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0
자신이 공석인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자연스레 자리를 물려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자리는 지위만 높을 뿐 대표이사 사장보다 권력이 작다. 밀려나는 것이다.
두 계급 승진이 결정되면 현수는 부회장이 된다.
그런데 그 자리를 현수에게 주면 졸지에 상사가 된다. 상하가 뒤바뀌는 것이다.
세 단계 승진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현임 회장이 이연서 회장의 친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계급이든 두 계급이든 문제이다. 하여 인터넷 유행어처럼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이를 본 이연서 회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하하! 이 사람, 자기 자리 빼앗길까 싶어 긴장하는군.”
“네? 아, 네에. 하하! 뭐 물러나라면 물러나야죠.”
마음에 없는 말인 것이 분명하다. 신 사장의 표정이 조금은 어색했기에 누구나 눈치챌 수 있다.
“농담일세, 농담! 자네가 아니면 누가 천지건설을 잡음 없이 이끌어가겠는가. 그나저나 진급을 시킬 수 없으니 다른 걸 줘야겠군. 이보게, 김 사장!”
“네, 회장님!”
둘 사이의 농담을 들으며 웃고 있던 현수가 시선을 준다.
“원하는 게 뭐가 있는가? 말만 하게.”
“없는데요.”
“없어?”
“네, 별로 바라는 게 없습니다.”
“으음! 하긴…….”
이연서 회장은 콩고민주공화국에 있는 저택을 다녀온 바 있다. 그렇기에 현수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잠시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다.
현수와 신 사장은 그런 회장의 상념을 방해하지 않으며 입을 다물고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알겠네. 바라는 게 없다니 일단은 가만히 있지. 바쁠 테니 나가서 일보게.”
“네, 회장님!”
꾸벅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축하드려요, 부사장님.”
“에이, 왜 이러세요?”
곧 형수가 될 조인경 대리가 깍듯하게 고개 숙여 예를 취하니 불편하다.
“부사장님 덕분에 우리 회사, 점점 더 탄탄해져 가는 거잖아요. 정말 대단한 능력을 지니셨어요. 고마워요.”
“아, 네.”
현수는 대강 얼버무리며 밖으로 나갔다.
이러는 사이에 이연서 회장과 신 사장은 서류 하나에 두 시선을 주고 있다.
현수의 집이 지어지고 있는 양평 부동산에 관한 것이다. 손녀와의 결혼 예물로 증여한 것은 21,079평이다.
원래 휴양시설을 지으려는 목적으로 매입한 것이다.
이 땅 이외에도 꽤 넓은 임야를 소유하고 있다. 36홀짜리 골프장 건설을 염두에 두고 매입했기 때문이다.
전체 면적 66만㎡(약 20만 평)으로 현수의 저택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걸 주자는 말씀이십니까?”
이 회장이 주자는 것은 골프장을 만들려던 것이다.
애초의 계획을 반으로 축소하여 18홀짜리로 조성하려면 3만 평 정도가 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머지 토지매입이 쉽지 않아 묵혀두었다.
워낙 경관이 뛰어난 곳인지라 지주들이 너무 비싼 값을 불러 매입을 멈춘 것이다.
그리곤 9홀짜리 골프장과 클럽하우스, 그리고 천지그룹 직원들을 위한 휴양시설을 조성하려는 계획을 짰다.
그런데 갑작스레 일이 뻥뻥 터져 보류된 상황이다.
갑작스레 콩고민주공화국 잉가댐 공사 및 킨샤사―비날리아 간 4차선 고속도로 건설공사가 수주되어 모든 인력을 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적당할 듯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저는 찬성입니다. 그런데 김 부사장이 조금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요?”
양평은 서울과 가깝고 풍광이 수려하여 지가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천지건설이 이 땅을 매입할 때 평당 50만 원 정도를 지불했다. 다시 말해 1,000억 원이 매입가이다.
현재의 지가는 이보다 올라 60∼70만 원 정도 할 것이다. 어쩌면 이보다 훨씬 더 비쌀 수도 있다.
어쨌거나 현수가 이룬 공은 지대하다. 따라서 1,000억 원짜리 보너스를 줘도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회사에서 거둘 수익이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담스러워할 것이라 이야기한 것은 현수의 성품을 알기 때문이다.
“자네는 왜 부담스러워할 거라 생각하지?”
“김 부사장이 가진 부동산은 우리나라 전체보다도 넓습니다. 그중 풍광 좋은 곳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흐음, 그런가? 나는…….”
강연희의 존재는 드러내 놓을 수 없다. 아들에게 혼외 자식이 있는 것이 부끄러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연희 본인이 결코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생을 많이 한 손녀이기에 기회 있을 때마다 퍼주고 싶은 게 이연서 회장의 마음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일생 동안 남편 사랑을 받으며 살길 바라는 것이다.
현수에게 주려던 땅을 골프장으로 만들려면 대규모 자연 훼손이 불가피하다. 수목 대부분을 베어내야 하며, 산을 깎아 구릉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이는 자연을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하여 마음이 내키지 않아 지금껏 개발공사 개시를 만류했다.
“부동산을 줘봐야 별다른 용처 없이 묵혀둘 겁니다. 따라서 임야를 받는 걸 별로 내켜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현수에게 주려는 임야는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돈 많은 사람들의 별장 단지를 짓는 것이 아니라면 용도가 다양하지 못할 곳이다.
그런데 현수에겐 제주도 섭지코지에 있는 유니콘 아일랜드의 저택 50채가 있다. 양평보다 풍광 좋은 곳이다. 따라서 부자들의 별장단지를 개발하는 일 등을 하지 않을 것이다.
신 사장은 이를 짚어준 것이다.
“그래도 한번 주겠다고 해보게. 싫다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 아닌가, 안 그래?”
“네, 회장님.”
“이게 싫다고 하면 연말에 성과급 두둑하게 지불하게.”
“현금으로요? 얼마나 생각하십니까?”
“한 2,000억 원이면 될까?”
“네?”
계속해서 큰 공사를 하다 보니 금전 감각이 둔해진 듯 엄청난 금액을 부른다.
“그 정도는 줘야 회사 체면이 서지 않겠어? 우리 그룹의 보물이니 그 정도 대접은 해줘야지. 안 그런가?”
“네, 그, 그럼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말 나온 김에 전화를 하든지 문자를 넣어보게.”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현수는 카톡 하나를 받았다.
‘사장님도 카톡을 하시나? 후후!’
회장님께서 자네의 공을 높이 사 양평에 있는 임야를 명의 이전해 주라고 하시네. 그곳 주소는 양평군 강하면 ***번지이네. 면적은 66만㎡ 정도 되네. 확인해 보고 연락 주시게.
“땅을 주신다고? 갑자기 웬 땅이지?”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인터넷으로 지번을 입력하여 보았다. 어떤 곳의 땅인지 알아나 보자는 의도이다. 확인 결과 짓고 있는 저택 주변의 땅이다.
‘이걸 어떻게 하라는 뜻이지?’
없던 땅이니 용처가 정해져 있을 리 없다. 하여 잠시 멍한 표정이다.
보너스 개념인 것 같으니 거절할 수도 없다.
“회장님께서 주시려는 모양이네. 근데 이것까지 합쳐지면 집이 너무 넓어지는데.”
현수가 직장인의 신화로 불리고 자수성가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22만 평이 넘는 집에서 산다고 하면 분명 좋지 않은 말이 나올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 아파하는 게 민심이기 때문이다.
“흐음, 안 받을 수도 없고……. 아, 맞아!”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상념이 있다.
2009년 보건복지가족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엔 소년소녀가장은 총 1,337세대, 2,058명이다.
부모의 사망, 가출, 질병, 복역 등으로 발생되었다.
이 밖에 전체의 4분지 1은 부모의 이혼 때문이다.
“흐음,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수익이 너무 많이 쌓이니 이제 복지사업을 할 때가 되었어.”
현수의 중얼거림처럼 이실리프 무역상사는 매달 막대한 금액을 버는 중이다.
각종 의약품, 듀 닥터, 항온의류, 엘딕, 스피드, 쉐리엔 등을 고정적으로 수출하고 있다.
거래 상대는 천지약품과 드모비치 상사, 그리고 지르코프 상사와 두바이의 아지즈 상사 등이다.
단 한 번도 트러블 없이 거래되었고, 모든 결제는 현금이다. 당연히 수익금액이 엄청나게 많다.
하여 개인사업자를 법인으로 바꾸었다. 개인은 최고 38%가 세율이지만 법인은 22%이기 때문이다.
이은정 사장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직원들에 대한 처우를 전폭적으로 개선할 예정이다.
먼저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대표이사가 된 이은정의 연봉을 3억으로 올릴 것이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한 김수진과 이지혜는 차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연봉 1억 5천이 된다.
특히 이지혜는 항공운송을 해상운송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한 것에 대한 인센티브를 별도로 지급 받는다.
총 절감 비용의 25%이다.
임소희, 장은미, 최미애, 전혜숙도 열심히 일했다. 이들은 과장으로 승진되면서 연봉 1억 2천이 된다.
올해 입사한 20명의 신입사원 연봉도 상승한다.
참고로 2014년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은 3,700만 원이다. 중소기업은 이보다 적은 2,340만 원이다.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신입사원들은 이보다 훨씬 많은 6,000만 원을 받게 될 예정이다.
금액만 봐도 대기업을 능가한다.
게다가 근무시간은 한 시간 적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야근은 당연히 없다.
업무에 지장이 없다면 본인 편한 시간에 출근하여 업무만 완수하면 되는 탄력근무제를 선택해도 된다.
공휴일이 토, 일요일과 겹치면 차주 평일에 하루 더 쉬는 대체 휴일제도 운영될 예정이다.
이 밖에 계절별 휴가가 있다.
3∼6월엔 봄휴가 4일, 7∼9월엔 여름휴가 7일, 9∼11월엔 가을휴가 4일, 12∼2월엔 겨울휴가 7일이 주어진다.
휴가기간 동안 숙박업소를 이용하면 그 비용의 3분의 2를 회사에서 부담한다. 이는 국내 4성급 호텔 기준이다.
장기근속 휴가제도도 도입할 예정이다.
근무기간이 5년이 될 때마다 추가로 15일간 휴가를 준다. 이때는 항공비와 숙박비 전액을 지원할 예정이다.
직원들에 대한 처우를 이토록 개선해도 이실리프 무역상사는 끄떡없다.
쉐리엔의 판매량이 대폭 늘어 올해부터는 드모비치 상사에만 월 2억 달러 이상 수출하기 때문이다.
이 중 최하 10%인 2,000만 달러가 보장된 수익금이다.
월 240억 원 이상이 남는 것이니 직원들에 대한 처우를 대폭 개선해 주려는 것이다.
쉐리엔은 소비재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실리프 무역상사는 매달 100억 원 이상의 이익이 실현된다.
경쟁상대도 없는 제품이니 거의 영구무변할 일이다.
이제 복지재단을 설립해도 될 만큼 성장한 것이다.
‘부모가 이혼한 경우를 제외한 아이들에게 주거를 제공하는 건 어떨까?’
소년소녀가장 중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경우를 빼고 나면 1,027세대, 1,570명 정도 된다. 가구당 1.5명 꼴이다.
“인원에 따라 14평, 또는 21평짜리 정도면 괜찮겠지?”
1인 가족 14평, 2인 가족 21평을 구상한 것이다.
당연히 전기, 수도, 가스요금 모두 무료이다. 침대, 책상, 옷장, 컴퓨터, 세탁기, 텔레비전 등도 지원된다.
전기는 태양광발전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수도는 위그드라실의 잎을 이용한 지하수 개발로 해결하면 된다.
각 세대에는 항온마법진을 설치할 생각이다. 직접 온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장치는 추후에 생각해내야 한다.
이게 실현될 경우 냉난방을 위한 전력, 또는 가스의 사용량 최소화를 기대할 수 있다.
아이들만 살게 되므로 가스레인지 대신 인덕션 레인지13)를 설치할 계획이다. 화재, 또는 일산화탄소 중독 등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