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4
“아가리 닥쳐라! 그리고 모두들 왼쪽을 보도록!”
한국과 이곳은 시차가 있다. 서울이 밤 12시이면 이곳은 오후 4시이다. 그렇기에 사방이 훤히 보인다.
현수가 손짓하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헉! 저건……!”
물가로 다가가던 뉴트리아가 아나콘다와 악어에게 먹히는 장면을 목격한 친일파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진다.
아나콘다의 숫자만 해도 수백 마리는 넘는 듯하다. 덩치 큰 악어 역시 상당히 많다.
현재 징벌도가 수면과 만나는 곳은 먹이 다툼이 치열하다. 한 마리라도 더 잡아먹으려는 포식자들 때문이다.
“보다시피 여긴 정글이다. 그리고 이곳은 섬이지.”
현수의 말이 시작되자 다시 한 번 시선이 쏠린다.
“나는 너희 친일파들을 위해 이곳을 조성했다. 참고로 여기는 콩고민주공화국 내의 영토이며 인적이 없는 곳이다.”
“……!”
“너희는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역사를 왜곡한 죄! 그리고 그것으로 자라나는 학생들의 의식을 흐리게 하려한 죗값이다!”
“……!”
모두들 아무런 말이 없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모양이다.
“자, 모두들 의복을 벗어라. 양말 한쪽이라도 남기는 놈은 벼락의 맛을 보게 될 것이다. 라이트닝!”
번쩍! 콰콰쾅―!
찌익―!
벼락이 작렬하자 아나콘다를 피해 도망치던 뉴트리아가 그대로 뻗어버린다. 발랑 자빠진 채 부르르 떠는데 모락모락 연기가 난다. 장난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한다. 모두 벗어라! 시간은 10초 준다! 실시!”
“시, 실시!”
몇몇 녀석이 복창하며 옷을 벗는다. 200여 명 중 30명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85% 이상은 군복무를 안 한 모양이다.
현수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소 냉막한 시선으로 서둘러 옷을 벗고 있는 자들을 바라보았다. 포항에서 잡아온 놈은 나이가 80이 다 되어 그런지 조금 느리다.
“아이스 애로우! 발사!”
쐐에에에엑―! 푸욱!
“아악! 아아아악!”
세월아 네월아 하며 천천히 옷을 벗던 녀석이 자빠진 채 비명을 지른다. 얼음화살 하나가 허벅지에 박힌 때문이다.
“계속 그렇게 누워서 비명을 질러라. 다음은 대가리에 박아줄 테니. 자, 시간 얼마 안 남았다. 빨리 벗어!”
늙었지만 확실히 옷 벗는 속도가 빨라진다.
“벗은 옷은 이곳에 모으도록!”
“……!”
우물우물하면서도 현수가 손짓한 곳에 옷가지들을 모은다.
“파이어 스톰!”
화르르륵! 화르르르르륵!
시뻘건 불길이 붙는가 싶더니 파랗게 변한다. 그리고 잠시 후엔 벗어놓은 옷을 불길이 삼킨다.
초고열 마법이 시전된 결과이다.
모두들 두렵다는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자 벗어놓은 옷이 모두 탔다.
“자, 이제부터 너희들만의 쇼 타임이다. 친일해서 누린 부귀영화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깨닫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플라이!”
현수의 신형이 허공으로 더 솟자 모두들 고개를 빼 든다.
높이 50m쯤 되었을 때 존재감을 지웠다.
그와 동시에 물러나 있던 총알개미, 타란툴라 호크, 그리고 전투모기라 불리는 흰줄숲모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아악! 아아아악!”
누군가 총알개미에게 발을 물린 듯하다. 오른발을 붙잡고 펄펄 뛴다. 그 순간 다른 놈이 비명을 지른다.
“이게 뭐야? 저리 가! 저리 가! 아아악!”
타란툴라 호크에 쏘인 놈이 바닥을 나뒹군다.
또 다른 곳은 연신 팔을 휘두른다. 모 학교 재단 이사장이라고 거들먹거리던 놈이다. 이놈을 향해 흰줄숲모기들이 무차별 폭격을 시작한다.
“아아악! 아아아악!”
“사람 살려! 아악! 헉! 쥐, 쥐다!”
정신없이 도망치던 놈 가운데 하나는 우글거리는 쥐들을 보고 기겁하며 돌아선다. 그 순간 목덜미를 노리던 타란툴라 호크가 한 방 시원하게 쏜다.
“으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캐애액!”
쓰러져 나뒹구는데 총알개미가 문 모양이다.
현수는 허공에 뜬 채 밑에서 벌어지는 광란을 지켜보았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다.
비명, 비명, 비명의 연속이다. 고통에 겨워 나뒹굴지만 물가 쪽으로는 안 가려 애를 쓴다. 가면 아나콘다나 악어의 먹이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쪽엔 쥐들이 우글거린다. 170∼180만 마리 정도 되니 얼마나 많아 보이겠는가!
흰줄숲모기에 물리고 펄펄 뛰면 타란툴라 호크가 쏜다. 그래서 바닥에 나자빠지면 총알개미가 사정없이 물어버린다.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지만 아무도 도울 수 없다.
“그러게 정도를 지키며 살았어야지. 쯧쯧!”
나직이 혀를 찬 현수는 아공간에서 치즈를 꺼냈다. 마법으로 이것들을 녹인 뒤 발광하는 놈들에게 뿌렸다.
그 즉시 치즈 특유의 냄새가 번진다. 기다렸다는 듯 쥐떼가 뒤덮는다.
“아악! 이건 뭐야?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아악!”
시커먼 쥐들이 미친 듯 달려온다. 며칠을 굶은 녀석들이다. 그런데 치즈 냄새가 나니 어찌 안 오겠는가!
바닥에 누워 비명을 지르며 발광하던 놈들이 기겁하지만 이미 사방은 시커먼 쥐 떼로 뒤덮인 후다.
“크으! 냄새.”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더 보고 싶었지만 악취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징벌도에서 사라졌다.
짹, 짹, 짹!
“하암, 잘 잤다.”
오늘도 지현이 먼저 일어난다.
“잘 잤어? 여기 커피!”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 하지 않기로 했잖아.”
“참, 그러네요. 잘 마실게요.”
현수가 건넨 커피잔을 받아 든 지현이 생긋 웃는다. 화장기 하나 없는 부스스한 얼굴이다. 그럼에도 아주 예쁘다.
‘장가 한번 잘 간 거네.’
“난 애들 데리고 운동 나갈게. 연희 깨면 커피 줘.”
“네, 잘 다녀와요.”
지현이 배시시 웃음 짓는다.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현관을 나섰다.
리노와 셀다가 준비 다 되었다는 듯 기다리고 있다.
“자, 오늘도 가볼까? 가자!”
현관을 열자 경호원이 인사한다.
“고생 많았어요. 운동 다녀올 테니 좀 쉬어요.”
“네, 다녀오십시오.”
이제 한 시간은 자유다. 그렇기에 환한 표정이다.
여느 때처럼 아리아니가 가자는 쪽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운동기구를 꺼내놓고 운동을 했다.
“주인님, 이그니스 데리러 안 가요? 노에스는 그렇다 쳐도 엔다이론도 만나야 하잖아요.”
“지금 가자고?”
“아뇨. 아침은 드셔야 하잖아요.”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지만 인간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양보한다는 표정이다.
“…알았어. 아침 먹고 일 좀 본 다음에 다녀오지.”
“실라디온, 주인님께서 이그니스 보러 가신대.”
“어머! 정말이요? 아이, 좋아라. 이그니스 본 지 꽤 오래되었는데. 호호! 좋아요, 마스터!”
“오늘도 운동 잘했어요?”
“그럼! 뭐 맛있는 거 했어? 냄새 좋네.”
“호호! 기대하세요. 먼저 씻고 와요.”
“응.”
샤워를 마치고 나와 머리를 말리는데 텔레비전에서 뉴스 속보가 나온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속보가 많다.
요즘 신나는 건 뉴스 채널뿐인 듯싶다.
“어젯밤 의문의 실종 사건이 이어졌습니다. 포항에 거주하는 유◇▽ 교수와 공주에 사는 이○△ 교수 등이 사라졌습니다.”
화면엔 돼지같이 살찐 이○△의 혐오스런 얼굴과 역사학계를 주름잡던 유◇▽의 얼굴이 나타난다.
타란툴라 호크에 쏘인 뒤 바닥을 나뒹굴다 총알개미에게 물려 길고 긴 비명을 지르던 새끼들이다.
지금쯤이면 냄새나는 쥐들에게 뒤덮여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화면 아래에는 유◇▽와 이○△의 신상명세가 자막으로 흐른다. 맡은 직책도 많다.
잠시 후, 앵커의 멘트가 이어진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이들은 잠자리에 든 복장 그대로 실종된 것이라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경북 성◎고, 울산 현□고, 경남 창▽고, 합☆여고, 대구 포○고 등 각 학교의 재단 이사장과 이사, 교장, 교감, 그리고 교사 중 일부도 실종되었습니다.”
화면에는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채택했던 학교의 명단이 나타난다. 경상남북도와 부산, 대구에 있는 학교들이다.
이 밖에 공주 인근지역 학교의 명칭도 나온다.
“이들의 공통점은 새로 만든 역사 교과서의 집필진, 또는 채택 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학교 관계자들입니다.”
화면엔 각 학교의 전경과 실종자들의 이력과 얼굴이다.
피식―!
현수는 실소를 머금었다.
방금 언급된 놈들은 영원히 대한민국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 놈들에게 남은 건 공포, 고통, 비명, 절망뿐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이들의 자손은 어느 누구도 이실리프와 관련된 곳에 취업하지 못한다.
지금까지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만 고생하고 친일파의 후손들은 잘 먹고 잘살면서 떵떵거렸다.
앞으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만 대우 받고 친일파의 후손들은 차츰차츰 사회에서 격리되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다행인 것은 현수의 수명이 1,200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500년은 이런 제도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이 정도면 사회의 극빈층으로 주저앉은 뒤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어쩌면 완전히 대가 끊기는 일이 발생될 수도 있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사회적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을 알면 결혼하려는 상대자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흐음, 오늘 밤엔 가급적이면 서둘러야겠네.”
내일 아침 또 뉴스 속보가 나올 것이다.
이번엔 전라남북도와 강원도, 그리고 경기도 일원에서 실종자들이 발생될 것이다. 모두 역사 교과서와 관련된 자들이다. 따라서 모레부터는 몸을 숨길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실리프 정보의 요원들이 동원되면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식사 준비 완료예요. 오세요.”
“응, 그래.”
텔레비전을 끄고 식탁으로 가 맛있는 아침 식사를 즐겼다.
지현을 출근시키면서 또 4인방을 만났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지현에게 물어보니 아직은 권력에 오염되지 않은 열혈 검사들이라 한다.
지현은 아마도 아버지의 영향이 클 것이라 이야기한다. 장인이 법조계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롤 모델이라는 것이다.
‘흐음! 쓸 만한 사람들이긴 한데, 쩝, 모두 빼오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겠어.’
살짝 오염되었다면 절대충성 마법으로 빼돌릴 수 있다. 그러면 그 자리를 다른 깨끗한 검사가 차지한다.
사회 정의 구현에 도움될 일이다. 그런데 청렴하다니 빼올 수가 없는 것이다.
천지건설에 들러 보고서를 읽고 결재를 해주었다. 다음은 이실리프 무역상사 방문이다.
“어서 오세요, 회장님!”
“네, 바쁘죠?”
“정신없이 바쁘긴 해도 견딜 만은 해요.”
요즘 연애 중이라는 김수진이 생긋 웃는다.
“회사 일에 차질은 없죠?”
“그럼요. 은정이가… 아니, 이은정 사장님이 체계를 잘 잡아놓으셔서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면 되니까요.”
“네, 아주 다행한 일입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진의 말처럼 정해진 규칙에 따라 업무 처리를 하면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매뉴얼이 작성되어 있다. 담당자가 아프거나 개인사정으로 자리를 비워도 그것대로만 움직이면 일 처리가 매끄럽도록 한 것이다.
“수출물량 확보는 어때요? 그것도 차질 없죠?”
“그럼요. 다들 우리 회사 우선이에요. 그래서 별탈 없이 업무가 추진되는 중이에요.”
“그것도 다행입니다.”
현수가 환히 웃자 수진도 따라 웃는다. 요즘 정말 회사 다닐 맛이 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은정과 수진, 그리고 지혜는 대한의약품의 주식 전부를 현수에게 매도했다. 6월 하순 때 현수가 특별히 대출해 준 3억 원으로 각기 15만 주씩 샀던 것이다.