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30화 (829/1,307)

# 830

“그래도 어떻게……?”

너무 과한 금액이 지출될 것이기에 저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부담스러운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에 가면 제 소유의 노천금광이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시죠? 금덩이를 막 줍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드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 팀장이 진심을 담아 정중히 고개 숙인다.

잠시 후, 경호원들은 룸의 좌우와 바깥쪽 테이블, 그리고 위아래 층 출입구 근처에 자리를 잡도록 했다.

맛있는 걸 사준다니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는 하겠지만 본연의 임무는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3장 이주를 권합니다

“자, 이쪽으로 앉으시죠.”

노인수가 안내한 자리는 당연히 지현의 옆 좌석이다. 둘씩 커플을 이뤄 마주 앉은 것이다.

“부인이 정말 미인이십니다.”

“네? 아, 네, 감사합니다.”

아내가 예쁘다고 칭찬하는데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두 분은 어떤 사이신지요?”

“사사키와 전 재일교포 3세입니다. 미래를 함께하고 싶어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지요.”

“아! 그렇습니까?”

현수는 새삼스런 눈으로 사사키 노조미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일본인 치고는 큰 키라 생각했다. 168㎝ 정도 된다.

그런데 재일교포 3세라 하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종자가 다르니 큰 키가 이해된 것이다.

이때 지현이 끼어든다.

“그럼 할아버님들 고향이 우리나라겠군요.”

“네, 제 할아버지의 고향은 공주이고, 사사키의 조부는 평택이 고향이라고 했습니다.”

사사키 노조미는 맞는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멀고 먼 영국에서 도움을 드릴 수 있었던 게 참으로 다행입니다.”

강도당하는 사람을 구해준 것이지만 왜놈이 아닌 교포라 하니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네, 그땐 정말 고마웠습니다.”

노인수와 사사키 노조미가 다시 한 번 정중히 고개 숙여 예를 갖춘다.

“그나저나 아버님이 참 대단하십니다. 적수공권으로 리브21이라는 기업을 일으키셨으니 말입니다.”

현수의 말에 노인수가 뒷머리를 긁적인다.

“에구, 자본금 5조 400억짜리 은행장께 이런 말씀을 들으니 참으로 난감합니다.”

“맞아요. 이실리프 상사, 이실리프 무역상사, 이실리프 모터스, 이실리프 어패럴 등 그야말로 쟁쟁한 기업들을 가지셨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리브21은 큰 것도 아니에요.”

사사키는 한국어가 조금 어눌하다. 어머니가 일본인인데 한국말 배우는 걸 말렸던 때문이라 한다.

“참, 우리 둘 다 일본어 잘해요. 그러니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죄송합니다. 한국어 공부, 조금 더 열심히 하겠어요.”

사사키가 고개를 숙이며 민망해한다.

“아무튼 이렇게 모시고 식사하게 되어 좋습니다. 먼저 맥주부터 한잔하시지요.”

“네, 좋습니다.”

노인수가 지현과 현수, 그리고 사사키의 잔을 채웠다. 현수는 노인수의 잔을 채워주었다.

“자,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고 고맙습니다. 김현수 사장님의 앞날이 더욱 번창하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노인수의 건배 제의에 기꺼이 응했다.

잔을 기울여 맥주를 마시려는데 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잠깐만요.”

“네?”

현수의 말에 잔을 비우려던 셋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빈 캔을 들어 바닥을 살폈다.

B/3251이라 쓰여 있다.

아사히 맥주는 일본 내에 여덟 개의 공장이 있다.

원전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에서 생산되는 것은 H/****로 표기되고, 이바라키 것은 B/****로 표시된다.

후쿠시마와 인접한 이바라키는 방사능의 영향을 비교적 강하게 받는 곳이다.

2013년 7월, 일본 문부과학성은 방사성 물질 데이터를 발표한 바 있다.

후쿠시마 379M 베크렐, 이바라키 11.4M 베크렐, 그리고 도쿄 신주쿠 6.6M 베크렐이다.

현수가 느끼기에 조금 전의 위화감은 맥주가 방사능에 오염된 듯하기 때문이다.

“저, 이 맥주는 안 마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그건… 왜죠?”

“이건 방사능의 영향을 받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사히 맥주 이바라키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네? 그, 그런 겁니까?”

“맞습니다. 근데 좀 이상해요. 제가 알기로 후쿠시마와 이바라키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동북부 지역에서 자체 소진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이게 어떻게 도쿄까지 들어왔을까요?”

노인수는 대꾸 대신 캔을 들어 바닥을 살핀다.

하지만 현수 같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에 대체 뭘 보고 이런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자기가 그렇다면 그런 거죠. 그럼 다른 걸로 바꾸죠.”

지현의 말이다.

잠시 후 다른 맥주가 들어왔다. 이번엔 별다른 느낌이 오지 않기에 다시 잔을 채웠고 단숨에 비웠다.

“그나저나 방사능 때문에 걱정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나도 모르게 방심할 때가 많아 골치가 아픕니다. 그 순간에 피폭될 우려가 있으니 말입니다.”

“…….”

노인수의 말에 사사키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배우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행복을 만끽하며 무병장수하길 바라지만 도쿄를 떠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나라에서 수입한 생수를 마시지만 야채와 육류 및 어패류 등은 구입할 때마다 방사능 수치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하는 피곤한 삶을 사는 중이다.

그렇기에 노인수의 말에 동감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점점 더 방사능 농도가 심해질 거라 하는데 혹시 이주해 볼 생각은 없으십니까?”

“맞아요. 도쿄도 방사능으로부터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어요.”

지현이 끼어들자 노인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혹시… 이실리프 자치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노인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네, 콩고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러시아, 몽골 중 원하는 곳이 있다면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많군요.”

노인수는 의미 모를 대꾸를 해놓고는 잠시 고심하는 표정을 짓는다. 일본을 떠나 부친이 일군 리브21을 전파시킬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럼에도 많이 망설여지는 모양이다.

하긴 나서 자란 곳이 이곳이니 그럴 것이다. 사사키의 경우는 직업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당연히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이쯤해서 당근을 던져주어야 한다.

“재일교포들이 이실리프 자치구로의 이주를 원할 경우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허용할 생각입니다. 오시면 직업과 주거할 곳이 주어질 겁니다.”

“으음.”

둘은 대꾸 대신 낮은 침음을 낸다.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도 그랬지만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 점점 더 노골화되어 가고 있다.

갈 곳만 있다면 옮기고 싶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우선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옮겨 가서 현재와 같은 벌이가 있기 쉽지 않다. 특별한 기술이 있고 이를 인정받을 수만 있으면 괜찮은데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다.

현수가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이유가 있다.

한국과 일본은 현재 독도와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 때문에 대립하는 중이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의식이 박혀 있는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감정이 결코 좋지 못하다.

하여 친일 청산 문제 등이 사회적 이슈이다.

언젠가는 일본과 크게 한번 붙을 것이라 예상된다.

지금은 친일파들이 득세하여 권력을 잡고 있지만 정권이 교체되고 나면 분명히 대대적인 친일파 숙청작업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게 순리이고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때 더 이상 일본의 오만방자함을 좌시하지 말자는 의견이 크게 대두될 것이다.

우리가 참으려 해도 일본이 계속해서 자극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여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벌어질 확률이 있다.

그때가 되었을 때 발생될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 나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현재의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상당한 양의 부품과 소재를 수입하고 있다. 상당 부분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일무역은 거의 항상 적자였다.

늘 수출은 적고 수입만 많은 상태가 유지된 것이다.

만일 둘 사이에 본격적인 분쟁이 발생되면 수출입은 전면 중단된다. 그러면 서로 타격을 받게 된다.

어떤 학자의 의견에 의하면 일본보다 한국이 입을 피해가 크다고 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데 부품과 소재 없는 제품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각종 부품 및 소재 전부를 직접 생산해 내기 위한 이실리프 기계공업단지 조성이 준비되고 있다.

이는 북한의 낙후된 경제를 끌어올리고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대폭 낮추는 것이니 일석이조가 된다. 또한 값싼 인력이 동원되기에 부품 및 소재의 가격 인하를 기대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자동차 등의 가격을 낮출 수 있게 되면 수출 경쟁력이 상승되는 부가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제 문제는 사람이다.

2009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일본엔 시민권자 26만 168명, 영주권자 53만 1,758명, 일반 체류자 12만 1,729 명이 있다. 합계 91만 2,655명으로 조총련3)계를 제외한 숫자이다.

이들까지 모두 포함시키면 약 180만 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일 간에 본격적인 분쟁 내지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이들에 대한 박해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1923년 9월 1일, 지금의 도쿄를 포함한 관동지방에 진도 7.9짜리 대지진이 일어났다.

엄청난 피해가 발생되자 일본 정부는 민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조선인들이 혼란을 틈타 폭동을 준비 중이다.

조선인들이 의도적으로 방화를 해서 피해가 더 커졌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어서 사망자가 더 늘었다.

이런 근거 없는 소문이 번지자 분노한 민중들은 조선인 학살을 시작했다.

일반 민중뿐만 아니라 경찰과 자경단까지 나섰다. 이때 약 2만 3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일 전쟁이 벌어지면 거의 즉각적으로 재일교포에 대한 박해 내지는 학살 사건이 벌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

일본인의 민족성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재일교포의 숫자를 확실하게 줄여놓는 것이 좋다.

그런데 이들이 한국으로 옮겨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재일교포는 3세가 주류이다. 이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리고 일본 문물만을 접한 경우가 많다. 당연히 문화적 충돌이 자주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이 아닌 몽골의 이실리프 자치구 같은 곳으로 이주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필요한 인원을 충족시킴과 동시에 미래에 도래할지 모를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노인수와 사사키가 대답 대신 표정을 굳히고 있자 현수가 한마디 더했다.

“이실리프 자치구들의 공통점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 완벽하게 보존된 청정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방사능이 유전자를 변형시킨다는 거 잘 알고 계시죠?”

일본인만큼 방사능에 대해 잘 아는 국민은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알게 된 일이다.

방사능은 급격한 진화를 촉진한다. 하여 태어나게 될 아기들이 지금의 인류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기존 인류 입장에선 재앙이다.

아가미가 달린 아기, 꼬리가 있는 아기, 머리가 둘 달린 아기 등을 어찌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두 분이 나서서 이주를 권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아주 은밀해야겠지요.”

“…네, 알겠습니다.”

노인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청정 지역에서의 삶을 떠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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