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34화 (833/1,307)

# 834

그리고 전투모기에 물리는 건 일상사가 될 것이다.

* * *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천지건설 사옥 1층 안내데스크로 현수가 다가가자 정갈하게 차려입은 아가씨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현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도쿄국립경기장에서의 활약은 전 국민의 마음을 통쾌하게 해줬다. 하여 토요일 저녁 맥주 및 소주 판매량 신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모든 삼겹살집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치킨집 배달원들은 1초도 쉬지 못하고 배달해야 했다.

이례적으로 거의 모든 술집과 치킨집이 심야 영업을 했다.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방송국은 새벽 6시까지 일본과의 경기를 반복해서 방영했고, 수많은 패널이 긴급 투입되어 저마다의 입담을 뽐냈다.

“오늘 H일보 강민경 기자가 저를 찾아올 겁니다. 그 일행을 34층 기획영업단 사무실로 안내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안내데스크 아가씨가 방긋 웃는다. 현수 덕에 천지건설은 호황이다. 하여 지난해 연말에 보너스를 두둑이 받았다.

그렇기에 아주 환한 미소를 짓는다.

“참, 사장님께서 사장님 오시면 사장실로 와달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장님.”

“아! 그래요? 알았습니다.”

사장님이란 어휘의 남발이었지만 다 알아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신형섭 사장의 방으로 갔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조인경 대리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맞이한다. 사랑하는 예비 신랑을 일 지옥에 빠뜨린 인물이다.

콩고민주공화국, 러시아, 몽골에는 각각 대한민국 영토보다 넓은 이실리프 자치구가 있다.

에티오피아+우간다+케냐를 하면 또 하나의 대한민국 영토보다 넓은 자치구가 된다.

결국 대한민국 네 개 정도 되는 드넓은 땅의 모든 건축물을 책임지고 설계하라고 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한창호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다 어제 해결책이 마련되었다.

인맥을 총동원하여 능력 있는 건축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 인원만 2,000여 명이다.

영문 모르고 일요일 회합에 참석한 건축사들은 한창호로부터 엄청난 일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00명으로도 감당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각자의 인맥을 동원하여 이번 주 일요일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

하여 풍납동 올림픽 체조경기장을 긴급 대관했다.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날엔 건축사뿐만 아니라 구조 기술사, 현장소장, 토목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한다. 대한민국이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건축 붐을 해결할 고급 인력이다.

어쨌거나 한창호 혼자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정점에 올라 일을 배분하는 역할 정도면 충분하다.

바야흐로 대한민국 건설계에 일대 바람이 불려 한다.

“아! 어서 오게.”

“네, 잘 다녀오셨지요?”

“그럼! 자네 덕에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고 왔네. 모두 자네 공일세. 고맙네.”

“고맙기는요. 임원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하하! 이 사람 겸손하기는. 그나저나 토요일 축구 경기 잘 봤네. 그렇게 축구를 잘하는지 몰랐는데 대단하더군.”

“에구! 남세스럽습니다.”

현수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자 신 사장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 아무튼 자네 덕에 계약 잘했네. 그래서 오늘 10시에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네. 같이 가세.”

“저도요?”

“당연한 일 아닌가? 박 과장에게 물어보니 다 자네의 공이라더군. 그러니 가세. 그래야 자세한 전말을 알지 않겠나?”

국민의 알 권리를 이야기하려는 표정이다.

“알겠습니다. 시간 맞춰 강당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바쁠 테니 일단 급한 업무부터 보시게.”

“네, 사장님.”

사장실을 나선 현수는 기획영업단으로 향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부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

박진영 과장과 김지윤 대리가 환히 웃으며 맞이한다.

“오늘 아제르바이잔 계약 건으로 기자회견이 있다 들었습니다. 우리가 준비할 건 뭐랍니까?”

“없습니다. 그냥 참석만 하시면 될 겁니다.”

“계약 금액은 얼마라 합니까?”

“172억 달러입니다. 우리 돈으로 약 20조 6,400억짜리 공사지요.”

박진영 과장은 대답하면서도 뿌듯하다는 표정이다. 어찌 되었건 이번 일에 관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수는 이번 공사의 조건이었던 90억 달러를 챙겨두어야 함을 되새겼다. 피터 로스차일드가 추가로 매입한 금괴 대금으로 충당하면 된다.

“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답니까?”

“없습니다. 참, 아제르바이잔 통신기술부와 건설부, 그리고 국방장관께서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그분들이 왜죠?”

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박 과장이 대꾸한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후세인굴루 바기로프 환경천연자원부 장관께서 비서를 통해 메모를 보내신 것뿐입니다.”

“그래요? 언제 보자는 거죠?”

“‘가급적 빠른 시일 내’라고 하셨으니 부사장님 편한 시간이면 될 듯합니다.”

“흐음, 그 밖의 보고 사항은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건에 대한 접근방법을 결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동안 여러 각도에서의 접근방법을 보고서 형태로 올린 바 있다. 꼼꼼히 읽어봤지만 혹하는 것이 없어서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제안서 제출기한이 4월 아닌가요?”

“그전에 계획 설계라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접근방법이 결정되지 않으면 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계를 하루아침에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엔 강연희 대리가 제출했던 안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걸 기본으로 하여 설계를 시작하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강연희 대리에게 연락하겠습니다. 혹시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보내셨습니까?”

“아뇨. 국내에서 자료조사를 하도록 했습니다. 연락하면 연결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박진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일 때 황만규 주임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부사장님, 강당으로 가셔야 할 시각입니다.”

“아, 그래요? 알았습니다.”

파팟, 파파파파파파팟!

현수가 강당 단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메라 플래시가 수없이 명멸한다.

그제는 사회인축구팀의 일원으로서 이런 세례를 받았다. 지금은 능력 있는 기업인으로서 주목받는 순간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새로 수주한 공사에 대해 발표하겠습니다. 질문은 브리핑이 끝난 후에 받기로 하겠습니다.”

단상에 선 신형섭 사장이 입을 열자 조명이 다 꺼진다. 그와 동시에 스크린에 영상이 떠오른다.

신형섭 사장이 아제르바이잔으로 날아가 주무장관인 후세인굴루 바기로프 환경천연자원부 장관과 공사 계약 후 환히 웃으며 찍은 장면이다.

“우리 천지건설은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발주한 석유화학단지 건설을 수주하였습니다. 제 뒤로 보이는 장면은 계약서에 사인하는 장면입니다. 이 공사는…….”

잠시 공사 규모와 일정 등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었다.

“에, 이 공사는 우리 회사의 김현수 부사장이 기획영업단을 이끌고 성사시킨 겁니다. 이 공사에 관한 일화가 궁금하실 듯합니다. 하여 잠시 마이크를 당사 기획영업단 박진영 과장에게 넘기겠습니다. 박 과장!”

“네, 사장님!”

박진영 과장이 기다렸다는 듯 단상으로 다가섰다.

“안녕하십니까? 천지건설 기획영업단 박진영 과장입니다. 저희가 처음 이 공사에 관한 정보를 얻었을 때…….”

잠시 박 과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자한지르 아디고자로브 아제르바이잔 석유공사 부과장과 접촉했던 시점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제법 재미있게 이야기하였기에 듣고만 있었다. 이건 기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질문은 나중에 받기로 했다.

그렇기에 묻고 싶은 것이 있어도 꾹 참고 있다.

그런데 계약의 전말을 잘 구성된 이야기로 듣고 있으니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건축공정총공사와 동북연화공정 유한공사 컨소시엄과 미국의 벡텔과 일본 미쓰이 화학 컨소시엄이 경쟁 상대였다는 말에 다들 크게 놀란다.

천지건설이 많이 크긴 했지만 지나건축공정총공사나 벡텔에 비하면 작다. 게다가 한 번도 석유화학단지 건설에 참여한 바 없으므로 엔지니어링 분야는 아예 백지 상태이다.

그렇기에 이기기 힘든 경쟁상대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천지건설 쪽에서 제안한 모든 것이 저쪽에 흘러들어 간 순간 박 과장은 공사를 포기했음을 이야기했다.

이때 현수가 나타났다.

그리고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아제르바이잔에 당도하여 그곳 대통령과 장관 등 주요 인물들과 약 두 시간에 걸친 회담을 했고, 전격적으로 계약에 합의하였다.

박 과장은 이번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 현수라는 것을 부각시켰다.

모든 대화가 아제르바이잔어로 이루어졌다. 현수는 이 계약을 위해 그 나라 언어를 독학하는 열성을 보여주었다.

짝, 짝, 짝짝짝짝!

박 과장이 단상에서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발표가 끝났음을 표하자 모든 기자가 기립박수를 친다.

박 과장의 이야기가 조리있고 재미있었다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는 현수에게 보내는 박수이다.

잠시 후, 신 사장이 다시 마이크 앞에 선다.

“우리 박 과장이 이야길 참 잘하지요? 이런 재능이 있는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앞으로 우리 회사의 모든 공식행사 진행을 맡겨야겠습니다. 자, 그럼 질문 받겠습니다.”

“K일보 강하율 기자입니다. 이번 공사에 경쟁자들이 상당히 대단했습니다. 그들의 견제를 이긴 비결이 정말 김현수 부사장님의 아제르바이잔어입니까?”

“물론 그게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계약을 체결하러 갔더니 그 나라 장관님께서 마중을 나오셨더군요. 김 부사장 같은 사람이 있는 회사의 사장은 대체 어떤가 알고 싶다고 나온 거더군요. 아무튼 보자마자 제가 그랬습니다.”

참을성이 부족한 어떤 기자가 묻는다.

“뭐라 하셨습니까?”

“‘Necə var? Bu cavab şərəfdir’라고 했습니다.”

“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제르바이잔어로 ‘안녕하십니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랬더니 뭐라고 합니까?”

“저쪽 장관께서 한국말로 ‘만나서 반갑다’고 하더군요.”

“……!”

기자들은 서로 상대방 나라의 말로 인사하는 장면을 상상하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근데 그 양반이 존댓말을 못 배웠나봅니다. 하하하!”

신 사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처음 ‘만나서 반갑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잠시 당황한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하하! 하하하하!”

기자들도 그 장면을 상상하는지 박장대소한다.

“조금 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조금 더 하겠습니다. 이번 계약엔 조건이 걸려 있었습니다. 총공사비 중 90억 달러를 차관해주는 것이었습니다.”

“……!”

90억 달러라면 10조 8,000천억 원이다. 너무 액수가 커서 그런지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그러다 침묵을 깬 기자가 있다.

“그걸 어떻게 해결하고 계약한 겁니까?”

국내 은행 가운데 그만한 금액을 차관으로 제공할 곳은 없다. 그렇기에 물은 것이다.

“김 부사장이 운영하는 이실리프 뱅크가 전액 차관에 동의했습니다.”

“네? 이실리프 뱅크는 자본금이 5조 400억 원이고, 여신을 전문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건 우리 부사장께 직접 듣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신형섭 사장은 자연스럽게 마이크 앞자리를 현수에게 양보했다.

“방금 전에 말씀하신 대로 저희 이실리프 뱅크는 여신 전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계약에 차관을 약속한 것은 증자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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