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33화 (832/1,307)

# 833

“지나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어제 침몰한 어선 수는 712척이며 승선해 있던 선원의 수는 9,256명입니다. 척당 13명의 선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인양된 시신 수는 얼마나 됩니까?”

“약 7,000구의 시신을 인양했으며 현재도 작업 중에 있습니다.”

“그렇군요. 생존자 발견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합니까?”

“침몰 사고가 난 지 오래되었고 수온이 낮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화면이 다시 데스크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상당히 많은 인원이 목숨을 잃었군요.”

“네, 그렇습니다.”

“다음은 전남 신안군 가거도 해역에 나가 있는 기자를 연결해 보겠습니다. 이곳 역시 어제 지나의 불법조업 어선이 침몰된 사고가 벌어진 곳입니다.”

“현장에 최종만 기자 나오세요.”

화면이 또 바뀐다. 이번에도 기자는 구조선 위에 승선해 있는 듯하다.

“네, 여기는 전남 신안군 가거도 인근 사고해역입니다.”

“사고내용을 보도해 주시죠.”

“네, 어제 오전 이곳 가거도 해역에선 불법조업을 하던 지나 어선 438척이 침몰되는 사고가 빚어졌습니다. 이 시각 현재 지나와 우리 해경이 합동 구조작업을 하고 있습니다만 보다시피 비바람이 거세서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화면은 거의 사선으로 쏟아지는 굵은 빗물을 비추었다. 마라도 쪽보다는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그쪽 일기가 상당히 좋지 않군요. 어제 비슷한 시각에 마라도 남서쪽 해역에서도 어선 침몰사고가 있었는데 가거도 쪽은 생존자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생존자를 아직 한 명도 못 본 겁니까?”

“네,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곳엔 438척의 어선이 있었습니다. 총 6,130명의 선원이 승선해 있었구요. 현재 시신 3,000구를 인양했고 계속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 수온이 차가워 생존자가 없는 모양입니다.”

앵커는 짐짓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다.

“네, 어제 사고소식을 접수한 지나 정부는 우리 정부에 연락하여 긴급 구조작업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이에 우리 해경이 사고해역에 긴급 출동하였습니다.”

“사고 접수로부터 얼마나 되어 현장에 당도한 겁니까?”

“해경 당직자의 말에 의하면 세 시간 삼십 분 정도 경과되었다고 합니다.”

데스크 앵커가 안경을 고쳐 쓰며 묻는다.

“지나에선 언제 당도했다고 합니까?”

“해경이 당도하고 약 일곱 시간 후에야 왔다고 합니다.”

“우리 해경이 당도했을 때 생존자가 없었다는 겁니까?”

“네,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추가로 보도할 내용 있습니까?”

“아닙니다.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 수고해 주십시오.”

또 데스크로 화면이 바뀌었다.

“우리 바다를 침범한 지나 어선들의 침몰사고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를 정리해 보면 지난 2월 24일에 충남 태안군 격렬비열도 해상에서 226척이 침몰하였습니다.”

여성 앵커가 말을 받는다.

“그날 NLL 인근 해역에서도 318척이 침몰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마라도 남서쪽 해역 712척, 신안군 가거도 해역 438척이 또 침몰했습니다.”

“합계 1,794척이군요.”

“맞습니다. 격렬비열도 2,402명, NLL 인근 해역 3,983명, 마라도 해역 9,256명, 그리고 가거도 해역은 6,130명의 선원이 조업 중이었습니다.”

“이 중 겨우 세 명만이 생존했고, 나머지 2만 1,768명이 사망, 또는 실종 상태입니다.”

“상당히 많은 인원이군요.”

앵커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는다.

“네, 이 침몰사고의 공통점은 우리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했다는 것과 모두 지나 어선이라는 것입니다.”

남자 앵커는 뭐라 말을 더 넣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방송에서 남의 나라 바다에 불법적으로 들어와 어족을 싹쓸이하더니 꼴좋다는 말은 할 수 없다. 하여 묘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다음 소식은 영화와 관련된 소식입니다. 오늘 오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빚어졌습니다. 모 영화사…….”

계속된 보도는 권투경기를 주제로 한 영화촬영 중 빚어진 폭행사건에 관한 것이다.

영화 제목은 ‘사각의 링’이라 한다.

이 영화는 국가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 맹훈련을 한 주인공이 편파판정의 희생양이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부심들이 돈을 받고 표 나게 상대 선수에게 점수를 높이 준 결과 주인공은 대표선수 선발에서 탈락된다.

억울함을 참을 수 없던 주인공은 고의적으로 편파판정을 한 부심을 찾아간다. 그리곤 언성을 높이다가 분을 이기지 못해 그를 폭행하는 장면을 찍었다.

그런데 지나치던 행인이 이를 진짜인 것으로 오해하고 주인공을 폭행했다. 전직 격투기 선수였다고 한다.

부심은 50대이고 주인공은 20대이다. 주인공이 욕을 하며 주먹을 휘두르기에 의협심을 발휘했다고 한다.

이 사고로 주인공은 안와 골절을 당했고 앞니가 부러졌다. 주인공은 현실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다.

이를 보고 지현과 연희는 ‘어머! 어떻게 해’를 연발했다. 그런다 하여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치료야 받겠지만 주인공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이때 현수의 뇌리로 스친 사건이 있다.

2014년 2월에 치러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도둑맞은 사건이다.

‘그건 정의가 아니었어. 은퇴 경기였는데…….’

경기가 끝난 후 시상 받기 전 눈물을 흘리던 장면을 떠올린 현수는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누구보다도 공정해야 할 심판들이었는데…….”

지현과 연희가 TV를 보고 있는 동안 현수는 슬그머니 서재로 올라갔다.

서재로 들어가면 웬만한 일이 아니면 불러내지 말라는 부탁을 했으니 이제 혼자만의 시간이 된 것이다.

서재의 벽에는 방음 마법진이 부착되어 있다. 곧 이사를 가야 하기에 영구 마법진은 아니다.

휴대폰을 꺼내 이실리프 정보 3국장을 맡은 최찬성의 번호를 검색해서 걸었다.

착신음이 세 번 울리자 전화를 받는다.

“네, 회장님.”

최 국장 등 네 명의 국장에겐 절대충성 마법인 앱솔루트 피델러티가 중첩된 상태이다. 하여 더없이 공손한 어투이다.

“추가 지시 사항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 경기 때 쇼트 및 프리 경기 심판진 전부의 인적 사항 및 위치를 파악해 주십시오.”

“심판은 아홉 명인데 그들 모두입니까?”

“그들뿐만 아니라 테크니컬 컨트롤러와 테크니컬 스페셜리스트, 그리고 테크니컬 어시스턴트 스페셜리스트와 총괄심판인 레프리, 마지막으로 리플레이 오퍼레이터까지 조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울러 ISU 오타비아 친콴타 회장과 타티아나 타라소바의 위치도 파악해야 합니다.”

“그것 또한 알겠습니다.”

“그리고 미국 야후스포츠 기자 중 ‘한국은 판정 결과를 받아들어야 한다’는 기사를 쓴 놈과 일본 닛칸스포츠에 ‘김연아 소동, 오심도 스포츠의 일부다’라고 쓴 기자 새끼도 찾아주세요.”

“알겠습니다. 확인되는 대로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 일본의 히라마츠 준코와 스위스의 미리암 로리울, 그리고 미국의 게일 탱거, 수잔 린치, 알렉산더 커닉도 찾아야 합니다. 슬로바키아의 주자나 코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으음! 모두 김연아 선수에게 불공평한 점수를 주었던 심판이군요.”

“맞습니다. 이들의 행적을 즉시 파악해 주십시오.”

“명을 받듭니다.”

최찬성에겐 절대 군주의 지시이다. 그렇기에 왜 찾느냐는 등의 토를 달지 않는다.

“좋아요.”

전화를 끊고 4국 국장이 된 배진환의 번호를 검색하여 같은 내용을 지시했다.

배 국장 역시 찍소리 않고 명령을 접수한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여러 사안을 점검했다.

앞으로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자금 조달은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를 따로 메모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므로 혼선이 생기거나 누군가에게 꼬투리 잡히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리를 마치고 내려오니 지현과 연희가 화장대 앞에 나란히 앉아 수다 떨고 있다.

“언니, 혹시 아까 우리가 한 말이 빌미가 되어 현수 씨가 바이롯을 먹고 내려오는 거 아닐까요?”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정리하던 지현이 대꾸한다.

“설마! 우리 둘뿐인데. 그거 두 병이면 오늘 우린 죽는 거야. 생각이 있는 사람이니 아마 안 그럴 거야.”

“그렇죠? 근데 전 되게 긴장돼요. 혹시 그럴까 봐.”

이때 현수의 모습이 거울에 나타난다.

“으이그! 오늘은 그냥 잘 거야. 그러니 그런 걱정일랑 말라고. 그리고 내가 전에 말했잖아. 난 그런 거 필요 없다고.”

현수가 끼어들자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듯 반색하며 돌아앉는다.

“정말요? 다행이에요.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어머! 언니, 그럼 안 돼요.”

연희가 펄쩍 뛴다. 잘못하면 독박을 쓰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으이그! 그냥 잔다니까. 자, 잡시다.”

현수가 먼저 침실로 갔다. 잠시 후 지현과 연희는 고른 숨을 쉬고 있다. 슬립 마법의 결과이다.

서재로 올라간 현수는 지난 2008년 ISU(국제빙상연맹) 주최 컵 오브 차이나 대회 때 김연아에게 석연치 않은 롱 엣지 판정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2013년엔 김연아의 완벽한 플립엔 감점을 주고, 아사다 마오의 두 발 착지에는 가산점을 준 경기도 있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펜싱경기 때 신아람 선수는 길고 긴 1초로 인해 승리를 도둑맞았다.

유도에선 조준호 선수가 억울한 판정 번복으로 승리를 빼앗긴 바 있다.

수영의 박태환은 자유형에서 억울한 실격을 당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엔 도마의 신 양태영이 남자 체조에서 억울한 판정을 받았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엔 1,500m 결승에서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에 김동성이 실격되었다.

이때 오심했던 호주인 제임스 휴이시는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여자 3,000m 쇼트트랙 결승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우승한 한국팀을 실격시켰다.

모든 스포츠 경기는 땀 흘리며 운동한 선수들이 공정한 경기 규칙을 적용받으며 우열을 가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공정해야 할 심판들이 농간을 부려 억울한 선수들을 만들어낸다.

그로 인해 한 나라 국민 전체가 울화통을 터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수는 이들을 모조리 징벌도에 데려다 놓을 생각이다. 죽을 때까지 고통 받으며 살라는 뜻이다.

5장 먹을 건 줄게

지옥도와 연옥도는 가급적 먹을 것을 주지 않을 생각이다. 음식도 아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얼마 전 지나 놈들에게 먹을 것을 준 이유는 빨리 죽지 말고 더 고통당하라는 뜻이다.

징벌도는 다르다. 지옥도의 총알개미나 연옥도의 타란툴라 호크에 비하면 전투모기는 고통의 강도가 약하다.

하여 가끔 먹을 걸 줄 것이다. 죽지 말고 오래오래 고통을 겪으라는 친절한 배려이다.

물론 넉넉하게 줄 생각은 없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겪으면서 상호 간에 혹독한 폭력을 겪으라는 의도이다.

어쨌거나 잘못된 판정은 한국과 관련된 경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기이다.

프로든 아마든 관계없다.

모든 스포츠는 공정해야 한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은 자들은 모조리 징벌도 대상이다.

한번 그곳으로 가게 되면 영원히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렇게 해줄 마음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모두 잃고 본능만이 남아 있는 벌레나 짐승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