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836화 (835/1,307)

# 836

“……!”

연일 계속되는 대형 사고에 기자들은 더 물어볼 기력을 잃었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러시아에서 이미 대한민국보다 넓은 땅을 조차 받았다. 그런데 그만한 것 하나가 더 추가된다니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2007년에 용산구 한강로 3가에 위치한 51만 5,483㎡의 부지에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라는 걸 추진한 바 있다. 환산하면 0.515483㎢이다.

새롭게 업무, 상업, 주거 시설을 조성하는 복합 개발 프로젝트였다.

결국엔 무산된 이 사업을 지칭할 때 흔히들 ‘단군 이래 최대’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큰 사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발표한 몽골의 조차지는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던 부지의 1만 5,758배 규모이다.

사업비는 얼마가 소요될지 아무도 모른다.

참고로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의 사업규모는 총액 31조 원이다.

몽골 이실리프 자치구 개발사업에 들어갈 돈은 당연히 이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다.

어쩌면 수천, 수만 배가 될지도 모를 사업이다.

이 정도면 단군 이래 최대사업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업이다. 이런 것이 무려 세 개나 된다.

그것도 동시에 진행된다.

대한민국의 1년 예산 정도는 껌 값처럼 쓰여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더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발표는 계속된다.

“이 지역에서도 무공해 곡물 및 각종 육류와 여러 유제품 등이 생산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국내 농업 기반이 완전히 무너져 내립니다.”

어느 기자의 발언이다.

현수는 그에게 시선을 주며 말을 이었다.

“2008년 세계적 곡물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가격이 폭동하자 30여 개 나라에서는 폭동까지 일어났지요. 당시 식량 수출국들은 곡물을 전략 상품[Strategic Commodity]로 지정하고 수출 통제에 나섰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땠지요?”

“……!”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기에 말을 이었다.

“당시의 한국은 이 곡물 파동에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농민들이 경찰이 휘두르는 곤봉에 맞아가면서 쌀 시장 개방을 반대해 자립기반을 지킨 덕택입니다.”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손을 들고 묻는다.

“그렇다면 이실리프 자치구에선 쌀을 생산하지 않을 계획입니까?”

“아뇨. 합니다.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우리나라는 쌀 생산량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

잘 모르는 분야인지 묻는 기자가 없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아직도 쌀이 남아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엔 27년 만에 큰 흉년이 들어 쌀 생산량이 441만 톤으로 줄었습니다.”

구체적인 숫자가 나오자 메모를 한다. 확인해 볼 사항이라는 뜻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이었다.

“2010년 이후엔 내리 3년간 흉년이 들었지요. 2010년 429만 톤, 2011년 422만 톤, 2012년 400만 톤입니다. 계속 쌀 수확량이 감소했습니다.”

모두들 부지런히 받아 적느라 묻는 이가 없다.

“분명히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줄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농지는 축소되고 있고 흉년이 겹쳐 곡물 자급률은 더 떨어졌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쌀이 남아돈다고 난리이던 때도 있었습니다.”

제법 나이 지긋한 기자가 안경을 고쳐 쓰며 묻는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수입해야 먹고살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지 면적은 178만㏊에 불과합니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78㎢입니다. 2012년의 곡물 자급률은 23.6%에 불과했지요.”

현수가 조차 받은 10만 8,123㎢는 대한민국 전체 경작지의 600배가 넘는 땅이다.

이 드넓은 땅에서 각종 곡물을 생산하면 자급률이 100%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

“한국은 연간 1,400만 톤 내외의 곡물을 수입하고 있는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입니다. 그런데 미국, 지나, 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만 집중적으로 수입하기에 수급 여건이 불안정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누군가의 추임새였지만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2007년 당시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CJ 같은 대기업도 곡물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정부는 곡물 시장을 점점 더 개방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기가 다시 오면 우리도 성난 민중들의 폭동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억지와 비약이 많은 발언이지만 기자들은 이에 대한 반론을 내놓지 못한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도 엄청난 곡물을 수입합니다. 육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실리프 자치구는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쌀과 육류를 공급해 주는 기지가 될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농업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겠습니까?”

“외국의 투기자본에 의한 곡물 파동은 괜찮습니까? 아무리 나라가 어려워도 이실리프 자치구에서 생산하는 곡물은 단 한 톨도 국내로 반입하지 않는 것이 옳겠습니까?”

“네? 그건 아니지만…….”

말꼬리를 흐리며 슬그머니 다른 기자 뒤로 숨어든다.

“이실리프 자치구에서 본격적으로 곡물을 생산해 내려면 앞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사이에 국내 농업인들은 부가가치가 더 큰 특용작물7) 등을 눈여겨보시길 권합니다.”

“고부가가치 작물만 재배하라고요?”

“그건 아닙니다. 원하시는 것은 어떤 것이든 재배하셔도 됩니다. 다만 비용이 많이 들어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은 가급적 피하시라는 뜻입니다. 애써 일해 놓고도 돈을 벌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

또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기자회견장이 농업 분야에 대한 토론장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아 기본 지식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실리프 자치구에선 가급적 형질이 우수한 토종 작물들을 재배해 볼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밀이 있습니다. 토종 밀을 지칭하는 것으로 수입밀보다 면역 기능이 두 배나 높고 항노화 효능 또한 월등히 높은 것으로 밝혀진 겁니다.”

“우리 밀, 아니, 토종 밀을 경작하겠다는 겁니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경작지의 토질과 기후 등도 고려되어야 하니까요. 더 물으실 말 없으시면 발표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끊고 잠시 기다렸으나 누구도 손을 들지 않는다.

“러시아와 몽골에 개발할 이실리프 자치구에서는 지하자원이 있을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개발할 계획입니다. 아시다시피 몽골은 미네랄 러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때 누군가 끼어든다.

“조금 전에 말씀하신 지역을 확인해 보니 우라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럼 그걸 캐 오실 생각입니까?”

“우라늄은 생각해 보지 않아 뭐라 대답할 수 없겠군요. 그런 게 있다면 신중히 생각하여 개발토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현수는 약 5분에 걸쳐 발표문을 낭독했다. 놀랍게도 질문하는 기자가 없다. 마음대로 해보라는 표정이다.

어제 오후 H일보는 특종을 터뜨렸다.

평안남도 안주군 일대에 2,000만 평 규모의 이실리프 기계공업단지가 들어설 것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다른 신문사에서는 취재하지 못한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어 특종으로 분류되었다. 그 내용 중 하나가 북한의 권력자인 김정은과 합법적인 조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이 뉴스가 보도된 직후 국정원과 통일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곤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음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런데 이 조약의 당사자인 현수는 대한민국 국민 개인으로서 사인한 것이 아니다.

콩고민주공화국 이실리프 자치구 대표 자격이다.

자치구는 공식적인 치외법권 지역이다. 타국의 영토 내에 있지만 자체적인 규율에 의해 유지된다.

그 안에 있는 한 자치구 규약 이외의 어떠한 법으로도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다.

현수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이 신분으로 북한과 일을 하는 것은 많은 제약이 따른다.

늘 국정원과 통일부 등 국가기관 사람들과 대화를 해야 하고, 사전 양해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권의 하수인인 이들과 코드가 맞지 않을 때이다. 사사건건 대립하고 딴죽을 건다면 일을 진행시키기 어렵다.

그렇기에 편법 아닌 편법을 썼다. 누가 정권을 잡든 손도 못 대게 하기 위함이다.

이실리프 자치구 대표 자격은 남북한의 모든 제약을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는 신분이다.

사업비용은 대한민국과 전혀 관련 없는 이실리프 자치구 노천금광에서 캔 금으로 충당된다.

하려는 일은 전혀 불법적이지 않고 누구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도 없다.

오히려 미래에 도래할 한민족 화합에 큰 도움이 된다.

통일이 된다면 그 비용 자체를 대폭 축소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국정원과 통일부는 즉각 출두를 요구했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이실리프 자치구의 대표는 평범한 개인이 아니다.

200년이란 조차 기한이 정해져 있지만 왕국 선포를 하면 국왕이 된다. 따라서 처음부터 걸고넘어질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출석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아직은 왕국 선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로마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시티이다. 면적 0.44㎢, 인구 800∼900명이다.

작지만 독립국가인 만큼 독자적인 통신, 금융기관, 화폐, 방송국, 군대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부 각료도 존재한다.

두 번째로 작은 나라는 모나코이다. 면적 1.95㎢, 인구 3만 2,796명이다.

세 번째는 나우루공화국이다. 면적 21㎢, 인구 9,000명인 소국이다.

만일 이실리프 자치구를 왕국으로 선포한다면 엄청나게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에 해당된다.

대한민국은 99,720㎢로 세계 109위 국가이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러시아, 그리고 몽골에 있는 이실리프 자치구들이 각각 왕국 선포를 한다면 108, 109, 111위가 되고 대한민국은 112위로 밀려난다.

세 나라 자치구를 모두 합쳐 하나의 왕국을 선포한다면 폴란드에 이어 71위 국가가 된다.

여기에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의 자치구를 더하면 이라크에 이어 60위로 껑충 뛰어오른다.

대한민국 영토의 네 배가 넘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실리프 자치구가 왕국이 될 때 부족한 것은 국민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다면 국민은 금방 생겨날 것이다.

1. 세금 없음

2. 정년퇴직 없음

3. 강제 국민연금 없음

4. 강제 건강보험 없음

5. 치열한 입시 지옥 없음

6. 강제 징집 없음

7. 청정한 자연

8. 모든 주거 무상 제공

9. 지극히 저렴한 물가

모르긴 해도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절반 이상이 즉각 이주하고 싶다고 할 것이다.

이를 조금 더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이실리프 자치구엔 어떠한 명목으로도 세금을 걷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내국세는 총 열세 가지이다.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부가가치세, 개별소비세, 주세, 인지세, 증권거래세, 교육세, 교통에너지환경세, 농어촌특별세이다.

이 밖에 지방세가 더 있다.

취득세, 등록면허세, 레저세, 지방소비세. 지방교육세, 공동시설세, 지역개발세, 담배소비세, 주민세, 지방소득세, 재산세, 자동차세, 도축세, 주행세로 총 열네 가지이다.

자치구에는 이런 세금이 하나도 없다.

휘발유는 리터당 200원 대에 판매된다. 소주나 맥주의 경우는 군대 PX8)에서 파는 가격보다도 쌀 것이다.

자동차를 구입할 경우 개별소비세, 교육세, 부가세, 취득세 등이 부과된다. 등록할 때엔 공채 매입 절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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