몰아 약간 전진했다. 그런데 패스할 곳이 마땅치 않다.
상대는 맨투맨 작전을 쓰는지 팀원과의 사이를 모두 점령하고 있다. 할 수 없이 조금 더 앞으로 몰고 나갔다.
어느새 하프라인을 넘었다.
팀원들은 어떻게든 패스를 받으려 이리저리 공간을 만들어보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다.
패스할 길목을 모두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뒤쪽에선 아까 제쳤던 스트라이커가 다시 달려든다.
빨리 패스하지 않으면 공을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침착하게 사방을 살피며 공 줄 곳을 찾았다.
여전히 마땅치 않다. 상대팀 스트라이커를 다시 한 번 따돌렸다. 그리고 또 전진했다. 그럼에도 패스할 곳이 없다.
어찌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양 감독이 빨리 패스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손짓을 한다. 공을 빼앗기면 오른쪽이 휑하니 뚫려 버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에라, 모르겠다.”
현수는 드리블(Dribble)하는 척하다 골대를 가늠하고는 그대로 슛했다. 무회전 킥이다.
콩고민주공화국 대표팀 선수들과 경기할 때 상대팀에 있던 셀레마니가 잘 차던 것이다.
골대까지는 다소 먼 거리이기에 저도 모르게 힘주어 찼다.
뻥―!
골대 쪽으로 날아가는 동안 공의 뒷면으로 다양한 소용돌이가 발생한다. 이것이 공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이 현상에는 카르만의 소용돌이[Karman’s Vortex]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어쨌거나 현수의 강력한 킥에 의한 공은 이리저리 휘어지며 골대를 향해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대포알 같은 속도이다.
그랜드마스터이기에 약간 힘주어 찼을 뿐이지만 베컴이나 호날두보다도 훨씬 더 강한 힘이 작용된 때문이다.
“어어! 어어어어!”
양 감독의 입에서 나지막한 경악성이 터져 나온다. 상대 스트라이커를 마르세이유 턴으로 제친 것도 놀라웠다.
전혀 기대하지 못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회전 킥까지 구사한다. 그런데 포탄보다도 빠른 듯하다.
마구(魔球)처럼 이리저리 휘어지는 공을 바라보는 상대팀 골키퍼는 긴장한 표정으로 방향을 가늠한다.
그냥 놔뒀으면 골대 곁을 스쳤을 공이다. 간격은 5㎝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존재가 장난질을 친다.
아리아니가 개입한 것이다.
공이 골대까지 쇄도하자 슬쩍 방향을 바꿔주었다. 다음 순간 오른쪽 탑 코너로 그대로 빨려든다.
철렁―!
“와아아아아! 골이다, 골!”
“와아아! 와아아아!”
오리지날 팀원 및 가족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반면 상대팀은 멍한 표정이다. 상대편 수비수가 하프라인을 조금 넘긴 지점에서 때린 슛이 그대로 골망을 흔든 때문이다.
양 감독도 환호작약하며 좋아한다. 그런 그의 곁에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인물이 서 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다.
홍명보 감독은 오늘 신임 팀 닥터를 만나려 이곳에 왔다. 전임 대표팀 닥터에게 개인적 사정이 생긴 때문이다.
가족 중 지속적인 보살핌을 받아야 할 환자가 발생되어 자리를 내놓은 것이다.
전임 팀 닥터는 양영만을 후임으로 추천했다.
축구를 좋아하고, 축구에 대해 잘 알며, 대표팀 닥터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췄기 때문이다.
하여 만나자고 연락했더니 시합이 있다 하여 왔다. 그 덕에 방금 전의 마르세이유 턴과 무회전 킥을 보게 되었다.
“와아아! 잘했습니다! 정말!”
“하하! 이런 실력이 있는 걸 왜 숨겼습니까? 방금 전 무회전 킥,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뱀처럼 구불구불하며 날아가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대단합니다.”
현수는 설마 그게 들어가겠나 싶었다. 그런데 골인이 되자 얼떨떨한 상황이다.
한편, 관중석에 있던 주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현수가 축구를 제법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프로팀 선수에 버금갈 실력을 지닌 상대팀 스트라이커를 너무도 쉽게 따돌렸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리고 멋진 골까지 넣자 흥분한 것이다.
“와아아! 김현수 파이팅! 파이팅!”
잠시 후, 공은 다시 센터서클 안에 놓였다.
그리고 경기는 속행되었다. 몰고 가다 빼앗기고, 그것을 다시 빼앗아 방향을 전환하는 공수가 잠시 이어졌다.
주로 왼쪽에서 일어난 일인지라 현수는 주시만 할 뿐이다. 그러던 중 상대가 공을 차는 순간 오리지날 팀원이 발을 갖다 댔다. 굴절된 공이 향한 곳은 현수 쪽이다.
“이런, 또야?”
공을 잡은 현수는 누구에게 패스할 것인가를 살폈다. 이때 전방을 향해 쏜살처럼 달리는 선수가 보인다.
드리블하여 전진하면서 그 선수의 속도와 방향, 그리고 수비수의 움직임 등을 가늠했다.
뻥―!
현수의 발을 떠난 공은 골대 앞으로 쇄도하는 선수에게 쏘아져 갔다.
“슛! 슛!”
양 감독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전방 공격수는 날아오는 공에 발을 가져다 댔다. 발리슛이다.
퉁! 철렁―!
공을 잡아내기 위해 뛰어나오던 상대팀 골키퍼는 방향만 살짝 꺾인 공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1골 1어시스트가 된 셈이다.
“와아아! 골이다, 골!”
“와아아! 와아! 오리지날 만세! 2:0이야! 2:0! 와아아!”
또다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최전방 공격수는 현수에게 다가와 와락 껴안는다.
“현수 씨! 방금 전의 패스,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내 생애 최고의 패스였습니다! 덕분에 한 골 넣었습니다! 하하하!”
기쁨에 겨워 현수의 등을 팡팡 두들기고는 다른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한다.
잠시 후, 경기는 다시 속행되었다.
또다시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그렇게 10분쯤 흘렀을 때 또 현수에게 패스가 왔다.
가급적 패스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상대팀의 압박이 너무 심하니 어쩔 수 없어 보낸 모양이다.
현수가 드리블하며 전진하자 상대팀원들은 달려들기보다는 패스할 곳을 차단하는 데 주력한다.
아까의 마르세이유 턴이 너무도 자연스러웠기에 대단한 개인기가 있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수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까의 스트라이커가 또다시 달려든다. 이번엔 반대 반향 마르세이유턴으로 따돌렸다. 상대는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양발잡이가 많은 한국이지만 두 발 모두 이렇게 잘 쓰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패스할 곳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전진! 전진!”
양 감독이 목청을 돋워 소리 지른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라이트 백 자리를 누군가 채우고 있다.
수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다시 전면을 응시하는 순간 두 명이 달려든다.
“이잇!”
현수는 오른쪽 사이드라인을 따라 전진했다. 평범한 드리블이 아니다. 공을 차놓고 빠르게 뛰어간 것이다.
“아앗! 뭐, 뭐야?”
양 감독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낸다. 현수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때문이다. 홍 감독 역시 눈을 크게 뜬다.
현역 중 가장 빠른 축구선수는 안토니오 발렌시아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이며 100m를 10초 24에 뛴다.
공을 몰고 드리블 돌파하는 기록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갖고 있다. 100m 기록이 10초 71이다.
두 개 모두 FIFA 공인 기록이다.
홍 감독은 많은 국제대회에 출전한 바 있다. A매치 기록만 135경기이다. 따라서 여러 선수를 접한 바 있다.
그런데 방금 전의 현수보다 빠른 선수는 보지 못했다.
스톱워치도 없고 달려간 거리도 측정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확한 속도를 산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안토니오 발렌시아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 빠르다.
그들과 비슷한 빠르기가 아니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100m 달리기를 할 경우 10m 이상 앞서는 속력이다.
하여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상대팀 수비수 둘이 현수에게 강한 압박을 시도하고 있다. 순식간에 상대팀 골라인 전방 2m 위치에 당도한 현수는 달려드는 선수들을 보며 공을 발바닥으로 긁었다.
그리곤 사포[Rainbow Flick]라는 기술로 그들의 등 뒤로 공을 보낸다. 동시에 그들 틈을 비집고 나갔다.
다음 순간 또 다른 수비수가 달려든다. 이번엔 현란한 마르세이유 턴이다. 그런데 돌아서면서 힐킥을 한다.
그러자 공이 달려드는 팀원의 발 앞에 정확히 배달된다.
뻥―! 출렁―!
“와아아! 골이다, 골!”
“……!”
전문성이 없는 오리지날 팀 응원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아군도 적군도, 양 감독도 홍 감독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현수만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