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14화 (813/1,307)

# 814

“하시는 일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염원도 중요합니다. 기회가 되면 대표선수가 되어주십시오.”

“맞습니다. 김 사장님이 나서면 줄리메컵을 우리가 안을 수도 있습니다.”

“내후년엔 올림픽에도 출전해 주십시오!”

“네?”

누군가의 고함에 시선을 돌려보았다.

올림픽 운운한 건 강민경 기자이다. 시선이 마주치자 강 기자가 재차 입을 연다.

“어제 경기에서 김 사장님은 100m 달리기를 9초 50에 주파하셨습니다. 세계 최고 기록인 우샤인 볼트의 기록이 9초 58이었습니다.”

“……!”

어제 달린다고 달리긴 했다. 물론 전력 질주한 것은 아니다. 현재의 컨디션이라면 100m는 3초면 충분하다.

마법을 쓰면 3초가 아니라 0.3초 만에도 가능하다. 어쨌거나 그냥 달린 게 9초 50이란다.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달린 것도 아니고 경주용 런닝화를 신은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이 보았을 때 제대로 된 육상 훈련을 받는다면 우샤인 볼트를 2인자로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1초쯤 줄여 100m를 8초 50에 들어오면 영원히 깰 수 없는 기록이 될 것이다.

100m 달리기는 육상의 꽃이다.

대한민국이 단 한 번도 올림픽 메달을 따본 적이 없는 종목이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종목이다.

거기에 나가서 메달을 따오라는 뜻이다.

90분을 버틸 체력이 있어야 할 축구를 했으니 100m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도 출전할 수 있다 생각할 것이다.

올림픽엔 혼자 출전하는 종목이 여럿 있다.

100m, 200m, 400m, 1,000m, 1,500m, 10,000m 등이다. 나가기만 하면 모조리 금메달을 딸 수 있다.

그냥 금메달이 아니다. 인간이 영원히 깰 수 없는 신기록이 동반된 금메달이다.

42.195㎞를 달리는 마라톤은 2시간 3분 23초가 세계기록이다. 2013년 베를린 대회에서 케냐의 윌슨 킵상이 세웠다.

그런데 현수는 마법을 쓰지 않고도 1시간이면 들어올 수 있다. 이 기록을 누가 깰 수 있겠는가!

야구는 투수들의 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2010년 쿠바 출신 좌완 아롤디스 채프먼은 시속 169km의 공을 뿌려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그런데 현수가 마음먹고 공을 던진다면 시속 400㎞는 가뿐하다. 거의 총알 수준이라 포수가 죽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수의 기준으로 보면 인간이 세운 모든 기록이 무의미하다. 이런 상황인데 국가대표 운운하고 있다.

왠지 혼자만 반칙하는 기분이다.

게임에 비유하자면 홀로 치트키를 쓰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여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강민경 기자가 오늘따라 집요하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육상 해보실 마음 없습니까?”

“현재로선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회견을 마쳤으면 합니다. 오늘 회의가 있는데 늦었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친 현수가 룸으로 되돌아오니 연희와 이리냐가 호들갑을 떤다.

어제의 경기 영상은 벌써 지구 전체로 퍼졌다.

현재 한국과 같은 조가 된 러시아와 알제리, 그리고 벨기에는 비상이 걸렸다. 현수의 경기 영상을 분석하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는 외신이다.

그 결과 현수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여 한국을 제외한 다른 팀과의 경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고 한다.

이는 러시아, 벨기에, 알제리만의 일이 아니다.

다른 조에 속하는 국가에서도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냈다. 16강 이후엔 한 번만 패하면 끝이다.

한국을 만날 수 있는 국가에선 대책 마련에 고심이라고 한다. 90여 분짜리 동영상 하나가 전 세계 축구 전문가들의 골치를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순간, 킨샤사의 어느 집에서 고함이 터져 나온다.

“나, 알아! 나, 이 사람 안다고!”

현수에게 100달러 내기를 했다 깨진 셀레마니이다.

그때는 운이 없어 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영상을 보니 그때 많이 봐줬다는 느낌이다.

영웅을 알고 있다는 느낌에 크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한편, 일본 대표팀 감독 알베르토 자케로니도 영상을 보았다. 물론 이맛살이 잔뜩 찌푸려져 있다.

한국은 16강에 진출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반면 본인이 맡은 일본팀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둘 다 탈락하거나, 한국만 탈락하면 별문제 없다. 만일 한국만 올라하고, 일본이 탈락하면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으으음! 어떻게 이런 사람이 평범한 직장인이지? 한국은 정말 알 수 없는 나라야.”

2010년 4월, 미국 버지니아 해군기지에서는 국제 군악제[Military Tattoo]가 개최되었다.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초청되었다.

이 대회엔 16개국 군악대가 참여했고, 저마다의 기량을 자랑했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맨 마지막에 공연을 했다.

한국이 파견한 것은 국악대였다. 이들은 앞선 15개국의 양악기 공연을 모두 잊을 만큼 대단한 취타 연주를 했다.

이후 16개국 군인 중 하나씩 단상에 올라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한 소절씩 나눠서 불렀다.

다들 노래 잘하는 군인 수준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순서가 되었을 때 모두의 눈이 번쩍 뜨였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같은 프로 성악가의 음성이 들린 때문이다. 당시 26세였던 그는 서울음대 출신 성악병이었다.

당시의 미국인 PD는 깜짝 놀라 통역병 역할을 맡은 가수 성시경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쟤는 또 뭐야? 너도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라며? 한국 군대는 도대체 뭐냐?”

일본 대표팀 감독 자케로니의 놀라움도 이와 유사하다.

하여 나지막한 침음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대표팀의 엔도 야스히토 등은 일어서지 못한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적을 만났을 때 오금이 저린 것과 같은 현상 때문이다. 현수의 공격력에 압도당한 것이다.

‘아! 16강에 성공해도 한국과 만나면 깨지겠구나.’

모두들 야스히토와 같은 생각이다. 패배감이 전율처럼 일본 대표팀을 훑고 지나간 것이다.

같은 순간, 지나에서도 현수의 동영상이 재생된다.

모두들 입을 딱 벌린다.

그리곤 수없이 많은 댓글이 달린다. 그중 거의 전부가 자국 대표팀 병신이라는 내용이다.

아울러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 어떻게 저렇듯 걸출한 인물들이 끊임없이 배출되느냐며 탄식한다.

현수 이외에도 김연아, 추신수 등이 언급된다. 지나 네티즌 역시 열등감에 젖어 자폭하는 분위기이다.

8장 크렘린궁의 선물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호외가 발행되었다.

호외란 신문사가 중요한 뉴스를 속보로 전하기 위하여 정기 간행 이외에 임시로 발행하여 뿌리는 인쇄물이다.

달리는 트럭에서 뿌려진 호외의 내용은 이실리프 뱅크에 관한 것이다.

이실리프 뱅크의 설립 동기 및 영업 방향 등이 쓰여 있다. 뒷면엔 오전의 기자회견 내용이 다듬어진 것들이 있다.

이것을 받아 읽은 아내가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우리 대출 받는 거 조금 늦춰요.”

“왜? 돈 없는데 가게 어떻게 하라고? 이자율이 높은 게 흠이지만 신청만 하면 빨리 빌려준다잖아.”

“아니에요. 이거 보세요. 담보 없어도 누구든 신용대출 받을 수 있대요. 금리도 4.5%밖에 안 돼요.”

“뭐? 그런 데가 어디 있어? 무슨 보이스 피싱인가 뭔가 하는 거에 홀린 거야?”

남편의 음성은 다소 퉁명스럽다. 아내를 약간은 깔보면서 사는 사람인 듯싶다.

“아뇨. 이거 보세요. H일보에서 뿌린 호외예요. 조만간 이실리프 뱅크라는 게 생긴대요. 갚을 의지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돈을 빌려준대요.”

“정말? 그런 은행이 어디에 있어? 어디 줘봐.”

마누라가 어디 가서 쓸데없는 소리를 듣고 왔나 싶어 시큰둥하게 대하던 남편이 호외를 받아 든다.

“아! 이건 정말……. 여보, 우리가 대부업체에서 대출 받은 돈이 전부 얼마지?”

어느새 남편의 음성이 바뀌어 있다.

“1,200만 원이요. 그거 전부 연 39%짜리예요.”

연 468만 원이 이자이다. 월 39만 원씩 내고 있다.

“여보, 이실리프 뱅크로 옮기면 이자가 어떻게 되죠?”

“가만있어 봐. 지금 계산하는 중이야.”

남편은 즉시 계산기를 두들긴다.

“1년에 54만 원이니까 한 달에 4만 5,000원이야.”

“세상에! 그럼 매달 34만 5,000원씩 덜 부담해도 된다는 거잖아요. 맞아요?”

아내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이자가 엄청 싸네!”

“싼 정도가 아니지요. 여보, 우리 힘들어도 조금 더 기다렸다가 이쪽에서 대출 받아요.”

“당연하지! 당장 굶는 한이 있어도 이젠 거기서 대출 안 받아. 미쳤어, 또 받게? 이 은행 생기면 바로 가자.”

남편은 단호한 표정이다. 아무리 꾀어도 대부업체로 갈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그래요, 여보. 근데 이 은행 누가 만든 거래요? 혹시 대통령님이에요?”

“아니. 천지건설 김현수 사장 알지?”

아내가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요. 건설회사 다니다가 외국에서 엄청 큰 공사 따와서 금방 사장 된 사람이잖아요.”

남편을 도와 하루 종일 조그만 가게 안에 갇혀 사는 아내도 현수는 안다. 워낙 유명해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실리프 뱅크는 그 사람이 만든 거야. 대통령이 아니고. 우리 같은 서민들을 위해 설립하는 거래.”

“아이고, 정말 고마운 사람이네요. 이 사람은 국회의원 안 나온대요? 나오기만 하면 찍어줄 텐데.”

“나도! 이런 사람이 진짜 서민을 위하는 정치인이 될 거야. 그나저나 뒤엔 뭐가 있는 거야?”

남편이 호외의 뒷면을 살필 때 아내는 가게에서 사온 콩나물을 다듬고 있다.

“아, 이 사람, 엄청난 금광을 발견했구나. 그래서 그랬어.”

“네? 그게 무슨 소리래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라는 뜻이다.

“조금 아까 말한 김현수 사장 말이야.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커다란 금광을 발견했대. 거기서 나온 금을 팔아서 은행을 만드는 거래. 참 대단한 사람이야.”

“와아! 정말요? 정말 대단하네요.”

“그래. 남들 같으면 그거로 호의호식하면서 떵떵거리고 살 텐데 이 사람은 아직도 전세 산대.”

“정말 좋은 사람이네요.”

남편과 아내의 이런 대화는 대한민국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날 이후 대부업체는 대출 문의가 뚝 끊긴다.

땅 짚고 헤엄치는 것처럼 나날이 사세를 확장해 가던 대부업체들의 영업전선에 된서리가 내린 것이다.

대부업체들의 몰락이 시작된 것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일본계 대부업체들은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한다.

이실리프 뱅크가 영업을 개시한 후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대출액 거의 전부가 조기 상환된다.

금고에 돈은 쌓여 가는데 대출은 제로이다.

아무도 돈 빌리러 오지 않는 것이다. 하여 이자율을 대폭 낮췄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낮춘다고 낮췄지만 여전히 4.5%짜리 신용대출 금리와는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 급여는 지불해야 하기에 넘쳐나는 돈으로 주식에 투자해 보지만 손해만 본다.

코스피나 코스닥 지수는 오르는데 이상하게도 투자하는 종목마다 주가가 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철수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금고 속의 돈과 골드바 등이 몽땅 사라진다.

대한민국에 진출하여 어렵게 사는 서민들의 고혈을 빨아 마련한 돈이다. 그러는 동안 불법추심도 했고 체납자에게 공갈 협박도 서슴지 않았었다.

즉시 경찰에 신고하지만 끝까지 찾지 못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증발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흔적도 증거도 없다.

돈을 벌어보겠다고 썩어빠진 정치인들에게 돈을 줘가며 한국까지 진출했다. 그런데 원금까지 몽땅 까먹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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