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9
현수가 앞에 서자 이것을 펼쳐 들고는 내용을 읽는다.
“감사장! 한국 사회인축구 오리지날팀은 김현수님의 도움을 얻어 일본 사회인축구 우승팀과의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이 감사장을 드립니다. 오리지날팀 양영만 감독 이하 선수 11명.”
다 읽고는 감사장을 건넨다. 기꺼운 마음으로 받았다.
“다음은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상품 증정이 있겠습니다.”
“또 있는 겁니까?”
“맨입으론 안 되는 거잖아요. 하하!”
말을 마친 양 감독이 곁에 있는 가방에서 포장된 큼지막한 박스를 꺼낸다.
“약소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담은 겁니다. 받으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박스를 받아 포장지를 찢어내니 투명 아크릴로 만든 얇은 상자가 드러난다. 안에는 오리지날팀 선수복 상의가 고정되어 있다. 등 번호는 10번이고 김현수라 쓰여 있다.
10번은 스트라이커에게 주는 번호이다.
현수의 이름 아래에는 오리지날 팀원들의 마음을 담은 글귀가 쓰여 있다. 모두가 고맙다는 뜻이다.
“감사합니다. 잘 보관하겠습니다.”
“네, 이제 김현수 사장님은 우리 오리지날팀 명예 팀원입니다. 저희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하하하!”
기꺼운 웃음소리가 라커룸에 울려 퍼졌다.
“참, 이 메달은 이영식 씨에게 전해주십시오. 제 친구 때문에 다리를 다쳐 이번 대회에 참석조차 못했잖습니까.”
현수가 건넨 것은 이번 시합 우승 메달이다.
“이건……!”
어떻게 이런 걸 주느냐는 표정이다. 돈으로 따져도 제법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그런 모양이다.
“제겐 MVP 메달이 있잖습니까.”
“아! 감사합니다. 잘 보관했다가 귀국하는 대로 영식이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좋아할 겁니다.”
양 감독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환히 웃는다. 현수의 마음씀씀이가 좋았던 것이다.
“영식 씨야말로 오리지날팀의 오리지널 멤버니까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참, 잠시 후 인터뷰가 있다고 합니다. 샤워부터 하십시오.”
“네.”
선수들 모두 샤워들 마치고 나와 한일 양국 취재진 앞에 섰다. 당연히 현수에게 질문이 쇄도했다.
현수는 묻는 말에 잘 대답해 줬다. 그러는 내내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있었다. 이제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된 것이다.
“휴우! 이제 끝이네. 오늘 어땠어? 괜찮았어?”
“오늘 정말 멋졌어요. 자기, 최고였어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현이 팔짱을 끼며 환히 웃는다.
“하하, 그래? 그나저나 기다리라고 했는데 어디 있지?”
지현과 함께 관중석으로 올라온 현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있어야 할 여인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누구 만나기로 했어요?”
“응. 영국에 여행 갔다가 강도를 만난 여인을 구해준 적이 있는데 할 말이 있다고 해서.”
“그 여자 예뻐요?”
지현의 표정을 본 현수는 슬쩍 장난기가 돋는다.
“응. 많이 예뻐. 이거 진심이야.”
“……!”
지현은 대꾸 대신 현수를 슬쩍 바라본다. 진짜냐는 표정이다. 이때 관중석으로 올라서는 인영이 있다.
“아! 김현수 상, 여기 계셨군요.”
“네, 어디 다녀오셨나 봐요?”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오셔서 혹시 잊으셨나 해서 한국팀이 쓰던 라커룸에 다녀왔어요.”
“아, 미안해요. 동료들과 잠시 할 일이 있었습니다.”
오래 기다리게 했으니 계면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참, 이쪽은 제 아내입니다.”
“권지현이에요.”
지현의 일본어가 제법 능숙하다.
“반가워요. 저는 사사키 노조미라고 해요.”
“네? 사사키 노조미 씨요?”
“네, 사사키 노조미 맞습니다.”
지현이 다시 이름을 확인할 때 현수가 끼어들었다.
“다시 뵈니 다행입니다. 그때 그분 괜찮으시죠?”
“네, 덕분에 아주 건강히 잘 지내고 있으므니다. 시간 되시면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스므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별일도 아닌데요.”
“어머! 아니에요. 그때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스므니다. 병원에서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났을 거라고 했거든요.”
사사키 노조미는 그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도 끔찍하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짓는다.
“아! 그랬나요?”
현수의 기억으론 후두부의 상처가 컸을 뿐 뇌출혈은 없었다. 하여 연희의 손수건을 찢어 상처 부위를 묶어주었다. 보는 눈이 둘이나 있어 힐 마법을 펼칠 수 없어서였다.
“노인수 씨를 대신해서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려요.”
“노… 인수 씨요? 그때 그 사람 한국인이었나요?”
“재일교포 3세예요. ‘리브21’이란 기업을 일으킨 노 사장님의 막내아들이죠.”
“아! 그래요?”
현수의 뇌리로 인터넷에서 보았던 기사 내용이 검색된다.
리브21은 일본 최초로 ‘모발 관리 클리닉’이란 개념으로 시작된 기업이다.
1976년 1호점을 시작으로 현재 120여 개 직영점이 성업 중이다. 연매출 1조 2,000억에 달하는 일본 최대 모발관리 기업으로 종업원 수만 2,600여 명이라 한다.
현수가 뭐라 말을 이으려 할 때 곁에 있던 지현이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끼어든다.
“저… 혹시 신의 물방울이란 드라마에서 세라 역을 맡으신 그 사사키 노조미 씨가 맞는가요?”
“어머! 절 아세요? 그거 종영된 지 오래되었는데.”
사사키 노조미는 모처럼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 반갑다는 표정이다.
“맞는군요. 그거 참 재미있게 봤어요.”
“아! 그래요? 와인 좋아하시나 봐요?”
“네? 아, 네.”
지현이 신의 물방울이란 일본 드라마를 본 이유는 권철현 당시 지검장 때문이다.
그때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던 때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있던 시절인지라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에 똑 부러지던 아내가 일곱 살짜리 지능을 갖게 되었다는데 멀쩡할 남편이 어디에 있겠는가!
최고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권철현에겐 어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한 시기였을 것이다.
하여 날마다 술을 마시고 귀가했다. 지현은 이를 몹시 걱정스러워했다. 이러다 건강을 잃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와인의 장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항산화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신진대사가 원활하도록 도움 주고 지방을 분해해 주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식욕을 돋워준다. 당시의 권철현 지검장은 아내 걱정 때문에 나날이 살이 빠지던 중이다.
내친김에 조금 더 알아보니 이뇨작용에 도움을 주며, 적당량을 섭취한 경우 노화억제 효과까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종류가 너무나 많다.
지현이 와인에 관해 어찌 학습할 것인지 고심할 때 친구가 신의 물방울이란 일본 만화를 권했다.
와인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하여 만화책 대신 드라마를 보았다. 퇴근 후 매일 한 편씩 감상하면서 와인에 대한 지식을 키운 것이다.
사사키 노조미는 1회부터 출연했다. 주인공 중 하나인 토미네 잇세이의 배다른 여동생 역이다.
그때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기에 기억에 남은 듯하다.
“반가워요. 저도 권지현 씨 알아요. 뉴스에서 보았어요. 정말 아름다우세요.”
“네? 아, 네. 사사키 노조미 씨도 참 예뻐요.”
“정말요? 호호, 고마워요. 참, 이거요.”
사사키 노조미가 핸드백에서 자그마한 상자를 꺼내 현수에게 건넨다.
“이게… 뭡니까?”
“그때 손수건을 찢어서 붕대처럼 쓰셨잖아요. 최대한 비슷한 걸로 골랐어요.”
“아! 네.”
현수는 거절치 않고 받아 챙겼다. 이걸 사려고 준비했을 마음을 생각해서이다.
“바쁘시지만 식사라도 같이 했으면 해요.”
“…좋습니다. 그러죠.”
“아! 다행이에요.”
사사키 노조미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곤 뒤에 서 있는 사내에게 뭐라 소곤댄다. 로드매니저인 듯싶다.
경기장 밖으로 나가자 사사키 노조미가 준비한 차가 서 있다. 11인승 스타크래프트 밴이다.
“저희가 모실게요.”
“…그래요. 타지.”
“네.”
지현과 현수가 타자 사사키 노조미가 승차한다.
이 차를 중심으로 까만 차 일곱 대가 전후좌우를 경호하며 이동했다. 토탈가드 소속 경호원 24명과 사사키 노조미의 개인 경호원들이 탄 차이다.
목적지는 신주쿠에 있는 조조엔이다. 고급 불고기점의 대명사로 한국인 박태도 사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조조엔 신주쿠점은 8층짜리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 전체가 식당으로 운영되는 중이다.
긴자(銀座)에는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지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두 개를 받은 한식당 ‘윤가(尹家)’라는 곳이 있다.
‘2014년 미슐랭 가이드 도쿄’에 소개된 곳이다.
원래는 이곳으로 가려 했다.
뛰어난 음식 맛과 정성에 비해 저렴한 가격이기에 북적이기는 하지만 적자인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통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현수와 지현은 까다롭게 음식을 가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아무 곳이나 괜찮다고 하자 전화 통화 몇 번 하고는 조조엔을 목적지로 삼은 것이다.
동경은 처음이라고 하자 가는 동안 이곳저곳 소개하고 설명해 줬다. 현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잘 들어두었다.
이곳에 올 일이 많을 듯하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노인수입니다. 영국에서 큰 도움을 주셨는데 제대로 된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김현수입니다.”
말끔한 정장 차림의 노인수는 선한 눈빛을 지닌 잘생긴 청년이다.
“이렇게 멀쩡한 모습을 보니 다행입니다. 상처는 잘 치료되었지요?”
“덕분에 무사합니다.”
“이쪽은 제 아내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권지현입니다.”
“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노인수입니다.”
지현에게 정중히 고개 숙여 예를 갖춘 인수가 손짓한다.
“자, 예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드시지요.”
“그러시죠.”
노인수의 안내를 받아 조조엔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오르니 토끼 모양의 장식물이 계단마다 놓여 있다.
인상적이다.
“참, 오늘 경기 잘 봤습니다. 축구를 정말 잘하시더군요. 제가 본 축구선수 중 최고이십니다.”
“에구, 과찬이십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농담 아니고 진짜 최고였습니다. 7 : 0이라니요. 사회인축구 시합이지만 그런 스코어는 어렵잖습니까. 그치? 사사키도 축구 좋아해서 잘 알잖아.”
“그럼요! 오늘 정말 멋지셨어요. 사포 같은 건 실전에서 쓰기 어려운 기술인데 너무도 자연스러웠어요. 대단하셔요.”
“에구, 그게 뭐 대단하다고.”
현수는 겸양 어린 대꾸였지만 축구선수들이 들으면 화를 낼 만한 말이다.
실전에서 사용되는 사포는 대단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계단을 딛고 올라 룸으로 안내되었다.
일행이 안으로 들어단 뒤 현수가 경호팀장에게 다가간다.
“현 팀장님, 나가지 마시고 팀원들과 함께 식사하세요.”
“아, 아닙니다. 저흰 바깥에 나가…….”
토탈가드 제7팀장인 현인구는 조조엔이 어떤 곳인지 안다.
물가 비싸기로 이름난 도쿄에서도 만만치 않게 비싼 집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한 끼 식사에 일인당 8,000엔은 있어야 한다.
이번 일본행을 위해 24명의 경호원이 출동했다. 그들 모두 이곳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식대만 19만 2,000엔이다.
한국 돈으로 치면 192만 원쯤 된다.
한 끼 식대치고는 너무 과하다. 그렇기에 얼른 손사래를 치며 물러선다. 이때 현수가 소매를 잡는다.
“아니에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저희가 식사라도 한번 대접해야지요.”
“……!”
현 팀장이 대꾸하지 않자 말을 이었다.
“저 돈 많은 거 아시죠? 비용 걱정 마시고 마음 편하게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드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