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2
처음 공을 받은 다음 골이 들어갈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초이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움직임으로 오른쪽을 헤집고 들어가 그림 같은 힐 패스로 어시스트한 것이다.
‘이런, 너무 나섰나 보네. 흥분했나?’
이후의 움직임은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공이 오면 머뭇거리지 않고 패스했다. 물론 패스 성공률은 100%이다.
거리가 가깝든 멀든 오리지날 팀원에게 곧바로 배달되었다. 그림 같은 패스였다.
전반전이 끝난 후 라커룸에 모인 팀원들은 현수에게 다가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아까까지는 자리만 채워줄 깍두기 정도로 여겼는데 이번엔 아니다. 완전한 영웅 대접이다.
같은 순간, 전반전 영상을 촬영한 카메라 감독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어! 이 선수, 어디서 많이 봤는데 누구지?”
오늘을 위해 방송국에서 특별 초빙해 온 카메라 감독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최 측 홍보담당자가 다가선다.
현수를 선수로 등록해 준 양영만 감독의 매제이다.
“이 감독님, 왜 그러세요? 녹화가 잘 안 되었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카메라 감독의 말은 중간에 잘렸다.
“그거 우리 회사 홈페이지에 올릴 거라는 거 아시죠? 그래서 잘못되면 안 돼요. 근데 무슨 문제 있어요?”
“문제는 없어요. 근데 여기 이 선수를 어디서 많이 봤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요.”
카메라 감독이 가리킨 장면은 현수가 마르세이유 턴으로 상대 수비수를 제치면서 힐킥으로 패스하는 장면이다.
“분명 낯이 익는데 어디에서 봤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이 팀 선수명단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래요? 여기요. 이게 명단이에요.”
홍보담당이 파일을 펼쳐 보여주자 감독은 오리지날 팀원들의 이름을 살핀다.
그러다 맨 마지막에 기록된 이름을 보았다.
“아, 맞다. 이분, 천지건설 부사장님이에요. 세계 최고의 아이큐라는 그분 말이에요. 봐요. 이름도 김현수잖아요.”
“네에? 정말요?”
홍보담당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다.
만일 진짜 김현수가 선수로 출전했다면 회사 홍보로 이것보다 좋은 건 없다. 그렇기에 재빨리 영상에 시선을 준다.
현수가 분명히 맞다.
“우와! 대박! 감독님, 이 영상 정말 잘 보존하셔야 합니다. 아셨죠? 참, 혹시 모르니까 얼른 카피 하나 뜨세요. 그리고 후반전 경기 땐 여기 김현수 사장님을 집중적으로 찍으세요. 아셨죠? 꼭 그러셔야 합니다.”
“알았습니다.”
홍보담당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났다. 경기가 끝난 후 양 감독에게 부탁하여 현수를 인터뷰할 생각을 한 것이다.
경기 후 회사 홈페이지에 올려놓기만 하면 아마 서버가 다운될 것이다. 그래도 좋다.
김현수라는 이름 석 자만 들어가면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인과 모든 여자가 환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고의 회사 홍보가 될 것이다.
이윽고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진영을 바꾼 후론 현수에게 계속 공이 온다. 아까 보여주었던 실력을 다시 한 번 보여 달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패스로 처리하고는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몇 번이 지속되는 동안 초조해진 상대팀은 점점 더 흥분되는 듯하다. 그러다 과격한 백태클로 오리지날 팀 스트라이커가 실려 나갔다. 발목에 부상을 입었다.
반칙을 범한 선수는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해 10:10 경기가 되었다.
오리지날 팀은 더 이상의 후보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과열되는 느낌이다.
스코어는 3:0이고 남은 시간은 15분이 되었을 때다. 상대는 어차피 진 게임이라 생각했는지 조금씩 전진한다.
상대 공격수가 현수 쪽으로 공을 몰며 전진한다. 그리곤 페인트 모션으로 현수를 제치려 하였다.
하지만 이에 당할 리 있겠는가! 손쉽게 상대의 공을 빼앗은 현수는 곧장 앞쪽으로 밀고 나갔다.
전반전을 마치고 라커룸에 있을 때 만일 공격할 기회를 얻게 되면 뒤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슬쩍 바라보니 현수의 빈자리를 채우러 디펜시브 미드필더가 달려간다. 그의 빈자리는 라이트 미드필더가 채운다.
빠른 속도로 공을 치고 나가며 상대 선수들을 돌파했다. 그런데 아까처럼 패스할 곳이 없다.
결승전에 오르기까지 많은 경기를 소화한 오리지날 팀 선수들이 지쳐서 뛰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달려드는 선수를 차례로 제치고 나니 어느덧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다.
슈팅 각도를 좁히기 위해 튀어나온 골키퍼까지 제치게 되었다. 발로 공을 툭 차서 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와아아아! 골인이다, 골인!”
“4:0, 4:0! 천하무적 오리지날! 와아아아!”
일제히 함성이 터져 나온다. 상대팀원들은 졌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공은 다시 센터서클에 놓였다. 경기가 재개되었지만 모두들 지쳐 있는지라 아까처럼 빠른 공수 전환은 없었다.
대신 이전투구식 태클만 난무했다.
그러다 또다시 기회가 왔다. 후반 44분의 일이다.
상대 공격수로부터 공을 빼앗은 현수는 길게 센터링을 해줬다. 이 공은 전방을 향해 쇄도하는 오리지날 팀 공격수의 머리 위로 배달되었다.
“헤딩 슛!”
철렁―!
“와아아아! 골인이다, 골인!”
“5:0, 5:0! 오리지날 우승이다! 만세! 만세! 와아아아!”
오리지날 팀 응원석은 난리가 벌어졌다.
로스타임까지 감안해도 기껏해야 4분쯤 남아 있다.
상대팀 전원이 메시, 또는 호날두라 해도 5:0을 뒤집기엔 절망적이다. 이후의 경기는 포기한 자와 그것을 방어하는 자의 지루한 공방이었다.
삑, 삑, 삐이익―!
결국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사회인 축구대회 결승전이 끝난 것이다. 오리지날 팀이 상대팀을 5:0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현수는 2골 3어시스트를 했다. 당연히 MOM(Man of the Match)으로 선정되었다.
곧이어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오리지날 팀 양영만 감독과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이때 응원단은 난리가 벌어졌다.
상금 1,000만 원 때문이 아니다. 오늘 뛴 선수 중에 천지건설 김현수 부사장이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때문이다.
한편,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양 감독과 동석해 있던 홍 감독은 현수에게 시선을 주고 있다.
분명 입지전적인 기업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보다도 더 넓은 농장을 일구는 사람이다.
재계에서는 현수를 일컬어 ‘미다스의 손’이라 칭한다.
무엇이든 손만 대면 다 이루어지니 어찌 그리 부르지 않겠는가!
이 소문의 결정적 사유는 태백조선소에서 흘러나온 말 때문이다. 포기 상태이던 거래를 현수가 나서서 단숨에 해결해 줬다는 말이 재계로 전해진 것이다.
여기에 콩고민주공화국 국가 개발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이 번졌으니 그런 별명이 붙을 만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축구를 엄청나게 잘한다.
수없이 많은 선수를 접한 홍 감독이지만 현수보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며 더 강한 선수는 본 적이 없다.
‘왜 축구를 안 한 거지? 하긴…….’
엄청난 재산을 가졌고 명성 또한 뛰어나다. 땀 흘리며 부딪쳐야 하는 축구를 할 이유가 없다.
한참 동안 현수만 바라보던 홍 감독은 상금 수여식이 끝났을 때 효창운동장을 벗어났다.
감독이 된 이후 늘 무표정한 얼굴의 그가 지금은 아니다. 상기된 표정으로 눈빛이 빛나고 있다.
7장 기자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의 대회를 주최한 회사에선 꼼수를 부린다.
한국 사회인 축구 대표팀과 일본 사회인 축구 대표팀 간의 경기를 추진한 것이다.
현수는 빠지려 하지만 발목을 다친 선수가 인대가 늘어났는지 뛸 수가 없다며 간청한다. 물론 뻥이다.
할 수 없이 뛰게 된 한일전은 이례적으로 TV로 생중계된다. 현수가 출전하기 때문이다.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치러지는 경기의 응원은 일방적이다. 홍보할 시간이 없어 응원단이 가지 못한 때문이다.
이 경기에서 현수는 3골 4어시스트를 한다.
그리고 경기 결과는 7:0이다.
일본 쪽에선 프로팀 2군에 속해 있는 선수를 다섯 명이나 출전시키지만 형편없이 밀린다. 원기를 되찾은 오리지날 팀원들의 기량 또한 그들 못지않은 때문이다.
이 경기에서 현수는 경기 시작 12초 만에 또 한 번의 무회전 킥을 한다. 하프라인을 넘기도 전에 갈긴 슛이다.
그럼에도 일본 골대의 골망이 흔들린다.
살아 있는 뱀처럼 허공을 유영하던 공이 왼쪽 탑 코너를 손쓸 틈 없이 쑤시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원사이드 결과를 기대하며 한껏 달아올랐던 경기장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그리고 일본팀 응원단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탄식만을 터뜨려야 했다.
전광석화와 같은 돌파에 이은 무시무시한 슈팅, 수비수를 농락하는 현란한 페인트 모션에 경악한다.
뿐만 아니라 절묘한 헛다리짚기로 수비수 스스로 쓰러지게 만드는 기술이 한국팀에서 나온 때문이다.
현수는 ‘자로 잰 듯한 패스는 이런 것이다’를 보여준다.
패스 성공률은 100%이고, 단 한 번도 공을 빼앗기지 않는 기록을 세운다.
당연히 현수가 대회 MVP이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은 이 경기도 지켜본다.
한국인 중에 이렇게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이 경기 내내 그의 뇌리를 지배하게 된다.
이것은 며칠 후에 있을 일이다.
* * *
“자기, 오늘 축구했어요?”
“어! 그걸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기는요, 지금 인터넷이 난리가 났어요.”
“왜? 무슨 일 났어?”
경기 장면이 녹화된다는 걸 몰랐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곤 연희가 보여주는 동영상을 보았다.
크루이프 턴으로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는 장면이다. 연달아 두 명의 수비수를 이 방법으로 바보를 만들었다.
화면 아래엔 크루이프 턴이란 친절한 자막이 붙어 있다.
다음은 무회전 킥에 의한 골인 장면이다. 슬로우 비디오로 재생되는데 공이 제멋대로 꺾이는 장면이 일품이다.
특히 맨 마지막의 꺾임은 거의 예술이라는 평이 붙어 있다. 상상하기 힘든 각도로 툭하며 꺾이는 것이다.
“끄으응! 이건 또 언제…….”
“자기 또 검색어 순위 1위예요.”
“에구! 하여간 주영이 때문에……. 쩝!”
현수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잠시 후에 있을 경호원들과의 회식 때문이다.
양복은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편한 캐주얼도 아닌 것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지현이 배시시 미소 짓고 있다.
“자기 그렇게 축구 잘하는 줄 몰랐어요.”
“에구!”
이리냐도 한마디 거든다.
“호날두보다 메시보다 자기가 더 잘해요. 자랑스러워요.”
뭐라 할 말이 없기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곤 전화로 예약 상황을 확인했다.
육군 12명, 해군 12명, 공군 54명, 국정원 12명, 스페츠나츠 36명, 마지막으로 토탈가드 24명을 불렀다.
권철현 고검장 부부를 경호하는 요원들까지 부른 것이다. 헤아려 보니 150명이나 된다.
이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의미로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 장소를 마련했다. 원래는 당일 예약이 어렵다.
하지만 천지건설 김현수라는 이름을 대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객실까지 마련되었다.
오늘은 먹고 마실 테니 그곳에서 쉬라는 뜻이다.
“셔틀버스 언제 온대?”
“금방 도착한대요.”
연희가 대답하며 옷매무새를 살핀다.
잠시 후, 벨이 울린다.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보낸 셔틀버스들이 당도했다는 뜻이다.
네 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곧장 호텔로 향했다. 연회장 입구에 당도하자 지배인 및 종업원들이 도열해 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호텔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회실 담당 지배인 강준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