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9
현수를 발견한 놈은 삼합회 소속 14K파 조직원이다.
“다시는 나쁜 짓 안 하겠다고?”
“네? 네. 제발 여기서 나갈 수 있게만 해주십시오.”
“아냐. 나쁜 짓 할 수 있으면 해. 여긴 법이 없는 곳이니까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널 처벌할 사람은 없어. 그러니 마음대로 해.”
“아, 아닙니다. 정말 착하게 살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14K파 행동대장이었던 녀석은 조폭답지 않게 눈물까지 흘리며 애원한다.
그런데 이런 놈을 용서해 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아냐. 착하게 안 살아도 되니까 계속 여기에 있어.”
“네? 아아! 안 됩니다!”
“텔레포트!”
눈앞에서 현수의 신형이 사라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타란툴라 호크들이 다가간다.
“아앗! 안 돼! 가까이 오지 마! 오지 말란 말이야!”
한 번 쏘이면 적어도 3분 동안은 죽을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쳐야 한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다.
그렇기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열심히 흔든다. 하지만 등 뒤에서 다가온 것까지 막을 순 없다.
“아앗!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다른 녀석들도 고통 속에서 헤매는 중이기 때문이다.
징벌도로 이동해선 풀어놓은 총알개미와 타란툴라 호크가 좋아할 만한 먹이를 곳곳에 뿌려두었다.
하루라도 빨리 종족 번식을 하라는 의도이다.
전투모기라 불리는 흰줄숲모기는 섬 주변 호수가 좋은 종족 번식의 장이므로 이들에겐 배려해 주지 않았다.
“흐음, 쥐새끼들을 좀 풀어놔야겠군. 그러면 디오나니아 먹이가 부족할 텐데. 텔레포트!”
다시 지옥도와 연옥도로 간 현수는 시체들을 수거했다. 어차피 썩을 것이니 디오나니아의 영양분으로 삼기 위함이다.
새벽 무렵, 현수는 곤히 잠든 지현과 연희 사이로 들어갔다. 그리곤 아주 잠시 숙면을 취했다.
짹, 짹, 째짹!
“하아암! 끄으으응!”
먼저 눈을 뜬 지현이 기지개를 켠다. 그리곤 살그머니 일어나 커피부터 만든다. 잘 볶아진 원두를 갈아 만든 커피라 그윽한 향기가 풍긴다.
에티오피아에 갔을 때 리야 아스토우가 특별히 챙겨준 것이라 그런지 유난히도 향이 좋다.
“흐음!”
자리에서 일어난 현수는 곯아떨어진 연희의 이불을 잘 덮어주었다. 항온마법진 덕분에 이불을 걷어차고 자도 상관은 없지만 애정 표현을 한 것이다.
“잘 잤어요?”
“응. 지현이도 잘 잤지?”
“네, 모처럼 숙면했어요. 커피 드려요?”
“좋지.”
머그잔에 원두커피를 담아 창밖 풍경이 보이는 소파에 앉았다. 지현이 살그머니 머리를 기대온다.
어깨를 보듬으며 품안으로 끌어당겼다.
쪽―!
가벼운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리곤 애정이 담뿍 담긴 눈빛으로 시선을 맞추며 살짝 윙크했다.
“사랑해.”
“저도요.”
지현을 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히잉! 나도, 나도! 나도 안아줘요!”
어느새 깨어난 연희가 현수의 왼쪽 품을 파고든다. 당연히 안아주었고, 똑같이 뽀뽀해 주었다.
“요즘 일이 많아 힘들지?”
“아뇨. 자기가 준 반지의 바디 리프레쉬 마법 덕분인지 피곤한 건 별로 없어요. 혹시 일이 잘못될까 싶어 신경이 곤두서서 그래요.”
연희는 커리어 우먼다운 표정을 짓는다.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 때문이다.
“나 아침 운동 다녀올게.”
“네, 저흰 아침 준비할게요.”
현수가 옷을 갈아입고 마당으로 나가자 밤새 경비원 역할을 대신한 리노와 셀다가 반갑다는 듯 뛰어온다.
“자아, 그럼 갈까?”
문을 열고 나서자 토탈가드 현인구 팀장이 웃는 낯으로 고개를 숙인다. 근접 경호 당번이 된 모양이다.
“운동 가세요?”
“네, 이따 아침 같이해요.”
“아이고, 아닙니다. 어서 다녀오십시오.”
일본까지 따라가 거나하게 먹고 왔다. 그렇기에 얼른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괜찮다는 표정을 짓는다.
우미내 마을 입구엔 시골밥상이라는 맛집이 있다. 버섯닭백숙이 일품인 식당이다.
이 집과 묘향 손만두집, 그리고 장어구이가 일품인 우미관은 경호원들의 식사를 담당하고 있다.
아침은 시골밥상이, 점심은 손만두집이, 저녁은 우미관에서 준비해 준다. 어느 한 곳만 고정으로 하면 동네 인심을 잃고, 금방 질리게 되기 때문이다.
세 곳 모두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다.
게다가 푸짐하다. 경호원들은 이곳에서 제한 없는 식사를 제공 받는다. 비용은 매주 지현이 지불한다.
그렇기에 밥 먹기 불편한 현수와 먹는 것보다 이곳에서 먹는 것이 더 편하기에 물러선 것이다.
“아무튼 다녀오겠습니다.”
“네, 다녀오십시오.”
현수가 리노와 셀다를 이끌고 산속으로 들어가자 경호원들은 한숨 돌린다는 듯 편안한 표정이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말 빠른 속도로 산속을 누빈다.
그랜드마스터의 탄탄한 근육은 산악으로만 마라톤을 한다 해도 두 시간 이내를 기록할 정도이다.
자리를 잡자 아리아니는 여느 때처럼 주변의 숲 되살리기에 나선다. 운동을 마칠 즈음 아리아니가 왔다.
“주인님, 실라디온 덕분에 일이 쉬워져서 일찍 끝났어요.”
“그래? 다행이네.”
“다른 애들도 데리러 가죠.”
“엔다이론과 이그니스, 그리고 노에스를 찾으러 가자고?”
“네, 작업하면서 실라디온과 많은 이야길 주고받았는데 지구엔 얘들이 제일 등급 높은 정령이래요.”
“그래? 그러려면 어디부터 가지?”
“클루드 화산부터 갔으면 해요.”
“클루드 화산? 알았어. 스케줄 조정해 볼게.”
“네.”
아리아니는 자신의 뜻이 가납된 것이 기분 좋은 듯 허공을 유영하더니 현수의 오른쪽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주인님.”
“왜?”
“주인님의 부인들, 참 예뻐요. 인간 중에 그렇게 예쁜 여인들은 드문데…….”
“그래? 그거 칭찬인 거지?”
“네, 근데 대체 부인이 몇 명이에요? 누가 부인인지 구분이 안 갈 때가 있어요. 그러니 이제부턴 누가 부인인지 가르쳐 줘요. 주인님의 부인이면 내가 보호해 줄 대상이니까요.”
“아리아니가 보호를 해?”
현수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정령을 부릴 수 있으니 그들의 힘을 빌려 무언가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30㎝짜리 몸으로 무엇을 하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상당히 많은 능력을 지녔어요. 아시죠?”
아리아니는 짐짓 뽐낸다는 듯 손을 허리춤에 놓고 방긋 웃는다. 너무 귀여워 콱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다.
“알았어. 나중에 꼭 말해줘.”
“네.”
“우선 이곳엔 지현과 연희, 그리고 이리냐가 아내야. 아르센 대륙에선 카이로시아와 로잘린, 스테이시와 케이트, 그리고 다프네이고.”
“총 여덟 분이군요?”
“좀 많지?”
“아뇨. 주인님은 아리아니의 주인님이세요. 여덟으론 부족하지요. 게다가 두 차원을 합친 인원이잖아요.”
“그래도 많아. 아무튼 내 아내들 잘 부탁해.”
“네, 아리아니의 축복을 내려줄게요.”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해롭게 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고마… 압지 않네. 그치?”
“네, 우린 서로 사랑하니까요.”
아리아니가 방긋 웃는다.
현수는 리노와 셀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공간에 담긴 고기를 꺼내주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자기, 사장님으로부터 전화 왔어요.”
“신 사장님?”
“할아버지께서 오신다고 회사로 나오시래요.”
연희가 말한 할아버지는 이연서 회장이다.
“끄응! 말이 들어간 모양이군.”
해외영업부 최 부장과 윤 차장이 에티오피아 건을 발설한 듯싶다.
“알았어. 그렇게 하지. 나 샤워 좀 할게.”
씻고 나와 맛있는 아침을 먹었다. 화기애애하고 정감 넘치는 아침 식사였다.
지현과 같이 출근하여 데려다 주고는 회사로 향했다. 연희는 보는 눈이 있는지라 토탈가드의 차량을 이용했다.
8장 대략 난감한 표정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
안내 데스크의 아가씨가 배꼽인사를 한다.
“네, 좋은 아침이에요, 이향원 씨.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가 되길 빌어요.”
현수의 웃음 띤 말에 안내데스크 아가씨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현수가 본인의 이름을 알기 때문이다.
“어머! 아, 네. 사장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직원이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다. 머리가 희끗한 임원들도 마찬가지이다.
현수가 이 회사의 중심이라는 것을 모두가 인정한 것이다.
‘에구!’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혼자 올라가라고 아무도 오르지 않는다. 하여 할 수 없이 홀로 이동 중이다.
땡―!
경쾌한 신호음에 이어 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조인경 대리부터 시작하여 사장 비서실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 숙여 예를 갖춘다.
자재과 신입사원일 때는 이들을 부러워했다. 천지건설의 브레인들이라 인정받는 직원들이기 때문이다.
수습사원일 때엔 나는 언제 저런 부서에 배속되어 보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볼 때마다 인사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들로부터 인사를 받는다.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하하! 어서 오시게.”
신 사장이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상석엔 이연서 회장이 앉아 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오, 그래! 그동안 잘 있었는가, 김 사장?”
사석에선 손서로 대하지만 지금은 공식적인 자리이다. 그렇기에 직함을 불러준다.
“네, 건강하시지요?”
“그럼, 그럼!”
이 회장의 얼굴을 살피니 혈색이 좋다.
만병으로부터 해방된 상태인 듯싶다. 물론 현수가 준 바디 리프레쉬 마법진 덕분이다.
“자자, 앉게, 앉아!”
“네.”
현수가 자리에 앉자 신 사장이 결재판을 펼친다.
“어젯밤 아주 재미있는 보고를 받았네.”
“……?”
“에티오피아에서 또 두 건을 터뜨렸다면서?”
신 사장은 몹시 흥미롭고 흥분된다는 표정이다. 현수가 수주한 두 개의 공사가 추가되면 천지건설은 그야말로 널널한 격차로 대한민국 최고의 건설사 자리를 유지하게 된다.
다시 말해 2위와의 격차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진다. 대표이사 사장으로서 당연히 몹시 흥분될 일이다.
그런데 현수는 무덤덤한 표정이다. 이제 이 정도 일로는 흥분조차 하지 않는 반열에 오른 탓이다.
“아, 그거요?”
“그렇다네. 왜 말 안 했나?”
“그쪽에서 공사를 준다는 확약은 받았지만 공사 규모 등이 아직 미정인 상태라서요.”
현수의 말은 사실이다. 이곳으로부터 저곳까지 4차선 고속도로와 표준궤 철도를 놓아달라는 것뿐이다.
어느 어느 지점을 통과할지조차 정해진 바 없다. 그쪽의 지형조차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 아무튼 수고했네. 자네 덕에 우리 회사가 나날이 발전하네. 고맙네.”
“해외영업부에 지시했습니다. 공사 규모 등이 확정되면 그때 다시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주게. 회장님, 기쁘시죠?”
“그럼, 그럼! 근데 문제가 있네.”
“네? 뭐가요?”
요즘은 모두 좋은 일뿐이다. 일감은 넘쳐나고 회사가 보유한 자금도 충분하다. 공사 때문에 벌어지는 분쟁도 없다.
따라서 안 좋을 일이 없는데 회장의 표정이 편해 보이지 않는다. 신 사장은 혹시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나 싶어 얼른 시선을 보낸다.
“우리 김 부사장이 또 큰 공을 세웠으니 이번에도 승진시켜야 하는데 자리가 없어서 말이네.”
“네?”
현수가 부사장에서 한 계단 더 승진하면 사장이다.
그럴 경우 본인이 자리를 내놔야 한다. 대표이사 사장은 한 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