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8
2개 기갑사단이 배치된 모고차(Могоча)에서 곧장 남하하면 북경이다. 지나로선 쉽게 도발하기 힘들게 되었다.
이것 역시 크렘린궁의 선물이라 할 수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만나면 감사의 뜻을 표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저택의 밤은 뜨거웠다. 이리냐는 혼자서 감당하기엔 현수의 체력이 너무나 강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주인님?”
“아, 네. 잠자리가 아주 편했습니다.”
안톤은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건네며 환히 웃는다.
“안톤, 비용은 부족하지 않아요?”
“아직은 괜찮습니다. 뭐 필요하신 게 있는지요?”
“커피 한 잔이면 됩니다.”
현수가 환히 웃어주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그레 미소 지으며 손짓한다.
마가리타가 준비된 커피와 쿠키를 가져다 놓는다. 주근깨가 많은 예쁜 아가씨이다. 18살쯤 되어 보인다.
“마가리타라고 했나?”
“네, 주인님!”
“여기서 잠깐 기다려.”
현수는 마가리타의 반응 기다리지 않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곤 듀 닥터 네 세트를 꺼내왔다.
“이건……?”
마가리타도 여자인지라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듀 닥터를 아는 듯한 눈치이다.
“뭔지 아니 다행이야. 하나씩 나눠서 써.”
“아, 주인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가리타의 입이 벌어진다. 좋아서 웃는 것이다.
“안톤, 이건 저택 유지비로 사용하세요.”
안톤은 현수가 건넨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가 얼른 닫는다.
100장씩 묶은 100달러짜리 지폐 뭉치 100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100만 달러를 내놓은 것이다.
“내 친구 부부가 곧 올 건데 준비는 다 되어 있나요?”
“물론입니다. 신혼여행이라 하시어 로맨틱한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꾸몄습니다. 아울러 시내 관광일정 등도 차질 없도록 준비해 두었습니다.”
주영과 은정을 위한 준비를 점검해 보니 만족스럽다.
5일간 머물 것을 예상하여 치밀하게 일정을 짜두었다. 입장료를 내야 하는 곳은 이미 다 지불된 상태이다.
주영과 은정이 단 한 푼의 지출도 없이 모스크바 곳곳을 둘러볼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심지어 관광기념품까지 구매해 뒀다.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를 관광객을 상대로한 테러를 대비하여 레드마피아가 경호를 전담할 예정이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주영 부부를 상대로 테러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편하거나 건의할 사항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좀 자주 들러주십시오. 주인님이 없으니 저택이 다소 휑한 듯합니다.”
“그래요. 알았습니다. 앞으론 자주 들르도록 하지요.”
“네, 주인님!”
안톤은 모든 것이 만족스럽기에 환히 웃고 있다.
늦게 일어난 이리냐가 깨작거리며 음식을 먹는다.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며 투정을 부린다.
현수는 피식 웃어주고는 외출 준비를 했다.
드미트리와 만나기로 한 때문이다.
“이리냐는 여기서 쉬고 있어. 몽골에 들렀다가 북한을 거쳐야 하니까.”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참, 이 통장 잘 보관하고 있어.”
“통장이요? 아, 네. 그럴게요.”
현수가 건넨 통장을 무심코 받은 이리냐는 대체 얼마나 들어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하여 표지를 넘겨보고는 눈을 크게 뜬다.
“헉! 자, 자기야! 이게 대체 얼마예요?”
이리냐는 대체 몇 자리 숫자인지를 헤아렸다.
통장에 찍힌 액수는 다음과 같다.
『444,611,000,000 RUB』
무려 4,446억 1,100만 루블이다.
한국 돈으론 16조 2,000억 원이나 된다. 이리냐로서는 상상도 못해본 엄청난 거금이다.
“자기, 이거 무슨 돈이에요?”
“내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이실리프 자치구를 조차 받은 거 알지?”
“네, 10만㎢쯤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그거 개발할 비용 중 일부야. 보관하고 있어.”
“아, 알았어요.”
이리냐는 엄청난 거금이 든 통장을 어디에 보관해야 하나 고심했다. 잘못해서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135억 달러가 들어 있는 이 통장은 현수 본인의 확인이 없으면 단 한 푼도 인출되지 않는다.
푸틴이 허술하게 통장을 개설했을 리 없지 않은가!
통장은 잃어버려도 그만이다. 언제든 재발급이 가능하다.
이건 본인이 보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아공간에 넣으면 괴도 루팡 아니라 홍길동이 달려들어도 결코 가져갈 수 없다. 다시 말해 도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리냐에게 통장을 맡긴 것엔 이유가 있다.
이곳 모스크바 저택은 이리냐가 안주인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조만간 이곳 살림 전부를 책임지게 될 것이다.
10장 고비사막을 없애는 법
저택의 규모는 대지 10,000평, 건평 2,000평이다. 3층짜리 건물이지만 현대식 건물 7층 높이이다.
지하실은 세 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하 2∼3층은 차고 및 창고 등의 용도이다.
지하 1층은 반지하로 시녀, 시종, 요리사들의 거처와 그들을 위한 편의시설 등으로 채워져 있다.
1층부터 3층 사이엔 주인이 사용하는 침실만 열 개이다.
침실 중 가장 크기가 작은 것이라도 실면적 30평 이상이다. 어젯밤 이리냐와 함께한 침실은 120평을 약간 상회한다.
여기에 화장실, 샤워실, 자쿠지가 설치된 욕실, 드레스 룸, 비품실 등 부속실 열두 개가 별도로 딸려 있다.
이것과 별도로 욕실 열두 개가 있다. 손님용이다.
이 밖에 오디토리움이 있고,식당도 세 개나 있다.
실내에 수영장이 있으며,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장서 10만 권과 러시아 서적 20만 권이 소장된 도서관도 있다.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이런 큰 집을 유지하려면 많은 돈이 든다. 따라서 이리냐는 규모 있는 생활을 해보아야 한다.
그렇기에 어마어마한 액수가 담긴 통장을 맡겼다.
보면서 통 좀 키워보라는 뜻이다. 워낙 어렵게 살아서 아끼는 것이 체질화된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에서의 안살림은 전적으로 이리냐가 담당함을 일러주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킨샤사의 저택은 연희 담당이다. 양평에 지어지는 것은 지현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공평하게 분배한 셈이다.
* * *
“잘 쉬셨어요?”
“그래, 테리나도 가족과 즐거운 시간 보냈어?”
“네. 모처럼 부모님, 그리고 동생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테리나가 만개한 장미처럼 환한 웃음을 짓는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의 하룻밤이 너무도 좋았던 때문이다.
부모님에겐 한국에서 구입해 온 각종 선물을 드렸다.
자신이 모델이었던 항온의류는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쉐리엔도 있고 듀 닥터도 준비해 왔다.
현수와 동행하여 북한을 다녀오면서 받은 보수와 이실리프 어패럴에서 받은 모델 개런티 전액을 드렸다.
총액 25만 달러. 한국 돈으로 3억 원이다. 몇 년간 돈 걱정하지 않고 풍족히 지낼 만큼 큰돈이다.
증조부로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어 궁핍하지는 않지만 테리나가 건넨 25만 달러는 부모님이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테리나에겐 남동생 둘이 있다. 23세와 24세가 된 빅토르와 세르게이이다.
형인 빅토르는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세르게이는 지질학을 전공했다.
둘 다 취업하여 직장에서 근무 중이다.
둘에겐 항온의류 이외에 최신형 핸드폰과 노트북, 그리고 MP3 등 전자기기들을 선물로 주었다.
이 밖에 제법 많은 용돈을 건네주었다.
둘 다 엄청나게 좋아한다.
부모님은 테리나가 이실리프 상사의 고문 변호사로 재직 중이라는 말에 입이 함지박만 해진다. 이실리프는 삼성이나 LG보다도 유명한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이실리프의 이미지는 진취, 성실, 고급, 으뜸이다.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도 아니건만 최상급 이미지가 생성된 것이다.
“미스터 드미트리도 좋았습니까?”
“물론입니다, 보스!”
오랜 외국 생활로 가족이 보고 싶은 차였다. 예상대로 아내와 아이들 모두 눈물까지 흘리며 좋아했다.
부모님에겐 북한에서 동생 표도르를 만난 이야기를 전해 드렸다. 두 아들이 외지에 나가 있어 늘 근심만 가득하던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드미트리 역시 준비해 온 선물 보따리를 풀어 가족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보스, 탑승하시지요.”
“그래요.”
스테판 기장의 안내를 받아 자가용 제트기에 올랐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테리나와 드미트리는 반대편에 앉았다.
음료수를 서빙하던 스테파니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보스에게 아내가 셋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분명 테리나는 아내가 아니다. 그런데 어찌 대해야 할지 고심된다. 이상한 기분이 느껴진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행기는 곧장 울란바토르로 향한다. 착륙할 곳은 칭기즈칸 공항이다.
가는 동안 테리나로 하여금 러시아와 맺은 조차협정서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했다. 흠결이 없다고 한다. 현수가 생각했던 대로 많은 배려가 곳곳에서 느껴진다고 한다.
다음에 보여준 것은 몽골 정부와 맺게 될 조차협정서의 내용이다. 테리나는 이번에도 면밀하게 살폈다.
조금만 내용이 변경되어도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손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곧바로 사인해도 된다는 결정을 내린다.
러시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제법상 양쪽의 사인 즉시 효력이 나타나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조인을 무효화할 수 없음이 확인된 것이다.
두 경우 중 다른 점은 러시아는 조차 기간이 150년이고, 몽골은 200년이라는 것이다.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1. 조차지의 치외법권을 인정한다.
2. 조차지에서 채굴되는 지하자원의 소유권은 이실리프 그룹에 있다.
3. 조차지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 중 최고 50%까지는 각국 정부에서 요구하는 양만큼 우선 납품해야 한다. 이때 납품가는 국제 곡물가, 또는 축산물 평균가격에 준한다.
4. 조차지 개발에 러시아 및 몽골 국민을 고용할 수 있다.
5. 조차의 대가로 황금 500톤을 10년 분할로 납부한다.
각국 영토 내에 있지만 어느 정부도 이실리프 자치구에서의 일을 간섭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어마어마한 자원 부국이다. 그래서 이실리프 자치구에서 지하자원 개발을 감추려 마음먹으면 발견할 수 없으므로 흔쾌히 양보해 준 것이다.
각국 정부에 우선 공급하는 양도 원래는 수확량의 절반이었으나 덜 공급해도 된다는 뜻이다.
특히 몽골의 경우는 50%를 납품 받을 경우 처치 곤란 상태가 된다. 인구가 적기 때문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실리프 그룹의 김현수입니다.”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현수가 먼저 깍듯이 예를 갖추자 몽골 대통령 역시 정중히 고개 숙여 맞이한다.
“어서 오십시오. 몽골 대통령 차히야 엘벡도르지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을 만나는군요. 반갑습니다.”
아이큐와 수학 난제에 관한 이야기인 듯싶다.
“하하! 네. 이쪽은 제 고문 변호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예카테리나 일리치 브레즈네프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이번에도 정중히 예를 갖춘다.
“대통령님께서 제 모교 선배님이시라 들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하버드를……?”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 전에 테리나가 먼저 고개를 끄덕이며 환히 웃는다.
“네, 로스쿨 출신입니다. 대통령님께서는 공공관리학 석사라 들었습니다.”
“하하! 네, 반갑습니다. 자자, 자리에 앉읍시다.”
엘벡도르지 대통령의 안내에 따라 착석하니 비서가 차를 내온다. 대통령 비서실장인 폰착 차강(Puntsag Tsagaan)은 말없이 다이어리를 펼쳐 놓고 메모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