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24화 (823/1,307)

# 824

최 대좌의 집에서는 밥을 먹을 상황이 아니다. 하여 현수는 백화원 초대소로 되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객실로 올라가자 테리나가 쫑알거린다.

“잘하셨어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간식을 주지 않으면 안 준 것만 못한 거예요.”

아이들 입맛만 버려놓았다는 뜻이다.

“지속적으로 주면 되지. 근데 기분 괜찮아?”

“네.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데 부탁할 게 하나 있어요.”

“그래? 뭔데?”

웬만하면 들어줄 마음으로 물은 것이다.

“제가 부탁하면 들어주실 건가요?”

“웬만하면… 아니, 안 되는 것 빼면 다 들어줄게.”

말을 바꾼 이유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고, 안 되는 것은 테리나를 아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테리나 역시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잇는다.

“좋아요. 그럼 앞으론 자기라고 부르게 해주세요.”

“……!”

속내가 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 결혼 안 할 거예요. 그래도 마음속의 연인 하나쯤은 있어야 견뎌내지 않겠어요? 앞으로 50년 이상 살 건데.”

현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쉽게 대답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을 열지 않을 수는 없다. 가타부타 대답하라는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알았어. 뜻대로 해.”

“고마워요. 호호!”

언제 침울했냐는 듯 환히 웃는다.

13장 마음대로 하시라요!

“자기야, 나 놀고 싶어요.”

“뭐?”

“자기랑 놀고 싶다구요.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밖으로 나가요.”

“테리나, 여긴 남한이나 러시아가 아니야.”

밖에 나가 봤자 서울이나 모스크바처럼 유흥을 즐길 만한 곳이 없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알아요. 그래도 자기랑 걷고 싶어요.”

“걷는 거? 그거라면…….”

테리나는 현수와 다정스런 연인처럼 걷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누가 봐도 연인 사이라 여기게 하려는 목적이다.

둘은 백화원 초대소 주변을 천천히 거닐었다. 테리나는 연신 ‘자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는 팔짱을 끼었다.

빼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가혹하다 여긴 것이다.

“어서 오시라요.”

“네, 결정하셨습니까?”

“김현수 동지의 뜻대로 이실리프 기계공업단지를 신설하는 걸 승인하기로 했습네다.”

“아! 그런가요?”

“앞으로 잘 해보십세다.”

김정은이 활짝 웃자 인민무력부장 등도 환히 웃는다.

이런 결정을 하리라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절대충성 마법을 걸어놨으니 애초에 준 약정서보다도 진일보한 것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현수에게 유리한 내용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북한은 이제 현수의 통치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느 날 갑자기 수뇌부 전체가 숙청되거나 쿠데타로 목숨을 잃지 않는 한 현수의 뜻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내키지 않지만 이런 수를 둔 이유는 사업의 연속성 유지 때문이다. 앞으로 하려는 일은 개인의 이익만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경제는 남한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다.

남한에선 둘이 하나가 되는 통일을 바라지만 엄청난 액수의 통일 비용이 요구된다.

둘의 격차가 적으면 적을수록 이 비용은 급감한다. 따라서 북한의 경제상황은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수뇌부에서 계속 딴죽9) 걸거나 자신들의 이익만을 도모하려 한다면 진행이 더뎌질 수 있다. 그렇기에 지극히 우호적이지만 절대충성 마법까지 시전한 것이다.

아무튼 대외적인 이목이 있기에 현수는 환히 웃으며 김정은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어쩌면 역사적인 일이 될지 모른다면서 비디오카메라로 녹화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협정서는 저희가 준비할까요?”

“아닙네다. 공화국에서 다 준비했습네다. 예쁜 변호사 동무에게 검토시키시라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검토하는 동안 우리끼리 술이나 한잔하시디요.”

“그럼 그럴까요?”

환히 웃으며 자리를 바꿨다. 테리나는 바로 옆방에서 수정된 협정서의 내용을 살피기로 했다.

자리를 옮긴 곳엔 비디오카메라 없이 수뇌부들만 배석했다. 현수가 원하는 상황이다.

“제가 알기로 공화국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지나 자본이 많이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으음, 기렇티요.”

“저는 공화국이 지나에 의해…….”

잠시 현수의 말이 이어졌다.

대동강 주변에 풍부하게 매장된 규사를 사용해 하루 300t의 유리를 생산하는 대안친선유리공장은 지나와의 합작이다.

퉁화철강그룹, 옌볜톈츠철강그룹, 중강그룹은 50년간 무산광산 개발권을 따내서 매년 1,000만t의 철광석을 지나의 제강소로 옮기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평안북도 벽동군 동주리와 압록강을 사이에 둔 지역의 목재를 1만 2,000㎥나 가지고 갔다.

라진항은 지나가 50년간 독점 사용하는 조차지가 되어버렸고, 돈이 급해진 최근엔 지하자원의 무분별한 유출이 가속화되어 가는 중이다.

예를 들어, 2012년에 북한은 2,580만t의 석탄을 생산하여 45.7%를 지나에 수출했다.

우리 민족이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고,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지하자원이 북한의 경제난 때문에 헐값에 처분되는 중이다.

현재 북한에 진출한 외국기업 중 50% 가까이가 지나 기업이다. 지나 자본에 의해 점령당하는 중이다.

어찌 보면 경제적 동북공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냄새나는 되놈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 수는 없다.

하여 몇 가지 당부를 했다. 물론 듣는 이들에겐 지시로 들릴 것이다.

현수가 언급한 것은 다음과 같다.

1. 향후 어떠한 형태로든 지나의 새로운 자본이 공화국에 유입되는 것을 차단한다.

2. 지나의 기업과 협력하여 진행 중인 모든 사업은 최대한 축소 내지는 점진적으로 폐지하기로 한다.

3. 기존에 지나와 맺은 협약 중 어떠한 것도 기한 연장을 해주지 않는다.

경제난에 처한 북한 입장에서 보면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는 뜻으로 들릴 것이다.

하여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여러 가지를 제시했다.

그중 하나가 시베리아 횡단철도와의 연결 사업을 대비한 열차 제조 및 철로 수정이다.

한국과 유럽은 표준궤10)이다. 북한 지역은 협궤이고, 시베리아 노선은 광궤이다.

협궤는 곡선 주행에선 유리하지만 속도가 높아질수록 차량의 진동과 동요가 크기 때문에 고속 주행 시 차량이 불안정해지는 단점이 있다.

광궤의 경우는 안정적인 주행과 고속에서도 큰 문제가 없는 것이 장점이지만 곡선부 통과에 제한을 받는다.

모두를 하나로 통일하면 좋겠지만 시간과 자본이 많이 든다. 하여 협궤를 표준궤로 바꾸도록 하였다. 적어도 남북한 내에서는 환적 없이 유통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실리프 자치구에서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하면 엄청난 수량의 곡물과 축산물 등을 수송해야 한다.

따라서 많은 열차가 필요하다. 승객 수송용도 있어야 하고 화물용도 있어야 한다.

화물용은 곡물용뿐만 아니라 신선도 유지가 생명인 축산물용과 과수용도 있어야 한다.

이외에 이실리프 유화에서 생산될 유류 수송용도 있어야 하며, 일반 화물도 취급해야 한다. 모두 수량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상당히 많은 열차를 제조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웬만한 도로공사 못지않은 고용 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실리프 기계공업단지는 설계를 마치는 즉시 공사를 개시하기로 했다.

이것 역시 상당히 많은 인력을 고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기에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게 될 것이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현수의 목표는 2만 개에 달하는 자동차 부품 가운데 절반 이상을 북한에서 생산해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1만 종 이상 생산할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북한에 없는 자재는 남한에서 수송해 오면 될 것이다.

부족한 식량은 개량된 종자를 제공하고, 연료는 펠릿보일러 조기 제공으로 해결할 계획이다.

김정은 등은 고개를 끄덕이며 현수의 말을 귀담아듣는다. 반드시 지켜야 할 지상명령이 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협정서의 내용이 일부 수정되었는데 우리 쪽이 조금 더 유리합니다. 이대로 사인하셔도 될 거예요.”

가까이 다가온 테리나가 귓속말로 속삭인다.

“그래? 수고했어.”

“수고는요. 다 자기를 위한 일인걸요.”

언제 그렇게 슬프게 울었느냐는 듯 방긋 웃는데 그 모습이 아주 예쁘다. 이때 최철 대좌가 다가온다.

“김 사장님, 준비 다 되었답네다. 가시디요.”

“아, 그래요? 그럽시다.”

앞장서서 걷는 최 대좌의 걸음이 위풍당당하다.

내 바로 뒤에 위대한 분이 오신다! 모두 비켜라!

마치 이런 분위기를 내고 싶었는지 구두 뒤축 닿는 소리가 규칙적이며 당당하다.

이런 기분을 알았는지 복도에 있던 사람들이 뒤로 물러선다. 하긴 오늘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의 행차이다. 당연히 비켜서야 할 일이다.

최철 대좌의 안내를 받아 간 곳은 대연회장이다.

외국의 대통령 등 국빈이 방문할 때 사용하는 곳인지라 뉴스에서 여러 번 본 대형 걸개그림이 눈에 뜨인다.

뉴스를 위한 조선중앙TV의 로고가 선명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단상엔 여러 개의 마이크가 있는데, 그중엔 조선중앙방송의 마이크도 보인다.

TV와 라디오 모두 보도할 모양이다.

“어서 오시라요! 여기 앉으시디요.”

“네, 감사합니다.”

김정은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곤 곁에 앉았다.

“에, 그럼 디금부터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면 일대에 설립할 이실리프 기계공업단지 설립에 관한 협정식을 거행토록 하갔습네다. 이 사업은…….”

잠시 사회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계공업단지가 신설되는데 남조선 사업가 김현수가 기술과 자본을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할 예정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도록 사전에 부탁한 때문이다. 아무튼 사회자에게 향해 있던 카메라가 현수와 김정은에게 향한다.

“두 분께서는 앞에 놓인 협정서에 사인해 주십시오.”

화면이 클로즈업되는 가운데 사인을 했다.

그리곤 상대방에게 건네며 악수를 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듯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협정이다.

“앞으로 잘해보십세다. 적극적으로 밀어드리갔습네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환히 웃으며 악수하는 둘의 모습이 또 클로즈업되었다.

잠시 후, 조선중앙TV는 정규방송을 중단했다.

대신 이실리프 그룹과 체결한 이실리프 기계공업단지 조성에 관한 뉴스를 내보냈다.

언제 준비했는지 앞으로의 전망까지 나온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용단을 내리시어…….”

북한 특유의 억양으로 보도된 내용을 듣는 북한 주민들은 상기된 표정이다.

남한 기업에서 일을 하게 되면 보수도 쏠쏠할 뿐만 아니라 초코파이 같은 것도 먹을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그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화면에 눈과 귀를 집중하고 있다.

북한이 예상한 공장 수는 1,000개이다.

공장 하나당 10개 이상의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게 된다.

각각의 공장마다 1,000명씩만 채용해도 100만 명이나 된다.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혹자는 이만한 인원이 필요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의 근로자 평균 월수입은 2만 4,000원 정도이다. 반면 2013년 8월 현재 남한의 모 자동차 회사 노조원의 평균 임금은 9,400만 원이나 된다.

월 783만 3,000원씩 받는 셈이다.

이를 계산해 보면 남한 근로자 한 명에게 줄 월급은 북한 근로자 326명이 한 달간 버는 돈을 합친 금액이다.

따라서 북한 근로자 100만 명은 남한 근로자 3,067명을 고용하여 월급을 지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참고로 평균연봉이 9,400만 원에 달하는 남한의 자동차 회사의 노조원 수는 47,000여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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