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7
“참, 몽골을 집어삼키려던 지나는 요즘 어떻습니까?”
현수의 물음에 푸틴은 살짝 이맛살을 좁힌다.
“찌그러져 있지.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 전 같으면 항의 서한을 보내거나 할 텐데 이상하게 조용해. 마치 내부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네.”
러시아와 지나는 인종 자체가 다르기에 첩자를 파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금방 발각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나 내부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은밀히 도발을 획책하고 있다면 그에 상응할 강력한 응징을 이쪽에서도 준비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 여러 경로를 통해 정보를 입수하려 애쓰고 있다. 그런데 왜 반응이 없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던 차이다.
이럴 땐 힌트가 필요하다.
“혹시 최근 발생한 지나의 불법조업 어선 어부들 실종 사건 때문이 아닐까요?”
“흐음, 그건 아니네. 지나 정부는 그 정도 인명 가지곤 꿈쩍도 안 하네. 계속 수색작업을 하고 있는 건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방편일 뿐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네.”
워낙 인구가 많은 국가이니 그럴 만도 하다.
“내부에 문제가 있다 하셨는데, 그럼 혹시 경제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제가 듣기로는 최근에 지나 정부가 금괴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그건 그러하네. 지나치리만치 많은 금괴를 사들이고 있지. 위안화를 펑펑 써가면서 말이야.”
푸틴은 여전히 의혹에 잠겨 있는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현수는 아니다. 드디어 꼬투리를 잡아냈다.
“달러화와 유로화가 아닌 위안화를 써요?”
“그렇다네. 위안화로만 금괴를 매입하네. 달러화가 없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3조 5천억 달러 정도 쌓여 있네. 근데 그걸 왜 안 쓰는지도 궁금하네.”
현수는 속에 품고 있던 말을 할까 망설였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지나가 급속도로 붕괴되면 주변 국가에 막대한 영향이 미치기 때문이다.
이실리프 자치구가 완성된 상태라면 문제가 없으나 아직은 아니다.
지나 붕괴로 인한 악영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든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는 열쇠 하나쯤을 갖고 있는 것이 좋다. 그렇기에 참았다.
“제가 알기론 일본과 미국도 금괴를 매입한다더군요.”
“맞아. 국제 금 시세가 많이 떨어져서 그런가 보네. 아마 바닥이라고 생각했나 보지.”
누군가 푸틴에게 일반론적인 보고를 한 듯싶다.
“아! 그럼 저는 금만 많이 캐면 되는군요.”
“엉? 아! 그럼, 그럼! 많이 캐게. 그거 다 팔아서 어서 이실리프 자치구를 완성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러시아를 위해 써달라는 뜻이다. 현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완성시키려면 물량 공세라도 펼쳐야지요. 오늘 참 유익한 만남입니다.”
“하하! 그래,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푸틴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쯤 되면 러시아 정부와의 친밀도는 최상이다.
* * *
“오! 사위, 어서 오게.”
“반갑습니다, 장인어른, 장모님!”
현수가 정중히 고개 숙이자 레드마피아의 수장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부부가 환히 웃는다.
둘의 뒤에는 올가와 나타샤 부부가 서 있다.
이리냐는 막내로 입양되었다. 따라서 가족 서열이 가장 낮다. 그럼에도 막내 부부를 맞이하는 모양새가 아니다.
집안의 가장 귀한 자식을 맞이하듯 모두가 모인 것이다.
아무튼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이미 식사를 마쳤는지라 커다란 거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엔 드모비치 상사와의 교역에 관한 것이다.
쉐리엔 10억 상자 주문은 사실이었다.
요즘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 국내의 수요도 엄청나다.
처녀 때는 날씬하다 중년만 되면 뚱뚱해지는 것이 러시아 여인들의 숙명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쉐리엔이 들어오고부터 차츰 뚱뚱한 여인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기는커녕 적당한 체형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살이 빠진다.
부작용도 없고 요요현상도 없다.
여자들도 좋아하지만 사내들이 더 좋아한다. 섹시한 마누라와 살기 싫어하는 사내는 없기 때문이다.
하여 가격이 비쌈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반응이다.
요즘 너도나도 사재기를 하려 해서 신분증 확인 후 석 달 치씩만 판매하고 있다. 그럼에도 재고가 부족하여 절절매는 중이다. 그렇기에 통 크게 10억 상자 주문을 낸 것이다.
수입가는 50조 원이지만, 판매가는 이것의 8배인 400조 원이나 된다. 350조 원의 차액이 발생된다.
그 가운데 20%를 세금을 내도 280조 원이 이득이다. 이것에서 판매비용을 뺀다 해도 200조 원 이상이 남는다.
드모비치 상사 역사상 어떤 거래보다도 큰 이익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보스는 스스로 이바노비치의 휘하에 머물겠다는 서한을 보내왔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바노비치가 모든 마피아의 정점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현수의 서열은 당분간 3위가 되었다.
아무튼 이것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당연히 기분이 좋다. 돈도 돈이지만 세상의 꼭대기에 올라선 기분 때문이다. 드디어 오랜 꿈을 이룬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현수의 덕이다.
쉐리엔보다는 못하지만 무지막지한 연비를 자랑하는 스피드도 쏠쏠한 이득을 주고 있다. 현재는 수입 물량이 주문량보다 현저히 적다. 하여 없어서 못 파는 차이다.
도착 즉시 예약된 주인에게 보내는 중이다.
그 때문에 중고차 시장에선 중고가 새 차보다 더 비싸게 팔리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지금 주문하면 3년 후에나 차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현수는 연간 100만대를 생산하기 위한 공장을 짓고 있다면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40∼50만 대는 국내에 풀고 나머지는 수출한다. 그중 절대 다수를 드모비치 상사에게 공급하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자동차는 고가 상품이다.
2013년 10월 자료를 보면 ‘BMW 520d 기본형’의 국내 판매가는 6,260만 원이다. 수입 원가는 3,802만 원이다.
차액 2,458만 원 중 수입사와 딜러 마진은 1,154만 원이다. 나머지 1,304만 원이 세금이다.
판매가 대비 수입사+딜러 마진은 18.43%나 된다.
연간 스피드 30만 대를 수입하여 대당 500만 원씩만 이윤을 취해도 1조 5,000억 원의 이득이 발생된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은 물량이 러시아로 수출될 것이다. 그리고 마진도 500만 원보다는 훨씬 더 높을 것이다.
한번 구입하면 연료비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아도 되는 차이니 고가로 팔릴 것이기 때문이다.
스피드 역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예정이다.
다음은 듀 닥터이다.
기존의 듀 닥터도 상당히 좋았는데 업그레이드된 것은 더 좋다며 폭발적인 매출 신장 중이라 한다.
이것 역시 공급량을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태을제약과 상의해 봐야 할 일이지만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별도로 슈피리어 듀 닥터를 생산하기 위한 공장 증설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버전을 공급하되 슈피리어 버전은 명품화 계획을 세웠다. 업그레이드된 듀 닥터는 세트 가격 35만 원이다.
한번 구입하면 약 3개월간 사용할 분량이다.
슈피리어 버전은 이보다 비싼 100만 원으로 계획한다.
처음엔 저항감 때문에 매출이 미미하겠지만 한번 써보면 이것 역시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특히 유럽의 귀부인들이 환장할 것이다.
8자 주름, 이마와 눈가, 그리고 목에 생기는 주름이 거의 모두 사라지는데 어찌 안 사겠는가!
게다가 기미와 주근깨도 없어진다.
모르긴 해도 100만 원이 아니라 200만 원에 판다고 해도 기꺼이 사려 줄을 설 것이다.
다음은 엘딕이다.
전기 자전거인 이것은 늦은 봄부터 가을까지 판매되는데 상당히 수요가 늘어났다. 피크닉 문화가 되살아난 때문이다.
러시아의 내수경제가 나아지면서 소득수준이 높아졌고, 그에 따른 소비도 늘어난 결과이다.
이바노비치는 이 모든 게 현수 하나로 인한 것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막내 사위지만 아주 편하게만 대하진 않는다.
드모비치 상사의 일이 일단락되자 현수가 벌이고 있는 사업으로 화제가 전환되었다.
차얀다 가스전 개발 사업은 이미 확정된 것이다.
아울러 사할린―3과 사할린―4도 현수가 주도권을 가졌음을 안다. 발표시기만 저울질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 역시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사이기에 레드마피아는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설 원동력을 얻게 되었다.
하여 요즘은 무기밀매와 마약 등에서 손을 떼는 중이다.
현수는 올가와 나타샤의 남편에게 제안했다. 러시아 이실리프 자치령을 이끄는 쌍두마차가 되어 달라고 한 것이다.
둘은 현직 연방재판소 판사와 검사이다. 장인 덕에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심각하게 고심하는 눈치이다.
이실리프 자치구를 반분하여 다스린다는 생각에 흥분된 까닭이다. 올가와 나타샤 역시 고심한다.
모스크바를 떠나 촌구석으로 가야 하기는 하지만 가기만 하면 왕후와 같은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하는 때문이다.
현수가 이들에게 이런 제안을 한 이유는 인맥 때문이다.
둘은 러시아의 엘리트이다. 이들의 주변엔 명석한 두뇌를 지닌 인재들이 상당히 많다. 그들의 두뇌를 이용하여 이실리프 자치령을 성공적으로 개발하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이득이 있다.
첫째는 러시아 정부와의 긴밀한 유대관계 형성이다.
둘이 영입할 인사 대부분이 현직에 있거나 현직에 머물렀던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실업률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이들이 자리를 내놓으면 누군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차례로 승진하게 될 것이다. 맨 마지막의 빈자리는 직업이 없는 누군가가 채우게 될 것이다.
처음엔 그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모든 게 현수의 덕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실리프 자치령에 호감을 갖게 됨은 자치령 개발이 연착륙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마피아와 정부라는 양대 산맥 모두를 더 확실한 아군으로 만드는 결과가 야기될 것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밤늦도록 계속되었다.
이리냐와 현수는 천천히 걸어 모스크바 저택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오랜만이에요, 안톤! 타찌아나, 타날리야도 잘 있었지요?”
모스크바 저택은 지난 1월 30일에 오고 처음이다. 이곳에 온 지 벌써 한 달이 넘은 것이다.
“네, 주인님. 반가워요.”
“저도요. 좀 자주 오세요.”
하녀장 타찌아나와 요리장 타날리야의 뒤에는 이들과 닮은 아가씨들이 서 있다. 각자의 딸들이다.
현재 이 저택의 하녀와 요리사로 재직 중이다. 마가리타와 플로라는 공손히 절을 하고는 조신하게 물러난다.
아직은 낯이 설어서일 것이다.
“주인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 먹었습니다. 준비 안 해도 됩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현수는 이리냐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온 집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고 포근한 느낌이다.
“좋지?”
“네. 저 먼저 씻을게요.”
“그래, 그럼.”
이리냐가 정성들여 샤워하는 동안 현수는 러시아 정부와 맺은 조차 협정서 내용을 살폈다.
어펜시브 참 마법 때문인지 아주 공정하다. 오히려 많이 배려해 줬다는 느낌이다.
러시아 정부는 현수에게 이실리프 자치구를 조차해 줌과 동시에 군부대 일부를 이동시켰다. 혹시 있을지 모를 지나의 도발을 즉시 제압하기 위해 전진 배치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